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48
12. 접전, 그 시작.
1.
항주대로를 벗어난 북쪽 외곽에 위치한 혁리세가의 위용은 성을 방불케 했다.
시간은 축시말에서 인시로 접어드는 상황.
어둠은 혁리세가의 담장을 침범하지 못했다. 대낮같이 밝힌 불들이 사방 곳곳에서 너울 거렸다.
복면을 쓴 채로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목계백은 혁리세가의 모든 곳을 살폈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다. 그러나 그런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늘빛을 품은 무복을 입은 진천경혼단은 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순찰을 돌았고, 혁리세가에 합류한 중소문파 무인들도 우글거렸다.
‘도면을 보면 취약한 곳이……’
예리한 눈빛으로 생각을 굴리던 목계백은 순간 눈을 치떴다.
‘출병!’
혁리세가의 정문이 느닷없이 열리고 진천경혼단들이 몰려나왔다.
기마대다.
그야말로 소리 없이 들이치는 폭풍처럼 달려 나가는 숫자는 일천에 달한다.
엄청난 숫자다. 모두가 야음을 이용하는 검은 옷을 입었다.
‘선제공격이구나! 저들은 이걸 준비했어!’
그렇다. 혁리세가가 움직이지 않은 이유가 힘을 결집하고 사방에 알려 자신들의 정당성을,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리고 남궁세가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소림사 등의 지지와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시간으로 파악했었다.
그 시간을 이용해 남궁세가는 기습공격을 계획했다.
목계백이 예측한 대로라면 남궁륜은 이 새벽에 병력보충과 보급을 마치고 바로 공격을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혁리세가는 그것을 되 엎는 기습을 감행했다.
‘거의 이천병력은 되겠군.’
우마차의 아래 엎드린 목계백은 다시 한 번 놀람을 삼켰다.
기마대의 뒤를 따라가는 무인들은 복색이 네 가지였다.
혁리세가의 이권에 얽혀 있는 네 개의 문파가 동참했다는 소리다.
저들 외에도 각기 다른 복장의 무인들도 한 무리가 보인다.
각자가 가진 이유와 신념으로 동참한 자들이다.
한순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간 병력 뒤로 우두커니 남은 혁리세가는 조용했다.
남은 병력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혁리세가를 지키는 병력은 수백에서 일천 사이는 될 것이다.
‘혁리세가가 생각보다 더 무섭구나. 역시 혁리장천이 있어서인가?’
지그시 이를 물었던 목계백은 달빛이 구름에 가리는 순간 우마차 아래서 튀어나왔다.
분섬보를 전력으로 밟아 혁리세가의 담장 아래까지 질주했다.
진천경혼단의 외곽경비 무사들이 서로 스쳐가던 순간이었다. 어둠 속을 뚫고 가는 그 움직임을 야음이 가려줬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
담장에 등을 붙인 순간 목계백은 숨어 있던 우마차와 민가의 창고들을 봤다.
혁리세가와 거리를 벌리고 있는 저곳이 민가의 마지막 지역이었다.
지금 달려온 거리만큼 혁리세가는 항주사람들의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사람들 속에 섞여있지 못하는 이유는 구구할 것이지만 결국 군림이다.
한순간 호흡을 멈춘 목계백은 담장 위로 도약했다.
검은 바람이 지나가듯 담장을 넘은 목계백은 바로 정원수의 뒤로 숨었다.
그거리가 또한 짧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정해진 거리를 돌며 경비를 서는 무사들의 눈빛과 기세는 칼과 같았지만, 그 엄격함의 틈을 파고드는 목계백의 움직임은 그들이 찾아낼 것이 아니었다.
정원수 그림자 속에서 목계백은 지붕을 봤다.
기와곡선이 멋들어지게 휘어진 지붕 위엔 숨었던 달빛이 다시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도 무사들이 있었다. 만일의 침입에 대비한자들, 검과 활로 무장한 자들이다.
‘사각을 찾아 움직여야겠군.’
주변에서 움직이는 혁리세가 무사들의 동선을 파악하며 목계백은 눈을 빛냈다.
숨죽이고 지켜본지 약 일다경, 마침내 사각을 찾아냈다.
