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70
2.
오독문이 내어준 저녁 식사는 아주 정갈하고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종패는 바로 손을 대지 않았다. 현재 있는 곳이 오독문이기 때문이다. 당문을 제외하고는 독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다. 긴장과 의심은 당연하다.
이름 모를 산야초들과 잘 삶은 닭다리를 뜯어낸 목계백은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음, 보기보다도 훨씬 맛있군. 이들만의 특별한 조리법이 있는 모양이야.”
종패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목게백의 과감함인지 무모함인지 모를 행동을 바라봤다.
허기가 진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걸 참고 더 확실히 살펴보려 했다.
독의 유무다. 그런데 목계백이 저처럼 손을 댔으니 꼴이 우습다.
“날 바보 만드는구나.”
화난 얼굴의 종패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목계백은 닭다리를 계속 뜯었다.
“음음, 꽤 괜찮아. 너도 먹어라.”
“여긴 오독문이다. 그렇게 무턱대고 음식을 먹을 만한 곳이 아니야. 우리는 아직 이들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았다. 내 조심성을 무시하려고 한 건지 네 용감함을 보이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나?”
“아니면?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 아닌가? 함윤도 오독문 소문주란 놈과 어울려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문주의 얼굴은 아직 보지도 못했다. 우리만 따로 이렇게 저녁상을 차려준 이유가 뭘까? 당연히 의심해야 하지 않나?”
목계백은 뜯던 닭다리를 뼈로 만들어 내려놓고 말했다.
“네 말이 틀린 점은 없다. 하지만 맞지도 않아. 우선은 우리가 이곳까지 온 행보의 결심을 망각하고 있다. 위험할 수도 있었던 건 당연한 일이다.”
종패를 보는 목계백의 눈동자에 예리함이 곤두섰다.
“그럼에도 우린 왔다. 수하들을 두고 수령들이 함께 왔다. 목적의 절실함 때문이지. 넌 그걸 뒤로 미루고 지금 맞고 있는 불편함과 불안함을 분노로 드러내고 있다. 녹림신군 종패답지 않다. 우린 이미 목숨을 걸었다.”
꿈틀하는 종패의 미간을 무시하고 목계백은 말을 이어냈다.
“두 번째는 오독문의 태도다. 저들이 우릴 독으로 죽이고자 했다면 벌써 시도했을 터다. 이렇게 음식 따위로 어찌할 상대가 아니란 걸 저들도 알 거다. 우린 백혈맹과 혈천을 상대로 싸운 녹림과 흑호단이다. 오독문은 지금 조심하고 고민하고 살피는 중인 거다. 두려운 건 저들이야.”
심중의 복잡함과 분노를 미간의 주름으로 세웠던 종패는 가라앉는 숨으로 목계백의 말을 수긍했다.
‘오독문이 오히려 우릴 두려워한다? 그래, 그럴지도‥‥‥’
무작정 사전 언질도 없이 나타난 자들이다. 녹림의 우두머리 녹림신군과 흑호단이라는 이름을 강호에 떨친 맹호다. 장강수로채주와 함께 왔다.
그 행보의 이유와 배경을 먼저 파악하려 할 테고 여타의 정보들을 알아내느라 분주할 터다. 당문이 출몰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긴장하긴 했다.”
툭 한마디를 뱉어낸 종패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B22
“당문과 독이라는 걸 생각하니 이렇게 되는구나. 고강한 무공과 세력을 가지고도 당하고만 백혈맹을 생각하니 더 그렇다. 지나친 긴장이 곧 독이지.”
있었는지도 모를 조소를 입가에 머금었던 중패는 남은 닭다리를 잡았다. 주저 없이 뜯어먹는 그 모습을 목계백이 말없이 바라볼 때 그가 왔다.
“입맛에는 맞는 거냐?”
미소 띤 얼굴로 접객당에 들어온 함윤은 두 사람의 옆자리에 앉으며 상황을 전했다.
“장양에게는 방문한 우리 목적과 취지를 잘 설명했다. 원래 나랑은 말이 통하고 맘도 맞는 놈이라 흥분하더군. 특히 당문 이야기를 했을 때는 독오른 독사 같았다. 오독문이 원래 당문에 가진 원한이 깊기 때문이지.”
종패가 닭뼈를 접시에 던지고 물었다.
“그래서? 문주와는 언제 만나는 건가?”
“급하긴, 저들한테도 씹고 음미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냐? 이건 오독문으로서도 보통 일이 아니다. 문파의 사활을 걸고 임해야 할 일이지.”
그렇다. 당문이 출현한 이상 그들과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심사숙고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그런 일에 연수하자고 찾아온 자들이 또한 범상치 않다. 중원강호를 희롱하듯이 칼을 휘두른 자들이다.
종패가 찌푸린 미간으로 색다른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말야, 당문과 우리가 반드시 적대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뭐?”
함윤은 미간을 좁혔고 목계백은 종패와 시선을 맞췄다.
“그게 아니면? 당문과 손을 잡자는 건가?”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야? 그들은 백혈맹에 분명한 적대행위를 했다. 무당과 종남과 점창의 지도자들을 죽였지.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일이야.”
