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91
190화. 누구나 심마를 가지고 있다.
“할아버님. 저 밖에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
매극렴은 손자에게 이 밤에 어딜 가느냐고, 누굴 만나러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다녀오너라.”
외조부의 힘없는 대답에, 백수룡은 그의 안색을 살피곤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할아버님.”
“……안 가고 왜 계속 서 있는 게냐.”
“낮에 아버지가 했던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술에 취하셔서 한 말이었습니다.”
“…….”
매극렴은 말없이 손자의 얼굴을 보았다.
크고 깊은 저 눈은, 어린 시절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딸과 왜 이리 닮았단 말인가.
“너도…….”
“예?”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을 열었던 매극렴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가 보거라.”
“……알겠습니다.”
백수룡은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한 매극렴이 걱정되었으나,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쪽만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 학관 동쪽에 있는 호수로 오거라. 네게 줄 것이 있다.
전음을 보내며 돌아서던 백무흔의 표정도 무척 좋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 백무흔으로부터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신에게 있을 리 없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도 신경이 쓰였다.
‘대체 아까 그 기억은 뭐였지? 나한테 준다는 물건은 또 뭐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선 백무흔을 만나야만 한다.
오늘 만나지 않으면 백무흔이 그대로 돌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얼른 가래도.”
백수룡은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하자, 매극렴이 정문까지 등을 떠밀었다. 평소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힘이었지만, 백수룡은 차마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백수룡은 대문을 나섰다.
매극렴은 손자의 뒷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아까 하려다 못한 말을 중얼거렸다.
“너도 나를 원망하느냐?”
대답을 듣기가 두려워 차마 묻지 못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돌아선 매극렴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반으로 조각 난 달이 무심하게 노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약빙의 장례식에는 왜 안 왔습니까?
말보다 더 아프게 찌르던 것은 원망으로 가득한 백무흔의 눈빛이었다.
-대답해 보십시오. 딸보다 그깟 무인의 체면이 더 중요했습니까? 의절했으니 죽든 말든 상관없었던 것 아닙니까?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네놈이 대체 뭘 아느냐고 호통을 치고 싶었다.
-약빙은 끝까지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그때 당신은 뭘 하고 있었습니까?
숨이 턱 막혔다. 일평생 휘둘러 온 검이 천 근 쇳덩이가 된 것처럼 무거웠다. 결국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랬던 당신이, 이제 와서 나를 비난할 자격이 있습니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말이 되어서 나오지는 못했다.
전부 변명이고 핑계였다.
그때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제가 무서워서 장인어른을 안 찾아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당신이 미워서였습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백무흔 그놈의 성격은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보다 훨씬 더 호랑이 선생 같던 시절에도, 당당히 찾아와서 약빙과의 혼인을 허락해 달라고 말하던 놈이었다.
그런 그가, 이 늙은이의 검이 무서워 찾아오지 못했겠는가.
-저를 죽이려면 죽이십시오. 딸이 다닌 학관에 제 피를 뿌려 보시란 말입니다! 당신이라면 하고도 남겠지요.
모든 말이 비수가 되어 박혔다. 돌처럼 굳어서, 더 이상 상처 날 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여겼던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약빙아…….”
매극렴은 눈을 감았다. 사십 년도 더 된 과거가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아버지다. 인사드리렴.
-아버지?
어미의 치마 뒤에 숨어, 자신을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던 작은 것.
검의 극의를 추구하겠다며 호기롭게 무림을 떠돌던 시절이었다.
고수들은 만나며 가르침을 청하고, 마음 맞는 친우를 만나 밤새 술잔을 나누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다.
집안에서 맺어 준 혼처가 있었으나, 답답함을 느껴 초야를 치르고 몇 달 만에 뛰쳐나왔다.
그때의 매극렴은 지금과 달리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삼 년 후에 돌아와 보니, 딸이라고 하는 조막만 한 것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 작은 얼굴을 본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아, 아이를 배었었소? 왜 미리 말을 하지 않고…….
-저도 낭군께서 떠나시고 얼마 후에 알았답니다.
-…….
삼 년 동안 자식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림을 떠돌았다는 사실에, 매극렴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부터 매극렴은 변했다.
