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4
23화. 합격이라구요!
“학생들이 강사를 뽑아? 이게 뭔 소리야?”
나는 청룡학관 신입 강사 채용 공고를 보고 또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올해부터 새로 생긴 규정이라고 했다.
-본 학관의 서류 전형과 면접, 실기 시험을 통과한 지원자들은 본 학관에서 석 달간 임시 강사로 채용된다.
-임시 강사들은 매달 기존 강사들과 학생들의 평가를 받으며, 최종 강사 평가와 학생들의 투표 점수를 더해 최종 합격자가 발표된다.
-최종 합격자는 본 학관과 3년 동안 정규직 강사로 계약을 맺는다.
여기까지만 읽었는데도, 월봉은 쥐꼬리만큼 주고 일은 많이 시키는 악덕 상단의 느낌이 물씬 났다.
“……석 달 동안 임시 강사? 이거 월봉은 제대로 주는 거 맞겠지?”
“놀랍게도 나머진 다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데, 딱 그것만 안 적혀 있네요.”
“이런 치사한 놈들…….”
……그래 좋다.
청룡학관도 나름 무림 오대학관이고 하니, 그쪽이 절대 갑이고 우리가 절대 을인 것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학생들이 매달 강사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다니?
내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녀석들이 나를 평가한다는 말인가?
“나보고 애들 눈치가 살살 보면서 가르치라는 거야?”
“왜요? 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악연호는 속도 없는지 히죽 웃었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재미있긴 뭐가 재미있어. 애들 눈치나 살살 보면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여기 학관 놈들은 대체 무공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형님. 애들 굴리는 거 좋아하죠?”
“……어떻게 알았냐?”
“저희 아버지가 저한테 무공 가르칠 때 꼭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덕분에 절정고수가 되었지 않니.”
“덕분에 이 나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 해 봤는데요.”
“……쯧.”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아무튼 나는 퍽 난감하게 되었다.
혈교 무공 교두 출신답게 나는 꽤 강압적으로 무공을 가르치는 편이다.
다짜고짜 폭력을 쓴다거나 욕부터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적재적소에 강압과 두려움을 이용하면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애초에 무공이 다른 놈 패고 죽이려고 배우는 거잖아?’
그걸 지들만 편하게 배우려고 하는 놈들이 도둑놈 심보인 것이다.
자고로 많이 맞고 많이 갈굼 당한 놈일수록 강해진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우와. 꼰대…….”
내 강사지론을 들은 악연호가 입을 떡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탐탁잖은 표정으로 채용 공고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그런데 지금 방학 아니냐? 새 학기 시작 전에 신입 강사를 채용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아, 그게요.”
악연호의 말로는 청룡학관에는 1년에 두 번 방학이 있지만, 절반 정도의 학생은 방학에도 기숙사에 머무른다고 했다.
“뭐, 당장은 학생들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는 이야기예요. 일단 서류랑 면접, 일차 시험까지 통과하는 게 먼저라고요.”
“그래. 그것도 그렇긴 하지.”
“처음부터 잘 보이긴 해야 해요. 며칠 후 저희가 청룡학관에 들어갈 때부터 학생들이 우릴 지켜볼걸요?”
“흐음…….”
나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정파의 무공 학관이라고 하기에, 뒷짐을 진 채 고고하게 공자 왈 맹자 왈 무공 구결에 적당히 개소리 좀 섞어서 읊어 대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것도 생각 이상으로 경쟁이 심하군.’
불쑥 승부욕이 솟구친다.
혈교의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사람이 나다.
그에 비하면 정파의 학관에서 애들 가르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도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지원자가 몇이라고?”
“최종적으로 다섯 명을 뽑는데 벌써 백 명이 넘게 지원했다고만 들었어요.”
“백 명 중 다섯이라……. 면접이 사흘 뒤니, 그 전에 아흔다섯을 죽이면 되는 건가?”
“……농담이죠?”
물론 농담이다.
혈교에서 하던 대로 할 수는 없으니까.
