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78
277화. 판을 새로 짜다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판을 뒤집어 버릴 계획을 완성했을 땐, 어느새 몇 시진이나 지난 뒤였다.
“내가 한번 정리할게.”
여민이 마지막으로 계획을 한 번 더 점검했다. 곧 그녀의 입가에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완벽해. 이거면, 우리를 노리는 녀석들도 제대로 엿 먹여 줄 수 있겠어.”
네 명은 역할을 분담했다. 능력에 따라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맡기로 했다.
“시간 아까우니까 당장 시작하자.”
헌원강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눈이 초롱초롱하고 입꼬리가 올라간 모습에서, 진심으로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오늘 밤 다시, 이곳에서.”
“이곳이 발각되면 두 번째 안가에서 보는 거로.”
“비상 연락은 털뭉치를 통해서.”
“명심해요. 배신자에겐 죽음뿐이라는 걸.”
비장하게 눈빛을 교환한 네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그들의 신형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파밧!
그들이 창고에서 완전히 나간 후, 어둠 속에서 백수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미묘했다.
“……이 자식들이. 학관을 아예 뒤집어 놓을 작정이야?”
백수룡은 숨어서 제자들의 계획을 모두 들었다.
만약 제자들의 계획대로 판이 뒤집힌다면, 소동이 지금보다 몇 배는 커질 것이 확실했다.
이쯤에서 말려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백수룡은 일단은 더 지켜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보기에도 지나치긴 해.’
백룡장의 다섯 제자를 향한 다른 학생들의 질투와 견제가 도를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수룡이 중재하기 위해 끼어든다면, 양쪽 모두에게 불만만 더 쌓이게 될 것이다.
어설프게 상처를 봉합하면 결국 다시 터지는 것처럼 말이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백수룡은 제자들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중얼거렸다.
“너희들 스스로 실력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잡음도 전부 사라질 거야.”
한편으로는 제자들이 정말로 판을 뒤집을 수 있을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제자들을 노리는 다른 학생들, 특히 당소소, 독고준, 방백현은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백수룡이 피식 웃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구경하는 재미는 있겠네.”
학생들이 지금까지 수업에서 배운 것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 백수룡은 끝까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면…….
스르륵.
백수룡은 어둠 속으로 다시 모습을 숨기며 중얼거렸다.
“……누가 당소소 좀 막아 줘라.”
간절한 소망을 담은 중얼거림이 빈 창고에 울려 퍼졌다.
* * *
좁고 어두운 방.
흐릿한 등불 하나만이 마주 앉은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헌원강은 마주한 상대의 입이 먼저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니까, 공문서를 위조해 달라?”
헌원강이 찾아간 사내는 한때 이 도시의 뒷골목에서 거친 왈패들을 이끌던 사내였다.
“이 정도는 철두 형님 인맥을 통하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갱생문의 철두는 헌원강이 가져온 서류를 살피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헌원강을 바라봤다.
그냥 쳐다본 것뿐인데 헌원강은 흠칫했다.
‘인상 한번 진짜 더럽네.’
헌원강도 어디 가서 꿀릴 인상이 아니지만, 온몸이 흉터투성이인 철두와 비교하면 한 수 접어 줘야 했다.
철두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이거, 나중에 문제 되는 건 아니겠지?”
“전혀요. 기밀문서를 위조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필체를 따라서 대자보 하나 만드는 거니 문제 될 일 없어요.”
“이 안에 적을 내용은?”
“여기요.”
헌원강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그가 철두를 찾아온 용건은 필체를 위조해 대자보를 여러 장 만들어 달라는 것.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은 철두는 큭큭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는 짓을 하는구나. 좋아. 한 시진 안에 원하는 걸 만들어 주지.”
“요금은 얼마나?”
헌원강은 품 안에서 전낭을 꺼냈다.
친분이 있다고 공짜로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친할수록 합당한 값을 치러야 나중에 뒤탈이 없는 법이었다.
그러나 철두는 고개를 저었다.
“돈은 됐다.”
“하지만…….”
“대신, 이 일을 우리가 한 게 밝혀져서 곤란한 일이 생기면, 우리 애들이 널 찾아갈 거야.”
철두가 혀로 손도끼의 날을 핥으며 히죽 웃었다.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협박에 헌원강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형님들 정파로 업종 변경한 거 아니었어요?”
“크큭. 그냥 재미로 해 본 말이다. 오랜만에 이런 일거리가 들어와서 말이지.”
