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79
3.
진시(辰時. 아침 7~9시)가 아직 되지 않은 시간, 항주무림맹의 임시회의장으로 쓰는 다루에 모두가 모였다. 신임맹주로 내정된 대동보주 명세기와 역시 부맹주로 내정된 안휘검문주 조두량을 비롯한 수뇌부들이다.
“내용에 허위가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병무당주로 물러난 은발야가 심각한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을 받은 재경당주 용인성은 역시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림없습니다.”
허어, 이럴 수가, 하는 탄식들이 터지는 가운데 명세기가 입을 열었다.
“비급을 탈취해 간 자들이 황산의 대력황호채 산적들이라고요?”
용인성은 맹주를 대하는 태도로서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러합니다. 본 흑전의 형제들이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들이 서천목산 너머의 길목인 매촌 인근에서 은신해 있다가 일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황추측이지만 행사한 자들에 대한 것은 확신입니다.”
명세기나 다른 사람이 묻기 전에 용인성은 이야기를 이었다.
“각지로 원행을 다니는 흑전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의 일부가 어젯밤 매촌의 매화관이라는 객잔에 들었습니다. 밤을 보내고 서천목산을 넘으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용인성의 이야기는 간결하고 명료했다.
본래 매화관이란 곳이 대력황호채의 전초기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규모 있는 상단 등을 노릴 뿐이라서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노략질을 하는 장소도 대부분 거리가 떨어진 다른 곳이어서 더욱 상관치 않았다.
의심을 받지 않으려는 그들의 의도다.
그러한 내막을 인지하고 있는 터에 보니 매화관의 별관에 이십 여명의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들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이 어젯밤, 아니 정확히 오늘새벽에 급히 움직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서천목산에서 불이 났고 산을 넘어가니 시체들이 있었다.
“산을 넘어가는 초입에 광법대사와 그 제자들의 시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산을 넘거나 질러가는 길이 위험할 것을 예상한 형제들이 밤을 새워 산을 돌아서, 그들만이 아는 지름길을 찾아, 보고 온 결과입니다.”
용인성이 입을 닫자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에 내려앉았다.
육중한 중압감이 모두의 가슴을 내리눌렀다.
이건 너무나 명확한 일이다.
어젯밤에 소림과 무당은 남궁세가의 비급을 지닌 자들을 움직였다. 비밀리에 어디론가 보낸 것이다. 방향으로 보건데 무당으로 가게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습격을 당했다.
서천목산을 넘어가는 소림과 무당의 인물들을 공격했다.
현재로선 그 주체가 대력황호채의 산적들이라고 보인다.
그들이 광법대사와 그 제자들을 죽였다. 다른 자들도 산에서 몰살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중의 누군가라도 돌아왔어야 한다.
부맹주 조두량이 명세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소림과 무당에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이들이 시선을 모으는 가운데 조두량은 거듭 말했다.
“명색뿐이지만 본 맹의 호법당에 속해 있는 처지이고, 습격을 당한 당사자들이니 속히 알리고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 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항주무림맹의 인사들은 제각기 다른 생각들로 눈빛들들 반짝였다. 그중에서도 부맹주 조두량과 집법당을 맡게 된 칠절신편 위홍, 무천당을 맡게 된 패도문과 태일권파와 정무관주의 눈이 빛났다.
대응을 보려는 것이다.
이미 대동보주 명세기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고 그 결과로 맹주의 위에 오르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지만, 항주무림맹으로서는 처음 맞닥뜨리게 된 중대사다.
맹주의 자리에 맡게 된 명세기로서도 마찬가지다. 이 일을 어찌 처리하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 전공을 세워 단단하던 명세기의 명성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명세기는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림과 무당에 알려야지요. 대책은 명확합니다. 남궁세가의 비급은 우리 항주무림맹의 이름으로서 획득한 것입니다. 우리가 강호정의를 세은 징표와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강호의 공유물로 내놓았고 소림과 무당에 기탁했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나서서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역시, 하는 눈빛을 시선의 내림으로 감추며 고개를 끄덕이는 좌중의 인물들, 그들을 시린 눈길로 바라보는 명세기, 그 속으로 그들이 들어왔다.
“아미타불.”
“원시천존.”
명세기는 바로 일어서서 광인대사와 원율도장을 맞았다.
심각한 얼굴로 좌정한 그들에게 지금까지 알아낸 정황을 설명하고, 항주무림맹의 의지를 밝혔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광인대사와 원율도장은 눈을 감고 있었다.
* * *
훈련이 끝나고 숙소에서 운기조식으로 피곤을 물리친 목계백은 아침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용인성과 은밀히 만났다. 황금흑전반점에서다. 용인성은 미리 입을 맞춘 대로 일을 처리했음을 알렸고 상황도 이야기 했다.
반점을 나오자마자 비상종이 울렸다. 긴급포고를 알리는 종소리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무천당을 맡게 된 패도문주 허일관의 포고를 들었다.
