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57
957회. 소림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나한당의 당주인 천문 대사가 중얼거렸다.
“남천 대협은 녹림 출신이지만……. 그래도 의로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그러자 장문인인 공백 대사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부터 그걸 알아봐야겠소. 나한당은 호천맹과 합비에 제자를 보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시오. 아울러 모든 소림 제자들의 산문 밖 출입을 금지시키겠소. 하산한 제자들에게는 장문인의 명이니 탁발이든, 수행이든, 즉시 멈추고 돌아오라 하시오.”
그는 혹시 다른 곳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니 모든 제자들을 만나 볼 생각이었다.
장문인의 지시에 소림사의 고승들은 반수 합장의 예로 화답했다.
***
남직례성.
회남.
와부호.
소림사 숙영지.
삼십육 동인의 숙소로 사용되는 천막에 이른 아침부터 네 사람이 앉았다.
화천대 대주 도산 진인과 호천대 대주 삼무검 이도, 그리고 삼십육 동인의 수좌인 현문 대사와 그의 사제 선문 대사다.
“그래서 언제까지 와부호에 머무르고 계실 겁니까? 우리가 호천맹을 떠나온 것은 무극문으로 가기 위해서지 와부호에 주둔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호천대주 이도의 물음에 현문 대사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호천대 대주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남천 대협이 와부호에 다녀갔다는 것을.”
“예, 하지만 그는 소림사의 숙영지를 찾아오지 않았지요. 그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가 말한 대로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벌써 칠 일이나 소림사는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극문의 사자가 아침저녁으로 찾아오고 있음을 아십니까? 오늘 아침에도 다녀갔습니다. 이제는 변명할 말도 없습니다.”
“제삼자에게는 남천 대협의 의도가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당사자인 우리 소림사는 폭풍 전의 고요가 느껴집니다.”
이도가 답답한 듯 제 가슴을 두드렸다.
“폭풍 전의 고요라니요? 그랬으면 와부호에 왔을 때 찾아왔어야지요. 그냥 지나간 일임을 왜 모르십니까?”
그러나 현문 대사는 그런 이도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남천 대협이 어떤 인물인지 모르십니까? 의형제 하나를 죽게 했다고 마교의 선봉을 전멸시킨 사람입니다. 그 일로 결국은 마교 교주까지도 죽었습니다. 마교가 이전의 성세를 회복하려면 몇 백 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녹림 시절에 맺은 인연 하나로 마교를 박살 냈다 이겁니다. 그런데 우리 삼십육 동인에게 남궁천이 폐인이 되었습니다. 그걸 그냥 넘길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끙!”
이도는 ‘그렇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솔직히 자신도 소림사를 설득하러 왔지만 자신이 없었다.
입장 바꿔 자신이 남천이라면?
삼십육 동인은 진즉에 곤죽이 났을 게다.
하물며 남천은 제 성질대로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현문 대사가 자세를 낮추고 몸을 사리는 것도 당연했다.
문제는 모처럼 잡은 승기가 물거품이 됐다는 것과, 무극문이 아침저녁으로 왜 안 오냐고 보챈다는 거다.
무극문의 입장에서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갈 게다.
호천맹의 지원 없이 그들만으로 남맹을 상대할 수 없으니까.
화천대주 도산 진인이 슬쩍 끼어들었다.
“혹시 남천 대협의 방문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무극문에 가서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현문 대사와 선문 대사의 입에서 ‘흐음!’ 하는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알고 있다.
하지만 삼십육 동인들이 도살장 앞에 끌려간 소의 기분이라, 아무것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아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때 천막 밖에서 삼십육 동인의 일인인 공문 대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현문 사형. 나한당의 일문 선사께서 급히 뵙기를 청하십니다.”
순간 현문 대사와 선문 대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왠지 올 것이 왔다는 느낌에서다.
“안으로 드시라 하게.”
“예!”
