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80
4.
산을 넘어가자마자 무천당주 허일관은 휴식을 명했다. 소림과 무당의 지시를 받아들여서다. 광인대사나 원율도장을 상대함에 있어서 그는 시종일관 저자세였다. 언 듯 그게 당연한듯 싶지만 잘못된 처신이기도 하다.
“자기주장을 전혀 못하고 있어.”
못마땅한 눈으로 허일관을 바라보며 비격은 수통의 물을 마셨다. 마찬가지로 물을 마시며 말의 상태를 살핀 목계백은 대수롭잖게 그 의견을 받았다.
“상관없겠지. 급한 건 소림과 무당이니까.”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명색이 항주무림맹의 무천당주라는 자리를 차지한 자가 저러해서야 쓰겠나? 남악권사 같으면 절대 저러지 않았을 걸? 보주역시 마찬가지고, 예를 다하기야하겠지만 저렇게 굽신거리듯이 끌려 다니지야 않지. 보라고, 좌우부당주란 자들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말목을 쓰다듬어 주며 목계백은 미소를 지었다.
“나중엔 알게 되겠지.”
비격은 미간을 좁히고 목계백을 보며 그 말을 되풀이 했다.
“나중에 알게 된다?”
미소 짓는 목계백의 얼굴 뒤로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흑호단이다.
선발을 거쳐 입맹한 신입무사들 일백 명, 젊고 강호경험이 적은 자들로만 구성한 그들의 눈이 수뇌부를 보고 있었다. 산을 넘어온 말들의 상태를 살피고 자신들의 상태를 점검하며 휴식하는 그들의 눈은 불만스러웠다.
‘그렇구나.’
비격은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그러졌다.
항주무림맹이 재편되는 그림이다.
미래에 있을 그 그림의 바탕은 지금부터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무당이십팔검이 움직이는 군.”
목계백의 말과 시선을 좇아 고갤 돌린 비격은 그들이 비호처럼 달려가는 것을 봤다.
흔적은 바로 찾아냈다.
행렬에 휴식을 취하게 하고 무당이십팔검이 움직인 결과다.
격전의 흔적이다. 수풀 앞에서부터 시작해 안으로까지 이어진 자취다.
누군가 말 탄 이십여 명을 상대와 홀로 격전을 벌였다.
부러지고 갈라진 나무들의 흔적과 핏자국이 있다. 그러나 시신은 없었다.
“원시천존……”
깊고 무거운 숨소리로 도호를 흘려낸 원율도장은 결론을 내렸다.
“태현입니다. 혼자서 끝까지 싸웠습니다. 하지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광인대사는 시선을 바닥의 핏자국에 박은 채로 숨소리만 냈다. 자신도 같은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연한 결론이다. 오직 태현자의 시신만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혼자서 산을 넘었다.
그 족적은 놀랍고 안타깝게도 하나였다.
산비탈에서 발견한 누군가의 다리는 바로 태현자의 것이었다.
태현자, 남궁세가의 비급을 품에 지닌 그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다리로 산을 넘었다. 그리고 여기서 적들과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하지만 중과부적이라. 성치 않은 혼자의 몸으로 말 탄 이십여 명을 상대 할 순 없다.
결국 여기가 최후의 장소였다. 대력황호채 놈들은 시신마저 가져갔다.
“아미타불…… 왜 그랬을까요? 산을 넘기 전에는 시신들을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태현 도우의 시신을 남기지 않고 가져 간 듯합니다. 혹,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생포해 갔다면 그나마……”
“그건 아닐 겁니다.”
잘라 말한 원율도장은 광인대사에게 감사하다는 뜻의 시선을 던졌다. 배분을 따지면 사질 뻘인 태현자에게 도우라는 호칭으로 말 해준 것도 그렇고,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과 희망을 말해 준 것도 그렇다. 하지만 아니다.
“이정도의 피를 흘렸다면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을 겁니다.”
광인대사는 다시 바닥의 흔적을 응시했다.
정말로 그렇다.
그야말로 도살장에서나 볼법한 피다.
사람을 죽여서 난도질하고 토막 내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을 흔적이다.
그걸 알고 있다. 그러나 시신이 없어 그리 말했다.
광인대사는 원율도장과 시선을 맞추고 가라앉은 목소리를 뱉었다.
“무슨 목적으로 시신을 치웠는지 알 수 없으나, 이제 흉수의 얼굴을 대면하고 묻는 수밖에는 길이 없을 듯 하오이다. 황산은 멀지 않지요.”
원율도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살기팽창한 눈으로 무당이십팔검에게 명했다.
“황산으로 간다. 항주무림맹의 행렬에게 전해라.”
해가 넘어갈 무렵 도착한 황산의 자태는 보는 자들을 압도했다. 일흔 두개의 봉우리가 솟은 산세는 그야말로 위풍당당하고 장엄했다. 산 중심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연화봉(蓮花峰)과 광명정(光明頂)과 천도봉(天都峰)의 우뚝함은 가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을 절감하게 했다. 일 년 중에 반 이상 산을 휘어 감는 다는 운해는 신비하게 퍼져 있었다.
