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71
170화. 동아리 활동 (2)
“아니, 갑자기 뭔 요리?”
“……농담이죠?”
“하하하! 저는 적극적으로 찬성입니다.”
차례대로 헌원강, 여민, 거상웅의 반응이었다.
원래부터 식탐이 많았던 거상웅을 제외한 둘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요리라니.
그것도 영약으로 하는 요리라니!
그런 값비싼 돈 지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서 영약을 사요? 그리고 요리는 누가 해요? 살면서 평생 남이 해 준 밥만 먹어 봤는데…….”
“자랑이다, 인마.”
딱!
흑룡편으로 헌원강의 머리를 쥐어박은 백수룡이 말을 이었다.
“생각을 해 봐라. 너희가 무공 연구 동아리를 만들어 봤자 싸움박질밖에 더하겠냐? 안 그래도 생기부에 폭력 사건만 줄줄이 적혀 있는데, 더 늘릴래?”
“…….”
헌원강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까지 쌓아 온 업보가 있는 터라, 차마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여민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선생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영약 요리 연구회를 만들어서 무슨 활동을 해요? 이거 생기부에 적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요리 잘한다고 적는 게 도움이 돼요?”
“좋은 질문이다.”
백수룡은 진지한 표정으로 영약 요리 연구회의 설립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영약은 다루는 것만으로도 내가기공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기에 대한 세밀한 이해 없이는 영약을 다룰 수 없거든. 생기부에도 그런 쪽으로 적을 거다.”
단순히 특이하다는 이유만으로 영약 요리 연구회를 만들려는 게 아니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백수룡은 제자들을 쭉 둘러봤다.
‘지금 이 녀석들에게 필요한 건 정신수양, 그리고 기에 대한 깊은 이해다.’
무공의 그릇이 되는 신체는 녹림십팔식을 가르쳐 기초를 다져 놓았다.
물론 아직도 멀었지만, 꾸준히 단련한다면 천무제에 나갈 때쯤엔 최소한 신체만은 오대학관의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게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 그릇만 완성한다고 무공이 완성되진 않는다.
이제는 그릇 안을 채워야 할 차례.
백수룡의 머릿속에는 이미 장기적인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당장 영약을 다룰 생각은 아니다. 처음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삼이나 하수오, 구엽초, 잉어 같은 보양식으로 요리 연습을 해야겠지.”
영약이라고 하면 흔히 엄청난 내공을 증가시켜 주는 소림의 대환단이나 만년설삼 등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몸의 기운을 북돋워 주는 모든 먹을거리가 영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혈교의 비전도 적당히 써먹고.’
문파마다 영약과 음식을 다루는 비전이 있기 마련이다. 혈교도 마찬가지였다.
혈옥 같은 최상급 영단의 제조법은 모르지만, 일반 무사들에게 지급하던 하급 영단 정도는 재료만 있으면 백수룡도 만들 수 있었다.
그걸 조금만 변형하면 영약 요리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너희가 만든 요리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 줄 거다.”
“예?”
“우리가 먹는 게 아니고요?”
“그 아까운 걸 왜…….”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는데, 거상웅만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흐음. 일종의 투자입니까?”
과연 상인의 아들답게 눈치가 빨랐다.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투자다. 바닥을 친 너희의 평판을 끌어올릴 투자.”
백수룡은 다른 망나니 제자들의 얼굴을 둘러봤다.
헌원강과 여민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평판 같은 걸 왜 신경 써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백수룡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알다시피 너희의 평판은 매우 안 좋아. 너희가 길을 걸어가면 웬만한 녀석들은 알아서 옆으로 비켜설 정도지.”
“훗. 그거야 우리가 무공이 강하니까 무서워서…….”
잘난 척 으스대던 헌원강의 정수리에 흑룡편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따악!
“악! 왜 또 때려요!”
“네가 무슨 마두냐? 무공이 강하다고 왜 무서워서 피해? 앙? 얼마나 주먹질을 하고 다녔으면 애들이 십 장 밖에서부터 헌원강이 나타났다면서 피하냐, 이 말이야!”
참아 왔던 백수룡의 분노가 폭발했다.
기껏 천무제에 내보내려고 방법을 찾아왔더니, 이게 눈치도 없이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있지 않은가.
“너 오늘 잘 걸렸다.”
