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58
2.
광일은 신형을 비틀며 검광을 피했다. 그래야만 하는 공격이어서다.
자칫하다간 발목이 날아갈 기세다.
마차 안으로부터 폭발해 나오는 저 검은 분명 해남파의 유성추월검이지만, 본능이 경고하는 미증유의 것이었다.
휘도는 바람개비처럼 옆으로 돌며 착지한 광일은 연거푸 회전하는 모습으로 발자국을 찍으며 물러났다.
그 사이에 광조와 광해가 쇄도했다.
마차에서 검광과 함께 튀어나온 인물에게 두 승려는 백보신권을 발출했다.
권경이 터지는 소리가 뒤늦게 울렸고 네 줄기 권력은 그림자를 강타했다.
광일을 쾌검으로 물러나게 하고 허공으로 비상하던 인물, 혈천총사는 제 발등을 찍고 거짓처럼 신형을 비틀며 백보신권의 권력을 피했다.
광일처럼 비틀리는 회전의 모습으로 지면에 내려선 그의 곁으로 해남무사들이 모여들어 인의 장벽을 만들었다.
총사를 호위하는 최정예위사들이며 해남파의 마지막 남은 정예들이 분명하다. 모두가 한 자루 검과 같다.
한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누가 의도한 것이 아니지만 양측이 교전을 멈췄다.
부서진 마차를 옆으로 둔 양측 수뇌부만의 정적이다. 주변에선 함성과 접전이 이어지고 있다. 그 한가운데서 양측 수뇌부는 서로 노려봤다.
“아미타불!”
창노한 불호로서 정적을 깨뜨린 사람은 광현방장이다. 그가 선장을 땅바닥을 찍으며 해남무사들 사이로 묻혀버린 인물, 혈천총사에게 말했다.
“방학천! 혈천의 총사여 얼굴을 보여라! 네가 더 물러날 곳이 없음이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다. 현실이다. 해남무사들에게 둘러싸인 혈천총사의 형세다. 구파의 장문인들과 사대금강과 광일과 광해와 광조가 막아섰다.
접전은 백혈맹의 승세로 치닫고 있다. 기습을 역공당한 상황이며 녹림이 이탈했다. 전장을 등지고 도주해버린 그들의 변절이 너무나 당황스럽다.
광현방장이 재차 외쳤다.
“이곳이 끝을 낼 자리다! 당당히 나서서 최후를 맞아라!”
살기 어린 그 고함에 대한 답은 바로 나왔다.
커다란 장소소리다.
그 소리가 퍼지자 주변에서 혈전을 벌이던 흑혈승들과 혈승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 숫자가 애초의 반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접전에 발이 묶였다.
사십여 명의 흑혈승과 이백여 명의 혈승들이 해남파 무사들 사이로 뭉쳤다. 그와 동시에 가운데가 갈라졌다. 그 사이에서 그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드디어 여러분들과 상면하게 되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를 던지며 나서는 자, 하늘빛 무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자다.
얼굴은 서른 중후반으로 보인다. 젊고 준수한 용모다.
검날처럼 맑게 빛나는 눈을 가졌다. 구파장문인들을 응시하는 시선엔 흔들림이 없다.
“인사드립니다. 혈천 천군의 총사이며 해남파의 장문인 방학천이라 합니다.”
검날을 아래로 하고 검 자루를 두 손으로 감은 채 포권하는 방학천, 그의 물처럼 담담한 기도에 구파장문인들은 내심 감탄했다.
신태비범한 모습과 흔들림 없는 저 태도가 그렇다.
비세에 몰린 이 상황에서도 한점의 낭패함이 없다.
그렇기에 혈천의 총사이긴 하겠지만 역시 인물이다.
원혜진인을 비롯한 구파장문인들은 옅은 감탄과 동시에 분노와 살기를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원혜진인은 분노가 더욱 거세 호통으로 입을 열었다.
“사악한 마군의 우두머리 놈! 네놈이 저지른 죄악을 보거라! 죄 없는 생명들이 헛되이 쓰러져 감이다! 중원을 피로 물들인 네놈과 해남파의 야욕이 만든 결과다! 추악한 음모와 협잡을 벌인 네놈들을 이제 죽이리라!”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천참만륙을 낼 기세인 원혜진인의 검이 빛을 발했다. 내력이 실린 증거다. 무섭고 강한 무당의 그 힘을 방학천은 비웃었다.
