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12
912회. 누구나 계책을 세운다
연적하는 최근 남맹과 호천맹의 갈등을 보며 나름 생각한 게 있었다.
자신이 무림의 일에서 발을 빼겠다고 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럼 남맹과 호천맹이 다시 힘을 합칠지도 모른다. 아니, 유명교 손에서 천하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합칠 거다.
“남맹과 호천맹이 싸우면 제가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의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하는 거죠.”
“응?”
남궁천이 황당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런 극약 처방으로 정말 남맹과 호천맹의 화합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남궁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연아. 적하가 말한 방법이 먹힐 것 같으냐?”
“가능성은 있어 보이네요.”
남궁연은 더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사파를 통틀어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연적하밖에 없다.
그건 천하무림이 다 아는 사실이다.
다행히 남맹과 호천맹이 연적하의 경고에 정신을 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의 상대가 연적하뿐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다.
남맹과 호천맹이 지금처럼 서로를 적대시해도, 유명교에 의한 인명 피해가 늘어나면, 어느 순간 연적하는 참지 못하고 뛰어들 터였다.
남맹과 호천맹이 그걸 노릴 수도 있다.
‘그들이 맹원들을 갈아 넣으면서 버티기로 나가면 적하가 견딜 수 있을까?’
연적하는 남맹과 호천맹의 피해까지도 자신의 탓으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렇다 할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어리석은 짓을 한다 해도 남맹과 호천맹은 정파 그 자체다.
그걸 한두 사람의 힘으로 뒤집어엎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천하에서 가장 지혜로운 그녀도 쉽게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였다.
남궁천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능성이 있다고? 그럼 됐다. 적하야. 부탁 좀 하자. 남맹과 호천맹의 싸움을 막아다오. 진 매가 웃는 얼굴을 좀 보고 싶다.”
“형님. 저만 믿으세요.”
“어떻게 하려고?”
“금와상방의 신년 하례식 때 남맹에서 시비를 걸러 간다면서요? 그때 제가 가서 다 뒤집어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딱 말하는 거죠. 유명교를 나한테 떠넘기고 뒤에서 남맹과 호천맹이 싸우면, 나는 강호의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그러면 저들이 어쩌겠어요?”
“안 싸우겠지?”
“못 싸웁니다. 형님.”
단순한 두 남자는 벌써 다 끝난 것처럼 득의양양한 얼굴을 했다.
***
남직례성.
남경.
황궁 무영전(武英殿).
늦은 밤.
유명교주의 방문 앞을 지나던 금사가 기이한 독경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유명교의 ‘태상정일강림신주(太上正一降臨神明)’도 아니고 뭘 저렇게 열심히 외우는지 모르겠다.
호기심이 일어난 금사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전심전력으로 주문을 외우던 팔황신모의 소리가 잦아지더니 이내 멈췄다.
눈을 뜬 그녀가 금사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쩐 일이신지요?”
“지나던 길에 주문 소리를 듣고 와 보았다. 그것은 무슨 수련이냐?”
“발원(發願)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주문입니다.”
“장생불멸이라면 방법을 알아보고 있으니 조급히 굴지 않아도 된다.”
“예.”
“염마왕의 손에서 너의 영혼을 돌려받는 것이 우선이다.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는 결국 저승으로 끌려가게 될 테니까. 설마 저승에서 장생불멸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예, 저는 현세에서 장생불멸하기를 원합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으니 진득하니 기다리거라. 섣불리 뭔가 하려고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금사께서는 제가 알려 드린 법문의 효과를 보셨는지요?”
“신들의 일을 알려 하지 마라. 알아 봐야 너희 필멸자에게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으니.”
금사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팔황신모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단지 ‘진체(眞體)’를 찾으려는 금사와 천자마의 몸부림인 까닭이다.
볼일을 마친 금사는 이내 떠나갔다.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팔황신모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누구나 계책을 세운다.
하지만 그것이 꼭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녀는 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
다사다난(多事多難)하던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유명교, 남맹, 호천맹의 긴장 관계는 여전했지만 당장 칼부림이 일어난 곳은 없었다.
연적하에게 유명교 신당이 파괴됐음에도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이 움직이지 않자 사람들은 ‘유명교가 연적하에게 겁먹었다’고 떠들어 댔다.
대세가 기울어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유명교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당장 유명교 신당의 신년 행사에 참가한 사람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한편 남맹과 호천맹의 갈등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남맹이 먼저 호천맹에 도발을 했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기이하게 모든 원인을 ‘호천맹의 무능함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오랜 눈치 보기로 호천맹에 미운털이 박혀 버린 것 같았다.
호천맹 산하의 방파들은 그런 분위기를 감지해 남맹에 대해 더욱 완강해졌다.
그들은 호천맹이 압도적인 힘으로 남맹을 찍어 눌러 주기를 바랐다.
그런 방파들의 바람은 호천맹 수뇌부들의 갈망과 상당 부분 맞아떨어졌다.
호천맹은 점점 완고해져 갔고, 남맹과 관계된 문제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새해로 접어들면서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그것은 남맹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일차 접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기에 호천맹을 향한 적대감은 더 컸다.
남맹은 은밀히 낙양으로 얼굴이 덜 알려진 고수들을 대거 파견했다.
그들의 목적은 금와상방의 신년 하례식에서 호천맹을 묵사발 내고,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을 상조상방의 손에 안겨 주는 것이었다.
남직례성.
합비.
석경장.