잠시 후 나한당의 일문 선사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천막 안에 손님들이 있음을 알고 있던 일문 선사는 먼저 사람들에게 반수 합장으로 인사를 했다.
“나한당의 일문입니다. 본사의 일로 잠시 현문 대사와 나눌 이야기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현문 대사는 소림사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짐작하고 화천대주와 호천대주에게 양해를 구했다.
“본사에 급한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먼저 이야기를 나누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지요.”
현문 대사의 축객령에 이도는 떨떠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이야기는 오후에 다시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오후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예고였다.
무극문이 아침저녁으로 찾아와 괴롭히니 그 역시 소림사를 닦달하려는 것이다.
그런 이도의 속셈을 알아차린 현문 대사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이윽고 이도와 도산 진인이 천막을 떠났다.
삼십육 동인의 수좌인 현문 대사가 대주들을 배웅하는 동안 선문 대사가 슬쩍 운을 뗐다.
“일문 선사. 나한당에서 무슨 일로 예까지 찾아오신 겁니까? 혹 소림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선문 대사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일문 선사는 사건의 발단이 와부호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말을 돌리지 않았다.
“칠 일 전 누군가 대웅전 앞마당에 이기어검으로 글을 새겼습니다. 전각에서 나오라는 경고였지요. 그런 뒤에 대웅전, 장경각, 천불전을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
현문 대사와 선문 대사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남천이 뭔가 일을 저지를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저건 너무 나갔다.
남궁천을 폐인으로 만들었다고 소림사 본사를 때리다니…….
그러거나 말거나 일문 선사의 말이 계속 됐다.
“그런 직후 또다른 글이 발견 됐습니다. ‘사람을 상하게 한 죄’라고 청석 위에 검기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목격자에 의하면 이기어검으로 쓴 것이라 하더군요. 대웅전 앞과 마찬가지로. 그런데 그런 글들이 새겨질 당시……. 소림사에 외부의 무인이 없었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이기어검으로 판석에 글자를 새겼던 거지요. 당금 무림에서 그 정도 무위를 가지고 있으며, 또 소림사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장문인 이하 모든 분들이 남천 대협의 행동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현문 대사와 선문 대사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두 사람은 이미 ‘사람을 상하게 한 죄’에서 누구의 짓인지 알았다.
“장문인께서 나한당에 이번 일의 조사를 명하셨습니다. 아울러 하산한 모든 제자들의 복귀 또한 명하셨지요. 거기에는 삼십육 동인들도 포함됩니다. 이 일에 관해 혹시 할 말이 있습니까?”
선문 대사는 현문 대사의 눈치를 살폈다.
이건 삼십육 동인의 수좌인 그가 설명해야 할 일인 까닭이다.
마침내 현문 대사가 입을 열었다.
“하아! 결국 그렇게 됐군요. 모두가 우리의 잘못입니다.”
그러자 선문 대사가 변명하듯 말했다.
“하지만 사형. 그날은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남궁천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걸 어찌 우리의 잘못이라 하십니까?”
일문 선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천을 거론하는 걸 보니 삼십육 동인이 그를 상하게 했던 모양이다.
“삼십육 동인이 청운검 남궁천을 상하게 했습니까?”
현문 대사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상하게 한 정도가 아니라……. 남천 대협이 적시에 손쓰지 않았다면 죽었을 겁니다. 척추와 갈비뼈가 다 부러지고, 기경팔맥까지 끊어졌으니까요.”
“아니! 왜! 그렇게 잔혹한 살수를 썼습니까? 남맹은 죽어 마땅한 사마외도가 아니거늘……. 더구나 남궁세가의 소가주에게 왜 그랬습니까?”
한숨을 푹푹 쉬던 현문 대사는 칠 일 전에 벌어졌던 와부호의 전투를 소상히 설명했다.
