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27
927회.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소
연적하에게-사업장에 대한-무림 방파의 ‘관리비’는 녹림의 ‘통행세’와도 같았다.
‘통행세’란 약자가 강자에게 보이는 경외감의 표현이 아니던가!
자신이 벽검문에 경외감의 표시로 돈을 낸다?
그건 마치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는 말과도 같았다.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리자 심통은 바로 점소이에게 물었다.
“흐흐흐. 꼬마야. 너, 이곳에서 벽검문에 내는 관리비가 얼마인지 아느냐?”
“저는 모릅니다.”
점소이가 의아한 눈으로 손님들을 훑어보았다.
‘일단 도검이 없는 걸 보니 무림인은 아닌 것 같고……. 뭐 하는 사람들이지?’
“알 만한 사람이 누구냐?”
“계산대에 계시는 신 소저(小姐)라면 알고 있을 겁니다. 불러 드릴까요?”
“오라 해라.”
“예.”
귀찮은 일에 휘말려 들기 싫었던 점소이는 서둘러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에 앉아 있던 신영헌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이냐?”
“조금 전에 제가 모시고 온 손님들이 신 소저를 찾으십니다.”
“나를 왜?”
“벽검문에 내는 관리비가 얼마냐고 묻길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이 누구냐길래 신 소저라고 했더니 모셔 오랍니다.”
“관리비를? 무림인들로 보이더냐?”
“무림인들 같지는 않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알겠다. 가서 일 봐라.”
“예.”
점소이가 제자리로 돌아가자 신영헌은 그가 데리고 온 손님들을 힐끔 보았다.
늙은이 둘에 청년 하나.
애매한 구성이다.
병장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두 노인의 기도가 어째 심상치 않았다.
‘하필 벽검문에서 온 날 이게 무슨 일이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점소이가 말한 자리로 다가갔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심통이 삼십 대 미부의 아래위를 한차례 훑어보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여기서 벽검문에 관리비를 내고 있다 들었다. 얼마를 내고 있느냐?”
신영헌이 되물었다.
“송구하나 주루 운영에 관한 것을 묻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녀는 노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마침 수금하러 온 벽검문의 고수들이 있으니 조금은 깐깐하게 나갈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태도는 심통의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
“여기 계신 공자님께서 주루의 새 주인이기 때문이다.”
“아!”
신영헌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며칠 전에 전 주인이던 금 노야에게 ‘주루를 팔았다’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설마 저 청년이 주루의 새 주인일 줄이야!
신영헌은 청년을 향해 대례를 올렸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주루의 운영을 맡고 있는 신영헌이라 합니다.”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심통이 나섰다.
“얼마를 내고 있느냐?”
“한 달에 은자 열 냥을 내고 있습니다.”
순간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남연객점의 주인인 자신이 일 년에 서른닷 냥을 받는데 한 달에 은자 열 냥이라니?
심통은 본래 이 바닥이 그런 걸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벽검문에 관리비를 지불했느냐?”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가실 때 드리곤 했습니다.”
“잘됐군. 공자님, 어떻게 할까요?”
심통이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주지 마. 오늘 술값도 제대로 받고.”
새 주인의 말에 깜짝 놀란 신영헌이 급히 말했다.
“저어, 송구하오나, 대가(大母). 벽검문과 거래를 끊으면 온갖 잡인들로 주루 운영이 쉽지 않게 됩니다. 혹, 다른 방파와 새로 거래를 트려고 그러시는 거라면……. 이 지역은 벽검문의 관할 구역이라서…….”
“흐흐흐. 다른 방파와도 거래를 트지 않을 것이다. 새 주인이 누구인지 알면 벽검문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니 신경 쓰지 마라.”
“…….”
신영헌은 황당한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벽검문은 남맹에 속한 문파로 합비에서는 꽤 유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벽검문이 고개를 숙일 정도의 세력은 없었다.
“가 봐라. 술값 받는 거 잊지 말고.”
