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82
20. 황산의 노을이 지고 나서.
1.
‘이런!’
명시가 황산을 울리는 소릴 들은 순간 태운자는 종적이 드러났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그리 됐는지는 모르지만, 대력황호채 산적들은 침범을 알아챘다.
여기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돌아가 합류해야 할지 말지를.
그 고민을 알았는지 사제 중 한명인 태여(太如)가 다가와 의견을 말했다.
“사형, 이대로 물러간다고 해도 산적들과의 일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검에 피를 묻힌 지경, 사숙에게 신호를 보내고 먼저 움직임이 낫다고 봅니다. 우리들 스물여덟이면 대력황호채 정도를 어쩌지 못하겠습니까?”
현 상황에 맞는 판단이긴 하지만 나중의 자신감은 지나치다. 그렇다고 태운자는 판단했다.
“대력황호채가 채주와 부채주 모가형제의 무공과 신력이 고강하다고는 하지만, 그 외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만큼 우리는 적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섣부른 예단과 자신감은 자칫 화를 부를 수도 있다.”
태여는 미간을 좁히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녹림십팔채가 워낙에 규모가 방대해서 그렇지, 대력황호채야 두려 울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산에 수천의 산적이 있다한들, 우리 사형제가 바람처럼 들이쳐서 수괴들의 목을 벤다면 끝날 일이라고 봅니다. 본산과 소림의 지원이 오기 전에 승부를 결정짓는 겁니다. 이 밤이 가기 전에요.”
승부욕으로, 아니 희생된 태운자를 비롯한 그 제자들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으로 이글대는 태여의 눈을 태운자는 분명히 봤다.
다가선 다른 사형제들도 마찬가지다.
왜 수도자들에게 저런 눈이 생겼는가는 이 순간 우매한 소리다.
젊고 힘을 가진 무당이십팔검에게는 당연한 감정이다.
서늘한 눈길을 사형제들에게 던지며 태운자는 말했다.
“태여의 말이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겠으니, 지금 이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면 역시 물러섬 보다는 나아감이 옳다고 본다. 어차피 종적이 드러난 상황이고 일전을 피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후행하여 올 사숙일행과 합류할 지점을 찾아 유리함을 밟고 서는 것이 옳다. 자, 우린 전진한다.”
결론을 내린 태운자는 문득 뒤돌아봤다. 함정이 있는 곳에서 화살을 맞고 쓰러진 맹호를 찾아서다. 그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찾지 못했지만 이제는 수풀들에 가려 더욱 알 수 없다. 게다가 이젠 그를 찾을 시간도 없다.
황산의 여기저기서, 아래와 위에서 연달아 비상하는 명시들을 보며 태운자는 움직였다. 그와 함께 무당이십팔검은 황산 속을 헤치고 들어갔다.
* * *
발끝으로 차고 나간 한 아름의 소나무가 부러졌다. 그 반발력을 이용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앞으로 나갔다. 바위를 뛰어넘고 계류를 건너뛰어 황산 구룡폭을 향해 질주했다. 전력으로 분섬보를 발휘하는 지금 목계백의 빠르기는 가히 산을 헤집고 지나가는 북풍에 다름 아니었다.
‘저기로구나!’
마침내 대력황호채의 산채를 발견한 목계백은 전력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구룡폭이란 이름의 커다란 폭포가 장엄하게 떨어져 내리는 옆, 병풍처럼 절벽을 두르고 움푹 들어간 분지, 그 앞을 막은 높다란 통나무목책.
저곳이 놈들의 소굴이다. 녹림십팔채 산하 황산의 대력황호채다.
삐이익!
호각소리가 느닷없이 울려 퍼지며 섬광들이 날아왔다.
흉악한 화살들이다. 노(弩)다.
화살보다 강력하고 빠른 저것은 갑옷도 가볍게 관통하는 효과적인 무기다.
분명 신비궁(神臂弓)이다. 산적들이 군문의 무기를 가졌다.
사방에서 화살들이 빗발쳤다.
산채로 이르는 길목에 은신한 놈들이다. 나무 위와 암석 뒤, 여기저기 초소와 망루의 형태로 숨어 있는 놈들의 종적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소동이다. 놈들에게 보내는 인사다.
분섬보로 바람처럼 질주하며 목계백은 장도를 휘둘렀다.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나무 뒤 은신처의 놈이 갈라졌다.
놈이 의지하던 아름드리나무가 넘어가는 순간 귀신처럼 이동해 바위 뒤의 또 다른 놈을 베었다.
갈지자의 무질서한 움직임으로 산채 앞 수풀을 질주하는 목계백은 그야말로 유린했다.
각자의 은신처에서 신비궁을 발사하는 산적놈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갈랐다.
빗발치던 신비궁은 어느새 보이지 않고 있었다.
‘거의 다 됐다!’
땅속에 숨은 놈에게 도약해 나간 목계백은 장도를 내리찍었다.
콱 하고 박혀 들어간 칼을 뽑자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그때 산채의 문이 열렸다.
함성소리와 함께 밀려 나오는 산적들을 본 순간 목계백은 뒤돌아 달렸다. 누가 봐도 도주하는 게 분명한 그 발길은 무당이십팔검에게로 향했다.