함윤이 눈동자를 반짝이는 것과 동시에 목계백은 입을 열었다.
“양측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는 사건이지. 분명히 그들은 적이 됐다. 백혈맹과 적이 된 당문이라면 우리와 협력할 수도 있겠지. 그럼 오독문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우리도 그들의 적이 될 수 있다. 당문을 품기엔 우리의 힘이 한참 모자란다. 오독문에 온건 그 방법을 찾아서야.”
목계백의 말은 분명했다.
당문과는 아직 적아의 구분이 없다. 적이 될 수도 동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이 됐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독에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독문에 온 이유다. 이들이 방법이다.
세 사람의 시선이 얽히는 그때 소문주 장양이 나타났다.
“저녁식사들은 즐겁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접이 소흘하여 송구스럽습니다.”
웃는 얼굴로 들어와 공손하게 목계백과 종패를 응시한 그는 얼굴을 보인 이유를 말했다.
“문주께서 여러분들과 담소를 나누길 원하십니다.”
만독전(萬毒殿)이라고 현판이 붙은 중간 규모의 전각은 처마가 아름답고 훌륭했다. 하지만 당호가 만독전이고 보니, 이곳이 오독문이고 보니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안으로 세 사람은 안내되어 들어갔다.
회랑을 지난 목계백과 종패와 함윤은 은은한 다향이 흐르는 방으로 안내됐다.
방안엔 다탁이 있고 한 초로인이 찻물을 정성스레 따르고 있었다. 세 사람이 들어온 걸 본 그가 느릿하게 일어나 포권하며 자신을 밝혔다.
“오독문주 장효(張曉)라 하오이다. 귀인들의 방문을 환영하오.”
함윤이 제일 먼저 포권하며 인사했다.
“장강영웅채의 채주를 맡고 있는 함윤입니다. 문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뒤이어 종패가 포권했다.
“녹림십팔채의 총표파자 종패라합니다. 상면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지막으로 목계백이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인사드립니다. 항주무림맹의 목계백입니다.”
함윤을 보고 눈빛을 반짝인 오독문주 장효의 눈동자는 종패를 보고 칼날처럼 번득였으며 목계백을 보고는 미세한 흔들림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은 알아채지 못할 만큼 빠른시간에 사라졌고, 안면에 미소가 피어났다.
“어서들 앉읍시다. 변변찮으나 본문의 차를 대접코자 하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소. 중원의 차와는 사뭇 다를 테니 타박하지 마시길 바라오.”
데워놓은 찻잔에 연록빛 찻물을 따른 장효는 세 사람의 앞에 놓아 주었다.
두 손으로 그 잔을 잡은 목계백은 서슴없이 찻물을 음미했다. 뒤이어 종패와 함윤도 그랬다. 그런 세 사람의 모습을 장효가 유심히 살폈다.
“차 맛이 훌륭합니다.”
미소 지으며 목계백이 칭찬하자 장효는 마주 미소 지었다.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하오. 이 변방에 찾아와 주신 것도 역시 감사한 일이오. 본문을 일러 말하길 독벌레와 같다고들 하는 걸 알고 있소. 그러한 곳에 강호에 위명을 떨치는 젊은 영웅들이 방문하셨으니 기쁜 일이오.”
찻잔을 내려놓으며 목계백이 입을 열었다.
“세상에 변방과 중심의 구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구분 지어 말하는 자들 때문이겠지요. 그런 자들의 입은 자신을 세우려 남을 깎아내리길 서슴지 않습니다. 남을 하찮게 보고 발아래에 깔아 군림하려는 자들이지요. 저희의 잘못을 정당함으로 바꾸고 거짓을 진실로 못 박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쥐어 잡힌 천하를 바로 잡아야 참 세상일 것입니다.”
장효는 찻잔을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도 돌리지 않고 목계백만 응시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그 시선을 목계백은 역시 말없이 받아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함윤과 종패가 지켜봤다.
목계백은 장효를 처음 본 순간, 찻잔을 나누고 시선을 교환하며 인사를 나누는 동안 알았다.
이 초로의 오독문주에겐 뜨거운 가슴이 있다는 것을, 독벌레라고 멸시받는 오독문의 극악스러운 강호인이 아닌, 무인으로서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직전의 말을 꺼냈다.
당문에 대한 원한을 거론하고 강호의 멸시와 천대에 대한 분노를 말하는 것보다는, 천하와 강호를 이야기하고 그 올바름과 그름에 대해 말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해서다.
오독문주 장효라는 무인에겐 그것이 다가가는 길이다.
그 길에 발을 들였다. 이제 남은 길의 방향선택은 그의 몫이다.
“크고 깊은 뜻을 지닌 이야기구려.”
가라앉은 음성을 흘리며 시선을 내린 장효는 잡고 있던 찻잔을 들어 찻물을 마셨다. 그 잔을 느릿하게 내리고 침묵하다가 다시 목계백을 봤다.
“돌려 말하지 않겠소. 본문에 무엇을 원하시오?”
함윤과 종패가 목계백에게 시선을 돌렸고, 목계백은 장효를 직시하고 대답했다.