심통의 축객령에 신영헌은 터덜터덜 계산대로 돌아갔다.
벽검문과 새 주인을 보던 그녀는 문득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런 멍청이…….’
‘벽검문과 거래를 끊는다’는 말에 너무 놀라 새 주인의 이름을 묻지도 못했다.
그러는 동안 기분 좋게 한잔 걸친 벽검문 고수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자리는 덤이고 수금이 목적이니 할 일을 하려는 것이다.
계산대 앞으로 다가온 벽검문 조장 양문호에게 신영헌이 웃으며 말했다.
“세 분 술과 안주값으로 은자 두 냥하고 삼백 문이 나왔네요. 단골이시라 삼백 문은 제해 드릴 테니 은자 두 냥만 주세요.”
“…….”
양문호가 황망한 눈으로 신영헌을 보았다.
관리비를 받아 가려는데 공짜로 주던 술값을 내라니 이게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신 소저, 농담이 심하군.”
양문호는 농담이라 생각했다.
일각(15분) 전까지만 해도 샐샐거리며 술과 안주를 내어 준 여자가 술값 운운하니 당연하다.
그러자 상체를 양문호에게 기울인 신영헌이 속삭이듯 말했다.
“저기 젊은 공자님과 두 노인 보이시죠? 젊은 공자님이 미주각의 새 주인이세요. 새 주인께서 벽검문의 관리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오늘 술값도 받으라고 하셨고요.”
양문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제야 신영헌이 안면을 몰수하고 술값 운운한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알겠소. 내 새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리다.”
양문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뀐 주루 주인들이 종종 관리비를 깎기 위해 세게 나올 때가 있다.
뒷배가 든든한 사람일수록 그랬다.
젊은 나이에 미주각을 인수했다니 분명 범상치 않은 뒷배를 가졌으리라.
양문호는 수하들을 이끌고 청년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나는 벽검문의 양문호요. 미주각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 인사차 왔소.”
순간 지금까지 관망만 하고 있던 당운망이 불쑥 끼어들었다.
“잘 왔다. 그렇지 않아도 너희들을 부르려고 했느니라. 앞으로 벽검문은 미주각에서 손을 떼라.”
“아시는지 모르겠으나 이 지역은 우리 벽검문에서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남맹에서도 그 권리를 인정해 주었기에 다른 방파는 어렵습니다. 어느 방파를 끼고 하려는지는 모르겠으나…….”
“석경장이다. 우리 장주님께서 직접 관리를 할 것이니 빠지라는 말이다.”
“…….”
멍하니 서 있던 양문호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석경장에서 미주각을 관리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석경장의 장주님이 주인인데 관리가 필요하겠느냐?”
“헉! 정말 남천 대협께서 미주각을 인수하셨습니까?”
양문호의 거듭된 질문에 당운망은 손을 휘휘 저었다.
“알았으면 가 보거라. 행여나 미주각에 젓가락을 얹으려고 했다가는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
찍소리도 못 하고 돌아서는 양문호의 귓가로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술값 계산 똑바로 하고. 그리고 손님이 줄어들면 벽검문에서 초를 쳤다 생각하고 배상받으러 갈 거야.”
간혹 사업장을 빼앗긴 방파들이 은밀하게 장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그걸 경고한 것이다.
양문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은 다음에야 누가 석경장의 사업장에 물을 먹이겠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무조건 벽검문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겠다니?
남천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 이젠 미주각에 손님을 몰아줘야 할 판이다.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지?’
***
오월 중순.
악양의 산월신당 사고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남맹이 갑자기 들썩거렸다.
소란의 진원지는 호천맹이나 유명교가 아닌 남맹 산하의 방파들이었다.
합비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업장 열 개를 관리하던 방파들이 항의차 남맹을 방문했다.
남맹.
천추각.
대회의실에 무림세가와 남맹 산하 다섯 개 문파의 문주들이 모였다.
다섯 개 문파들은 모두 석경장에 사업장의 관리를 내어 준 곳이었다.