“대력황호채를 넘보는 잡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자!”
부채주 모태경이 커다란 창을 세우고 외치자 산적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죽일 쥐새끼!”
도주하는 습격자의 뒷모습을 노려본 모태경은 창을 휘두르며 선두로 나섰다.
“산채를 침범한 쥐새끼들을 죽이러 가자!”
칠 척 거한 모태경은 거구에 어우리지 않게 바람처럼 달렸다.
고절한 경공을 발휘하는 그의 뒤로 대력황호채의 주력인 황호장사(黃虎壯士)들 이백 명이 달려갔다.
모두가 박도를 잡았고 날래기가 그야말로 범 같았다.
모태경과 이백 황호장사들이 목책을 나가고 난후, 채주 모태산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나왔다.
은빛이 번쩍이는 한 자루 청룡언월도를 든 그의 모습은 신장(神將)에 다름 아니었다.
그 눈동자가 심유하게 빛났다.
‘항주무림맹의 본진이 곧 합류하겠지.’
산 아래 쪽을 응시하며 모태산은 이제부터 할 행동의 순서를 다시 점검했다.
‘분탕질을 하고 간 놈의 의도는 우리를 끌어내려는 것이 분명하겠지, 너희는 우리를 정말 무식한 산적으로 보고 있구나. 그 수를 역이용함이다. 태경이가 시선을 끄는 사이에 급습을 해서 끝낸다. 무당이십팔검, 너희들은 물론 강자지만, 너희를 우리가 두려워 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미 놈들의 종적을 다 파악하고 있다.
무당이십팔검이 선두로 나섰다. 그들의 종적이 먼저 드러났다.
초소 몇 곳이 몰살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이제 놈들이 합류하기를 기다려 후미를 급습하면 된다.
‘원율도장, 광인대사. 당신들은 무덤을 찾아온 것이야.’
시린 살기를 눈동자로 뿜어낸 모태산은 명령을 내렸다.
“황호철위(黃虎鐵衛)들은 나를 따르고 나머지는 준비한 대로 행한다!”
모태경처럼 앞서 나가는 모태산의 뒤로 일백 명의 산적들이 기세흉흉한 모습으로 따랐다. 모두가 모태산처럼 언월도를 잡은 자들이다. 그 뒤로 삼백여명의 산적들이 준비한 장비들을 챙겨 정해진 방향으로 이동했다.
* * *
이제는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명시의 소리에 원율도장은 광인대사와 눈을 맞췄다.
“원시천존, 이대로 기다릴 상황이 아닌 듯 합니다.”
불호를 외는 것으로 입을 연 광인대사는 행동을 결정했다.
“종적이 발각된 듯 하니 합세하여 형세를 파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야겠습니다. 대력황호채의 정확한 세가 어떠한지를 알 수 없으니……”
물러나 형세를 살피고 본산의 지원이 올 때를 기다리자는 말은 차마 내지 못했다.
그렇기는 광인대사도 마찬가지다.
명색이 소림과 무당의 인사들이고 무당이십팔검이 함께 하고 있다.
게다가 항주무림맹의 병력 삼백이 같이 한 마당이다.
그들과 같이 보고 겪을 이 상황은 간단치가 않다.
때마침 노을이 흩어지는 하늘에 신호가 올랐다. 흰 연기를 뿜는 신호, 화섭자와 비슷한 폭죽이다. 발화시켜 하늘로 작은 연막을 발사하는 것이다.
본산을 나설 때 저것을 하나씩 지녔다. 인식 가능한 거리에서의 조응과 연락을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밤에 태운자는 저것을 사용하지 못했다. 사용했다고 해도 항주에선 볼 수가 없었던, 바로 그 신호가 올랐다.
“태운이 신호를 올렸습니다.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입니다.”
“물러날 생각이 아니군요.”
“쯧, 그렇게 결정한 모양입니다.”
못 마땅한 표정의 원율도장에게 광인대사가 태운자를 대변하듯 짐작을 말했다.
“어차피 종적이 드러나 접전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 바에야 황산의 일정한 지역, 유리한 곳을 선점하고 상황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생각이겠지요. 본산의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말입니다.”
원율도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생각과 동시에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합니다. 저희들 사형제라면 대력황호채에 들이쳐 수괴들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음, 무당이십팔검이라면 응당 그런 자신감이 있겠지요.”
수긍하면서도 광인대사의 표정은 어두웠다. 왜 그런지를 알기에 원율도장은 화를 드러냈다.
“소림의 십팔나한이 희생된 마당에, 저런 만용을 부려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저놈들이 그것을 잊고 있는 겁니다. 아니, 알면서도 저러는 거지요.”
그렇다, 정말로 중요한 부분이다.
무당이십팔검과 이름이 같이 오르는 소림의 십팔나한이 몰살했다.
그들이 당한 흔적은 함정과 기습으로 인해서가 분명하지만, 당한 것은 당한 것이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대력황호채 유력하다.
그래서 여기 온 것이다. 그러한 만큼 더욱 조심해야 한다.
