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72
4.
“이 시간에 모이라고 한 것은 야간수련의 일환이다.”
모금량의 목소리는 모여 선 일백 명의 항주무림맹 선발무사들을 긴장하게 했다. 삼경에 모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지만, 주변을 경계하고 서 있는 적호단 무사들의 기세 때문이다. 그야말로 범과 같은 기세였다.
눈과 목에 힘을 실은 모금량은 적호단주로서의 기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미 밝힌 바와 같다. 너희들은 항주무림맹의 무경당 소속 흑호단이다. 선발이 곧 시작이라고 했다. 매일 이와 같을 것이다. 환경과 조건에 구애받음 없이, 하루하루, 모든 상황이 훈련이 될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야간전투시의 적응을 위한 훈련을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훈련이다. 어둠은 두려움과 불안을 만들고 전투의지를 약화시킨다. 그러한 약점들을 털어내고 강인한 정신과 육체를 만들기 위한 핵심 훈련이다.”
바싹 더 긴장하는 선발무사들, 흑호단을 향해 이번엔 비격이 입을 열었다.
“비무대결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접전은 다수의 병력들이 그 세를 부딪침으로 이뤄진다. 그러한 전면전에서 필요한 것은 역시 전술과 대인전투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고래로터의 전투방식은 아주 유효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등패와 요도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등패(籐牌)와 요도(腰刀).
주변을 경계 중이던 대동보의 적호단 뒤로부터 흑전사람들이 수레 하나를 밀고 들어왔다.
수레에는 지금 비격이 말한 등패와 요도가 가득 실려 있었다.
그걸 본 흑호단 선발무사들의 눈빛이 하얀 투지로 불타올랐다.
“호명하는 자들은 앞으로 나와서 등패와 요도를 수령하라.”
모금량이 다시 말하고 하나씩 이름을 불렀다.
엄정한 자세로 서 있던 흑호단 무사들은 호명 받은 순서대로 나와 등패와 요도를 수령했다.
그런데 그들의 시선은 수령 받은 훈련무기에 있지 않았다. 한사람에게 모였다. 이번 항주대전에서 대동보, 대동보주와 함께 떠오른 영웅이다.
일격탄 이격살. 대동보의 맹호, 목계백이다.
표정 없는 얼굴로 수레의 옆으로 나타난 목계백은 비격과 모금량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미미하게 끄덕이는 목계백의 신호를 받은 비격이 다시 말했다.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동보의 맹호가 누구인지, 자전도객 허관웅을 벤 인물이 누구인지 모르는 자는 없을 것이다. 바로 그가, 항주무림맹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인 대동보의 맹호가 시범을 보일 것이다.”
흑호단은 긴장한 가운데 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목계백은 비격과 모금량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나섰다.
오척장도를 풀어 수레에 기대놓고 등패와 요도를 잡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무서(武書)에 이르기를, 등패는 오래된 거친 등나무를 사용하여 골등이나 대껍질로 촘촘히 짜고 중심이 밖으로 튀어나오고 안쪽은 비어서 여러 개의 화살이 날아들어도 손이나 팔에 닿지 않는다, 등나무 아래와 위로 두 개의 고리를 만들어 안쪽을 잡는다, 군사마다 하나의 등패와 하나의 요도를 잡는다, 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그 등패다.”
둥그런 등패를 왼팔에 끼우고 들어 보인 후 목계백은 요도를 세웠다.
“요도는 길이가 삼척 이 촌이며 무게가 한 근 십 량이고 자루길이가 삼촌이다. 칼은 순수한 강철을 쓰며 자루가 짧아야 하고 형태는 굽어야 한다, 고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요도다. 이 두 가지는 단병접전의 핵심이다.”
성큼 걸음을 옮겨 나간 목계백은 흑호단 무사들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싸움이란 그 구분이 명확하다. 적과 나. 적군과 아군. 승리와 패배. 그러한 구분들이 나 자신을 살리고 죽인다. 냉철하고 명확한 상황파악과 인지, 그에 따른 기민한 대응과 결단, 그것이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 나 자신이 죽고 사는 것을 떠나 전우들의 삶과 죽음, 승패를 결정짓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삶과 승리를 거머쥘 것인가? 답은 언제나 명쾌하다.”