벽검문의 문주 한백상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맹주님, 우리가 단지 관리권을 보장받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남천 대협은 열 개의 사업장 매출이 전월보다 떨어지면, 그 손해를 우리가 메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업장의 관리권을 빼앗은 것으로도 부족해, 이젠 돈까지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칼만 안 들었지 이건 그냥 날강도 같은 짓이 아닙니까? 이건 우리 다섯 문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남맹에서 중재를 해 주십시오.”
검왕 남궁벽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관리권을 두고 벌이는 무림 방파들 간의 치졸한 분쟁은 정의맹 시절에도 흔했다.
관리권을 빼앗긴 측에서 장사를 방해하기 위해 악의적인 소문을 내는 건 양호한 일이다. 주가(酒家)나 재료 공급처에 불을 지를 때도 많았다.
그 길고 지루한 분쟁의 승리자는 더 강한 뒷배를 가진 쪽이었다.
더 강한 뒷배.
당금 무림에 석경장보다 강한 뒷배가 있을 리 없다.
호천맹과 남맹이 모두 석경장의 눈치를 보고 있는 마당에 중재라니?
그렇다고 합당한 요구를 무시했다가는 남맹이 흔들릴 것은 자명한 일.
석경장과 관계가 좋을 때라면야 불러서 한마디 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의절을 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석경장은 어려운 상대였다.
맹주가 곤란해 하자 종사 반천일검 모용문이 나섰다.
“남천 대협이 과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남천 대협을 뭐라고 할 수만도 없는 게, 관리권 분쟁에서 영업 방해가 비일비재하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육도문의 문주가 발끈했다.
“총사님! 상식적으로 생각해 주십쇼.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석경장의 사업장에 장난을 치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생각을 터럭만큼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석경장에 그랬다가는 멸문을 당하고 말 텐데, 영업 방해라니요!”
“그럼 뭐가 문젭니까?”
모용문이 뻔뻔한 얼굴로 되물었다.
‘영업 방해를 하지 않으면 될 일 아니냐’는 식의 말에 벽검문주 한백상이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쳤다.
“매출이 전월에 미치지 않으면 그 차액을 우리들에게 메우라고 하니 문제가 아니오! 막말로 장사를 개같이 해서 손해가 나도, 우리가 그 손해를 메꿔 주어야 한다는 말이외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어디 있느냐 이 말이오. 세상천지에 이런 식의 협박이 어디 있소? 그러니 자꾸 말 돌리지 말고, 남맹에서 나서 달라 이 말이외다.”
그러나 모용문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니, 달리 해결책이 없으니 굽힐 수가 없었다.
“말씀드렸다시피 관리권 분쟁에서 영업 방해가 비일비재했기에 석경장으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걸 두고 지금 당장 남맹에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라 생각합니다.”
“총사! 용케 이번 달 수입이 지난 달보다 낫다고 칩시다. 그럼 다음 달은요? 그리고 그 다음 달은요? 이건 우리 다섯 개 문파의 피를 말리는 짓이라 이 말입니다. 우리 다섯 개 문파가 평생 석경장에 조공을 바치며 살라는 말입니까? 그럼 남맹은 왜 있는 겁니까? 그럴 거면 차라리 석경장을 맹주로 모시라고 하십쇼!”
그 말에 ‘울컥!’한 남궁벽이 눈을 번쩍 떴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석경장을 맹주로 모시라’는 것은 남맹의 맹주 앞에서 할 소리가 아니었다.
“한 문주. 나에게 맹주 자격이 없으니 내려오라는 소리요?”
“아, 아닙니다. 결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홧김에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한백상 문주가 고개를 숙이고 말을 바로잡았음에도 분위기는 좋아지지 않았다.
한백상 문주를 쏘아보던 남궁벽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소. 여러분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매듭지을 테니 안심하시오.”
순간 다섯 개 문파의 문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맹주님만 믿겠습니다.”
긴급하게 소집됐던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러나 홀로 남겨진 남궁벽은 오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