석경장 앞마당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래 봐야 연적하 내외와 아기, 심통, 당운망, 월아, 금아를 포함해 일곱 명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당운망이 부러운 눈으로 구천노도 심통을 힐끔거렸다.
그런 그에게 심통이 말했다.
“왜 너도 따라나서고 싶으냐?”
“됐다. 나는 너와 달리 낙월독정의 막바지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몸이시다.”
“가고 싶으면 말해라. 공자님에게 말해 볼 테니까.”
“됐다니까 그러네. 정히 그러고 싶으면 말해 보든가.”
당운망이 여지를 보이자 심통은 바로 말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빌어 보아라. 사정을 해도 좋고. ‘심 어르신, 소인도 데리고 가 주십시오’ 하고 말이다. 흐흐흐.”
그제야 심통이 놀리기 위해 그랬다는 걸 알고 당운망은 이를 갈았다.
“심가야. 너는 아직도 도둑놈 심보를 고치지 못했구나. 그게 어디 네놈에게 빌어서 될 일이냐? 허튼소리 하지 말고 장주님이나 잘 모시고 다니거라.”
남궁연과 딸에게 작별 인사를 마친 연적하가 설전을 벌이느라 여념이 없는 심통을 지나치며 말했다.
“심 노인, 작작 해. 내가 심 노인을 데리고 가는 건, 남겨 두면 당 노인과 하루 종일 쌈질을 할 것 같아서야. 나잇값 좀 하자.”
“예, 예. 저라고 뭐 싸움이 좋아서 그러는 줄 아십니까? 저 당가가 눈만 마주치면 갈궈서 그랬습니다. 제가 원래 무던한 사람이라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퍽도.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따라와. 갈 길이 멀다고.”
“에이, 멀긴요. 운종술로 가면 얼마 걸리지도 않겠구먼.”
“하여튼 바로바로 안 따라붙으면 난 그냥 간다.”
마당에 내려선 연적하가 바로 운종술을 펼쳤다.
구름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자 심통은 허겁지겁 달려가 구름에 올라섰다.
이윽고 연적하와 심통을 태운 구름이 하늘로 둥실 떠올라 멀어져 갔다.
***
춘절.
하남성.
낙양 금와상방.
금와상방의 신년 하례식장은 몰려든 손님들로 인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대륙 십대상방인 금와상방의 일반 손님도 많았지만 무인도 절반에 가까뭤다.
그들 대부분은 호천맹과의 업무 협약식에 초빙된 하남성의 고수들이었다.
와룡검객 연무백도 그의 처 양이화와 함께 금와상방을 찾았다.
금와상방의 호위들이 그를 알아보고 달려와 꾸벅 인사했다.
“관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귀빈석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귀빈석요?”
연무백이 고개를 갸웃했다.
금와상방이 자신을 귀빈으로 생각할 줄은 몰랐다.
‘상월정에서 호위 총책임자로 있을 때 방주를 보호해 주었다고 그러는 건가?’
연무백은 그들에게 목례로 답한 후에 양이화와 함께 귀빈석으로 향했다.
귀빈석으로 가던 양이화가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왜 그러오?”
“저쪽에 양가장 분들이 보여서요. 인사라도 하고 와야겠어요.”
연무백이 양가장이라는 말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과연!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 양가장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연무백은 호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양가장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양가장주 이화신창 양주환과 소가주 옥기린 양이선은 연무백 내외를 보자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가족들을 만난 양이화가 들뜬 얼굴로 물었다.
“낙양은 어쩐 일이세요?”
양가장은 정주에 있다.
그녀는 양가장이 이곳까지 왔다는 데 깜짝 놀랐다.
낙양과 정주의 거리라고 해 봐야 하룻길이니 그리 먼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날도 아닌 춘절에 하룻길을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낙양에서 가까운 호천맹 지부는 거의 다 초청되었다. 이참에 호천맹의 세를 보여 줘야 한다나. 그래서 우리도 정주 지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제야 양이화는 금와상방의 신년 하례식이 특별한 것임을 깨달았다.
낙양 인근의 호천맹 지부들까지 불러모을 정도로 큰 행사였던 것이다.
이윽고 양주환이 연무백에게 시선을 돌렸다.
“연가무관도 초대되었는가?”
그의 눈빛과 말투가 약간 묘했다.
와룡장이 두 번이나 망한 뒤로 그는 사위에게 약간 실망한 상태였다.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연무백은 장인의 탐탁지 않아 하는 눈빛에 입맛이 썼다.
하기사 자신이 그의 입장이어도 그럴 것 같았다.
와룡장은 망했고, 지금은 변두리인 고성촌에서 무관이나 열고 있으니.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소가주인 옥기린 양이선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매제, 딱히 약속한 사람이 없다면 우리와 함께 있는 게 어떤가? 이화도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났으니 할 말도 많을 테고.”
그러자 연무백 내외를 따라온 금와상방의 호휘, 한윤이 끼어들었다.
“말씀 중에 실례입니다만 연 관주님 내외의 자리는 귀빈석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구나. 매제가 금와상방의 귀빈인 줄은 몰랐네.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양이선은 아무 말이나 주워 삼키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연무백은 무덤덤한 얼굴로 장인에게 읍을 하고 돌아섰다.
잠시 후 호위들을 따라가던 그가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업무 협약식에 낙양 인근의 호천맹 지부까지 다 초대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그러자 한윤이 주변을 살피며 속삭이듯 말했다.
“실은 오늘 업무 협약식에 남맹에서 분탕질을 칠 거라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관주님 내외를 귀빈석으로 모신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