“무당의 오동나무가 관을 짜기엔 더없이 좋다 하더이다만, 진인께선 준비하신 모양이오이다? 그처럼 죽겠다고 앙앙대는 걸 보면 틀림없지 싶소.”
한치의 흥분도 보이지 않는 방학천의 대응, 그것이 원혜진인의 분노를 키웠다.
“무어라! 네놈이 상제의 진노를 정녕 피하지 않겠다는 것이구나! 지옥불에 떨어져 영겁을 불타올라야만 뉘우칠 놈이로다! 과연 해남의 종자로구나!”
해남의 종자라는 말이 나가자마자, 직전과 달리 방학천은 격한 반응이 터트렸다.
“그 아가리를 닥쳐라!”
얼마나 분노했는지 안면을 부들거리며 방학천은 뜨거운 목소리를 이어냈다.
“지옥불에 떨어질 것은 너희다! 바로 너희 구대문파와와 중원무림이다! 추악한 얼굴을 자비와 인의라는 가면으로 숨기고 손에 피를 묻히는 것들! 저희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것들! 죄를 덮기 위해서 천하를 피로 물들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것들! 죄악덩어리들!”
부들거리며 이를 악문 방학천은 광현방장을 비롯해 원혜진인과 구파의 장문인들을 차례로 응시했다. 처절한 살기로 점철된 시선은 터질 것만 같았다.
“바로 너희, 이 자리에 모인 너희가 십 년 전 제남회합의 주인공들이지. 그래, 잘들 모였다. 어차피 봐야만 하는 것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 너희와 우리 중에 하나는 없어져야만 끝날 일이니까.”
가라앉은 분노를 서리서리 뿜어내던 방학천은 광일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소림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더니, 인정하마. 너희는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다. 하지만 좋은 그릇도 똥을 담으면 거름통이 되는 법이다. 너희는 그것을 자초했다. 너희의 역사와 뿌리는 똥처럼 썩어 문드러졌다.”
씰룩 뺨을 경련하는 광일의 눈을 무섭게 응시한 방학천은 문득 탄식을 뱉어냈다.
“이 밤에 내가 잘못한 것은 너희의 간계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일이다. 왜 그런지 가슴에 들어찬 조급함이 그렇게 만들었다. 해남의 재건을 위해 피눈물과 땀을 흘리던 지난날에도 조급함은 없었다. 그런데 생겼지.”
방학천은 미간에 깊은 골을 그리며 자탄의 독백을 흘렸다.
“왜일까? 어째서 이 밤에 그리 서둘렀던가?”
진심으로 방학천은 그것이 의문스러웠다.
매사에 냉철함을 잃지 않았었다. 언제나 전후를 살피고 또 살피며 행보했다.
백혈맹을 치는 일엔 차질이 없었다. 매일매일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질이 생겨났다. 의도와 다른 그 진행들을 무시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밤에 결국 반간계에 빠지고 말았다. 백혈맹은 제갈세가 등을 역이용했다. 그들의 배신을 밝혀내고 함정을 파 유인했다.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맹호와 흑호단의 행보 역시도 미끼에 불과할 터다.
제갈세가의 급박함과 내부반란을 이용한 기회는 너무 그럴듯했다.
그것을 물고 말았다.
한 번도 없었던 실수다. 왜 이런 차질이 생긴 것일까?
‘맹호.’
방학천은 머릿속에 들어차는 느닷없는 그 이름을 어금니에 물었다.
‘그자 때문인가? 이 모든 차질은 그로 인해선가?’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점점 커진다. 생각할수록 강해진다. 오늘 밤의 이 함정에 빠지기까지 생긴 사소한 실수와 차질들, 그것에는 언제나 맹호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항주대전에서의 일에서부터다.
그자로 인해 사문의 형제들이 죽어 나갔다. 물론 검선조사의 유진을 되찾기는 했지만 그렇다.
무영사에서 좌군공격 당시에도 맹호와 흑호단의 활약으로 결과가 달라졌다 들었다.
