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79
278화. 설립 이래 최대의 난장판
야수혁은 못 볼 꼴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인상이 확 바뀐 거상웅을 바라봤다.
“진짜 상웅 선배 맞아?”
강제 제모를 당해서 매끈해진 근육질의 몸과 팔다리.
원래는 듬성듬성 자라 있던 턱수염도 깔끔하게 면도를 했고, 머리는 기름을 발라 보기 좋게 넘겼다.
여기에 지저분했던 눈썹까지 단정하게 정리됐으니, 이건 뭐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수준이었다.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낀 야수혁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붙잡혀서 고초를 겪은 줄 알았더니, 오히려 신수가 더 훤해지셨네?”
“구경 그만하고 빨리 이거나 풀어.”
멀끔해진 거상웅이 팔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내밀며 말했다. 왠지 더 재수도 없어진 느낌이었다.
야수혁이 다가와 거상웅의 쇠사슬에 열쇠를 끼워 넣었다. 가까이 와서 보니 변화가 더 크게 느껴졌다.
몸에 향유까지 바른 것 같은데…….
야수혁이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업계 사람 같았는데, 지금은 꼭 뚱뚱한 기생오라비 같이 생겼네. 그래도 인기는 없겠지만.”
“이 자식이 진짜……!”
야수혁이 큭큭 웃으며 열쇠를 돌렸다. 쇠사슬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쿠웅!
꽤 오래 묶여 있어서 찌뿌둥했는지, 거상웅은 팔다리를 붕붕 돌리며 몸을 풀었다.
“내가 당소소에게 얼마나 끔찍한 꼴을 당한 줄 모르지? 묶여서 온몸을 제모 당한 거로도 모자라, 난데없이 이발에 눈썹까지 다듬어지는 기분을 아냐? 으으…….”
끔찍했던 이틀간의 기억을 떠올린 거상웅이 진저리를 쳤다.
-어라? 선배님……. 이제 보니 살 좀 빼고 꾸미면 꽤 괜찮겠는데요?
-괘, 괜찮다니 뭐가?
자신을 훑던 당소소의 예리한 시선과 입가에 맺힌 알 수 없는 흐뭇한 미소.
-지금부터 알게 해 드릴게요.
그때부터 거상웅은 강제로 외모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팔다리의 털이 뽑히고, 수염이 밀리고, 머리에 눈썹까지 다듬어지는 경험이라니!
-그만! 제발 그만해! 내가 여자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거야!!
-어머. 요즘은 남자들도 이 정도는 기본인 거 모르세요?
-차라리 고문을 해!
-호호호호!
당소소의 광기는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강제로 ‘꾸며짐’ 당하게 된 결과물이 지금의 거상웅이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잠깐이라도 더 있고 싶지 않다.”
두 사람은 함께 감옥에서 빠져나왔다.
거상웅은 야수혁에게 후배들이 짠 계획, 그리고 바깥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었다.
판을 아예 새로 짜려는 후배들의 계획에 입이 딱 벌어졌다.
“여민이 주도해서 이 계획을 꾸몄다고? 그 녀석. 똑똑한 줄은 알았지만…….”
“잘난 척하다가 붙잡힌 어떤 선배보다 훨씬 낫던데?”
“흠흠.”
헛기침을 한 거상웅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다행히 바깥의 싸움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 터라, 학생회 건물을 빠져나가는 그들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거상웅의 시선이 난전에 뒤섞여 싸우고 있는 옛 친우를 향했다.
“……너희들이 짠 계획. 다 좋은데, 방백현 저 녀석은 만만히 보면 안 된다.”
“둘이 아는 사이요?”
일 학년인 야수혁은 방백현에 대해서 모를 만도 했다.
거상웅이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때는 절친한 사이였지.”
거상웅과 방백현.
두 사람은 한때 청룡쌍절이라 불릴 정도로 촉망받던 후기지수였다.
입학식부터 서로의 뛰어남을 알아본 두 사람은 친구이자 호적수가 되었고, 늘 붙어 다녔다.
남들에겐 말 못 할 가정사까지 서로 알고 있을 만큼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 학년 때 열린 천무제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나는 올해 천무제에 참가하지 않을 거야. 아직 세상에 내 재주를 드러내기엔 부족한 것 같아.
-지랄. 또 어머니가 반대하셔서 그러냐? 이번엔 또 뭐라시는데? 참가해 봤자 네 경력에 흠만 될 거래?
-……뭐, 그런 것도 좀 있고.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던 방백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거상웅이 혼자서 천무제에 다녀온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멀어졌다.