철두는 수하를 불러 헌원강이 가져온 대자보와 종이를 넘겼다.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청룡학관에서 요즘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철두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게 도움이 될까? 그 전과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곧 벌어질 커다란 혼란의 시작.”
헌원강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철두조차 순간 흠칫할 정도로 사악한 미소였다.
‘어린놈이 인상 한번 더럽네.’
두 사람이 속으로 서로의 인상이 더 더럽다고 욕하는 가운데, 헌원강이 깜빡할 뻔했다며 말했다.
“혹시 주변에 향낭 만들 줄 아는 사람 있어요?”
“향낭? 너 설마…….”
앞으로 청룡학관에서 벌어질 일을 상상한 철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이런 사기꾼 같은 놈들이 다 있어?!”
* * *
다음 날 새벽.
청룡학관 곳곳에 새로운 대자보가 붙었다.
기말고사 규칙 변경 안내-향낭을 소지한 학생은 향낭이 반드시 보이도록 허리춤에 매고 다닐 것.
-또한 반 시진 이상 같은 장소에 있지 않을 것.
-위의 규칙을 지키지 않다가 발각될 시, 탈락으로 처리하며 보상을 지급하지 않는다.
-백수룡 배상
짧은 내용이 적힌 대자보가, 그전에 붙어 있던 대자보 옆에 나란히 붙었다.
백수룡과 같은 필체로 적혀 있었기에, 대자보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낭패로군. 향낭을 허리춤에 달고 다녀야 한다니…….”
새로운 대자보를 보고 가장 곤란해진 사람은 독고준과 당소소였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확보한 향낭과 밀지는 무려 8개.
향낭을 빼앗은 후 입단속까지 철저하게 했기에, 지금까지 이 사실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바뀐 규칙에 의하면, 더 이상 향낭을 숨겨 둘 수 없었다.
‘이걸 가지고 밖에 나가면…….’
청룡오망을 쫓던 학생들도 이쪽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 분명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독고준이 당소소에게 물었다.
“부회장. 방법이 없을까?”
“……지금으로선 없어요. 일단 저희가 두 개씩 달고 다니는 수밖에.”
두 사람은 방백현, 유이란에게 향낭을 두 개씩 나눠 주었다.
당소소가 밖에서 가져온 대자보를 다시 읽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두 번째 바뀐 규칙도 문제예요. 반 시진 이상 같은 장소에 있지 마라. 사실상 밖으로 내모는 규칙이네요.”
방백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갑자기 시험 규칙을 이렇게 바꿔도 되는 거야? 뭔가 이상한데.”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었지만, 당소소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백수룡 선생님은 충분히 그럴 분이에요.”
백수룡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이 오히려 그녀의 눈을 흐리게 만들었다.
실제로, 백수룡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기도 했고.
“그런가…….”
방백현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대자보를 살폈다.
그때, 독고준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오늘이면 시험이 끝납니다. 해가 질 때까지 향낭을 지키면서, 동시에 비밀 임무를 완수하는 수밖에 없어요.”
독고준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규칙이 바뀌었지만, 조건은 같다.
저쪽에서도 향낭을 허리춤에 매달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정면승부다.’
독고준은 설마 이 대자보가 가짜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불어, 앞으로 일어날 고생길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들 각오하고 나가자.”
네 사람이 학생회 건물 밖으로 나오자, 예상대로 많은 학생들의 눈총이 따갑게 쏟아졌다.
“뭐야? 향낭을 두 개씩이나 가지고 있잖아.”
“한 사람이 두 개씩 가질 필요가 있어?”
“욕심도 많군. 하나만 챙기고 양보할 것이지…….”
넓게 포위망을 조여오는 학생들의 적대감 어린 시선을 느끼며, 독고준 일행은 충돌을 각오했다.
독고준은 옆에 나란히 선 방백현에게 물었다.
“선배님. 저희가 향낭 몇 개를 양보하면 저들이 물러날까요?”
“독고. 너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피식 웃으며 말한 방백현이 검을 빼 들었다.
부드럽기만 하던 그의 인상에 단호함이 깃들었다.
“하나라도 주면 우릴 얕보고 더 악착같이 달려들 거다. 가진 걸 다 빼앗을 때까지 말이야.”
“……역시 싸우는 수밖에 없겠군요.”
“나 참. 사 학년이나 돼서 이게 웬 고생인지.”