무림맹에는 무림맹의 규칙이 있고, 나는 규칙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물론 약간의 임기응변은 필수지.
“형님. 혹시 어렵다고 포기할 건 아니죠?”
내가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 악연호가 조금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물었다.
“……포기? 내가?”
내 입꼬리가 비틀리며 천천히 올라간다.
나는 혈교 최고의 무공 교두였다.
무공을 가르치는 것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그 실력은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살면서 포기 따위는 해 본 적 없다.”
포기하는 순간 죽는 삶을 살았으니까.
나는 청룡학관의 서류 심사부터 면접, 일차 시험까지 전부 통과해 줄 생각이었다.
또한 기존의 강사들이며 감히 날 평가하려는 녀석들에게도 똑똑히 보여 줄 것이다.
“보란 듯이 수석으로 합격해 주지.”
“……오글거리지만, 겁먹은 것보단 낫네요.”
면접까지 앞으로 사흘이 남았다.
실기 시험은 면접 결과가 발표되고 일주일 후에 진행된다고 했다.
즉, 그 안에 최대한 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녹림십팔식은 꾸준히 수련했으니 외공은 문제될 것 없고, 역천신공을 2성까지 끌어올리면 좋겠는데…….’
복만춘이 열흘 안에 영약을 구해 온다면 시험이 한결 수월해질 테지만, 못 구해 온다는 생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때 악연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무공이든 면접이든 하루 이틀 더 연습한다고 크게 결과가 바뀌진 않아요. 우리는 대신 다른 부분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오오. 어쩐 일로 맞는 말을 하지?”
“……평소에 절 어떻게 생각한 거예요?”
무공은 세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어쨌거나 악연호는 명문세가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당연히 나보다 청룡학관에 대한 정보도 많을 것이다.
나는 녀석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형님은 준비가 필요해요.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던 건데…….”
악연호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가볍게 혀를 찼다.
“어휴. 이렇게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활용을 못 하는지…….”
“좋은 무기?”
나 지금 무기 안 차고 있는데?
내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악연호가 손을 뻗어 내 팔목을 홱 잡아끌었다.
“안 되겠다. 당장 준비하러 가요.”
“무슨 준비? 어딜?”
내가 눈을 멀뚱히 뜨고 묻자, 악연호가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쳤다.
“어딜 가긴. 당연히 옷부터 사러 가야죠!”
“옷? 옷은 왜…….”
“그럼 면접을 보러 가는데 그 칙칙한 흑의장삼만 계속 입을 거예요?”
나는 몸을 돌려 방 안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그 안에는 소싯적 옥면공자라 불렸던 부친을 닮아 훤칠하게 생긴 청년이 흑의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물론 안의 무복도 검은색이었다.
나는 살면서 옷 같은 것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흑의장삼이 편한데?”
그러니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악연호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내 팔목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군소리하지 말고 빨리 따라와요!”
“어? 어어…….”
처음 보는 악연호의 박력에 나는 멍청한 소리를 하면서 끌려갔다.
“가는 김에 머리도 하고! 눈썹도 다듬고! 요즘 사내들도 얼마나 열심히 꾸미는데 말이야! 아무리 잘생겼어도 얼굴만 믿고 관리 안 하다간 나중에 폭삭 늙어요!”
“……고막 찢어지겠다.”
악연호는 종일 나를 데리고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옷과 신발, 허리띠, 심지어 여자들이나 다니는 가게에 들러서 머리로 깎게 하고 눈썹도 다듬고 화장품까지 사게 했다.
* * *
사흘 후, 청룡학관.
쿠구구궁!
무거운 소리와 함께, 거대한 정문이 좌우로 열렸다.
서로를 노려보고 있던 여의주를 문 두 마리의 청룡이 좌우로 갈라서자, 그 안에 펼쳐진 드넓은 대연무장과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연무장 한가운데 서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이 까랑까랑하게 외쳤다.
“신입 강사 면접 대상자들은 입장하시오!”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신입 강사 지원자들이 줄을 서서 입장했다.
청룡학관 채용 공고를 보고 온 각지의 지원자들.
