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19
919회.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
호광성.
악양.
대륙을 가르며 지나가는 장강과 동정호가 만나는 곳에 고도(古都) 악양이 있다.
오늘날 악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악양루와 산월신당(産月神堂)이다.
악양루야 본래 황학루, 등왕각과 함께 강남의 삼대명루이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다만 산월신당은 동정호 출신의 월하선자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유명교 신당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산월신당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일반인이 산월신당에 참배를 하려면 한 시진 이상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여름 남천 연적하가 의창신당을 파괴한 뒤로 참배객이 확 줄었다.
남천이 의창신당을 파괴했음에도 금의위와 유명교가 그를 벌하지 않은 때문이다.
사람들은 유명교의 운이 다했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 댔고, 그것은 곧 참배객의 축소로 이어졌다.
하지만 참배객이 축소했다고 해서 산월신당에 기거하는 유명교 고수들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특히나 산월신당은 월하선자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성지로 생각하는 만큼 시류와 무관하게 제대로 된 관리하에 놓여 있었다.
해거름 무렵.
유서 깊은 고도 악양으로 백여 명의 무인이 들어왔다.
황제의 협박에 못 이겨 유명교와 싸우기로 결의한 남맹의 무인들이다.
선두의 멸마대 대주 팽진무는 지체 없이 천보장(天寶藏)으로 향했다.
괜히 돌아다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봐야 좋을 게 없어서다.
천보장은 선우세가의 지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잠시 숨어 있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미리 연락받고 기다리던 천보장의 주인 황우인은 멸마대를 정중하게 맞이했다.
팽진무는 천보장에 도착하자마자 두 명의 정찰대원을 산월신당으로 보냈다.
아무리 싸우는 시늉에 불과하다 해도 적의 규모와 상태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찰대원들은 그로부터 한 시진(2시간) 뒤에 돌아왔다.
“산월신당의 상태가 어떠하더냐?”
멸마대주 팽진무의 질문에 정찰을 나갔던 그의 조카 팽우가 답했다.
“해가 진 뒤에는 참배객을 받지 않는다고 하여 주변만 돌아보았습니다. 사람들의 말로는 산월신당의 위세가 지난해만 못하다고 합니다. 신당에서 오십여 명이 생활하고 있는데, 무인은 스무 명 남짓 된다 들었습니다.”
“스물이라……. 당주는?”
“당주는 백혈도 마원곡인데 ‘삼 년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합니다. 유명교주가 변방의 이민족들과 전쟁을 벌일 때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십두마병이 없다면 청사(靑蛇)를 뽑을 일도 없겠군.”
팽진무가 아쉬운 얼굴로 품을 더듬었다.
유명교 신당의 당주가 십두마병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기껏 가주에게 청사를 빌려왔건만 십두마병이 없다니 왠지 허탈했다.
“대주님, 오늘 밤에 결행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일 하루 더 신당 내부를 정탐하시겠습니까?”
“백혈도가 없다면 하루 더 지켜 봐야 시간 낭비일 뿐이다. 오늘 밤 자정에 신당을 공격할 것이니 대원들에게 그때까지 쉬라 일러라.”
“예.”
팽우는 꾸벅 묵례를 올린 뒤 돌아갔다.
묵묵히 듣고 있던 부대주 당세운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신당 내부를 조사한 후에 공격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당가는 지리상 사천무림맹에 속하지만, 무림세가이기에 남맹에도 한 다리 걸치고 있었다. 당세운은 당가에서 남맹에 파견한 당가의 대표였다.
“당주가 없다면 유명교는 오합지졸에 불과하오. 게다가 싸우는 시늉만 하고 빠지려면 낮보다 밤이 낫소. 대문을 부수고들어가 적당히 기물을 부수고 빠지면 되는데 미룰 게 뭐가 있소?”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당세운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연적하에게 큰 피해를 입은 뒤로 당가는 이름만 무림세가지 권한이 거의 없었다.
자정 무렵, 천보장 앞마당에 멸마대가 도열했다.
이윽고 멸마대주 팽진무와 부대주 당세운이 멸마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팽진무가 멸마대를 쓰윽 둘러보았다.
