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18
918회. 불온한 뜻이 없음을 증명하라
남진무사를 보내고 객청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연적하에게 심통이 다가왔다.
“공자님,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남맹과 호천맹이 왜 더 지랄하는지 모르겠어. 자기들끼리 유명교를 상대할 자신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닐 테고.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말 같지 않다기보다는……. 만만하게 보여서 그런 걸 겁니다.”
“내가 만만하게 보여?”
“녹림에서야 가차 없이 손을 쓰셨지만 남맹과 호천맹은 좀 봐주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본래 ‘까불다 대가리가 깨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고분고분 말을 잘 듣습니다.”
“아! 그런 거야?”
심통의 말에 연적하의 귀가 번쩍 뜨였다.
맞다.
지금까지 호천맹과 남맹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녹림의 경우 죽거나 사지 중 하나가 잘린 자도 있지만, 호천맹과 남맹은 몇 대 때린 게 전부였다.
그게 다 남궁세가를 흠모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자신이 녹림에 있을 때만 해도 그들은 정파의 협객답게 불의를 보면 참지 않았다.
그러던 남궁세가는 호천맹에서 떨어져 나가 남맹을 세우면서부터 변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다’는 핑계로 위선적인 정파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심 노인.”
“예?”
“웃긴 게 뭔지 알아?”
“뭔데요?”
“요즘은 유명교보다 호천맹과 남맹이 더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아. 유명교를 봐. 황실에서 도와 달라고 난리를 치지만 쥐 죽은 듯 잠잠해. 그에 반해 호천맹과 남맹은 여기저기서 싸움이나 일으키고 있잖아.”
“그렇기는 하네요. 하지만 유명교가 잠잠한 건 공자님이 두려워서 그러는 겁니다.”
“호천맹과 남맹이 저 지랄을 하는 것도 나 때문이고.”
“흐흐. 공자님 때문에 사교는 잠잠한데, 정파가 사고를 치는 세상이 됐네요.”
심통은 푸들푸들 웃었다.
연적하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참 괴랄(怪刺) 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인생 묘하지?”
어딘지 허허로운 연적하의 음성에 심통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렇다고 그게 공자님 탓은 아닙니다. 저들이 제 욕심대로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내가 사라지면 세상이 바르게 돌아갈까?”
“어이쿠! 공자님이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공자님이 사라지다니요? 가모님과 소장주님을 두고 어딜 간다는 말씀이십니까?”
“누가 간대?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리 공자님이시래도 그런 재수 없는 말은 하는 게 아닙니다. 언법(言法)을 수련하시니 말의 힘이 어떤지 잘 아시면서.”
“그래, 내가 잘못했다. 하도 하는 짓들이 답답해서 해 본 소리야.”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호천맹과 남맹까지도 녹림 대하듯 하면 천하가 자신을 괴물 보듯 할 게다.
좋은 일 하고 유명교주나 마교교주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
석경장 안채.
연적하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들어오자 남궁연이 입술에 손을 대고 ‘쉿!’ 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아이가 막 잠이 든 모양이다.
창가로 걸음을 옮긴 연적하는 그녀가 오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살금살금 다가온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남진무사는 잘 보냈고?”
“네, 일단은 호천맹과 남맹이 싸워서 나서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랬구나.”
남궁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천맹과 남맹이 그의 경고를 어겨 손을 뗀 것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그가 황궁의 방문을 미루는 것은 찜찜함의 이유를 알지 못해서다.
어쩌면 끝내 알 수 없을지 모른다.
다만 아직은 유명교가 잠잠한 탓에 지켜보아도 무방하니 지켜보는 것이다.
“심 노인이 그러더라고요. 내가 호천맹과 남맹을 녹림 다루듯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거라고. 누님도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정사파에 골고루 욕먹게 될걸?”
“그렇죠?”