검의 수련을 핑계로 더 이상 밖으로 떠돌지 않았고, 돈을 벌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내는 그로부터 오 년 후에 죽었다.
반위(反胃 : 위암)라고 했다.
하늘은 때때로, 허망할 정도로 쉽게 사람을 데려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버지…….
아내의 장례식에서, 울다 지친 딸이 매극렴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어린 것은 그때부터 몸이 많이 약했다.
-아버지도 절 버리고 떠날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냐. 안 떠난다.
매극렴은 딸을 끌어안았다. 부서질 듯 약한 몸이라 있는 힘껏 끌어안지도 못했다.
-나는 절대 너를 떠나지 않는다. 약빙아. 그러니 너도 날 두고 떠나지 말거라.
-네. 저도 절대 안 떠날게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룡학관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 하여 부녀는 이 도시에 정착했다.
-아버지! 저도 크면 청룡학관에 다닐 수 있는 거예요? 거긴 무림 고수들만 다닌다면서요?
-허허. 당연하지. 이 매극렴의 딸이 아니냐. 네가 체질이 약한 것이지, 무재는 타고났지!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크면서 놀라울 정도로 왈가닥이 되긴 했지만, 약빙은 근본이 착한 아이였다.
매극렴은 그런 딸을 세상에 하나뿐인 보물처럼 아꼈다.
평생 자신의 품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딸이 사내놈을 데려와 혼인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래서 더 배신감에 치를 떨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저는 이 사람과 혼인하고 싶어요.
-장인어른! 허락해 주십시오!
-뭐, 뭐라고? 네가 어떻게 나한테……!
백무흔이 옥면공자라서가 아니었다.
천하제일고수가 와서 딸을 달라고 했어도 똑같이 역정을 냈을 것이다.
-누가 네놈 장인이냐! 내 너를 단매에 쳐 죽일 것이다!
이성을 잃은 매극렴은 백무흔을 초주검으로 만들었다. 매약빙은 울면서 그런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제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요! 이 사람이 죽으면 저도 따라 죽을 거예요!
-그놈이 그리도 좋으면, 그놈과 함께 내 눈앞에서 꺼지거라! 더 이상 너를 내 딸이라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의절(義絶)이었다.
매극렴은 그 이후로 딸의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처음 서찰이 왔을 땐 갈기갈기 찢어 버렸고, 그 이후부터는 읽지 않고 모아 두었다.
나중에 모아 둔 서찰을 읽었을 때, 딸은 아이를 낳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저와 남편을 반씩 닮았어요. 이 아이가 커서 청룡학관에 입관하면, 아버지께서 잘 가르쳐 주셔야 해요.」
그 서찰을 본 순간 달려갔다면,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가고 싶었다. 너무나 가고 싶었어. 하지만 갈 수가 없었단다.”
숨이 다하는 순간, 딸은 끝까지 오지 않은 아비를 떠올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도 절 버리고 떠날 거예요?
어린 것의 목소리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매극렴은 조각난 달을 바라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얘야. 너를 버린 것이 아니다. 버린 것이 아니야…….”
노인의 한숨이 새하얀 김이 되어 밤하늘에 흩어졌다.
그때, 뒤쪽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학생주임 선생님.”
“……무슨 일이냐?”
돌아보니, 위지천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고뿔 걸리세요.”
“허허.”
매극렴처럼 고강한 무인이 고뿔에 걸린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무인이라고 항상 건강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마음의 병은 무인에게 더 취약했다.
몸 안의 기를 세밀하게 다루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무인들은 마음의 병이 나면 기가 폭주하거나, 역류하여 큰 병을 얻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한 상태를 보통 심마, 또는 주화입마라고 부른다.
실제로 매극렴 역시 예전에 주화입마를 겪은 적이 있었다.
매극렴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 들어가 보거라. 내일도 새벽같이 일어나 수련해야 하지 않느냐.”
“하지만…….”
“괜찮대도.”
그럼에도 위지천이 계속 머뭇거리자, 매극렴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혹시 술이 있으면 좀 갖다 주겠느냐?”
“예? 술이요?”
위지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한 매극렴이었다.