“……폭우가 쏟아진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남맹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남맹이 승기를 몰아 호천맹을 회하 너머로 밀어내려 했던 거지요. 하지만 그때는 소림사의 지원부대가 호천맹에 막 합류한 상태였습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폭우 속에서 양측이 난전을 벌였습니다. 삼십육 동인 중에 무려 여섯이 한 사람에게 쓰러졌습니다.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에……. 부득불 살계를 범할 각오로 맞서 싸웠습니다. 쓰러트리고 나서야 그가 남궁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허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일문 선사의 입에서 염불이 흘러나왔다.
듣고 보니 삼십육 동인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그날 오후.
현문 대사는 다시 찾아온 화천대와 호천대 대주들에게 소림사에 발생한 변고(變故)를 알렸다.
그렇지 않고서는 ‘소림사로 돌아간다’고 말하기 어려워서다.
“……그렇게 해서 장문인께서 하산한 제자들의 복귀를 명하셨습니다. 언제고 알려질 일이지만……. 당분간 모른 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도와 도산 진인은 기가 막힌 얼굴로 눈만 끔뻑거렸다.
“본사의 제자들에게 복귀하라고 하셨으니 속가제자들은 남겨 두겠습니다.”
일부를 남겨 놓겠다고 했지만 이도의 표정은 어두웠다.
소림사 속가제자들의 무위는 솔직히 호천대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습니다. 허나 화천대와 호천대만으로는 남맹의 저지선을 뚫지 못할 겁니다.”
옆에서 도산 진인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와부호의 반격이 성공한 것도 삼십육 동인이 있어서였다.
속가제자들로는 무림세가들을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현문 대사의 생각은 달랐다.
“이 대협. 우리가 빠지는 것이 호천맹에 유리할 겁니다. 삼십육 동인으로 인해 남천 대협이 무극문의 일에 관여하게 된다면……. 호천맹은 시작도 해 보기 전에 뜻을 접어야 할 겁니다.”
“…….”
그 말에는 이도도 반박하지 못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삼십육 동인의 활약에 남천이 자극 받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하아! 알겠습니다. 남천 대협에게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되겠지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화천대와 호천대만으로 해 보겠습니다. 도산 진인, 괜찮으시 겠습니까?”
이도의 물음에 도산 진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호천맹에 지원을 요청한 뒤, 오늘 밤에라도 움직이십시다.”
“좋습니다.”
이도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십육 동인이 빠졌다는 게 알려지기 전에 남경으로 가려면 밤낮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
합비.
여강현 석경장.
소림사를 다녀온 뒤로 연적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실실거리며 다니던 그가 침울한 얼굴로 지내자 석경장 사람들은 그것을 남궁천의 부상 때문으로 생각했다.
마당을 거닐던 연적하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석양에 붉게 타들어 가는 원가산을 보고 있으려니 상수현에서 만난 구천현녀가 떠올랐다.
금사와 천자마 때문에 한 세계가 멸망하게 생겼다니 자신이 해결을 해 주는 게 맞다.
‘그나저나 수습할 일이 있으니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어느 정도나 비비적거려도 되는 거지?’
구천현녀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묻지도 않고 허락한 걸 보면 급한 일은 아닌 모양이다.
자신으로서는 잘된 일이지만 ‘범천욕계왕재천’처럼 다른 세계로 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꺄르르르!”
“꺌꺌!”
“호호!”
마당 저쪽에서 지안과 월아, 금아가 숨넘어가게 웃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면서 한편으로 허허로웠다.
“뭘 그렇게 넋 놓고 보십니까?”
말과 함께 심통이 다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애들 노는 거 본다. 왜?”
“거 뭐 볼 게 있다고 그런 걸 보십니까?”
“나는 저런 시절이 없었거든. 심 노인은 저 시절이 기억나?”
“당연하지요. 저는 월아와 금아 나이 때 개방의 거지 친구들과 도둑질을 하고 다녔습니다.”
“개방도 도둑질을 해?”
“개방요? 도둑놈 천지입니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 저리가라인 놈들도 많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던 심통은 ‘으으!’ 하고 진저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