“들어라! 지난 새벽 서천목산을 넘어 무당산으로 향하던 소림과 무당의 형제들이 습격을 당하였다! 공격자들은 황산의 대력황호채 산적들로 밝혀졌다! 본맹이 소림과 무당에 기탁한 남궁세가의 비급을 그들이 탈취했다! 이에 항주무림맹은 강호대의에 입각한 응징에 나서고자 한다!”
운집한 흑호단을 비롯해 패도문과 태일권파, 정무관의 무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흑호단은 그 나름의 기세가 올라 그렇고, 나머지 세문파의 무사들은 다른 이유에서다.
저희 문파의 수장들이 무천당주가 되고 좌우 부당주가 됐으니 우쭐해서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저 자들이 당주와 부당주의 자리를 놓고 어떻게 정했을까?”
비격이 언제나 그렇듯 곁으로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 얼굴을 힐긋 돌아본 목계백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소리를 했다.
“저렇게 자신 만만하게 말해도 되는 건가 모르겠군. 상대의 전력이나 그 밖의 정황 등은 전혀 말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길 것처럼 말하고 있잖나?”
“뭐, 그거야, 저들의 생각이 그러한가보지.”
“생각이 그러하다……”
“어쨌든 이기는 패를 잡고 서 있는 자들이니까. 시작이야 어떠했든 항주무림맹의 수뇌부에 들었잖아?”
“그런가?”
목계백과 비격은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남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였다.
* * *
해가 비치기 시작함과 동시에 출정대가 출발했다.
아직 정식으로 임명절차를 밟은 것은 아니지만, 항주무림맹의 전각이 완성됨과 동시에 모든 정식절차가 진행될 것이지만, 무천당을 맡은 패도문주 허일관을 필두로 태일권파의 한규와 정무관주 관창이 좌우 부당주가 되어 자신들의 문도들을 이끌었다. 흑호단 일대(一隊)로 편제한 이백 명이다.
그 뒤로 새로 입맹한 신입 흑호단 일백 명을 목계백과 비격이 이끌고 나갔다.
출발 전에 맹주 명세기는 단호하고 간곡하게 이야기 했다. 소림과 무당의 지원이 올 때까지는 절대로 적들과 접전을 벌이지 말라고, 또한 전투에 임해서는 투철하고 용맹한 정의 수호의 의지로서 임하라고, 항주무림맹이 해내고 이뤄낸 일을 기억하고 역사를 만든다는 각오로서 임하라고.
그러한 격려를 담은 출정사를 마친 그는 적호단과 함께 항주에 남았다. 이젠 항주무림맹이란 조직이 있기에 당연한 조처고 행동이었다.
출정대의 후미로 쳐져서 따라가던 목계백은 곁으로 다가온 태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흠칫한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데 곁에서 보니 그가 탄 말이 불쌍해 보일정도로 그의 체구가 컸다.
목계백이 입을 열기 전에 태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출정대 전부에게 말을 지급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랬나? 가능했지. 혁리세가와 남궁세가의 전쟁에서 습득한 말이 상당하니까. 천 마리가 훨씬 넘어. 혁리세가의 마장을 확보해서 돌보고 있지.”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태웅은 목계백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저기 그런데…… 실례지만 나이가 어찌 되십니까?”
“내 나이? 그게 궁금한가?”
“다른 마음을 품고 드린 질문이 아닙니다. 서른을 넘기지 않으신 것 같은데, 그토록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일이 범상치 않아서……”
“범상치 않을 것이 없다.”
딱 잘라 말한 목계백의 표정을 태웅은 다시 살폈다. 혹시라도 자신의 말 때문에 기분이 상했을까 하는 염려에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 나이 스물 둘이다. 모두들 나보다 더 먹었지. 그래서 이상하게 보일거야. 저렇게 젊은 자가? 하면서. 하지만 내가 먹은 건 나이만이 아니야.”
목계백은 태웅을 응시하며 남은 말을 던졌다.
“나는 목숨을 먹었지. 수많은 목숨을 먹고 지금 존재하는 거야.”
이상한 전율 같은 것이 태웅의 등골을 훑고 내려갔다.
‘목숨을 먹고 존재한다?’
그 말의 의미가 뭔지 명확치가 않다.
남을 죽이고 살아온 자라는 말도 같고, 다른 의미인 것도 같다.
하지만 분명한건 이거다.
맹호, 일격탄 이격살, 이 사내는 죽음을 헤쳐온자다.
그래서 이렇게 강하고 당당하다.
해가 머리 위에서 넘어가기 시작한 그 무렵, 선두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서천목산의 초입이다!”
광인대사와 원율도장은 그들의 죽음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미간에 봉미가 박힌 채로 죽어 있는 광법대사의 세 제자들이다.
눈을 부릅뜬 그들의 시선은 아직도 생전의 하늘을 더듬고 있었다.
그 눈을 광인대사가 감겨줬다.
“아미타불.”
분노와 슬픔이 밴 불호소리, 그 떨리는 목소리 뒤로 원율도장은 도호를 읊고 입을 열었다.
“누가 이리했을 것 같으십니까? 정말로 황산의 대력황호채에서 했다고 보십니까?”