술을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닌 듯했지만, 웬만해서는 입에도 대지 않는 성격이었다.
“오늘은 술이 좀 필요할 것 같구나.”
“아, 잠시만요.”
잠시 후, 위지천이 술과 약간의 안주를 소반에 받쳐서 가져왔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드시는 술인데…… 이거라도 괜찮으세요?”
위지천에겐 매극렴과 비슷한 연배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래서 더 한숨을 내쉬는 매극렴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고맙구나. 이만 들어가 보거라.”
“괜찮으시면 제가 말동무라도…….”
“허허. 같이 술이라도 마시겠다는 말이냐?”
매극렴이 술병을 가볍게 흔들며 말하자, 위지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그건 아니지만…….”
“마음만 받을 테니 들어가거라.”
결국 고개를 숙인 위지천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늙은 검객은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쪼르륵.
평소 거의 입에도 대지 않는 술이지만, 오늘은 취기에 의존하지 않고는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매극렴은 술을 벗 삼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왜 오지 않았냐고?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한 것이다.”
백무흔에겐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정이…….
“노인네가 혼자 청승을 떨고 계시는군.”
걸걸한 목소리에 매극렴이 옆을 돌아보자, 거구의 노인이 성큼성큼 다가와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위지열이오. 위지천의 할애비지. 손자 녀석이 하도 징징대기에 나와 봤소이다.”
“……매극렴이오. 청룡학관의 학생주임이외다.”
“알고 있소. 종종 얼굴은 마주쳤으나 이렇게 말을 섞는 건 처음이구려.”
매극렴도 위지열의 존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새벽같이 대장간에 나가서 일을 하고, 밤늦은 시간에야 들어와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위지열이 두꺼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도 한 잔 주시구려.”
“혼자 마시고 싶은데…….”
“그거 내 술이오. 내 술을 내가 마시겠다는데 허락을 받아야 하오?”
“허허.”
아주 막무가내였다.
매극렴은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두 노인은 말없이 몇 잔의 술을 비웠다.
그러다 위지열이 불쑥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검을 만들고 있소이다.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검을 능가할 보검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지. 곧 좋은 소식이 있을 듯하오.”
“갑자기 무슨…….”
“그 검을 백수룡 선생님에게 드릴 것이오.”
손자의 이름이 나오자 매극렴의 눈빛이 변했다.
위지열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풍기는 기도만 보아도 한 분야에 통달한 장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술을 마셔서, 기감이 평소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굉장한 보검이겠구려.”
“절세보검이지. 강기도 베어내는 보검이 될 거요!”
위지열은 껄껄 웃었다. 매극렴은 그 말이 심한 허풍이라고 생각했지만, 손자에게 보검을 만들어 준다는 사람에게 타박을 할 수는 없었다.
“부디 성공하길 바라오.”
“성공할 것이오. 그래야 선생께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으니.”
“……은혜?”
“모르셨소? 백수룡 선생은 내 손주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라오.”
혈교와 관련된 이야기는 할 수 없었으니, 위지열은 그것만 제외하고는 최대한 자세하게 위지천의 일을 이야기했다.
매극렴은 놀란 표정이었다.
“허어. 그런 일이…….”
“자, 이제 노야도 말해 보시오. 무슨 사정이 있기에 그토록 처량한 얼굴을 해서, 내 손자가 이 밤에 날 찾아와 가 보라고 등을 떠밀게 만든 거요?”
“내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소.”
매극렴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으나, 위지열은 코웃음을 쳤다.
“내 이야기만 듣고 내빼려고? 어림도 없지. 말하지 않으면 벌주를 먹여서 인사불성을 만들어 줄 거요.”
“……완전히 막무가내로군. 좋소. 듣고 지루해하지나 마시오.”
매극렴은 피식 웃더니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가진 동년배와의 술자리인 탓일까.
마음속에 담아 둔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위지열이 물었다.
“장례에는 왜 못 갔소?”
“……딸이 떠난 후에, 나는 몇 년 동안 심마에 시달렸소.”
“허어!”
사위와 손자에게는 절대로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
“내 마음속에 악귀가 자라기 시작했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검을 휘둘러 피를 보고 싶었지. 그 살심을 억누르기 위해 다도에 취미를 들이기도 하고, 정신을 수양하기 위한 온갖 짓을 다 했소.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한 날이었소.”
