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0
29화. 불편한 저녁 식사“광마? 지금 나 보고 한 말인가?”
도집으로 피투성이가 된 남학생을 툭툭 건드리던 녀석이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봤다.
핏발선 눈.
사자 갈기처럼 대충 풀어헤친 머리.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마치 상처 입은 짐승처럼 보였다.
눈앞에 있는 것이 누구든 물어뜯을 것 같은 눈빛으로 녀석이 나를 노려봤다.
“감히 내 앞에서 그 별호를 언급해? 하…….”
녀석은 발아래 피투성이가 된 남학생을 밟으며 내게로 똑바로 걸어왔다.
“……백 형.”
명일오가 옆에서 나를 잡아끌었다.
괜한 시비에 괜히 끼어들지 말고 자리를 피하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래. 역시 이쪽이 더 익숙하지.’
체면과 예의를 중시하는 정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살기와 투기.
상대가 자신보다 선배건, 연장자건, 강사건 상관없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얼굴.
저런 얼굴을 한 녀석들을 수없이 가르쳐 본 나였기에, 오히려 그리운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처음이었다.
가르치는 재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 녀석을 본 것은.
어느새 내 앞까지 걸어온 녀석이 삐딱하게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학관에선 못 보던 놈 같은데……. 어이.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 패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너 내가 누군지는 알고 시비 건 거냐?”
피부가 따끔따끔할 정도의 살기.
피식 웃은 내가 입을 열어 한마디 하려고 할 때였다.
스르륵. 스르륵.
“헌원강 학생.”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까 봤던 음침하게 생긴 쌍둥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헌원강?’
저 쌍둥이 덕분에, 나는 광마 사부와 똑 닮은 녀석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저렇게 닮았다 했더니……. 같은 집안사람이었군.’
광마(狂魔) 헌원후.
뇌옥에서 함께 탈출한 네 사부 중 한 명으로, 한때는 도의 명문인 헌원세가 역사상 최고의 기재라 불리던 후기지수였다.
하지만 그는 무공에 미쳐 가문의 기대를 저버린 채 백 번의 비무행에 나섰고, 지나치게 잔인한 손속으로 ‘광마’라는 칭호를 얻었다.
광마 사부는 무림 공적이 되어 쫓기던 중,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던 혈교의 계략에 당해 뇌옥에 갇혔다.
-나는 무공의 끝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광마 사부는 자신의 행동에 후회는 없다며,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백 번의 비무행에 나설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 가지 미련은 있었다.
-……가문에 큰 누를 끼쳤다. 언젠가 돌아갈 수 있다면…….
-헹. 그 잘난 헌원세가가 뭐가 아쉬워서 너를 다시 받아 주겠냐?
-산적 놈. 닥쳐라.
-큭큭. 차라리 내 부하가 되는 건 어떠냐? 너는 관상이 사납고 야비한 게, 부채주가 딱이야. 나와 같이 대녹림방을 세워서…….
-여기서 나가면 저놈의 주둥이부터 찢고 말겠다.
……이 양반들은 기억을 떠올리기만 하면 항상 싸우고 있네.
하여튼 저 헌원강이라는 녀석.
광마 사부의 환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았다.
얼굴도 닮았지만 분위기랄까, 골격도 거의 흡사했다.
‘자식은 없다고 들었는데. 가까운 친척인가?’
내가 광마 사부가 해 준 옛이야기를 하나씩 떠올릴 때였다.
쌍둥이에게 가로막힌 헌원강이 짜증스럽게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짓이냐고? 니들은 저 새끼가 한 말 못 들었어? 나 보고 광마란다. 니들, 광마가 누군지 몰라?”
“…….”
“…….”
쌍둥이가 진짜 그렇게 말했냐는 의미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뭐?”
내 말에 헌원강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쌍둥이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헌원강을 바라봤다.
“그렇다고 합니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이것들이 진짜…….”
헌원강이 이를 갈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쌍둥이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육모방망이? 포승줄?’
쌍둥이가 꺼내 든 무기는 무림인보다는 포졸들이 사용할 법한 육모방망이와 포승줄이었다.
쌍둥이가 헌원강을 겨누며 말했다.
“더 이상 다가오면.”
“제압하겠습니다.”