“하지만 심 노인의 말에도 일리는 있어. 네가 호천맹과 남맹을 존중해 주면, 그들은 네 경고를 계속 외면할 거야. 인간이란 본래 그런 존재거든.”
“하아! 심 노인도 누님과 비슷한 말을 하긴 했어요.”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럴 때는 심통이 그냥 나이만 먹은 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마.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욕할 사람은 욕하고,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니까.”
“누님. 나에게 호천맹과 남맹을 위선자라고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을까요?”
“그들이 위선자야?”
“아니에요?”
“호천맹과 남맹이 위선자처럼 굴기도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의협을 지향해. 매사에 위선을 떠는 게 아니라, 그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고 할까? 그에 반해 녹림과 같은 사파는 자기 기분에 따라서 어쩌다 한두 번 의롭게 보일 만한 행동을 하지.”
남궁연이 연적하를 지그시 보았다.
그녀는 연적하가 호천맹과 남맹에 분개하더라도 그들의 본질만큼은 제대로 봐 주기를 바랐다.
“호천맹과 남맹이 뼛속까지 사악하지 않다는 건가요?”
“맞아. 그들은 의를 추구하면서 때때로 편협한 선택을 할 뿐이야. 그게 다른 사람들 눈에 위선으로 보이는 거고. 그걸 두고 ‘그들의 삶 자체가 위선’이라 말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누님 말을 들으니 그런 것도 같네요.”
“지금의 호천맹과 남맹이 위선자로 보일 만한 행동을 하는 건 사실이야. 그리고 너에게는 그들의 잘못을 지적할 자격이 있어.”
“나도 기분에 따라 편협한 선택을 한 적이 많은데도요?”
“네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거나, 불의한 일을 보고 폭발한 거잖아. 너를 대악마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너를 위선자라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호천맹과 남맹의 잘못된 행동을 욕할 자격이 있다는 거죠?”
“자격이 없다면 안 할 거야?”
“아뇨.”
연적하는 실실 웃었다.
역시 남궁연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흐릿하던 것들이 선명해진다.
심통의 말처럼 호천맹과 남맹의 대가리를 좀 깨면 싸움을 멈출까?
***
황성.
보화전 (保和殿).
깊은 밤.
황제와 금의위 지휘사 모양이 심각한 얼굴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송구하오나 천외검선은 호천맹과 남맹이 싸우는 한 유명교의 일에 나설 뜻이 없다고 했사옵니다. 금의위에서 계속 사람을 보내고 있지만……. 더 이상의 진척이 없사옵니다. 소신을 벌하여 주소서.”
“그게 어찌 지휘사의 잘못인가.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 눈먼 호천맹과 남맹의 잘못이지. 호천맹과 남맹에 나의 뜻을 전했는가?”
“전하였으나 불경스럽게도 그들은 물러설 뜻을 보이지 않았사옵니다.”
“이기적인 자들 같으니. 유명교주가 황궁을 장악하건 말건 관심이 없다 이건가!”
“망극하옵니다.”
“호천맹과 남맹에 이같이 전하라. ‘너희가 무림대회를 연 것은 유명교와 싸우기 위함이 아니냐? 속히 유명교와 싸워 너희에게 불온한 뜻이 없음을 증명하라.’ 알겠느냐?”
지금 당장 유명교와 싸우지 않으면 역도로 생각하겠다는 소리다.
“예! 한 자도 빠짐없이 폐하의 뜻을 전하겠나이다.”
보화전을 나간 금의위 지휘사 모양은 한달음에 금의위로 달려갔다.
잠시 후 수십 마리의 전서구가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
사월.
하남성.
정주 호천맹.
정주의 남진무사 유범이 금의위 일백을 이끌고 호천맹에 들이닥쳤다.
그는 맹주와 독대한 자리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황상께서 친히 ‘너희가 무림대회를 연 것은 유명교와 싸우기 위함이 아니냐? 속히 유명교와 싸워 너희에게 불온한 뜻이 없음을 증명하라’ 말씀하셨소.”
