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75
274화.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다음 날 아침, 매극렴은 위지천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좀 괜찮아졌느냐?”
위지천은 전날 헌원강에게 배신당해 검을 빼앗기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매극렴은 위지천을 자신의 숙소로 데려와 하룻밤 재웠다.
‘검에 대해서는 가공할 자질을 지녔지만, 정신은 아직 어린아이이거늘.’
행여나 여린 마음에 상처를 크게 받았을 것이 걱정돼, 매극렴은 위지천을 옆에 두고 재우며 밤새도록 지켜봤다.
행여나 마음의 상처가 주화입마로 이어질까 염려한 것이다.
“네. 괜찮아요.”
다행히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난 위지천은 괜찮아진 듯 보였다. 어젯밤처럼 멍한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리지도 않았다.
위지천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학생주임 선생님. 재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이런 것으로.”
위지천의 하나뿐인 혈육인 위지열이 얼마 전 강호 유람을 떠나서 없으니, 대신 돌봐주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위지열 그 늙은이에게는 사위 일로 도움받은 것도 있으니.’
매극렴이 손을 뻗어 위지천의 어깨를 토닥였다.
“힘든 일이 있으면 아무 때나 나를 찾아와도 된다.”
“……저 때문에 귀찮지는 않으셨어요?”
“오히려 적적하지 않아 좋구나. 가끔씩 자러 오너라.”
“헤헤. 감사합니다.”
위지천이 해맑게 웃었다. 매극렴의 걱정을 크게 덜어 주는 웃음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밥 먹자.”
“네!”
두 사람은 마치 친할아버지와 손자 같았다. 매극렴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나도 늙긴 했나 보군.’
매극렴은 아침을 먹으면서도 위지천을 계속 살펴보았다.
다행히 밥도 잘 먹고 아침 수련 때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매극렴은 위지천이 무사히 운기조식하는 것까지 지켜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주화입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치우는 건 제가 할게요.”
위지천은 설거지와 청소를 도맡아 했다. 평소에도 깔끔하게 정리해 놓는 편이지만, 위지천은 머문 자리에 먼지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도록 꼼꼼히 치웠다.
“그만하면 되었다. 이리와 앉거라.”
“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매극렴이 위지천에게 차를 따라 주며 물었다.
“이제 어찌할 참이냐? 어제 내게 못 한 도전을 할 테냐?”
위지천의 밀지에 적힌 임무는 였다.
하지만 어제는 헌원강에게 배신을 당하는 바람에, 검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했다.
“제가 지금 검이 없어서…….”
위지천은 허전한 허리춤을 보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검이라면 내가 빌려주마. 사용하지 않는 것이 몇 자루 있으니.”
매극렴은 가지고 있는 검들을 들고 와서 위지천에게 보여 주었다.
검혼 수준의 보검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길이 잘든 명검이었다. 검치 매극렴이 수십 년 동안 하나씩 모은 검들이었다.
“우와…….”
홀리듯 검들을 살펴보던 위지천은 그중 한 자루를 골랐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매극렴을 바라봤다.
“이 검. 제가 며칠만 빌려도 될까요?”
“며칠을?”
빌려주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나 빌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지천이 진지한 표정으로 매극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학생주임 선생님께 도전하는 건, 검혼을 되찾은 후에 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으니까요.”
매극렴은 단숨에 그 말뜻을 이해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 검을 가지고 나가서 검혼을 되찾아오겠다, 이 말이렷다?”
“……네.”
매극렴은 그 마음이 기꺼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며칠이고 기다려 주마.”
“빌려주신 검. 소중히 다루겠습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극렴은 위지천을 배웅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밖에서 기웃거리는 기척들이 여럿 느껴졌다.
“널 찾아온 것 같구나.”
감히 학생주임의 숙소로 쳐들어오지는 못하고, 다들 밖에서 위지천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위지천이 떠나기 전, 매극렴은 마지막 조언을 해 주었다.
“네 검을 너무 과신하지 말거라.”
“……네.”
전날의 일을 떠올린 위지천이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어진 매극렴의 말에 소년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허나, 마지막에 믿어야 할 것은 결국 검뿐이다.”
“네?”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요?
매극렴은 당황해하는 위지천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웃었다.
“과신하진 않되 자신감을 갖거라. 거짓말과 속임수에 속지 않는다면, 학생 중에 네 검을 꺾을 수 있는 아이는 없다. 그건 내가 보증하마.”
“……네! 감사합니다!”
위지천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더니 눈을 빛내며 말했다.
“시험 기간 동안에는 더 이상 아무도 믿지 않을 거예요. 모두가 적이니까요.”
소년의 눈빛이 돌변했다. 순진하기만 하던 눈망울에 스산한 살기가 맺혔다.