정해진 곳으로 교차하며 경비하는 무사들의 움직임 속에 든 짧은 공백이다.
‘역시 구멍이 있어.’
전각 앞에서 무사들이 삼각으로 스쳐가는 난 후의 간극을 보며 목계백은 눈을 반짝였다.
경비와 초번조직을 조직하는 전문가가 봤다면 없었을 구멍이다.
하지만 있다. 그건 혁리세가라는 이름의 자신감이 만든 파탄이다.
숨을 고르며 경비무사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목계백은 정확하게 때를 맞춰 움직였다.
삼각으로 교차하는 무사들이 서로 등지고 전각 앞에서 멀어지는 순간이다.
그들이 교차한 자리로 파고들며 전각 기둥에 붙었다.
내부의 기척을 살피자마자 목계백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둥을 제외한 전면이 다 문으로 만들어진 전각은 궁궐대전과 같은 대청이 있는 용화(龍華)전이다.
이 뒤로 혁리세가의 본전이 있고 그 뒤로 별원이 있다.
바로 그 별원에 목표가 있다. 혁리세가의 그림자속에서 명령하는 늙은이.
‘혁리장천. 기다려라.’
시린 안광을 뿜어낸 목계백은 대전의 계단 아래로 유령처럼 스며들었다.
불빛이 비치지 않는 그 사각에서 숨죽이며 다시 무사들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그러다 계단 위에서 내려오는 자가 내는 목소리에 긴장했다.
“다들 눈과 귀를 최대한 열고 있어야 한다. 알겠느냐?”
오장이나 조장인듯한 자가 대전 내부경비를 서는 무사들에게 짐짓 엄한 소리를 내고 지나갔다.
계단을 돌아 뒤로 들어가는 그자의 뒤에서 경비무사들의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는 자의 전형이다.
상황을 지켜보다 기횔 포착한 목계백은 상급자가 사라진 곳으로 질주했다.
계단 뒤로 이어진 회랑이다. 그중의 끝 방으로 그자가 사라졌다.
목적한 방문 앞에 다다르자마자 목계백은 바로 문을 열었다.
“어?”
아직 뭔지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찰나, 상대에게 비도를 던졌다.
콱, 하고 미간에 비도가 박힌 사내는 허물어졌다.
문을 닫고 다가간 목계백은 바로 사내의 옷을 벗겨 입었다.
복면은 벗어 품에 넣고 사내의 시신은 침상 아래로 밀어 넣었다.
임시숙면실의 용도로 사용하는 방인 듯 내부에는 침상 외엔 아무런 집기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침상 아래 시신의 상태를 살핀 후, 그자의 검을 들고 나갔다.
회랑의 이쪽저쪽을 살핀 목계백은 뒤를 향해 걸었다.
태연한 표정과 몸짓으로 용화전의 뒷문을 나가 본전을 지나쳐 갔다.
그러는 동안 경비를 서는 진천경혼단들이 목례를 했다. 소매에 붙은 계급표시를 알아본 결과다.
무사들의 목례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이동해간 목계백은 별원 앞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도 무사들이 시선을 던졌지만 제지하거나 하지 않았다.
태연하게 그들 속에 섞여서 별원 앞에 다다랐다.
문을 지키는 수문 무사 둘이 뜨악한 시선을 던졌다. 소속이 다름을 알아본 것이 분명했다.
“무슨 용무인가?”
대뜸 묻는 기세를 보고 목계백은 수문무사의 소매를 살폈다.
화(火)가 세 개 수놓아져 있었다.
혁리세가의 성씨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세 개라는 것은 조장급, 처치하고 옷을 뺏어 입은 자와 동등한 계급이다.
수문무사들이 이런 계급이라는 것은, 별원을 지키는 자들이 특별하다는 소리다.
“태상가주께 긴급한 전갈이 있다.”
긴장한 얼굴로 대답하는 목계백은 두 수문무사가 이상하게 바라봤다.
“무슨 전갈?”
“누구로부터의 전갈?”
목계백은 거침없이 또 답했다.
“소림사의 전갈이다.”
수문무사들의 표정이 돌변했다.