산을 올려다본 비격이 목계백에게 아는 체 했다.
“이산의 절경 중에 하나가 구룡폭(九龍瀑)과 백장폭(白丈瀑)이라는 폭포지. 그중에서 구룡폭이 대력황호채가 있는 곳이야. 놈들은 방비가 용이하고 물을 곁에 둔 곳에 산채를 만들었어.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곳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목계백은 물었다.
“산적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군, 산적이 되려고 했나?”
“뭐?”
뜨악한 표정의 비격을 향해 목계백은 씩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웃는 얼굴은 심각하게 상의중인 광인대사와 원율도장, 허일관등에게 돌아갔다.
“아무래도 날 부를 것 같은데.”
비격이 미간을 좁혔지만 그 말은 적중했다.
시종일관 광인대사와 원율도장의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굽실거린 허일관이 좌우부당주가 된 태일권파의 한규와 우부당주가 된 정무관주 관창과 더불어 숙의하며 힐긋거렸다.
세 사람의 행동과 시선은 분명히 목계백을 두고 하는 것이었다.
허일관은 한규와 관창의 염려어린 시선을 보며 말했다.
“맹호 저자의 위상이 간단치 않지만 우리 아래에 있는 자요. 무천당을 이끌고 있는 것도 우리며 현안을 지휘 감독하는 것도 우리요. 당연히 우리가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이 과정을 넘어서야 우리가 굳건해 질 거요.”
한규가 미간을 좁히며 한 가닥 걱정을 드러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맹호 저자가 고분고분 우리 명령을 따라 줄지가 의문입니다. 우리가 봤듯이, 이번 항주대전에서 놀랄만한 전공을 세운 것이 저자입니다. 신입맹도들은 저자를 영웅시 하고 있습니다. 무천당을 저자가 맡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말도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 그런 사정을 세 사람은 다 안다. 실제로 맹호가 어떻게 싸웠는지를 봤다.
솔직히 말하면 이 중에서 맹호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인물은 없다.
두렵고 강한 자다. 그래서 대동보주 명세기가 진심으로 부럽다.
관창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저러한 자를 직급도 없이 어정쩡하게 두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일정한 지위를 줘서 대우하는 것이 우리로서도 편하지 않습니까?”
그게 속마음이다. 이번 출행만 해도 편치가 않다.
맹주 명세기의 명으로 맹호가 신입맹도들, 혹호단 이대를 이끌고 나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명목은 실전을 통한 훈련만큼 좋은 것이 없다지만, 이제 막 입맹한 자들을 데리고 무얼하겠나?
맹호와 더불어서 부담스러운 혹과 같다.
허일관이 날 선 눈매로 다시 말했다.
“어찌됐든 되돌릴 수는 없는 발걸음, 무당이십팔검과 함께 움직일 자를 정하라면 역시 맹호밖에 없소이다. 그에게 내가 가서 상황을 말하겠소.”
허일관이 다가오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던 목계백은 혹호단 이대의 신입맹도들에게 말했다.
“모두 들어라. 우리는 지금 황산에 와 있다.”
혹호단 이대는 물론 그 옆으로 자유롭게 앉아 휴식하고 있는 흑호단 일대도 시선을 모았다.
“우리는 대력황호채의 코앞에 당도해 있다. 어쩌면 이 산의 산적들은 이미 우리의 행적을 파악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보는 게 맞다.”
혹호단의 시선들을 일일이 받아내며 목계백은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이제 입맹한 초출내기들이다. 그렇기는 항주무림맹 역시 마찬가지이나, 우리는 뜨겁고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 경험은 결코 작지 않다. 그러한 경험을 한 선배들이 바로 옆에 있다.”
흑호단 이대는 흑호단 일대를 돌아봤다. 시선을 받은 일대는 어색해 하면서도 어깨에 힘을 줬다. 자긍심을 가질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목계백은 계속 말했다.
“피와 살을 가르는 생사격전의 현장은 생각과 다르다. 눈앞에서 전우의 목이 잘라지고 내 팔다리가 잘려나간다. 그러한 격전의 장에서 살아남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굳건한 마음이다. 의지이며 투지다. 그 바탕 위에 피땀어린 훈련과 수련을 통한 강인함이 더해져야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걸린다.”
말을 그치고 흑호단 이대를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본 목계백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햇병아리들이다. 물론 너희 중에는 발군의 실력을 가진 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병아리들 속에 섞인 중닭일 뿐이다. 그렇게 여김이, 그게 마땅하다. 스스로를 세우려 하지 말고 무리 속에서의 하나가 돼라. 햇병아리인 너희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거다. 어설프게 날뛰어 매의 발톱에 채이지 말고, 다 큰 형제의 날개 밑에 숨어서 의지하란 말이다.”
목계백은 흑호단 일대는 손으로 가리켰다.