좌군 재집결지인 대치에서는 결정적이다.
마율아합을 베고 좌군총사 부관승을 구해 도주했다.
그 뒤를 추적하던 장문과 호인량을 그가 죽였다.
확산과 백구산에서 흑혈승들을 베고 추적대를 희롱했다.
맹호는 그런 자다.
그런 결과를 냈기에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그자가 은밀히 움직인다는 첩보를 제갈세가 등이 전했다.
이 밤의 급습계획과 더불어 그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서둘렀다.
녹림신군 종패를 보냈다.
그랬는데 녹림은 도주하고 함정에 빠졌다.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다.
“한 가지만 묻자.”
방학천은 구파 장문인들에게 강렬한 시선을 던졌다.
“맹호라는 자, 그자는 너희의 무엇이냐?”
목계백의 별호 아닌 별호, 맹호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광일이다.
그가 미간을 꿈틀거렸고 구파의 장문인들은 제각기의 표정으로 반응했다.
대부분 냉소다. 그 표정을 대표하며 광현방장이 말했다.
“그자는 너희 혈천에게 우리가 준 선물이다. 합곡으로 향하는 그의 행적을 알고 있지 않으냐? 너희에게도 이젠 두려운 자, 합당한 조치를 하지 않았나? 이 자리에 녹림신군 종패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그이겠군.”
고개를 작게 끄덕인 방학천은 탄식을 뱉었다.
“그랬던가? 그는 너희의 칼이 아니었던 건가? 그런 줄 진즉 알았다면……”
후회를 흘려내던 방학천은 다시 날 선 살기를 풀어냈다.
“너희는 맹호가 너희의 뜻대로 차도살인지계에 당했을 것으로 여기는구나? 참으로 우매한 자들이다. 해남파를 모살하던 꾀는 다 어디 간 것이냐?”
화산장문인이 격노를 터트렸다.
“그 입을 닥쳐라!”
비웃음을 던지며 방학천은 목소리를 이어냈다.
“너희가 선 주변을 보아라. 녹림도들이 보이느냐? 종패가 보이지 않는다 했지? 맞다. 그에게 맹호를 도모하라 일렀다. 그런데 종패만이 아니라 녹림도 전체가 빠져나갔다. 접전 중에 일어난 그 일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너희도 나도 맹호에게 당한 거다.”
흠칫하며 구파의 장문인들은 서로 돌아봤다. 그들도 녹림이 도주한 상황을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하던 터다. 다만 하늘이 기회를 더해준다 여겼다.
그런데 방학천의 말을 들으니 그게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음이다.
방학천의 탄식이 또 흘러나왔다.
“조금만 더 깊이 통찰했더라면……”
그것을 끝으로 탄식은 이어지지 않았다. 방학천은 검을 가슴 앞에 세웠다.
검신에 용문이 들어가 있는 검, 혁리장천이 지녔던 용화검이다.
해남검선 장취의의 유진이 숨어 있던 그 검을 손에 쥐고 최후결전을 외쳤다.
“오늘 밤 너희의 목을 베어 사문의 영전에 바치리라!”
방학천이 달려나감과 동시에 흑혈승들이 흑혈섬을 던졌다.
구파의 장문인들과 사대금강도 동시에 움직였고 광일과 광조와 광해도 신형을 날렸다.
* * *
임여진의 접전을 우회하며 질주를 시작한 목계백과 종패는 배후를 노리고 달렸다.
군진의 뒤다.
어둠과 엄폐물들 속에 숨어 있다 혈천의 기마대를 공격한 백혈맹무사들의 꽁무니다.
그곳으로 일천녹림대호들과 흑호단이 치달렸다.
동시에 계속해서 신호를 날렸다.
흩어진 녹림무사들에게 알리는 신호다. 그 신호를 따라 녹림은 재집결하며 좇아 올 것이다.
군진 안의 혈천무리 소탕에 전력을 기울이는 백혈맹의 배후는 취약했다.
일천일백의 기마대가 밀고 들어가자 바로 혼란에 빠졌다.
이미 유황 연기는 흩어져 가는 상황, 녹림대호들과 흑호단은 움직이는 자들을 모조리 벴다. 혈천이건 백혈맹이건 가리지 않는 그 공격은 무자비했다.