그래도 유명교를 상대로 하는 첫 출전이라고 다들 잔뜩 굳어 있었다.
“긴장하지 마라. 알고 있겠지만 싸우는 시늉만 하고 돌아갈 것이다. 싸우기보다 기물을 부수는 데 집중해라. 술에 취해 기루를 부수듯 하란 말이다.”
그의 가벼운 농담에 대원들이 피식 웃었다.
“적의 반격이 예상보다 거세면 바로 물러날 것이다. 신당을 없애는 게 목적이 아닌 만큼 안전에 유의하면서 싸우도록. 출발하겠다.”
잠시 후 멸마대가 소리 없이 천보장을 빠져나갔다.
***
자정.
산월신당.
산월신당의 담을 넘어간 멸마대는 가장 먼저 신당에 불을 질렀다.
숙소에서 곤하게 자고 있던 유명교도들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윽고 타오르는 신당의 불빛을 받으며 멸마대와 유명교도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차차차창-!
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산월신당을 가득 채웠다.
애초에 유명교도들은 멸마대의 상대가 못 됐다.
기물만 파괴하고 빠지려 했던 멸마대는 승리의 쾌감에 취해 거칠게 몰아붙였다.
대주와 부대주도 유명교도들 속에서 야수처럼 날뛰었다.
그때다.
어디선가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으흐흐흐!”
범상치 않은 웃음소리에 팽진무 대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치고 빠질 생각이었는데 싸움에 너무 취했다.
유명교가 아무리 허접해 보여도 용담호혈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그들에게 힘이 없었다면 천하를 손에 넣지도 못했을 것이다.
팽진무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멸마대원들은 이미 신당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싸우고 있었다.
상황 수습을 고민하는 팽진무의 앞으로 흑포를 입은 괴인이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순간 팽진무의 얼굴이 굳었다.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가벼운 신법만 봐도 보통의 고수가 아니다.
“나는 남맹 멸마대 대주 팽진무외다. 귀하는 누구요?”
괴인이 탁한 음성으로 답했다.
“크크크! 살다 보니 팽가의 기습을 다 받아 보는구나. 팽진무! 너는 무슨 생각으로 유명교 신당에 쳐들어왔느냐?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고, 그래서 그런 것이냐?”
“누구냐고 물었다!”
“나? 이 몸은 산월신당의 당주이신 백혈도 마원곡 님이시다!”
말과 함께 마원곡의 도가 빛살처럼 팽진무에게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팽진무는 황급히 자신의 도로 마원곡의 도를 쳐 냈다.
아니, 쳐 내려 했다.
그러나 십두마병의 초능이 담긴 도는 그의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채앵-!
팽진무의 도가 사정없이 뒤로 튕겨났다.
그 바람에 팽진무의 상체가 살짝 틀어지며 옆구리가 훤하게 드러났다.
마원곡의 도가 드러난 팽진무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크윽!”
단 일도에 치명상을 얻은 팽진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십두마병을 죽이면 마인이 되기에 청사까지 빌려왔건만, 마인을 보기도 전에 죽게 생겼다.
팽진무는 황급히 뒷걸음질 쳤지만 마원곡은 상상 이상의 고수였다.
마원곡은 팽진무가 피할 틈을 주지 않고 물귀신처럼 따라붙었다.
“자, 잠시만!”
팽진무는 자신이 실은 ‘싸우는 시늉만 하러 왔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생사의 결전 도중 ‘잠시만’이라는 말에 멈출 사람은 없다.
전심전력으로 상대해도 될까 말까 한 상대에게 말을 걸려다 보니 틈만 더욱 많아졌다.
마원곡의 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서걱-!’ 하는 파육음과 함께 팽진무의 가슴이 세로로 길게 갈라졌다.
팽진무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에 멈칫한 그때, 마원곡의 도가 그의 목을 벴다.
팽진무의 머리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청석 바닥을 굴렀다.
털썩! 떼구르르-.
멀리서 그 광경을 본 부대주 당세운은 지체 없이 하독(下毒) 했다.
무공으로 안 될 것 같으니 처음부터 독을 쓴 것이다.
마원곡은 당세운이 하독을 한 줄도 모르고 근처의 남맹 고수들에게 달려갔다.
