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51
150화. 혈수귀옹 (3)
“으하하하! 오랜만에 손님들이 오니 절로 흥이 나는구나!”
혈수귀옹은 독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흥에 겨운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리고, 시종들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렸다.
바로 옆에 앉은 백수룡과 절강오마에게도 계속 술을 권했다.
“사질. 한 잔 더 받거라. 너희도 편하게 마시거라!”
“감사합니다.”
독주를 받아 단숨에 들이켠 백수룡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사백님. 집이 참으로 멋진 것 같습니다.”
“흐흐. 사질이 보는 눈이 있구나. 다 짓는 데 무려 오 년이 걸렸지. 방도 많으니 너희가 원하면 얼마든지 머물러도 좋다.”
혈수귀옹은 뿌듯한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의 집은 협곡 안에 지어졌다고는 믿기 어려운, 그야말로 대궐 같은 곳이었다.
만찬이 차려진 대청만 해도 수십 명이 자리할 수 있을 만큼 넓었는데, 그 안을 손과 발에 족쇄가 채워진 시종들이 오가며 음식과 술을 날랐다.
‘전부 다 무인이로군.’
시종들은 주요부위만 간신히 가린 옷을 입었고, 등에는 낙인을 찍은 듯 숫자가 불로 지져져 있었다.
혈수귀옹은 시종들을 숫자로 불렀다.
“칠호야. 가서 백주 좀 더 가져오너라.”
“……예. 어르신.”
노예나 다름없는 시종들의 모습에, 백수룡의 제자들은 불편한 감정을 꾹 눌러야만 했다.
물론 혈교에서 온갖 꼴을 다 본 백수룡에겐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
절강오마가 시종들을 힐긋거리는 것을 본 혈수귀옹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악인곡의 규칙을 어기고 질서를 어지럽힌 자들이다. 그 벌로 내 집에서 노역을 하고 있는 게야. 십 년을 버티면 풀어주기로 약조했지.”
“십 년이라…….”
시종들의 상태를 볼 때, 이삼 년 안에 전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 업보지.’
저 시종들도 결국 악인곡의 악인들이었다.
밖에서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온갖 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다 끝내 이곳에 몸을 숨기기 위해 온 인간말종들.
불쌍하게 여길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에게 벌을 내리는 혈수귀옹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 노괴도 자신의 편의를 위해 다른 악인들을 노예로 삼았을 뿐이야.’
더 큰 악이 작은 악을 지배하는 곳.
그것이 악인곡의 본질이었다.
문득 궁금한 것이 생긴 백수룡이 물었다.
“사백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물어보거라.”
“이곳 악인곡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규칙은 누가 정하는 겁니까?”
“물론 내가 정한다.”
혈수귀옹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어진 그의 말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내가 이곳에 정착한 것이 삼십 년 전이다. 당시 어울리던 놈들과 함께 이곳을 개척했지. 그 후에 소문을 듣고 흉악한 마두들이 하나둘 흘러들어왔다. 내가 놈들에게 음식을 주고 잘 곳을 제공하면서 악인곡의 역사가 시작됐다.”
“…….”
혈수귀옹이 악인곡을 만들었고,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악인들을 끌어모았다. 지금에 와서는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는 세력을 구축했다.
그가 악인곡의 왕인 이유는 단순히 강해서만이 아니었다.
이곳의 악인들이 혈수귀옹을 왕으로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악인곡은 나의 땅이고, 나의 성이다. 이곳에서는 내 말이 곧 법이고 규칙이다. 이놈들아! 내 말이 틀렸느냐?”
““전부 맞습니다!””
만찬장에 모여 있던 악인들이 일제히 식탁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외쳤다.
전부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자들로, 그 숫자가 수십 명은 되었다.
하나같이 기도가 사나운 악인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만찬장은 술 냄새와 악인들의 땀 냄새, 그리고 악인들의 몸에 밴 피 냄새로 진동했다.
“흐하하! 좋구나!”