그들 대부분이 각 지역에서 이름 있는 무관의 사부였거나 무공에 자신이 있는 무인이었지만, 청룡학관의 규모를 보고는 기가 죽었다.
최근 그 위세가 다른 학관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지만, 무림 오대학관이란 명성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대기하시오!”
목청 좋은 노인이 다시 외쳤다. 그는 선착순으로 온 지원자들에게 번호표를 배부하고, 정해진 인원만 내원으로 들어가게 했다.
“다섯 명씩 면접을 볼 것이오. 학관 내에서는 정숙해 주시길 바라오.”
잠시 웅성거리던 지원자들이 노인은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무사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 무표정했다.
그리고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쯧.”
청룡학관 제일(一) 기숙사 옥상.
눈썹이 짙고 강인한 인상의 청년이 미간을 모으며 혀를 찼다.
“많이도 몰려왔군.”
청년의 이름은 독고준.
올해 청룡학관 총학생회의 회장으로, 최근 10년간 최고의 기재라 평가받는 후기지수였다.
“어중이떠중이가 너무 많아요. 서류 전형에서 절반이나 떨어트렸는데도 저 정도라니.”
그 옆에서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묘령의 여인이 말했다.
청룡학관 총학생회 부학생회장, 당소소였다.
두 사람은 학관 안으로 들어오는 지원자들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청룡학관의 이름값이 예전만 못하다는 증거다. 일류도 되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이야.”
“학생보다 실력이 모자란 자들은 모두 탈락시켜야 해요.”
두 사람은 청룡학관에서도 극소수인 일류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그만큼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고, 더 강해지고자 하는 욕심도, 다른 오대학관에 대한 승부욕도 강했다.
“올해 천무제는 다를 거야.”
“달라야지요.”
청룡학관은 매년 천무제에서 굴욕을 당해 왔다.
작년에도 선배들은 무력하게 다른 학관에 패배했고, 독고준은 그들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자신의 힘으로 청룡학관을 변화시키겠다고.
그렇게 출범한 것이 올해 총학생회였다.
‘올해는 다르다!’
관주님을 설득해 신입 강사 채용공고에 새로운 규정까지 추가했다.
이제 학생들이 두 눈으로 강사들을 직접 보고 평가할 것이다.
‘학연, 지연, 혈연에 의한 추천은 더 이상 없다.’
실력은 없고 말 뿐인 강사들은 모두 쳐 내고, 실력이 좋은 강사들만 남길 것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도 나와 있는 것이다.
실력이 괜찮아 보이는 강사들을 미리미리 눈에 담아 두기 위해서.
하지만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고수가 거의 없군.”
“동감이에요. 절반은 들어온 것 같은데…….”
두 사람의 표정이 점점 실망으로 물들어갈 때였다.
갑자기 당소소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헉……!”
“소소? 왜 그러지?”
“…….”
“소소!!”
“아…….”
정신을 반쯤 놓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당소소가 겨우 손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냉혈독수라 불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심장이 어찌나 거세게 뛰는지, 그 소리가 독고준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얼굴은 열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붉게 달아오르고,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소소! 갑자기 왜 그래!”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다니 뭐가?”
“……이에요.”
“뭐? 대체 무슨 소리야?”
“저기…….”
독고준은 당소소의 새하얀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청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청의무복을 차려입은 큰 키의 청년과 적의무복을 차려입은 보통 키의 청년이 나란히 걸어서 청룡학관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두 사람의 주변에만 햇빛이 더 많이 모이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의 귀밑머리를 흩날렸고, 돌개바람에 휘말린 꽃잎이 두 사람을 휘감으며 날아올랐다.
“아…….”
“와…….”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힐긋거리는 가운데, 당소소가 간신히 입을 열어 아까 하지 못한 말을 했다.
“합격……이에요.”
“뭐? 대체 무슨 소리야?”
냉혈독수 당소소가 얼굴을 붉히며 빽 소리쳤다.
“합격이라구요! 전 저분들한테 무공을 배울 거라구욧!”
“뭔…….”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열일곱 살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