“소림사? 그들이 기별을 해 왔단 말이냐? 어디에? 사람들을 보내지 않았나?”
“풍림암의 광법대사에게도 기별이 오지 않았는데?”
목계백은 다급하고 엄중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방금 전 정문으로 어린 소년 하나가 다가와 서찰을 전했다. 숭산에서 보낸 서찰로서 반드시 태상가주님께 전달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분명 긴급한 내용을 담은 것일 지라, 경황없는 줄 알면서 이리 달라왔다.”
목계백은 다급한 표정으로 요구했다.
“어서 안으로 통지해라.”
수문무사들은 미간을 가득 좁힌 채로 서로들 돌아봤다가 다시 물었다.
“소년 하나가 전하고 사라졌다고?”
“숭산에서 보낸 서찰이라는 말만 했다는 거냐?”
목계백은 화를 냈다.
“지금 뭐하자는 거냐? 화급을 다투는 일이란 걸 몰라서 이러는 거냐? 남궁세가를 치기 위한 출정대가 나간 상황이다. 본가의 운명이 걸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야. 풍림암의 광법대사가 소림승인건 분명하지만 소림사와는 거리가 벌어져 있는 인물이다. 그만을 믿고 소림사의 지지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 서찰은 아주 중요한 거란 말이다.”
서찰의 내용을 떠나서 소림사에서 왔다면 정말로 그렇다.
그들의 입장이 어떠한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서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문무사들은 망설임을 접었다. 혁리세가 안에서 잘 못된 일이 일어날 수 없으니까.
“들어가라.”
비켜서며 문을 연 수문 무사들의 사이를 지나 목계백은 별원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엔 담백하고 고졸한 취향이 엿보이는 수묵화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가운데로는 회랑이 보였고 주변엔 아무기척도 없었다.
강렬한 기운은 회랑 저 앞에서 나왔다.
회랑을 걸어가 용이 그려진 문 앞에 섰다.
“태상가주를 알현코자 합니다.”
지니고 온 검을 옆에 내려놓고 목계백은 그자라에 꿇어앉았다.
고개를 조아리고 반응을 기다리던 순간, 안에서 거문고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와 더불어 문이 좌우로 열렸다.
고개를 드니 그렇게 열리는 문이 다섯 개였다.
“무슨 일이냐?”
다섯 개의 문중 가장 안쪽의 문 앞에 선 거한이 종을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를 지난 안쪽으로 화려한 비단 금침이 깔린 침상이 있었고, 그 앞에 거문고를 타는 노인이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가 마치 학을 연상케 하는 노인이었다. 옆에는 작은 주안상과 여인이 있었다.
시선을 거한에게 고정하고 목계백은 말했다.
“소림사로부터 서찰이 도착했습니다.”
순간 학처럼 거문고를 타던 노인, 혁리세가주 혁리장천이 연주를 멈췄다.
“소림사의 서찰이 도착했다는 것이냐?”
혁리장천이 아닌 거한의 물음에 목계백은 다시 대답했다.
“그러합니다. 정문에 웬 소년 하나가 다가와 전하고 사라졌습니다. 전후사정을 짐작 할 길 없으나, 사실이라면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라 지체하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거한이 미간을 가득 좁히는데 혁리장천이 입을 열었다.
“서찰을 다오.”
목계백을 즉시 고개 숙여 읍하고 일어나 품 안의 서찰을 꺼냈다.
그걸 들고 문을 넘어가려는 데 거한이 제지했다.
“서라.”
거한이 제지의 말을 던지자마자 다른 자들이 나타났다.
열린 문의 벽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들로서 각 문마다 두 명씩, 모두 열 명이었다.
그 중 가장 앞문의 한명이, 목계백에에 다가왔다. 그에서 서찰을 넘겼다.
무사는 문을 넘어가지 않고 다음 문의 무사에게 서찰을 전했다.
그가 또 다음 문의 무사에게 전하고, 그렇게 넘어간 서찰은 거한의 손에 잡혔다.
“소관이 펼쳐보겠습니다.”
혁리장천에게 고개 숙여 예를 취한 후 거한은 서찰을 개봉했다. 그리곤 소리 내어 읽었다.