혈수귀옹은 껄껄 웃으며 독주를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은 그가 입가를 손등으로 닦았다.
취기가 꽤 올랐는지, 백수룡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뭐, 가끔 말을 안 듣는 구음마녀 같은 것들도 있긴 하다만……. 그년이야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으니 무시해도 된다.”
“구음마녀라면…….”
혈수귀옹과 함께 십대악인으로 손꼽히는 빙공의 고수.
십대악인 중 두 명이나 이곳에 존재하기에, 악인곡은 현 사파 세력 중에서도 손꼽히는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혈수귀옹은 그녀를 이렇게 평가했다.
“계륵 같은 년이지. 술이나 마시자꾸나.”
혀를 찬 혈수귀옹은 다시 잔에 독주를 채워 절강오마에게 돌렸다.
연이은 폭음에 어지간히 술이 강한 헌원강과 야수혁도 머리가 띵해 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들 이를 악물고 술을 마시면서 힘들지 않은 척 허세를 부렸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말실수하면 끝장이야.’
‘여긴 호랑이 굴이다. 이 자식들한테 빈틈을 보여선 안 돼.’
그러한 노력 덕분에, 다행히 아직까지 누구도 술에 크게 취하지도 않았고,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다.
위지천만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먼저 방에 들어가 쉬고 있었다.
“이보게, 사질.”
사실 혈수귀옹은 다른 절강오마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진의 사질, 옥면음랑에게 집중돼 있었다.
“예. 사백님.”
혈수귀옹이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로 백수룡을 응시했다.
“네가 이곳에 오기 전에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듣고 싶구나.”
“…….”
순간, 만찬장에 있는 악인들의 시선이 백수룡에게 집중됐다.
다들 눈빛이 아이처럼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이곳에 있는 악인들 대부분은 원해서 악인곡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관의 추격에, 무림맹의 수배에 쫓기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악인곡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혈수귀옹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흐흐. 그래 신입! 재밌는 이야기 좀 해 봐.”
“처음 사람을 죽인 건 언제야? 마지막으로 죽인 건 언제고?”
“옥면음랑이라며? 얼굴을 보니 지금까지 후린 여자가 기백은 될 것 같은데.”
마치 피와 굶주린 이리 떼 같았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악인들의 시선은, 담이 크다고 자부하는 사내들도 오줌을 지리게 만들 정도로 사나웠다.
‘선생님…….’
학생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백수룡은 바라봤다.
그들이 아는 백수룡은 가끔 사파인처럼 언행이 거칠긴 해도, 악인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다.
아무리 거짓말을 잘한다고 해도, 이렇게 끔찍한 악인들을 상대로 악인 연기를 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괜한 걱정에 불과했다.
“아홉 살이었습니다.”
백수룡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덤덤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홉 살에 처음 사람을 죽였습니다. 항상 제 옆에서 잠을 자던 친구였지요.”
서두를 연 백수룡은 술잔을 가져가 가볍게 입술을 축였다.
여인처럼 고운 그의 옆얼굴이, 오늘따라 더 차갑게 보였다.
백수룡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영문도 모르고 납치되어 혈교의 맹목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고아의 이야기.
그때 겪은 일들을 적당히 각색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열 살이 되어 본격적인 무공을 익혔습니다. 칼로 사람을 찌르는 법부터 배웠지요.”
“열셋에, 제게 처음 무공을 가르친 어른을 죽였습니다.”
“열다섯에는 산 채로 사람의 껍질을 벗겼습니다. 처음이라 꽤 오래 걸렸습니다.”
“열일곱부터는 죽인 인간의 수를 세지 않았습니다. 찔러 죽이고, 베어 죽이고, 물에 수장시켜 죽이고, 태워 죽여도 봤습니다.”
“……잠시 단전을 다쳐 내공을 못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멸시한 놈들은 십 년에 걸쳐서 모두 죽였습니다.”
백수룡은 담담한 말투로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시하는 말투도 아니었고, 반성하는 모습도 없었다.