요도로 등패를 캉, 소리 나게 친 목계백은 뒷말을 던졌다.
“피땀이 배인 훈련, 그것뿐이다.”
흑호단 무사들은 긴장한 가운데 함성을 질렀다.
밤하늘을 흔드는 그 소리는 마치 그렇게 들렸다.
대동보의 맹호와 함께라면 지옥도 마다치 않겠다는.
비격과 모금량과 적호단 무사들의 눈빛이 빛나는 가운데 목계백은 움직임을 시작했다. 천천히, 느리게 움직이며 자세를 보임과 동시에 설명했다.
“기수세(起手勢)를 취하고 칼로 머리 위를 쫓아 한번 휘두르고 즉시 약보세(躍步勢)를 취하고, 그래도 칼로써 패를 쫓아 한번 휘둘러 저평세(低平勢)를 하고 일어서 금계반두세(金鷄畔頭勢)를 하고, 칼로서 패를 쫓아 한번 휘두르고 한번 나아가 저평세를 취하고 일어서서 약보세를 취하고……”
세심하고 엄정하게 설명하며 시범을 보이는 목계백을 모두가 눈에 힘을 주고 바라봤다.
항주무림맹의 새 전각들이 공사 중인 곳, 선발한 흑호단 무사들의 임시숙소가 세워진 곳 앞엔 밤인데도 화톳불이 주변을 밝혔다.
바로 그 자리에서 벌어지는 연무시범을 바라보며 광인대사와 원율도장은 이야기 했다.
“아미타불. 항주무림맹의 기틀이 제법 잡혀가는 같습니다.”
“원시천존. 남악권사가 떠났지만 오히려 이들에겐 더욱더 힘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애초부터 그의 부재 시를 예비하고 대비한 자들처럼 보입니다. 아무도 동요하지 않고 누구도 침울해 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동보주 대호검이란 자가 새로운 맹주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빈승도 그 점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적어도 남악권사의 명성에 버금가는 인물로 대체가 될 줄 알았는데, 저들은 참으로 대담한 결정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만한 비중의 인물의 영입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하기만 한다면야 누군들 마다할 자리이겠습니까마는, 저들의 입장에서야 이제와 외부인사를 들인다는 것이 달가운 일이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정말 놀랍고 대담한 결정입니다. 대동보주라는 자가 이번 항주대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명성이 부족한 자입니다. 음양이군과 남궁여군의 목을 베었다고 하지만, 그 자신이 밝힌 대로 그들이 양패구상의 처지에 놓은 상황에서 어부지리를 얻었다면 행운에 불과한일, 그 결과가 놀랍다고 해도 역시 부족한 자입니다.”
“원시천존, 하지만 강호에선 대단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음양이군과 남궁여군이 비록 힘겨운 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결국 그들의 저항을 제압하고 수급을 벤 것은 대동보주의 실력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대호검 명세기란 이름이 신흥강자로서 회자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음, 일정부분 부인 할 수 없는 일인 건 사실입니다. 아미타불.”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그냥 저편에서 연무시범이 이뤄지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 중심에서 움직이는 목계백의 모습이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다시 입을 연 원율도장을 광인대사는 느릿하게 돌아봤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빈승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시천존……”
한숨처럼 도호를 흘려낸 원율도장은 목계백을 응시했다. 이제는 구령소리와 함께 흑호단 무사들과 같이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번 항주대전의 결과 자체가 이해되지 않고 놀랍지만, 그중에서도 바로 대동보의 역할입니다. 대동보는 처음부터 부싯돌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부싯돌이라, 정말로 그러하군요. 아미타불……”
고개를 주억대는 광인대사의 목소리 뒤로 원율도장은 음성을 이어냈다.
“비금도의 정벌로부터 운악의 토설을 거쳐 남궁세가로 이어져 항주의 혁리세가에까지 온 저들의 행적. 그자체가 생각해 보면 놀랍습니다. 절강 땅 온주에서나 행세하던 변방의 작은 문파가 이제는 항주무림맹을 구성하여 그 핵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에가 나비가 된 형국입니다.”