대답 대신 일어선 광인대사는 또 다른 죽음 앞에 섰다.
심장과 인후와 단전에 봉미가 박힌 광법대사의 시신이다.
피투성이가 된 그의 손과 주변에 흩어진 봉미의 파괴된 흔적들을 보건대 치열했을 싸움이 눈에 선했다.
“광법아……”
사제의 이름을 처연하게 부른 광인대사는 흰 수염을 부르르 떨며 원율도장을 돌아봤다.
“황산의 대력황호채가 녹립십팔채 중에서도 그 세가 강맹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감히 소림과 무당을 상대로 이러한 짓을 벌일 만큼 담이 크지 않습니다.”
“원시천존.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 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남궁세가의 비급에 눈이 어두웠기로서니 이토록 무모한 공격을 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 군요. 아무래도 여기엔 다른 사정이……”
원율도장의 말을 끊은 자는 무담이십팔검의 수좌 태운자였다.
“산비탈에 태현의 제자들 시신이 있습니다.”
눈을 치뜬 원율은 즉시 움직였다.
유운신법(流雲身法)을 펼친 그의 신형은 잠시 만에 해당 장소에 다다랐다.
그야말로 산비탈을 비상해 올라갔다.
“원시천존!”
격노가 드러나는 도호를 입 밖으로 낸 원율도장은 그들의 죽음을 봤다.
진성과 진보다. 태현자의 제자들이다. 그들의 미간에 비도가 박혀 있었다.
“아미타불. 위로부터 바위와 돌을 굴렸습니다. 위급한 순간을 틈타 이들을 공격했군요. 피하기도 힘들었을…… 참으로 대담하고도 무서운 공격입니다.”
이를 악물고 말하는 광인대사를 원율도장은 바라봤다.
그 눈에 든 불안과 격노를 읽었다.
광법대사와 그 제자들에 이어 이젠 태현자의 제자들이다, 남은 것은 태현자와 십팔나한이다.
그들의 결말이 예상돼서이다.
두 사람은 말이 필요 없는 시선을 나누고 바로 움직였다. 협곡을 향해서다.
협곡에는 재가 날렸다. 잡목들이 타서 재 바다가 되었고, 그 위를 능선 길에서 들이쳐 넘어온 바람이 쓸고 지나가 비탈길로 넘어갔다. 그 바람이 품고 뿌리는 재들이 눈발처럼 날렸다. 그 속에서 죽은 자들을 찾아냈다.
무당이십팔검이 흩어져서 찾아낸 자들은 십팔나한이었다.
갈라진 모습으로 불에 타버린 그들의 시신을 하나하나 발견할 때마다 광인대사는 낯빛이 창백하게 변했다.
원율도장도 독약을 이에 문 것처럼 말이 없었다.
“원시천존. 화공을 사용했습니다. 이곳의 지형지세를 잘 아는 자, 그러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나온 산비탈의 공격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팔나한을 이렇게 할 수 있다면 혼자가 아닐 겁니다.”
혼자가 아니다, 그 말에 광인대사는 원율도장을 바라봤다.
“역시, 그자라는 생각은 무리겠지요?”
원율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맹호, 그자는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십팔나한을 혼자서 몰살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는 항주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를 봤습니다. 만에 하나 그가 우리의 눈을 속이고 본산의 제자들 눈을 피해 항주를 빠져나갔다고 해도,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이곳까지 와서 이런 결과를 만들고 다시 돌아간다는 건 무립니다.”
원율도장이 말한 본산의 제자들, 바로 여기 서 있는 무당이십팔검이다. 십팔나한과 자웅을 겨룰 만한 자들이다. 그들이 경계를 했다. 그 사이로 빠져나가 십팔나한을 몰살하고 돌아왔다는 건 역시 불가능하다. 목계백이 흑호단과 새벽훈련을 하는 것도 봤다. 그는 제외시켜야 한다.
“아미타불, 그렇다면 역시 대력황호채가……”
“원시천존. 그들에게 그럴만한 역량이 생겼거나 일전불사의 의지를 가진 게 아닌가 합니다. 현재로선 이러한 추측 밖에는 들지가 않는 군요.”
광인대사는 치미는 격노를 눌러 씹으며 사질들의 시신을 다시 봤다. 강력한 힘으로 육신이 갈라진 몸들이지만 불에 타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다.
후우, 하고 긴 숨을 내쉰 광인대사는 능선길을 눈으로 가리켰다.
“넘어가지요.”
“그러시지요.”
두 사람은 무당이십팔검을 대동하고 능선길을 넘어갔다. 그 뒤에서 무천당주 허일관이 이끄는 혹호단 일대와 목계백과 비격이 이끄는 혹호단 이대가 뒤따라갔다. 물론 소림과 무당인사들의 시신을 수습하면서다.
능선길을 향해가는 목계백의 무심한 얼굴을 보며 비격은 수하들에게 지시했다.
“산길이 험하니 모두 말들을 조심해라!”
흑호단은 위태위태한 비탈길을 말을 끌고 내려왔다. 그 행렬은 재만 남은 협곡을 가로질러 능선 길로 향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