“지금부터는 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예요. 필요하다면 뒤통수도 치고, 거짓말도 하고, 고문도 하고 협박도 할 거예요!”
“뭐, 뭐라?”
매극렴이 당황했으나, 위지천은 하던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백수룡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이번 시험에서는 철저하게 사파가 되겠어요!”
“잠깐만. 너무 진지하게 그럴 필요는…….”
“그럼 또 찾아뵙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위지천은 경공을 펼쳐 날 듯이 담장을 넘었다.
“위지천이다!”
“잡아라-!”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고함과 비명, 그리고 병기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은 위지천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비명으로 끝났다.
매극렴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썩을 놈. 애한테 뭘 가르친 게야?”
매극렴은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백수룡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조만간 만나면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 * *
“검재! 나와 검을 겨뤄 보자! 나는 삼 학년 무정…….”
빠악!
일격에 턱이 돌아간 삼 학년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자신만만하게 나섰다가 별호도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쓰러졌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당장 야차처럼 날뛰는 위지천을 막기에도 급급했으니까.
“포, 포위해!”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검재라더니…….”
위지천은 양 떼 속에 뛰어든 호랑이처럼 포위망을 휘저었다. 소년의 검이 허공에 궤적을 그릴 때마다 누군가의 비명이 터졌다.
‘아직은 이 검이 익숙하지 않아.’
새로운 검의 무게와 형태에 익숙해지기 위해, 위지천은 일부러 추격자들을 피하지 않고 검을 부딪쳤다.
하지만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난전 속에서 불쑥 들어오는 공격들은 위지천의 간담도 종종 서늘하게 했다.
‘슬슬 검도 손에 익었으니…….’
위지천은 포위망이 가장 얇은 곳을 골라 돌파를 시도했다. 검에 실린 경파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그리 힘을 들이지도 않았다. 상대 공격의 궤적을 읽고 피한 후, 허점으로 검을 찔러 넣거나 휘둘렀다. 향낭을 노리고 온 이리 떼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위지천은 아직 검을 검집에서 빼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대로 뚫고 나간다!’
포위망이 거의 뚫렸다. 위지천은 그대로 헌원강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그 순간,
까아앙-!
처음으로 검격이 막혔다. 손아귀가 저릴 정도의 반발력에 놀란 위지천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상대의 검에 가려졌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독고준 선배님?”
독고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검을 겨눴다.
“변명은 하지 않으마. 위지천. 네 밀지와 향낭을 받아 가겠다.”
“……원강 선배보다는 충격이 덜하네요.”
위지천은 한숨을 내쉬며 검을 다시 쥐었다.
그러나 상대는 독고준 한 명이 아니었다.
“저 녀석이 검재야? 과연 대단하군.”
큰 키에 부드러운 인상의 청년이 독고준의 왼편에 나타났고,
“위지천. 오랜만이야.”
어쩐지 서운한 표정을 하고 있는 유이란이 독고준의 오른편에서 걸어왔다.
“선배님들! 방심하지 마세요. 상대는 청룡오망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검재예요.”
당소소는 가장 뒤에서 암기를 들고 언제라도 던질 수 있도록 준비했다.
꿀꺽…….
위지천은 바짝 긴장했다.
독고준 한 명만으로도 상대하기 어려운데, 다른 선배들도 약해 보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뒤는 추격자들로 인해 막힌 상황.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어떻게든 뚫고 가는 수밖에 없어.’
위지천이 이를 악물며 검을 꽉 움켜쥘 때였다.
“위지천은 내가 상대하겠어.”
유이란이 혼자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본 독고준이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검화. 너 혼자선 무리다. 여기선 합공하는 게 맞아.”
“내가 지면 그때 합공해.”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라…….”
“뭐 어때? 이미 완벽하게 포위했는데.”
방백현이 독고준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그는 유이란의 편을 들었다.
“이란 후배에게 먼저 기회를 줘 보는 것도 괜찮잖아?”
“선배님까지 이러실 겁니까?”
“나도 일 학년 후배를 여럿이서 합공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거든.”
그 태평한 소리에 독고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위지천은 평범한 일 학년이 아닙니다. 저 녀석의 검은…….”
“나도 눈이 있어.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강해 보이네.”
“…….”
방백현은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으로 위지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을 든 자세며 피어오르는 기세, 주변에 쓰러진 후배들의 몸에 보이는 흔적까지.
방백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랑 동기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예전에 저한테도 같은 말씀을 하셨었는데요.”
“너보다 더 다행이야.”
“…….”
독고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방백현이 킥킥 웃더니 말했다.