대꾸 없이 무거운 숨만 내쉬는 광인대사처럼 원율도장은 무거운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느닷없는 이 변혁의 결과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의 핵심은 바로 저들입니다. 대동보주와 맹호라는 저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자들…… 저들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답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광인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린 눈빛을 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이후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무당과 본사가 함께 주시하고 있는 이상, 더 이상의 의문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주무림맹은 분명 놀라운 일을 만들었지만, 더 이상은 아닙니다.”
원율도장도 강한 동의 뜻을 드러내는 고갯짓을 하며 도호를 읊었다.
“원시천존.”
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연무를 지켜봤다. 밤이 깊어가는 동안 계속되는 그 훈련을 감시했다.
그 시간이 한 시진을 넘어가고 목계백이 물러나 흑호단 임시숙소에 들어갔다 수통을 가지고 나와 장의자에 기대앉을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목계백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돌아섰다.
흑호단 임시 숙소 안의 거처에서 목계백은 들창을 열고 나왔다.
임시숙소를 한 바퀴 돌아 광인대사와 원율도장을 살폈다.
느릿하게 객잔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엔 안도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불안감으로 나왔던 것이다. 무당으로 가는 제자들 때문에 나온 행동인 것이다.
‘날 무의식적으로 경계하는 감은 칭찬 할 만 하지만, 여기가 한계로군.’
멀어져 가는 광인대사와 원율도장을 보며 시린 미소를 흘려낸 목계백은 어둠 속으로 이동했다.
임시숙소를 벗어나며 보니 비격과 모금량의 지도하에 훈련은 강도 높게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부터 반 시진은 더 이어질 것이다. 이 자리에 같이 있었던 것을 광인과 원율에게 확인시켰다.
직접 눈으로 본 그들은 목계백을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남궁세가의 비급을 가지고 무당으로 일행이 떠난 것은 벌써 한 시진 전이다.
말을 질주해 달리는 그들의 뒤를 따라잡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지만, 무당이십팔검이 곳곳에 퍼져서 감시를 하고 있다. 항주무림맹의 변화를 주시함이다.
어둠속으로 유령처럼 이동하며 목계백은 비웃었다.
‘너희들은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르게 당하는 거다.’
마음속엔 분노가 솟구쳤다. 북천이 당한 일을 생각해서다.
그들도 무슨 일을 당하는지 모르는 채 당했다.
기습해온 중원무림의 정예들에게 몰살을 당하고 만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부의 배신자 때문이다.
‘목응신라.’
그 이름을 어금니에 넣고 씹으며 목계백은 항주외곽으로 달렸다.
요소요소에 몸을 숨긴 채 감시하는 무당이십팔검의 이목을 피하고 속이는 것은 여반장이었다. 목계백을 찾아내기엔 그들의 능력이 역부족이다.
마침내 안전한 지점까지 빠져나온 목계백은 밤새소리로 휘파람을 불었다.
일정한 운율을 지닌 그 소리가 숲에 울려 퍼지자 그림자가 나타났다.
“흑풍.”
목계백이 이름을 부르자 검은 털을 가진 나귀가 게으르게 다가왔다.
입을 푸릉거리며 못마땅한 시선으로 목계백을 보는 놈, 북천에서 같이 세상에 나온 유일한 친구이자 동료인 놈은 왜 귀찮게 하냐는 게 분명했다.
목계백은 부탁하는 얼굴로 흑풍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지 말고 협력해 다오. 너하고 나하고 함께 한 세월이 십년이 넘었다. 너 아니면 누가 날 돕겠냐? 넌 북해신마(北海神馬)의 피를 이어받은 위대한 혈통 아니냐? 네 모습은 비록 이렇지만 너는 용마잖아? 너는 용의 일족이라고?”
목계백의 아부가 통했는지 흑풍은 푸릉, 하며 머리를 비벼댔다.
‘자식, 영악한척 하지만 넌 멍청해.’
속마음을 숨기며 목계백은 거듭 칭찬을 늘어놨다.
“너 아니면 누가 이런 숲에서 홀로 다니겠니? 호랑이나 늑대도 두려워하지 않는 너니까 가능한 거지. 정말 대단해. 너는 진짜로 용간한 놈이야.”