태웅에게 흑호단의 지휘를 맡긴 목계백은 처음부터 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우군총사 유위명이다.
당황하며 소리치는 그에게 말 등을 차고 나갔다.
장도를 휘두름과 동시에 전신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격돌했다.
장도와 창날이 부딪쳐 만든 불꽃과 섬광 뒤로 유위명이 휘청대며 물러났다.
분노와 당황과 충격이 뒤섞인 얼굴의 그는 목계백에게 창을 겨눴다.
“맹호!”
다른 말은 필요 없다.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겼다. 그래서 목계백은 주저하지 않았다.
벼락처럼 몸을 날리며 다시 장도를 휘둘렀다.
북천의 울음이 터지는 용악폭전도다. 그 가혹한 칼부림에 유위명은 밀려갔다.
“으아아!”
분노의 함성을 터트린 유위명은 발끝을 땅에 박아 물러남을 멈춤과 동시에 창을 미친 듯이 뻗어냈다.
그의 손으로부터 채찍처럼 휘어져 나오는 창대의 그림자가 수백 개였다.
거짓 같고 환영 같은 그 공격에 목계백의 흑의를 찢고 구멍 냈다.
하지만 목계백은 웃었다. 장도 역시 그랬다.
차가운 북해로 내리꽂히는 벼락과도 같은 섬광이 장도로부터 피어났다.
처절한 한을 담은 호곡과도 같은 도명이 터졌다. 그것이 유위명의 창 그림자들을 갈랐다. 수백 개의 분신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우뚝 멈췄다.
하늘로 올려세운 장도를 양손으로 잡은 채 멈춘 목계백은 말했다.
“뭐가 더 있나 보자.”
갈라져 떨어지는 창대를 잡고 있다 버린 유위명은 안면을 일그러뜨리고 외쳤다.
“소림권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가 땅에 박으며 주먹을 내지르는 유위명, 그 의 필생진력이 담긴 권경이 천수여래장으로 터져 나왔다.
백보신권과 다를 바 없는 천 개의 손, 그것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던진 목계백은 칼을 내리쳤다.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쥔 종패는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손아귀에 들어찬 땀이 검자루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느끼지 못했다.
이 순간 호흡조차 잊었다.
맹호가 우군총사 유위명을 단 칼에 베어버리는 저 광경 때문이다.
‘맹호.’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른 종패는 이를 악문 채 몸을 돌렸다.
임여진 안으로 들어온 목적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맹호의 저 놀라운 무위가 피를 끓게 하고 두려움까지 주고 있지만, 지금은 할 일이 있다.
녹림대호들이 군진 내의 무사들과 접전을 벌이는 동안 종패는 그들을 쫓았다.
접전을 벌이는 자들과 달리 도주를 택한 자들이다.
군진 밖으로 벗어나려는 그들 속엔 제갈세가주와 황보가주와 팽가주가 같이 있었다.
세 가주를 본적은 없지만 복색과 모습으로 확신한 종패는 거침없이 달려가 대검을 휘둘렀다. 이십여 명의 위사들은 분명히 다른 자들과는 실력이 달랐다. 그러나 종패의 검을 피하고 반격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순식간에 위사들을 베어버린 종패는 세 명의 가주와 마주 섰다.
그런데 이상했다. 당당해야 할 세 가주의 움직임과 표정이 예상과 전혀 달랐다.
“당신들……”
방어나 공격의 의지조차도 내보이지 않고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부들거리는 자들, 세 가주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종패는 확신했다. 왜 이런 모습이 된 건지도 짐작했다. 백혈맹에 배신자에게 내린 형벌인 것이다.
“이게 당신들의 최후로군.”
종패는 대검을 휘둘렀다.
섬광 속에서 세 가주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풀어진 세 사람의 머리카락을 한 손에 거머쥐고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제갈세가주와 황보세가주와 팽가주의 목을 잘랐다!”
임여진 안의 녹림대호들은 함성을 지르며 백혈맹과 혈천의 무리를 도륙했다.
혈천은 이미 거의 도륙당한 상황이었고, 그들을 공격하다 공격당한 백혈맹의 무사들은 도주를 시작했다. 대부분 세 가문의 무사들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