“농담. 그보다, 유이란의 눈을 봐. 방해하면 우리부터 공격할 것 같은데?”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유이란의 표정이 진심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시선은 위지천에게 고정한 채 뒤에 있는 독고준에게 말했다.
“독고준. 이번 한 번만 양보해 줘. 이다음부터는 네 지시에 따를 테니까.”
“……알았다. 건투를 빌지.”
결국 독고준, 방백현, 당소소가 뒤로 물러나 넓게 포위망을 형성했다.
위지천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왜 선배님들은 절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요?”
“네가 너무 뛰어나니까. 주머니 속의 송곳은 튀어나오는 법이거든.”
유이란의 대답에, 위지천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녀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오는 것을 보면서는 더더욱.
“방심하지 마. 나도 그동안 열심히 수련했으니까.”
“저 유이란 선배를 상대로 방심할 만큼 바보는 아니에요.”
소년의 말에 유이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간 서운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표정을 굳힌 유이란은 기수식을 취했다. 위지천도 방심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긴 대화는 필요 없었다. 유이란이 기합을 넣으며 선공을 취했다.
“차핫!”
비류검법.
공격이 끊이지 않고 면면부절 이어지는 유이란의 독문검법이 위지천의 전신 요혈을 노렸다.
까가가가강!
검과 검이 부딪치며 불티가 튀었다. 두 사람의 보법에 따라 먼지가 어지럽게 피어났다. 웬만한 학생들은 그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는 것조차 벅찼다.
‘이란 선배. 정말 열심히 수련했구나.’
위지천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유이란의 검은 전보다 더 날카롭고 빨라졌다. 촘촘하고 집요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방어를 뚫고 들어올 것 같았다.
유이란이 얼마나 열심히 수련했을지, 같은 검객으로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유이란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나게 강해졌구나. 더 격차가 벌어졌어.’
위지천과 검을 부딪치며, 소녀는 소년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느꼈다.
자신보다 강해졌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놀라긴 했지만 좌절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다른 감흥도 느꼈다.
‘키도 좀 큰 것 같네.’
처음 만났을 땐 키가 거의 비슷했는데, 이제는 약간이나마 위지천이 더 컸다.
달라진 것은 키뿐만이 아니었다.
쩌엉! 쩌엉! 쩌어엉!
검이 부딪칠 때마다 유이란이 힘에서 밀렸다.
예전에는 힘으로 몰아붙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자신이 밀린다.
분한 마음과 동시에,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남자라 이거지?’
새삼스레 위지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순한 강아지 같지만, 검만 잡으면 진지해지는 얼굴.
‘앞으로 계속 크겠지? 체격도 커질 테고, 몇 년만 지나면 내가 올려봐야 할지도…….’
미래의 위지천의 모습을 상상한 유이란의 볼에 작은 홍조가 피어났다.
“선배? 어디 아프세요?”
“……됐어.”
까아앙!
뒤로 훌쩍 물러난 유이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졌어.”
유이란은 빠르게 패배를 인정했다. 몇십 합은 더 겨뤄 볼 수 있겠지만, 더 이상 싸워 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지천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이 바뀌었네?”
“……원강 선배가 뺏어갔어요. 임무라면서 절 속이고…….”
“걔, 여전히 그러고 다니는구나.”
검을 부딪치고 대화를 나누니, 답답했던 속이 시원해졌다. 솔직하게 물어볼 용기도 생겼다.
“남궁세가에서 돌아온 후에, 왜 상검연에는 한 번도 들르지 않았어?”
“네? 아…….”
유이란이 서운했던 이유.
남궁세가에서 돌아온 후, 위지천이 한 번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디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먼저 찾아가 볼까 몇 번이나 발걸음을 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이 워낙 많아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위지천에게 괜히 민폐를 끼칠 수도 있었으니까.
이렇게 공개적으로 만나러 올 핑계가 간절히 필요했던 이유였다.
위지천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죄송해요. 요즘 백룡장에 손님들도 많고, 할아버지도 갑자기 떠나고 하셔서……. 정신이 없었어요.”
“……괜찮아 보이니 됐어. 변명 들으려고 물어본 거 아니야.”
분위기가 다소 어색했다. 흠흠. 헛기침을 한 유이란이 입을 열었다.
“방학 때 상검연에서 다 같이 합숙 훈련을 하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갈래?”
조심스러운 제안. 위지천은 눈을 깜빡거리다가 뒤늦게 대답했다.
“아……. 생각 좀 해 볼게요. 선생님한테 허락도 받아야 하고요.”
다행히 부정적인 대답은 아니었다. 유이란은 일단 이 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강요는 아니야. 그냥 권유.”
“헤헤. 네.”
“아무 데서나 그렇게 웃지 마.”
“……네?”
분위기가 더 어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