“아마도 십팔나한이 당한 일에 더욱 자극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미타불.”
광인대사의 침중한 목소리를 들으며 원율도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리석은 놈들, 강호에 나와서 존장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저런 독단을 보이다니, 그토록 수양에 정진케 하여도 젊은 피는 식지 않는 겐가……’
광인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체할 때가 아닙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원시천존, 그러하시지요.”
광인대사와 원율도장의 목소리에 심각한 얼굴로 귀 기울이는 무천당주 허일관과 좌우부당주를 보며 비격은 상황을 짐작했다.
노을 속에서 울어대는 명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산적들에게 종적을 들킨 것이다.
‘목계백은?’
미간을 좁히고 걱정을 품었던 비격은 바로 그 생각을 버렸다.
‘무사하겠지. 누가 맹호를 건드리겠나.’
당연한 일이다. 이젠 목계백의 능력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직접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상황도 목계백이 꾸민 것이다.
남궁세가의 비급을 소림과 무당에게 주도록 했고, 태현자와 광법대사와 십팔나한이 가지고 떠난 그 밤에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숙소에서 자는 척했지만 그게 아니야. 나와 모금량에게 숙소에 다른 자가 들지 않도록 당부한 것은 그 때문이지. 분명히 서천목산에 다녀왔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도대체 언제 그들을 쫓아가서 해결하고 언제 돌아왔단 말인가?
분명 목계백은 묘시에 새벽훈련을 주도했다.
그렇다면 시간상 맞지 않는다. 도저히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되질 않는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십팔나한을 몰살했다는 것이다.
여기 와서야 정확한 진상을 알았지만, 그들은 차례로 당했다. 광법대사와 그 제자들, 태운자의 제자들, 그리고 협곡에서 십팔나한이 전부 죽었다.
오직 태운자만이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는 목계백이 남겨둔 미끼다.
‘지금 이 상황을 만든 미끼.’
도대체 목계백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하며 비격은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태웅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무심결에 눈이 마주쳤다.
비격은 태웅을 눈을 보며 흑호단 전체에게 알렸다.
“모두들 마음의 각호를 해라. 아무래도 접전이 시작 될 모양이다.”
흑호단 일대 이백 명은 원율도장과 광인대사와 이야기하는 수뇌인사들을 보며 수군거렸다.
올 것이 왔다는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항주대전을 경험해서 인지 주눅 들거나 움츠리는 기색들은 없었다.
그에 반해 흑호단 이대는 긴장이 역력했다. 입맹과 거의 동시에 이런 일을 겪게 됐기 때문이다.
비격은 흑호단 이대의 긴장 속으로 목소리를 던졌다.
“몸의 경직을 풀어라. 마음을 다스리고 심호흡을 해라. 접전 시에 긴장과 경직은 목숨을 앗는 첫 번째 적이다. 상황이 어찌될지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너희들이 몸을 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싸우는 수밖에 없다. 짧았지만 훈련을 기억하고, 동료들과 합심해라. 내 등을 지켜주는 것이 동료다. 그 마음으로 함께 움직인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그래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흑호단을 향해 비격은 그 이름을 소리쳐 말했다.
“맹호가 우리를 승리로 이끌 것이다!”
그 외침이 흑호단 이대의 긴장을 흥분으로 바꾸어 놓을 때, 무천당주 허일관 외쳤다.
“모두 일어서라! 산으로 진입한다!”
* * *
뒤쫓아 오는 산적들의 야수 같은 함성과 기세를 이끌며 목계백은 산을 달려 내려갔다. 완만하게 경사를 이룬 비탈을 질주하며 아래쪽의 기척을 살폈다. 역시 예상대로 무당이십팔검이 바람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이쯤에서 사라져 줘야겠지.’
위쪽의 산적들과 아래쪽의 무당이십팔검의 거리를 가늠하며 달리던 목계백은 삽시간에 방향을 틀어 몸을 던졌다. 어둠이 물들기 시작한 산의 바람 속으로 스며든 그 몸은 우거진 수풀 사이를 파고 들어가 엎드렸다.
숨을 죽이고 비탈의 기척을 살피길 얼마인가, 산적들의 함성이 들리고 무당이십팔검의 도호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양측이 접전하는 소리도 연이었다.
바로 몸을 일으킨 목계백은 수풀을 휘돌아 산적들의 후미로 다가갔다. 이백 명이나 되는 놈들이 박도를 휘두르며 날뛰고 있었다. 그중 한 놈에게 비도를 던졌다. 허벅지를 맞은 놈이 주저앉더니 뒤로 물러나왔다.
수플 앞 나무에 기댄 놈은 어디서 날아온 비도인지, 어찌된 영문인지 살피려고 사방을 살폈다. 동료를 부르려는 놈에게 다가간 목계백은 뒤통수에 용악철권을 후렸다. 쓰러지는 놈을 끌고 수풀 속으로 다시 숨었다.
절명한 산적의 짐승가죽 옷을 벗겨 입은 목계백은 장도를 숨기고 수풀을 나가 놈이 떨어뜨린 박도를 잡았다. 그걸 들고 접전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