그냥 단순히, 지난 일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술잔을 기울이며, 안주도 집어 먹으며, 흐린 눈빛으로 오래된 기억을 담백하게 회상했다.
“…….”
“…….”
오히려 그 아무렇지 않은 태도가, 듣는 이로 하여금 온몸에 소름이 돋게 했다.
농담을 하던 악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흥을 돋우던 연주도 어느새 멈췄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은 요사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백수룡의 얼굴에 못 박혀 있었다.
꿀꺽.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술잔을 홀짝이는 백수룡의 긴 손가락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놈은…… 진짜다.’
만찬장에 있는 이들 대부분은 사람을 수십 명씩은 죽여 본 악인들이었다.
백수룡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할 수 없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지금 백수룡이 보여 주는 절제된 살기는, 그런 악인들조차 온몸이 오싹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놈…….’
그를 바라보는 혈수귀옹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악인곡의 악인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녀석.
혈수귀옹이 입을 열어 얼어붙은 분위기를 깼다.
“허어. 굉장한 수라장을 거쳐왔구나. 흥을 돋우려고 말을 꺼냈다가 흥이 다 식어 버렸군. 봐라. 내 팔뚝에 소름이 돋았어.”
“죄송합니다.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였군요.”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는 백수룡에게, 혈수귀옹은 킬킬 마주 웃어 주었다.
“죄송할 게 무에 있느냐? 나는 사질이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어째 데리고 다니는 동생들은 간이 콩알만 해 보인다만.”
백수룡은 힐끗 돌아보자, 제자들이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많이 부족한 녀석들입니다.”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제자들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 * *
만찬이 마무리되었다.
술에 만취한 악인들이 비틀거리며 하나둘 만찬장을 떠나고, 시종들이 더러워진 대청을 치웠다.
“모두 물러가라. 나는 사질과 따로 한잔 더 해야겠다.”
혈수귀옹은 백수룡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만찬 내내 옆자리에 끼고 돌았고, 만찬이 끝난 후에도 따로 술자리를 마련했다.
[선생님…….]헌원강의 걱정이 담긴 전음에, 백수룡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서 쉬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방심하지 말고.] [……네.]절강오마도 시종의 안내에 따라 숙소로 향한 후, 백수룡은 혈수귀옹과 독대했다.
두 사람은 별다른 안주도 없이 술잔을 주고받았다.
“자, 받아라.”
“예.”
엄청나게 많은 술을 마신 탓에, 혈수귀옹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눈빛이 반쯤 풀려 있었다.
그가 히죽 웃으며 백수룡을 바라봤다.
“사질은 술도 강하구나.”
“긴장해서 못 취하나 봅니다.”
“못난 사제 놈이 분에 넘치는 제자를 들였어. 아예 내 제자로 삼고 싶을 정도야.”
“과찬이십니다.”
혈수귀옹은 묘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 주마.”
우우우웅!
혈수귀옹의 팔 전체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의 성명절기인 혈옥수를 펼친 것이었다.
“혈옥수를 익히기 전만 해도 나는 평범한 무인에 불과했다. 가진 재능은 출중했으나, 가난하게 태어난 죄로 평생 상승무공과 인연이 없었지.”
젊은 시절 혈수귀옹은 작은 무관에서 이류 무공을 익힌 것이 전부인 낭인이었고, 이곳저곳 전전하며 먹고 살기에도 바빴다.
백발마수를 만난 것도 그때였다.
죽이 잘 맞았던 둘은 의형제를 맺고서 함께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훗날 혈옥수를 익히게 된 혈수귀옹이 자신의 무공을 전수해줄 정도로, 둘 사이는 끈끈했다.
“그러다 악인곡에 오면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 아까는 말하지 않았다만…… 이곳에서 혈옥수의 비급을 얻었다.”
“기연을 얻으셨군요.”
“흐흐. 그래. 기연이지.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혈수귀옹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악인곡에는 혈교가 남긴 유산이 숨겨져 있다.”
“혈교…… 말입니까?”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백수룡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