백수룡은 작정을 한 듯 소매를 걷어붙이고 사랑의 매를 들었다.
따악! 따악! 따다다닥!
“악! 아악! 왜 나만 때려!”
“너도 맛 좀 봐라, 이 망나니야! 그동안 너에게 얻어맞은 선량한 학생들의 복수다!”
“그 복수를 왜 선생님이 하는데요! 그리고 난 선량한 놈은 팬 적 없어!”
“뭐? 옥면음랑? 너 때문에 이상한 별호도 다 퍼졌는데 어쩔 거야!”
“……그거 때문이었냐고!”
헌원강이 먼지 나게 두들겨 맞는 동안, 다른 제자들은 조용히 저희들끼리 속닥거렸다.
“그냥 화풀이였네.”
“화풀이였어.”
“이제 와서 뒤끝이라니…….”
잠시 후, 겨우 분이 풀린 백수룡이 심호흡을 했다.
그 앞에는 너덜너덜해진 헌원강이 널브러져 있었다.
“후우. 자식이 자꾸 성질을 건드리고 말이야. 말하는데 한 번만 더 끼어들어 봐라.”
“끄으으…….”
백수룡은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자들이 흠칫 놀라서 차려 자세를 취했다.
“흠흠. 아무튼, 이대로 가면 너희는 계속 외톨이 신세다. 천무제에 나가서도 좋을 게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동아리 활동으로 너희의 평판도 함께 끌어올려야겠다.”
“공짜로 음식을 나눠 줘서 환심을 사는 거군요.”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강이 거상웅의 반만큼만 눈치가 있어도 저렇게 쥐어터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에 선물만 한 게 없거든. 공짜로 먹을 걸 나눠 주는데 마다할 리가 없지.”
음식을 나눠 준다고, 망나니들을 보는 시선이 당장에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면 바뀔 수밖에 없다.
그 음식이 내공 증진에 도움이 되는 ‘영약 요리’이니까.
나중에는 줄 서서 받으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겸사겸사 청룡학관 아이들의 전체적인 내공도 끌어올리고 말이야.’
천무제는 다섯 명으로 우승을 장담할 수 있는 작은 대회가 아니다.
무림오대학관의 정예가 모두 나서는 정파무림의 큰 축제.
백수룡이 직접 가르치는 제자들 외에도, 청룡학관 학생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재료를 계속 구하는 게 문제가 될 것 같긴 한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하마.”
역천신공에 7성에 도달한 지금, 백수룡에겐 웬만한 영약이나 탁기는 이제 별 의미가 없었다.
혈교의 비동을 털면서 자금도 넉넉해졌으니, 사비를 털어서라도 과감하게 투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백수룡도 한 가지 잊은 사실이 있었다.
이 자리에 천하십대상단의 후계자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선생님. 하급 영약 정도는 제가 아버지한테 말씀드려서 구해 보겠습니다.”
“어?”
“싼 건 창고에 재고가 많이 남아 있을 거예요.”
거상웅이 별거 아니라는 듯 씩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데,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역시 부자…….”
“멋있다…….”
“선배. 혼인 생각 있어요?”
이렇게 영약 요리의 재료 수급 문제도 간단히 해결됐다.
“좋아. 그럼 동아리 회장은 헌원강이 맡는다.”
“저요? 상웅 선배가 아니라?”
학년으로는 거상웅이 선배지만, 그간 해 온 망나니짓은 헌원강이 한 수 위인 탓이었다.
“불만 있냐?”
“……아니요.”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매일 쥐어터지기는 해도, 백수룡이 자신을 얼마나 신경 써 주는지는 헌원강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백수룡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 준 은인이었다.
“내일 동아리 연합회에 가서 설립 신청서 내고 와.”
“예?”
하지만 그건 그거고.
‘동아리 연합회’라는 말에 헌원강의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변했다.
“동아리 연합회요? 거긴 진짜 가기 싫은데…….”
따악!
어김없이 날아온 흑룡편이 헌원강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바닥에 주저앉아 끙끙대는 헌원강에게 백수룡이 혀를 차며 말했다.
“매를 벌어요, 아주 그냥. 잔말 말고 갔다 와.”
“끄으응……. 가면 될 거 아니야.”
* * *
다음 날.
헌원강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동아리 연합회 건물로 향했다.