‘먼저 피한 건 내 쪽이었지.’
천무학관의 권패 초일에게 큰 상처를 입은 거상웅은 오랫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달렸다.
밤마다 악몽을 잊지 못해 결국은 도박과 식도락에 빠져들었고, 무공을 점점 멀리하게 됐다. 학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소년은 문제아가 되었다.
-상웅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도 말해 줄 수 없는 거냐?
-…….
-답답해 죽겠네 진짜! 언제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을 건데! 안 그래도 연이 때문에 힘든데 너까지 이러면…….
-……꺼져. 귀찮게 굴지 말고.
몇 번이나 찾아왔던 친구를 차가운 말로 쫓아냈던 기억들이 거상웅을 괴롭혔다.
방백현에게는 늘 마음의 빚이 있었다.
백수룡의 도움을 받아 주화입마를 극복한 이후에는 직접 찾아가려 했지만, 그때는 방백현이 폐관 수련에 들어가 만날 수 없었다.
때문에 실제로 방백현의 얼굴을 다시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방백현은 내가 맡는다. 저 녀석은 내가 가장 잘 알아.”
방백현을 바라보는 거상웅의 눈빛이 복잡한 감정으로 뒤섞였다.
* * *
“저 녀석들도 이제 지쳤다!”
“허리! 허리에 있는 향낭을 노려!”
여전히 향낭을 노리는 승냥이 떼에게 포위당해서 공격당하는 와중에도, 독고준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숨어서 한 번씩 우릴 기습하는 놈들. 둘 중 하나는 검초가 익숙해.’
상대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단순한 초식으로만 공격하고 있었지만, 독고준은 그 단순한 초식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까앙!
또 한 번 사각에서 날아온 기습을 막아 낸 독고준은 고개를 홱 돌렸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작은 체구의 검객이 인파 속으로 몸을 숨기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독고준은 뒤로 물러나 방백현과 등을 맞댔다.
“선배님. 숨어서 우리를 공격하는 녀석들. 아무래도…….”
“한 명은 위지천인 것 같지?”
방백현도 같은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당소소와 유이란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다. 넷 다 점점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여민일 거예요. 아까부터 교묘하게 군중을 선동하는 목소리는 전부 여자였어요.”
당소소가 입술을 잘근잘근 악물며 말했다.
학생회의 지낭으로서, 누군가가 만든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향낭을 허리춤에 매고 있어야 하지 않아? 향낭은 안 보이던데?”
유이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얼굴은 복면으로 가릴 수 있어도 향낭은 가릴 수 없었다.
바뀐 규칙에 의하면, 향낭을 숨기면 이 시험에서 탈락이니까.
“향낭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온 걸 수도 있지. 아직 야수혁과 헌원강이 안 보이는 걸 보면.”
“아니면 누군가에게 빼앗긴 후에, 다시 우리 걸 빼앗으려고 온 거 아닐까요?”
“시험이고 뭐고 그냥 우리한테 복수하러 온 걸지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 안에 정답은 없었다.
그 누구도 ‘새로 붙은 대자보가 가짜가 아닐까?’라고 의심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아까 그 녀석들이 우릴 함정에 빠뜨린 건 확실한 거네?”
방백현은 점점 지쳐가는 후배들을 둘러봤다.
다들 지쳐 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방백현의 입가에는 아까부터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재밌어.’
이 학년 이후로, 이렇게 죽어라 검을 휘두르고 땀 흘리면서 뛰어다녀 본 적이 언제였던가?
‘어쩌다가 이런 터무니 없는 시험에 휘말려서.’
스스로 생각해도 황당해서 계속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올해 사 학년인 방백현의 목표는 졸업 후 무림맹에 입맹해, 언젠가는 무림맹주가 되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청룡학관 출신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방백현은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노력해 왔다.
항상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언행은 타의 모범이 되었다.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늘 웃었고, 가벼운 친선비무 한 번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늘 어머니의 조언을 따르며 철저하게 준비했다. 좋든 싫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껏 날뛰어도 상관없겠지. 시험 자체가 이런 거니까.”
합법적으로 동기들과 후배들을 때려눕힐 기회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청룡오망처럼 촉망받는 후기지수들과 검을 맞대 쓰러뜨린다면, 훗날 큰 무용담이 될 터.
방백현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자! 향낭은 여기 있으니 누구든 원한다면 가져가 봐!”
방백현이 만들어 낸 검의 잔영이 만개한 꽃잎처럼 펼쳐졌다. 무척 화려한 검법이었다.
