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17
917회. 새우들 싸움에 고래 등이 터지게 생겼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금와상방의 신년 하례식 사건으로 천하가 발칵 뒤집혔다.
그 자리에 호천맹과 남맹만 있었다면 덮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금와상방의 신년 하례식에 있던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일반인과 상인 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일생일대의 사건을 감추지 않았다.
소문이란 전해지는 과정에 살이 붙기 마련.
금와상방의 신년 하례식에서 있었던 일은 개인의 해석이 가미되어 널리 퍼졌다.
“금와상방의 신년 하례식에서 호천맹과 남맹이 또다시 충돌했다!”
“양주가인 양이화가 그 싸움에 휘말려 중상을 입었는데 그 일로 남천이 대로했다.”
“남맹의 전대 고수 검존이 남천의 일초식도 받아 내지 못하고 무릎 꿇었다.”
“남천은 ‘호천맹과 남맹이 또 싸우면 유명교에서 손을 떼겠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연적하의 경고는 황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황실에서는 호천맹과 남맹에 관리를 보내 어떻게든 중재하려 애썼다.
그러나 호천맹과 남맹은 ‘금와상방 신년 하례식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
황실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하남성.
정주.
호천맹 총단.
통천각.
해가 바뀐 뒤 처음으로 갖는 자리지만 칠파일문 대표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호천맹 종사인 공손일랑 공손기가 말끔해진 모습으로 중인들 앞에 나섰다.
“황실에서는 호천맹과 남맹의 충돌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그렇지만, 남맹 역시 그에 대한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 호천맹의 영역을 노리겠다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남천과 황실의 요구에 따르면, 호천맹 산하의 방파들을 모두 남맹에 빼앗기고 말 겁니다.”
화산파 장로 도산 진인이 물었다.
“남천의 경고는 어쩔 생각이오? 남천이 손을 떼면 호천맹과 남맹은 공멸하게 될 텐데.”
“남천은 그러지 못합니다.”
“그 무슨 소리요? 남천이 특이한 술법의 수련으로 허언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아니오?”
“대체로 도가 술법의 금기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정도의 개념이지요.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의 상대는 남천뿐입니다. 그건 남천도 알고, 천하도 알고 있지요.”
“그러니 더욱 그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는 게 아니오?”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호천맹과 남맹이 유명교에 피해를 입게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우리 호천맹과 남맹뿐 아니라, 그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남천까지도 비난할 겁니다.”
“…….”
도산 진인이 애매한 얼굴로 공손기를 보았다.
비난을 받는 게 뭐 좋은 일이라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공손기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호천맹과 남맹은 여러 방파가 모인 집합입니다. 비난을 당해도 책임이 분산되지요. 책임의 분산은, 사실상 책임이 없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남천은 한 개인입니다. 그에게 향하는 비난은 오롯이 그의 몫이 됩니다. 예컨대 호천맹과 남맹의 일원이 한 근의 책임을 느낀다면, 그는 만 근의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그는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상대하게 될 것입니다.”
공손기의 말에 칠파일문 대표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은 ‘호천맹과 남맹의 피해가 누구 책임이냐?’는 질문 앞에 남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호천맹은 책임도 있지만 피해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남천은 호천맹과 남맹의 운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수방관한 사람이다.
희생이 커질수록 남천에 대한 비난도 결코 가볍지 않을 터였다.
맹주인 무극상인이 거들고 나섰다.
“금와상방의 사건에서 보았듯 우리가 남맹을 상대함에 소극적이면, 가진 것을 다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게 우리 호천맹 산하의 방파들이니까요. 남맹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저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자 칠파일문 대표들도 한마디씩 했다.
“맞습니다. 모든 것은 남맹이 야욕을 버리지 않아서 생긴 일입니다.”
“도발하는 것은 남맹이지 호천맹이 아닙니다.”
“도발한다면 응징해야지요.”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남의 것을 탐하는 게 잘못이지요.”
“모든 것은 남맹의 탓입니다. 우리가 죄책감을 가질 일도 아닙니다.”
칠파일문의 대표들은 모든 것을 ‘남맹의 욕심’ 탓으로 돌렸다.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게 옳았다.
오랜 세월 정파 무림을 통치했는데 남맹이 그 자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호천맹은 남맹과의 대결 의지를 더 다졌다.
***
남직례성.
합비
남맹 종단.
천추각.
남맹의 분위기도 호천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도전자의 입장이라 호천맹보다 더 과격한 반응을 보였다.
“남천의 경고에도 호천맹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남맹을 지금처럼 적대시하겠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 호천맹은 금와상방을 지켜 냈습니다. 그 사건으로 남맹의 신용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호천맹의 입김이 남직례성까지 미칠 수도 있습니다.”
종사 반천일검 모용문의 말에 오대세가 대표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천이 양측을 뜯어말린 것 같지만, 남맹에서 큰 손해를 본 까닭이다.
호천맹이 금와상방을 지켜 낸 반면, 남맹은 검존까지 나섰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전대의 전설적 고수 검존이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은 남맹에 크나큰 악재였다.
특히나 모용세가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모용문의 음성에는 거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선우세가의 가주 환우검 선우담이 물었다.