그의 표정이 똥 씹은 듯 일그러져 있었기에, 가는 길에 눈이 마주친 학생들이 슬금슬금 옆으로 피했다.
동아리 연합회 건물 앞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펄럭이고 있었다.
건물 입구에서 현수막을 올려본 헌원강이 구시렁거렸다.
“팽사혁 그 자식이 없으니 새로 뽑나 보네.”
어지간히 안에 들어가기 싫은 모양인지, 헌원강은 한참을 건물 입구 앞에서 망설였다.
그러다 이내 각오를 한 듯,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헌원강을 본 동아리 연합회 학생들이 곳곳에서 숨을 들이켰다.
“헌원강?”
“저 자식이 여긴 웬일이야?”
“싸움 걸려고 온 건가?”
벌써 몇몇은 무기에 손을 올리거나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헌원강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두 손바닥이 보이도록 들어 올렸다.
“싸우러 온 거 아니야. 신규 동아리 설립 신청서 내러 왔다.”
“뭐?”
“어디서 되도 않는 개수작이야!”
역시나 이런 반응이군.
작게 중얼거린 헌원강은 천천히 걸었다. 행여나 동아리 연합회 학생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접수처로 향했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학생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인 헌원강은 품에서 신규 동아리 설립 신청서를 꺼냈다.
“이거 여기다 내면 되냐?”
“…….”
접수처의 학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헌원강과 동아리 연합회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팽사혁이 회장으로 있었던 기간에는 툭하면 충돌했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이 안에 있는 녀석들 중에 절반 이상은 헌원강에게 얻어맞은 경험이 있었다.
헌원강이 주위를 둘러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표정들 좀 풀어라. 오늘은 진짜 싸우러 온 거 아니라니까. 아, 물론 앞으로도 너희랑 안 싸울 거야.”
“…….”
“끄응.”
동아리 신청 담당자는 매서운 눈으로 헌원강을 쏘아볼 뿐이었다. 헌원강은 난감한 듯 한숨을 쉬었다.
“저기, 사과하면 되냐? 아무래도 예전에 내가 널 때린 것 같은데…….”
“꺼져.”
“뭐?”
접수처의 학생이 탁자를 주먹으로 쾅 내리치며 말했다.
“꺼지라고! 너 같은 쓰레기를 동연에 받아 줄 생각 따윈 없으니까.”
“뭐? 이 새끼가…….”
울컥한 헌원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명백한 월권이었다.
동아리 연합회가 학관 내 동아리들을 관리하긴 하지만, 신규 동아리 설립 신청을 거부할 권리는 없었다.
헌원강이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자격 요건만 갖춰지면 누구나 신규 동아리를 설립할 수 있어. 너희는 거절할 권리가 없다고.”
“어쩌라는 거지? 우리가 안 받겠다는데.”
“이게 진짜…….”
헌원강이 사납게 쏘아보자, 접수처의 학생이 흠칫 놀라면서도 애써 웃었다.
그는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믿었다.
“해보려고? 동연에 팽사혁이 없다고 우리가 만만해 보이냐?”
열 명이 넘는 동아리 연합회 학생들이 헌원강을 넓게 포위하기 시작했다.
헌원강은 헛웃음을 흘렸다.
“여기서 팽사혁이 왜 나와? 난 그냥 동아리 신청서 내러 온 거라니까.”
“안 받으니까 꺼져. 억울하면 선생님한테 가서 징징대든가.”
“…….”
헌원강의 두 눈에서 살기가 흘렀다.
동아리 연합회 회원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혔다.
언제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
그 순간, 모두가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미안하다.”
헌원강이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깊이 숙인 것이다.
“……뭐 하는 짓이지?”
“내가 그전에 저지른 잘못은 이 자리를 빌려서 모두에게 사과하겠어. 정말 미안하다.”
헌원강은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이 자신을 천무제에 나가게 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알고 있었다.
헌원강은 그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고개 한번 숙이는 것 정도야.’
동아리 설립에 자신뿐만이 아니라 선후배들의 운명까지 달려 있었다.
그 생각에, 헌원강은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목소리에 진심 어린 각오가 배어 나왔다.
“사죄를 말로만 끝내지는 않겠다. 저항하지 않을 테니 분이 풀릴 때까지 나를 때려라. 대신, 분이 다 풀리면 그땐 신청서를 받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