채채채채챙!
졸업과 취업을 앞둔 사 학년에게 이런 일탈은 짜릿한 유희일 수밖에 없었다.
방백현은 한참 신나게 검을 휘두르다가 갑자기 기막힌 생각을 떠올렸다. 그가 활짝 웃으며 후배들을 돌아봤다.
“차라리 향낭을 다 주자!”
“예? 무슨 소립니까 그게!”
“……혹시 미치셨어요, 선배님?”
방백현은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후배들에게 활짝 웃어 주었다.
“향낭을 던져 주면 저 녀석들끼리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지 않겠어? 그동안 우린 위지천과 여민을 찾아서 쓰러뜨리는 거야.”
“아…….”
“그다음 잃어버린 향낭을 되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걸. 어차피 허리춤에 보이도록 내걸어야 하니까.”
“……괜찮군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에요.”
“위지천은 계속 대련하느라 많이 지쳤을 텐데…….”
후배들도 결국 수긍했다.
사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향낭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긴 하지만, 그러기엔 다들 너무 지쳐 있었다.
“좋아. 내가 먼저 시작하지!”
방백현은 자신의 향낭 두 개를 전부 허리춤에서 뜯어 하늘로 휙 던졌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더 난장으로 만드는 신호탄이었다.
“자! 너희가 그렇게 원하던 향낭이다!”
예상대로 포위망의 한쪽이 허물어지며, 학생들은 향낭이 날아간 곳으로 달려갔다.
“향낭이다!”
“저리 비켜!”
“웃기지 마! 저건 내 거야!”
향낭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한 사람의 손에 잡혔으나, 곧 다른 사람이 그것을 빼앗았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이 두 번째를 넘어뜨렸고, 향낭은 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향낭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십수 명이 달려들면서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것이다.
“효과 확실하지? 자! 너희도 던져!”
선배의 시범을 본 후배들도 전부 향낭을 뜯어 하늘로 던졌다.
순식간에 포위망이 흩어지고, 사방에서 향낭을 차지하기 위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진작 이럴걸. 너흰 다들 잠깐 한숨 돌리고 있어.”
방백현은 후배들을 뒤로하고 위지천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빙긋 웃으며 복면을 쓴 위지천에게 말했다.
“천재 신입생. 이번에는 나랑 일대일로 붙어 볼까?”
“…….”
위지천은 말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힘들지만, 일대일이라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두 검객의 검 끝이 천천히 서로를 겨눌 때였다.
“누가 우리 막내 괴롭히냐아아-!”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누군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등 뒤로 수십 명의 추격자를 달고 온 헌원강이었다. 그는 등에 커다란 보따리를 하나 짊어지고 있었다.
“……헌원강?”
“저건 또 뭐 하는 짓이지?”
독고준 일행이 불안한 표정으로 헌원강을 지켜보는 가운데, 난장판으로 합류한 헌원강이 누군가의 머리를 밟고 하늘 높이 도약했다.
타닷!
“이 자식들아! 향낭이 갖고 싶냐? 어디 마음껏 가져가라!”
헌원강이 짊어지고 온 보따리를 허공에서 풀어헤치자, 그 안에서 백 개가 넘는 향낭이 비처럼 쏟아졌다.
“저건 또 무슨…….”
“향낭이 저렇게 많았어?”
다들 순간 멍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당소소가 소리를 질렀다.
“저건 가짜예요! 저러면 진짜랑 섞이잖아요!”
“뭐? 헌원강 이 미친 자식!”
독고준은 급히 자신이 던진 향낭을 되찾기 위해 달려나갔다.
하지만 이미 진짜와 가짜가 아무렇게나 뒤섞인 후였다. 흙먼지가 잔뜩 피어올라서 시야를 가리고, 학생들의 손을 거치면서 더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하하하하! 이래서는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알 길이 없겠군!”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방백현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몰라! 이렇게 된 거 싸움이나 하자고!”
“우리도 끼워 줘!”
처음에는 향낭을 차지하기 위해 참여한 학생들이 전부였지만, 나중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학생들이 더 많았다.
마침 오늘은 기말고사 일정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기말고사를 보면서 쌓인 압박감과 긴장을 풀 겸, 이 전무후무한 패싸움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났다.
“싸움이다!”
“다 덤벼!”
“향낭! 향낭은 어디 있는데!”
어쩌면 오늘이 청룡학관 설립 이래 최대의 난장판이 아닐까?
소용돌이치는 흙먼지 속에서 방백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시험도 끝났겠다! 다들 신나게 놀아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