깜짝 놀란 무극상인이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불온한 생각이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시오.”
“허면 왜 유명교와 싸우지 않는 거요?”
“아시다시피 호천맹에는 유명교주와 맞설 상대가 없소이다.”
그러나 유범은 관리답게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황실에서는 ‘호천맹이 불온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의심하고 있소. 유명교와 싸우지 않으려면 무림대회로 선발한 무사들을 해산시키시오.”
“지금 그들을 해산하면 유명교는 더더욱 상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자 유범은 탁자를 ‘쾅!’ 소리가 나도록 후려쳤다.
“어차피 당신들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 않소! 황실에서 당신들을 역도로 몰면, 그때는 이미 늦음을 모르시오!”
“끙!”
무극상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느닷없이 황실에서 유명교와의 싸움을 종용할 줄은 몰랐다.
대놓고 그래도 될 정도로 황궁에서 유명교의 힘이 빠진 모양이다.
황실의 입장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유명교와 싸우거나 해산시키라니?
양쪽 모두 선뜻 택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대인, 유명교와 싸우겠습니다. 허나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이 사월이니 늦어도 오월에는 결과를 보여야 할 게요. 만약 오월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때는 이렇게 말로 끝나지 않을 것이오.”
말을 마친 유범은 즉시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남진무사가 떠나자 무극상인은 급히 칠파일문의 대표들을 불러 모았다.
***
남직례성.
합비.
남맹.
남맹도 남진무사 원화평의 기습적인 방문을 받았다.
원화평은 황명을 전한 뒤, ‘당장 유명교와 싸우든지, 그게 싫으면 신입 무사들을 해산시키라. 그러지 않으면 역도로 몰리게 될 것이다.’ 협박하고 떠났다.
검왕 남궁벽은 총사와 상의 끝에 일단 오대세가 대표들을 소집했다.
“……그는 우리 남맹에게 당장 유명교와 싸우든지, 무림대회로 뽑은 신입 무사들을 해산시키라고 했소. 그러지 않는다면 역도로 몰릴 거라고.”
맹주의 말에 사대세가 대표들이 ‘울컥!’해서는 한마디씩 던졌다.
“황실에서도 유명교를 어쩌지 못하면서 왜 우리에게 싸우라 한답니까?”
“자기들도 싸우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싸우라는 것은 무슨 심보입니까?”
“무림대회를 우리가 처음 연 것도 아닌데, 왜 우리를 역도로 모는 거요?”
“아니! 우물물이 강물에 대고 이래라 저래도 해도 괜찮은 겁니까? ‘우물물은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井水不犯河水]’는 말도 있는데!”
한바탕 폭풍이 쓸고 지나가자 모용문 총사가 말했다.
“맹주님, 지금은 황실에 힘이 없지만 유명교가 정리되면 반드시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유명교와의 싸움을 더 이상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 팽무안이 물었다.
“남천도 없는 지금, 우리가 지금 무슨 수로 유명교와 싸운다는 말이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역도로 몰릴 수 있습니다. 황제도 남맹이 유명교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압박하는 것은 남천 때문입니다.”
“남천이 황제를 사주했다는 말이오?”
“그보다는 호천맹과 남맹의 분쟁을 멈추게 해 남천을 움직일 생각이겠지요. 유명교와 싸우면서 동시에 호천맹과 싸울 여력은 없으니까요.”
“허면 벌여 놓은 일에서 손을 떼자는 말이오? 그럼 호천맹에서 얼씨구나 하고 채갈 텐데?”
“그럴 수는 없지요. 다만 황명이 있으니 유명교와 싸우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십중팔구 호천맹도 우리와 같은 생각일 겝니다.”
사대세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는 시늉 정도라면 벌여 놓은 일에서 손을 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남맹은 유명교 신당에 대한 공격을 결정했다.
‘싸우는 시늉’이라서 그런지 십두마병에 대한 대비책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