“저들이 너희들의 다 큰 형제다. 항주대전을 치르며 승리를 거머쥔 용사들이다. 싸움을 한다면 저들이 할 것이다. 너희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싸우라는 것이 아니다. 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그것이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다.”
시린 눈빛을 발하며 목계백은 남은 말을 던졌다.
“언제나 최악을 상정하고 임하라. 그게 너희들의 목숨을 구한다.”
말을 마치고 돌아선 목계백은 허일관과 시선을 맞췄다.
“아, 그러니까……”
목계백이 말하는 동안 기다린 허일관은 우물거렸다. 그러다가 말했다.
“무당이십팔검과 함께 대력황호채를 정탐할 책임자가 필요하네.”
“무당이십팔검만 움직이지는 못한다고 합니까?”
“음, 그건……”
“동행이 방해가 될 수도 있을 텐데요? 더구나 숫자가 스물아홉이나 된다면, 그게 정탐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무리가 있는 숫자가 아닙니까?”
목계백의 뒤에서 비격이 나섰다.
“그렇습니다. 정탐하는 일에 그만한 숫자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황산이 아무리 크다 하나 대력황호채가 있는 곳은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구룡폭을 중심으로 의심 가는 지역들을 집중해 살피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무당이십팔검이 아닙니까? 그런 고수들이 움직이는 데에 굳이 다른 사람이 동행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불필요한 일로 보입니다.”
조목조목 반격할 여지가 없는 비격의 반박에 허일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한 허일관과 목계백과 비격을 흑호단 일대와 이대가 바라봤다.
일대는 복잡한 표정들을 지었고 이대는 비격과 거의 같은 표정이었다.
“음,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알겠으나, 소림과 무당의 요구가 있었음이네.”
거부할 수 없는 요구라는 허일관의 표정과 말에 목계백은 표정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비격이 미간을 좁히며 이상하다는 듯이 불만을 드러냈다.
“참으로 이상한 요구로군요? 소림과 무당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요구를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합리적이지 않고 상황에 걸맞지 않는 요구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항주무림맹에 부탁을 할지언정 요구를 해선 안 되지 않습니까?”
비격의 마지막 말은 다분히 힐난을 내포한 것이었다. 그런 이상하고 부당한 요구라면 응당 무천당주인 당신이 거절 하거나 차단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랫사람처럼 굴어서 어쩌자는 건가 하는.
흑호단 이대에서 숨죽인 수군거림이 새 나오는 가운데 허일관이 말했다.
“광인대사와 원율도장께서 깊은 생각이 있으신 거 아니겠나? 우리가 당장 대력황호채 산적들과 접전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일은 적의 형세를 살피고 위험을 간파하자는 정탐에 불과하니 협력함이 옳다고 보네.”
어색한 미소 속에서 흑호단의 반응을 분노와 짜증으로 보는 허일관, 그에게 목계백이 대답했다.
“무천당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허일관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표정을 폈다.
“그래주겠나? 고마우이.”
목계백은 비격과 눈을 맞추고 흑호단 이대에게 시선을 주고 걸음을 내딛었다.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물었다. 보일만한 상황을 다 보였기 때문이다.
무천당주인 허일관이 자시에게 찾아와 정탐의 명을 내리면서도 명이 아닌 부탁을 하는 상황, 소림과 무당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
‘당신들이 운은 조만간 끝날 것이야.’
걸음을 내딛어 광인대사와 원율도장, 무당이십팔검이 기다리는 앞으로 나가며 목계백은 확신했다.
‘원율, 광인, 당신들은 날 제거하려고 마음먹었군.’
그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목계백을 지목해 요구한 것이다. 정탐이란 이름으로 무당이십팔검과 동행시켜 없애려는 것이다. 아무런 혐의를 찾아낼 순 없지만 못내 찜찜한 존재, 그것을 곁에 두고 보느니 지우기로 한 거다.
‘출가인들의 행사란 이런 것이로구나.’
시린 살기를 마음 깊은 곳에 품은 채 목계백은 그들에게로 걸어갔다.
“원시천존.”
“아미타불.”
불호와 도호를 내는 원율도장과 광인대사의 앞에 멈춰선 목계백은 고개를 숙였다.
“불초 목계백이 두 분의 말씀을 좇아 대령하였습니다.”
광인대사는 순간적으로 시린 눈빛을 내다 목계백이 고개를 들자 감췄고, 원율도장은 자애로운 빛이 감도는 시선을 부러 만들어내며 이야기 했다.
“무리한 부탁인 줄 알면서 청하는 바이네. 그대 밖에 믿을 만한 인재가 없는 탓이지.”
목계백은 광인과 원율의 눈을 마주보고 미소 지으며 다시 고개 숙였다.
“미거한 자를 높이 평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뢰에 부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율은 흡족하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명령을 내렸다.
“무당이십팔검은 맹호와 함께 적의 형세를 살피고 오너라.”
목계백은 무당이십팔검에게 둘러싸인 형세로 황산을 향해 나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