방백현이 장난스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는 순간, 포위망을 이룬 학생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공격해!”
향낭을 노리는 수십 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 떼 같았다.
“이대로 돌파한다!”
독고준이 선두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 좌우를 방백현과 유이란이 받치고, 당소소가 후위를 맡았다.
네 사람은 모두 청룡학관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들이었다. 아무리 상대의 숫자가 많다 한들, 웬만한 학생들은 독고준의 일검도 제대로 버티지 못했다.
‘순식간에 돌파한다!’
전력을 다하면 포위망을 뚫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독고준의 자신감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 무림이었다.
쉭!
“!!”
사각에서 날아온 예리한 검격이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독고준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려 피했다.
‘고수!’
독고준은 즉시 검을 끌어당겨 이어질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를 노린 검은 인파 속에 모습을 감췄다.
“조심해! 만만치 않은 녀석이 있다!”
방백현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을 노린 고수는 전면으로 나서지 않았다.
살수처럼 인파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혼란을 틈타 한 번씩 급소를 노릴 뿐이었다.
“한 명이 아니다. 둘 이상이야.”
인파 속에 몸을 숨긴 고수들을 신경 쓰느라, 독고준 일행은 결국 포위망을 돌파하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 여러 명이 뒤엉키며 난전이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향낭을 노리는 숫자가 늘어났다. 마치 누가 소문이라도 내고 데려오는 것 같았다.
“저기다! 향낭이 저기 있다!”
“독고준한테 향낭이 여러 개 있다!”
“이리 내놔!
어느새 백 명이 넘는 인원이 뒤엉킨 대난전이 되었다. 독고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였다.
까가가가강!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막느라 혼이 쏙 빠질 정도로 검을 휘둘러야 했다. 그만큼 험난한 싸움이었다.
“크아악! 빌어먹을!!”
결국 그 얌전한 독고준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 * *
밖에서 대난투극이 벌어지는 동안, 한 마리의 맹수는 은밀하게 학생회 건물 지하로 잠입했다.
살금살금.
맹수는 발걸음 소리를 거의 내지 않으며 움직였다. 학생회 건물 내에서도 보안이 가장 엄중한 곳이 녀석의 목적지였다.
하지만 기감이 뛰어난 무인들을 속이는 건 역시나 쉽지 않았다.
“어? 고양이잖아?”
“언제 들어온 거야?”
문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두 명의 학생이 은호를 발견했다.
캬앗…….
이젠 어쩔 수 없었다. 맹수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인간들은 이걸 좋아했다.
발라당!
인간들 앞에서 발라당 드러누운 은호는 배를 긁어 달라며 애교를 부렸다.
캬앙?
그 치명적인 귀여움에 학생들은 심장이 멎을 듯한 충격을 받았다.
“허억……!”
“세상에. 엄청 귀여워…….”
눈처럼 새하얗고 작은 은호는 요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은호에게 홀린 두 학생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열심히 배를 긁어 주기 시작했다. 보드라운 감촉에 두 사람의 표정이 흐물흐물하게 녹았다.
“오구오구!”
둘 다 은호에게 홀린 탓에, 뒤에서 접근하는 또 다른 맹수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했다.
“여기가 폐관 수련할 때 쓰는 방 맞지?”
“!!”
“침입……!”
두 학생이 소리를 지르려 했을 땐 이미 늦었다.
야수혁의 커다란 손이 둘의 머리를 하나씩 덥석 붙잡은 후, 서로 강하게 부딪쳤다.
빠악!
머리가 부딪친 두 학생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기절했다.
“정중하게 물어봤는데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야수혁은 능숙하게 두 학생의 주머니를 털어 열쇠를 찾았다. 은호에게 간식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털뭉치. 잘했다.”
캬앗!
은호는 야수혁이 보상으로 준 육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쿠구구궁……!
두꺼운 문을 열어젖힌 야수혁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은호가 폴짝 뛰어올라 야수혁의 어깨에 올라탔다.
야수혁이 안쪽에 대고 낮게 소리쳤다.
“선배! 구하러 왔수다!”
“……수혁이냐?”
방 안쪽에서 거상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흘 동안 빛을 보지 못한 그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드러났다.
야수혁이 안으로 걸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생했수. 그동안 고초가 심했을…… 당신 누구야?”
야수혁은 크게 달라진 거상웅의 모습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강제 제모로 인해 인상이 한층 말끔해진 거상웅이 영 적응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