흑풍은 거만하게 머리를 들고 콧김을 뿜었다. 그걸 보고 목계백은 속으로 웃었지만 동시엔 인정도 했다. 정말로 흑풍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남궁세가를 나올 때 그 집안의 마구간에 남겨두고 왔지만 몰래 뒤를 따라왔다.
그럴 걸 알기에 그리한 것이다.
항주에서도 내내 주변에 있었다.
다시 남창으로 갈 때도 따라왔고 돌아와서도 내내 이 숲에 있었다.
흑풍은 정말로 북해신마의 혈통이다.
모습은 비루먹은 검은 나귀지만 하룻밤에 천리를 가는 체력과 힘을 가졌다.
달리기 시작하면 그 속도는 비할 것이 없다. 게다가 영리하다.
이렇게 숲에서 혼자 살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고 생존력이 강하다.
화가 나면 호랑이도 도망가게 만든다.
“그래 고맙다.”
흑풍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목계백은 십년 전을 떠올렸다.
수레에 한가득 북천용사들의 병장기를 싣고 연강막에 들어섰던 그때다.
두이를 만나 병장기를 만들고 다시 떠났던 열두 살의 그 때부터, 십년이 흐른 오늘까지 흑풍과 함께 했다.
흑풍은 가족이자 동료이며 친구, 그 이상이다.
“자. 지금부터 열심히 달려야 한다. 쫓아가야 할 자들이 있거든.”
흑풍은 염려 말라는 투로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 머리를 다시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목계백은 등에 올라탔다.
그 모양새는 전마를 올라탔을 때와 비교하기 힘들게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목계백은 흥분을 드러냈다.
“가자.”
명령이 떨어지자 흑풍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질주였다.
이름 그대로 검은 바람이 불어가는 것 같았다. 삽시간에 숲을 주파했다.
* * *
서안 위에 놓인 용화검을 응시하며 명세기는 뜨거운 침을 삼켰다.
검갑에 승천하는 용이 새겨진 검, 천하삼십대 명검에 그 이름을 올린 검, 혁리세가의 태상가주 혁리장천이 지니고 있던 검, 그것이 눈앞에 있었다.
‘용화검, 정녕 아름답구나.’
떨리는 손을 뻗어 검갑을 어루만지며 명세기는 흑전주 용인성을 생각했다.
방금 전 찾아와 검을 넘겨주고 돌아간 그의 말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항주무림맹주로서의 위용과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이 검 한 자루로서 생길 것은 아니지만, 맹주의 위상에 걸 맞는 병기 하나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바로 이 용화검은 그 의미에 충분할 것입니다.’
용인성은 그렇게 용화검을 바쳤다.
본래 그가 지닐 것도 아니지만, 그에게 누가 내 놓으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자진해서 바쳤다.
“좋구나. 정말로 좋은 검이다.”
감탄을 늘어놓으며 용화검을 어루만지던 명세기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스르릉, 하는 용음 같은 검음이 들리며 서늘한 검신이 자태를 드러냈다.
“허어.”
다시 감탄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 명세기는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시린 검날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그 느낌이 손에 전해졌다.
그야말로 짜릿했다. 그 기분과 감각으로 나서 대호분격류를 천천히 펼쳐봤다.
“좋아, 아주 좋아!”
더 한층 고조된 몸과 마음으로 휘돌아 검을 그어대던 명세기는 순간 벽에 비친 그림자를 봤다.
‘응?’
움직임을 멈춘 채 명세기는 벽을 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 양쪽에서 비추는 등불 빛으로 인한 자신의 그림자만 있을 뿐이었다.
미간을 가득 좁히고 벽을 노려보던 명세기는 다시 검무를 췄다.
그러다 다시 멈췄다. 이번에도 분명히 그림자를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엔 알았다.
벽에 비치는 그림자가 자신의 움직임, 검의 움직임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시린 눈빛을 내며 용화검을 응시하던 명세기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검을 잡고 대호분격류를 시전했다.
느린 검무와도 같은 그 움직임이 이어지던 한순간, 방 양편의 등불 빛이 동시에 검신을 비추던 그 때, 검면에 반사된 빛이 벽에 물들며 그림자를 그려냈다.
검무자의 모습과 구결이다.
제천무류검하.
희미하지만 못 알아 볼 수 없는 그 글자를 보고 명세기는 얼어붙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