“독입니다. 당문의 독에 맞설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오독문주 장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소.”
* * *
찻물이 식어가지만 방장실 안의 누구도 찻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지금 이야기하는 인물이 무당의 전대기인인 무경진인이기도 하지만, 당문의 출현이라는 위난지경을 파훼할 방법을 거론하는 자리이기에 그렇다.
“이 책자가 만독비경이다. 오독문의 삼대 문주인 만독자의 필생심득이 담긴 독경이지. 그가 본 문의 송하진인(松下眞人)에게 제압되지 않았다면 이것은 오독문에 전해 내려갔을 테고, 오독문은 당문에 버금가는 문파가 됐을 터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지. 게다가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도.”
무경진인의 날카로운 시선은 새로 소림장문인이 된 광보대사와 무당장문인 원명진인, 공동장문인 상춘진인과 더불어 각파의 수령들을 훑었다.
“제독환의 제조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남은 일은 바로 이 만독비경 상의 독공을 우리가 연구하고 체득하는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본맹의 일반무사들에게 독에 대한 대항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편을 마련해야 한다. 제독환과는 다른 방편이다.”
집안의 가족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큰어른처럼 싸늘한 시선과 목소리를 던지는 무경진인, 그의 시선과 목소리를 모든 이들이 순응했다. 백혈맹의 가장 큰 어른이기도 한 동시에, 이 전쟁을 마무리할 고수인 것이다.
바로 그 두 명의 전대고수 중 한 명인 공료대사가 이어 입을 열었다.
“만독비경 안에서 그러한 방편을 찾아내야 한다.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준비만 된다면 본맹은 당문이 아니라 그 할애비가 온다 해도 무서울 게 없다.”
공료대사의 노안은 화등처럼 빛을 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만독비경상의 독초와 독재료 등에 대한 이해와 난해한 용어 등에 대한 해석인데, 소림 의생각을 중심으로 해나가면 큰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본다. 다만 시간이 걸리겠지. 바로 그 시간을 줄여야 한다. 모든 문파가 힘을 기울여 독공을 연마한 자들을 찾아라.”
공동장문인 상춘진인이 주저하지 않고 생각을 밝혔다.
“오독문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장 빠르지 않겠습니까?”
공료대사의 날카로운 시선과 더불어 무경진인의 대답이 나왔다.
“맞다. 그래서 바로 사람을 보냈다.”
연이어 공료대사가 의문을 풀어주듯 말했다.
“새로운 사대금강이 길을 떠났다. 면벽에 들었던 현자배 아이들이지. 그들이 본맹의 위란을 헤치고자 나섰다. 지금쯤이면 목적지에 닿았을 것이다.”
상춘진인을 비롯한 방장실 안 인사들의 눈동자엔 밝은 빛이 꿈틀거렸다.
* * *
단호하게 목소리를 냈던 오독문주 장효는 어금니를 무는지 뺨에 주름을 만들고 말을 이어냈다.
“당문의 독은 강력하고 그 구성이 복잡하오. 본문의 독이 그 위력에 미치지 못함을 솔직히 인정하오. 그들의 독과 본문의 독이 부딪친다면 제압당할 확률이 농후하오. 그러니 막을 방도가 없는 것이 냉정한 실정이오.”
어금니에 문 힘을 장효는 눈동자로 몰았다. 당문을 생각하는 살기다. 지난 세월동안 그들로부터 받은 멸시와 조롱과 분쟁의 상처를 되씹으며 말했다.
“다만 독의 위력을 희석시킬 수는 있을 것이오. 그것만으로도 고수들에겐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당문에게는 독만큼 무서운 암기가 있소. 그러니 당문의 힘을 완벽히 대응하기란 사실상 어렵다고 할 것이오.”
목계백등의 반응을 살피지 않고 장효는 안타까운 한마디를 흘려냈다.
“본문의 삼대조사의 비전만 손에 있었더라도‥‥‥”
목계백이 내전차를 그린 미간으로 물었다.
“만독비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그것만 온전히 전해 내려왔어도 본분의 성세가 이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오. 당문에서조차 만독자라는 이름 앞에서는 두려움을 보였었소.”
“만독비경의 종적을 전혀 모르시는 겁니까?”
“모르오. 만독자조사께선 방랑벽이 있으셨다 하오. 어느 날 훌쩍 떠나셔서 독물들을 구해 돌아오시곤 했다 하오. 마지막 행차가 그런 출행이었을 것으로 짐작하오. 그런데 그 후로 행방이 사라지신 것이오. 벌써 백오십년이 되어 가오. 그분이 저술하신 만독비경만 손에 있었더라면‥‥‥”
안타까움을 씹는 오독문주 장효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목계백과 함윤과 종패, 그들에게 전혀 뜻밖의 소식이 다가왔다. 전한 이는 장양이다.
“소자 긴급히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다실 밖에서 기척을 내자마자 소문주 장양이 들어와 아버지 장효에게 귓속말을 했다.
장효의 얼굴은 대번에 변했다.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소림의 사대금강이 찾아와? 만독비경을 거론했다고?”
목계백과 종패와 함윤도 치뜬 눈을 서로에게 돌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