매극렴은 바닥에 끌러놓은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딸이 떠난 이후, 삶의 목적을 잃은 검객은 자신의 검으로 세상을 다 베어 버리고 싶었다.
불쑥 살심이 치밀 때마다 청룡학관 곳곳에 남아 있는 딸의 흔적을 보지 못했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딸의 장례에 갔다면, 나는 분명히 그 자리에서 사위를 죽였을 것이오. 어쩌면 수룡이 그 핏덩이를 죽였을지도 모르지. 도저히 갈 수가 없었소. 가서는 안 됐지.”
“허어…….”
안타까움에 탄식한 위지열이 매극렴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지금은 괜찮은 거요?”
“다행히 세월이 낫게 해 주더이다. 성격이 좀 다혈질이 되긴 했지만……. 이 정도면 꼬장꼬장한 노인네의 신경질 수준이지. 술이 비었군.”
매극렴은 술잔을 내려놓더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에 은은한 달빛이 맺혔다. 노인의 주름에 맺힌 음영이 더 짙게 보였다.
위지열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라도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 않소. 미안하다, 장례에 못 간 이유가 있었다, 하고 말이오. 그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심마가 다시 도질 거요.”
“……이제 와서 그런들 뭐가 바뀌겠소. 심마를 겪은 게 무슨 자랑도 아니고.”
매극렴의 지친 목소리에 짙은 회한이 묻어났다.
그런데 그때,
“이런 답답한!”
위지열이 대뜸 마룻바닥을 주먹으로 쾅! 소리 나게 내리쳤다.
깜짝 놀란 매극렴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봤다.
“이게 무슨 짓인가?”
“답답한 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누구나 마음속에 심마를 가지고 있는 법이거늘!”
“무슨…….”
“나 역시 지금도 죽은 자식과 며느리의 꿈을 종종 꾸곤 하오. 우리 천이도 악몽을 꾸고, 백룡장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마음에 병이 하나씩은 있소. 백수룡 선생도 마찬가지일 거요.”
“…….”
“본인만 특별한 줄 아시오? 심마에 걸렸던 사실이 부끄러워서 꽁꽁 싸매고 숨기면 누가 알아준다고 했소?”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모른다!”
그렇게 소리친 위지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거대한 어깨를 위협적으로 들썩이며 말했다.
“이 답답한 늙은이야! 더 후회하기 전에 빨리 가서 사위와 화해해라. 늙었다는 핑계, 늦었다는 변명은 그만하고, 체면도 버리고 솔직해지란 말이다. 고집이 쇠심줄 같은 빌어먹을 늙은이야!”
“허…….”
매극렴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위지열을 바라봤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들도록 혼쭐이 나 본 것이 대체 언제였던가.
나이로도, 무림의 배분으로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헌데, 이 노인은 자신을 사정없이 질책하고 화를 낸다.
‘이자. 정파의 무인이긴 한 건가?’
그 기질이 매우 사나우니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속 안에 쌓인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어허! 어서 가래도! 한 대 얻어맞고 갈 테냐!”
위지열의 성화에 매극렴은 내쫓기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면, 미운 사위 놈을 찾아가 못다 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허.”
헛웃음을 지은 매극렴이 위지열에게 포권을 취했다.
“고맙소. 다음에는 내가 한잔 사리다.”
“흥. 표정이 이제야 좀 산 사람 같군.”
매극렴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자, 위지열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아시오?”
“대충 알 것 같소.”
매극렴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끌러두었던 검을 챙겼다. 흐트러진 옷차림을 바로 했다. 흐려졌던 표정이 다시 날카롭게 변했다.
“내일이 딸의 기일이거든.”
휘익!
매극렴은 단숨에 경공을 펼쳐 백룡장의 담을 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위지열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얼굴이 뒤틀리며 변하기 시작했다.
우둑. 우두둑.
뼈와 근육이 위치를 바꾸었고, 위지열의 얼굴과 체형은 점점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다 큰 어른들은 화해 한번 시키기도 어렵네.”
그는 먼저 간 줄 알았던 백수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