“혁리장천, 네 목을 잘라……”
한 문장도 채 읽지 못하고 거한은 입을 닫았다.
눈을 부릅뜨고 전신을 경직한 그는 목계백을 번개처럼 봤다가 혁리장천에게로 시선을 홱 돌렸다.
“태, 태상가주, 이, 이것은……”
혁리장천의 손에서 거문고 현이 끊어진 것은 그 때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목계백의 앞, 맨 처음 서찰을 건네받은 무사가 픽 쓰러졌다.
입으로 거품을 뿜어내며 전신을 경련하는 모습은 기괴하고 참혹했다.
“독!”
거한이 외치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때를 맞춘 것처럼 다른 네 명의 무사들이 쓰러졌다.
거품을 뿜고 경련하는 그들은 서찰을 건네받은 자들이었다.
그러기에 당연하게도 거한역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부들거렸다.
“저, 저놈을, 죽여라……”
거한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서찰을 만지지 않은 무사들, 다섯 명이 벼락처럼 목계백을 공격했다.
제천무류검하를 토해내는 그들의 검에서 싸늘한 검광이 피어나왔다.
그걸 보며 발로 검을 차올려 뽑은 목계백은 튀어나갔다.
용악폭전도를 그러내는 검.
혁리세가 무사의 검으로 뿌리는 목계백의 용악폭전도법은 거칠고 사나왔다.
다섯자루의 검을 한번에 횡으로 후려치는 모습은 맹호가 앞발을 후리는 것 같았다.
타타타타탕, 하는 쇳소리와 불꽃 뒤로 검광이 폭출했다.
한 번에 이어지는 다섯 번의 후림.
목계백이 만들어낸 용악폭전도법의 다섯 개 검광은 정확하게 다섯 무사들의 미간에 스며들었다.
미간이 쪼개지며 다섯 무사들은 흩어지듯 쓰러졌고, 그사이를 분섬보로 나아간 목계백은 거한의 목에 다시 검을 내리쳤다.
잘려나간 거한의 머리가 혁리장천의 거문고 앞으로 굴러가 부딪쳤다.
그걸 본 주안상 앞의 여인은 새파랗게 질려 부들거렸다.
그런데 말을 하지 못했다.
여인은 그저 입만 벌리고 어어, 하는 소리만 냈다. 혀가 없어서다.
“늙은이, 더러운 취향을 가졌구나.”
목계백은 여인의 혀가 혁리장천에 의해서 잘렸다는 걸 알았다.
당연히 생각은 의문사한 여인들에게로 몰렸다.
어쩌면 여인들을 무참히 죽인 건 혁리검천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그것이 점점 더 강하게 솟구쳤다.
혁리장천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목계백을 응시하며 물었다.
“무슨 독이냐? 본가에서는 알려진 독들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거늘.”
시린 살기를 제어하며 목계백은 말했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많지. 당문의 독만 제일은 아니야. 알려진 건 오히려 무용하지. 서장을 넘어가면 이보다 더 진귀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혁리장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느릿하게 일어선 혁리장천의 손은 거문고로부터 검 한 자루를 뽑아내고 있었다.
검신에 용문이 들어간 그 검은 휘황한 검광을 뿌려 실내를 비췄다.
“이검의 이름은 용화검이다. 천하삼십대 명검에 들어가는 것이지.”
잔잔하게 검의 이름을 말한 혁리장천은 목계백에게 겨누며 뒷말을 이어냈다.
“남궁세가에서 너 같은 자를 어찌 보냈는지 모르겠다만, 지옥불을 찾아든 불나방이 네놈이다.”
자욱한 살기를 뿜어내는 혁리장천은 그자체로서 검이었다.
던지는 시선자체로, 내뿜는 기세로도 적을 베어죽일 것 같은, 하지만 목계백은 웃었다.
짧고 시린 웃음, 북녘하늘의 소리 없는 삭풍을 던지며 한마디를 뱉었다.
“나는 북천에서 왔다.”
미간을 꿈틀하는 혁리장천에게 목계백은 그 말을 던졌다.
“북천의 용사들을 공격하라고 지시한 자가 누구냐?”
혁리장천의 얼굴은 돌처럼 경직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