“그래서 타결책이 있소?”
“자리를 지키는 호천맹과 달리 우리 남맹은 도전자의 입장입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전선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천이 싸우지 말라고 경고를 했는데 오히려 전선을 확대하자는 말이오?”
“호천맹과 남맹의 분쟁에서 남천의 자리는 없습니다. 당장 호천맹도 그의 경고를 무시하는데, 우리 남맹에서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랬다가 그가 유명교의 일에서 손을 떼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그는 유명교에서 손을 떼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근거가 있소?”
“만물에는 짝이 있습니다. 아 물론 암수의 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내릴 때는 그의 상대도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천하인들은 그게 누군지 잘 알고 있지요.”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소?”
“비록 호천맹과 남맹이 그의 뜻에 따르지 않아도, 그는 천하인들의 등쌀을 견디지 못해 끼어들게 될 겁니다. 민심은 곧 천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천하인들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오?”
“그렇습니다. 오늘날 호천맹과 남맹이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즉 천하인들은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의 상대로 남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호천맹과 남맹이 자기 뜻에 따르지 않았다고 외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외면하지 못한다?”
“천하의 비난이 그에게 몰릴 터인데, 견뎌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등 떠밀리듯 결국은 그가 해결하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허면 그때까지 우리는 유명교와 싸우지 말아야겠구려?”
“그건 아닙니다. 우리가 무림대회를 열어 새로운 무인들을 받아들인 것은 모두 유명교와 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유명교와 싸우지 않으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한다’고 비난받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전력으로는…….”
“예, 유명교에 피와 살을 내어 주며 견뎌 내야지요. 남천이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
그의 말에 오대세가 대표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피와 살을 내어 준다’는 말은 즉,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모용문이 태연자약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호천맹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호천맹과 남맹의 싸움은 이제 시작됐다고 봐야 합니다. 그 싸움에 남천의 자리는 없습니다. 남천은 우리가 아니라 천하인들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팽가의 원로인 팽무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천이 스스로 움직이기까지 희생이 어느 정도나 따를 것 같소?”
“그건 하늘만이 알 테지요. 그렇다고 막연하게 손 놓고 기다리지는 않겠습니다. 천하인들을 조금만 들쑤셔 주면 남천이 움직이는 시기가 앞당겨질 겁니다.”
‘계략을 꾸미겠다’는 소리에 오대세가 대표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남천과는 남이 되어 버린 마당이니 속임수를 써도 거리낌은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눈치가 보이는지-그의 장인인-검왕 남궁벽을 힐끔 살폈다.
그러자 남궁벽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모용 총사. 남천은 둔한 사람이니 그를 움직이게 하려면 공을 많이 들여야 할 게요.”
남천의 등을 떠밀기 위해 뭐든 해도 좋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그 말에 오대세가 대표들이 크게 웃었다.
한때 남천과 한솥밥을 먹던 남맹은 호천맹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
연적하의 강력한 경고와 황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호천맹과 남맹의 관계는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남맹은 산동, 하남, 호광, 강서 전방위로 고수들을 파견했다.
그걸 그냥 지켜볼 호천맹이 아니다.
봄이 되면서 산동, 하남, 호광, 강서의 상방들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시작됐다.
무려 네 개의 성, 여섯 개 상방에서 금와상방의 사건이 재현되었다.
그렇게 되자 연적하만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천하인들은 조마조마한 가운데 연적하의 다음 행보를 주목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 황실은 시도 때도 없이 금의위를 석경장으로 보냈다.
삼월.
남직례성 합비.
여강현 석경장.
객청.
남진무사 원화평이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말했다.
“대협. 벌써 삼월입니다. 황상께서 아침저녁으로 지휘사 대인을 불러 물으십니다. 대인께서 언제 황궁에 방문해 주시는지를요.”
“내가 말했잖아요. 호천맹과 남맹이 싸우면 유명교에서 손을 떼겠다고.”
“무림인들이 치고받는 게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황실은 이 나라의 뿌리입니다. 뿌리가 뽑힐 지경입니다. 도와주십시오.”
“남진무사님도 알죠? 호천맹과 남맹이 싸우는 건 내가 유명교를 처리해 줄 거라고 믿어서 저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경고 했거든요. 싸우면 안 도와준다고. 그런데도 저러는 건 나를 개무시한 거잖아요. 그런 개무시를 당하고도 내가 저들을 대신해 유명교와 싸워 줘야 하나요?”
원화평은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을 돌렸다.
“그렇지만 대협. 고래 싸움에 새우등 이 터진다는 말은 있지만, 지금은 새우들 싸움에 고래 등이 터지게 생겼습니다. 죄는 호천맹과 남맹이 지었는데, 벌은 황실이 받는 형국입니다. 황상을 도와주십시오. 황상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예에?”
“그건 맞는 말씀인데, 호천맹과 남맹이 나를 물 먹였기 때문에 지금은 어쩔 수가 없네요.”
연적하도 그 문제에 있어서는 완강했다.
사실 호천맹과 남맹이 보란 듯 자신의 경고를 어기는데 유명교와 싸우는 것도 모양새가 우스웠기 때문이다.
반나절 가까이 매달리던 원화평은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고 맨손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