“크윽!”
“악!”
마원곡은 한 마리 호랑이처럼 거칠고 무자비하게 날뛰었다.
그의 도가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남맹 고수들이 풀잎처럼 누웠다.
가공할 기세로 십여 명을 베던 마원곡이 우뚝 멈춰 섰다.
양 떼처럼 이리저리 쫓겨 다니던 남맹 고수들이 그를 둥그렇게 에워쌌다.
“쿨럭!”
기침과 함께 마원곡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튀어나왔다.
그는 손바닥으로 입 주위를 쓱 닦은 뒤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달빛에 피에 물든 손바닥이 보였다.
그제야 마원곡은 자신이 극독에 중독되었음을 알았다.
이런 혼전 중에 자신에게 극독을 풀다니?
당가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씨벌! 당가냐! 네놈들이 나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당세운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멸마대를 향해 소리쳤다.
“백혈도는 곧 죽을 것이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누구 마음대로! 다 뒈져라!”
죽음을 목전에 둔 마원곡은-양패구상이라도 하려는 듯-더욱 격렬하게 도를 휘둘렀다.
“윽!”
“아악!”
그의 가까이에 있던 멸마대원들이 픽픽 쓰러져 나갔다.
백혈도가 미쳐 날뛰는 동안 흩어져 있던 멸마대원들이 당세운을 중심으로 뭉쳤다.
연거푸 다섯을 벤 마원곡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의 핏발 선 눈이 향한 곳은 당세운이었다.
“네놈! 당가냐!”
마원곡이 내뿜는 살의에 당세운은 흠칫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그게 끝이었다.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 당세운을 노려보던 마원곡의 무릎이 툭 꺾였다.
곧이어 그는 칠공으로 검은 피를 쏟으며 청석 위에 ‘풀썩!’ 엎어졌다.
독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그가 쓰러지자 당세운은 서둘러 팽진무의 품을 뒤졌다.
청사를 찾는 것이다.
죽은 마원곡의 몸이 들썩거리며 ‘으으득!’ 하고 뼈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원곡의 시체를 찢고 마인이 나올 때, 당세운도 팽가의 청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는 청사를 발견한 즉시 힘주어 뽑았다.
번쩍-.
청사의 검날이 달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천하제일의 법보를 손에 넣은 당세운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츠츠츠-.”
거대한 뱀의 몸통 위에 인간의 머리가 보였다.
귀밑까지 길게 찢어진 입술 사이로 갈라진 혀가 들락거렸다.
그럴 그때마다 ‘츠츠츠’ 하는 소리가 났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진 검붉은 피부와 몸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까지!
과연 사람들이 뇌신(雷神)이라 부를 만했다.
당세운이 탄복하고 있을 때 뇌신의 꼬리가 세차게 뻗어 나왔다.
차라라락-!
꼬리가 채찍처럼 날아오자 당세운은 황급히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콰아앙-!
조금 전까지 당세운이 서 있던 자리가 움푹 꺼졌다.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위력이다.
당세운은 허공에서 신형을 틀어 뇌신에게 돌아가는 꼬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퍽!
힘껏 꼬리를 내리찍었건만 오히려 청사가 튕겨져 나왔다.
당세운은 꼬리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연거푸 청사로 내리찍었다.
퍽! 퍽!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오히려 청사를 쥔 그의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흘러나왔다.
화아악-.
바람 내뿜는 소리와 함께 당세운의 머리 위로 녹색 운무(雲露)가 내려앉았다.
그는 급하게 몸을 뺐지만 이미 녹색 운무를 뒤집어쓴 뒤였다.
피부가 따끔거리자 당세운은 자신이 뇌신의 독에 중독되었음을 깨달았다.
서둘러 해독단을 집어 먹었지만 따끔거림은 점점 더 심해졌다.
제자리로 돌아간 그를 멸마대원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뒷걸음질 쳤다.
‘왜?’
당세운은 무심코 두 손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피부가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
그는 당가 비전의 해독약이 뇌신의 독에 통하지 않음을 알았다.
화아악-. 화아악-.
뇌신이라 불리는 인면사(人面蛇)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운무가 신당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