그런데 쟤들은 말을 나눠서 하는 게 습관인가.
“크흐흐.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헌원강은 물러서지 않고 도를 도집째로 들어 둘을 겨눴다.
새하얀 이를 드러낸 녀석이 살기를 물씬 풍겼다.
“그래. 내 말 따위 믿어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항상 이런 식이지. 꼭 처맞고 난 후에야 비키더라고.”
헌원강이 본격적으로 살기를 드러내자, 쌍둥이의 표정도 굳었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학생회는 더 이상의 분란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헌원강이 피식 코웃음을 치며 도를 뽑아 들었다.
시퍼런 칼날에 달빛이 반사됐다.
히죽 웃은 헌원강이 흐느적흐느적 칼춤을 몇 번 추더니, 쌍둥이를 향해 칼끝을 겨누고는 가볍게 까닥였다.
“혼자서는 말도 똑바로 못하는 병신들. 덤벼 봐라.”
““…….””
자연스럽게 공터가 넓어지고, 곧 세 명이 어우러지며 싸움이 벌어졌다.
‘셋 다 제법이군.’
쌍둥이의 합격술은 놀랍도록 정교했다.
마치 똑같은 그림을 양쪽에 펼쳐 놓은 것처럼 동시에 움직여 헌원강을 압박하고, 반격이 날아오면 한 명은 방어에 치중, 다른 한 명은 상대의 틈을 노려 반격했다.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하고 있네요.”
내 옆에서 악연호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쌍둥이는 쉴 새 없이 붙었다가 떨어지면서도 움직임이 조금도 엉키지 않았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적이 한 명이었다가 두 명이 되고, 다시 한명이 되었다가 두 명이 되는 것을 계속 반복하는 기분일 것이다.
“평소 서로의 눈빛만 봐도 알 정도로 수련을 한 모양이군요.”
명일오도 감탄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만큼 쌍둥이의 합격술은 훌륭했다.
하지만 나는 쌍둥이 쪽은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 대단한 건 저 녀석이야.”
헌원강은 술에 취한 듯(실제로 취해 있었다) 비틀대면서도 중요한 공격은 모두 피하거나 쳐 내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묘기를 부리듯 몸을 비틀고, 보란 듯 과장되게 큰 동작으로 칼을 휘둘러 상대를 떨쳐 내고,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쌍둥이를 도발했다.
“이것밖에 안 되나? 올해 학생회 수준도 알 만하군.”
““…….””
쌍둥이의 공세가 점점 거세졌다.
육모방망이가 헌원강의 어깨를 스치고, 포승줄이 뱀의 혀처럼 헌원강의 발목을 노렸다.
어느새 청룡학관의 학생들 비롯한 수많은 구경꾼이 이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수군수군.
“또 헌원강 저 녀석이야?”
“매번 폭력 사건이나 일으키고…….”
“학관에서는 왜 안 쫓아내나 몰라.”
멸시와 증오가 느껴지는 말들.
하지만 나는 그 아래에 깔린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두려워할 만한 재능이다.’
헌원강의 지금 실력은 그렇게까지 압도적이지 않다.
하지만 가진 재능의 크기만은, 단언컨대 내가 지금까지 본 훈련생들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헌원강의 도법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딴 도법을 사용하는 거지?
내가 아는 헌원세가의 무공은 저렇게 수준이 낮지 않았다.
광마 사부가 백인비무행을 치르며 정립한 독문 무공만큼은 못해도, 충분히 무림의 일절로 불릴 수 있는 무공을 가진 곳이다.
그런데 지금 헌원강이 펼치는 도법은, 형편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명문세가의 무공이라고 하기엔 수준이 떨어졌다.
“저게 원래 헌원세가의 도법이냐?”
“그게…….”
내 물음에, 악연호는 망설이다가 작게 대답했다.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뭔가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나 보군.’
당장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일단 헌원강이 싸우는 모습에 집중했다.
“크흐흐. 슬슬 어떻게 움직일지 다 보이는군.”
몸에 맞지 않는 도법을 펼침에도 불구하고, 헌원강의 재능은 압도적이었다.
처음에는 쌍둥이의 합격술에 고전하던 녀석이 어느새 반대로 쌍둥이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채채채챙!
““크윽…….””
손발이 어지러워진 쌍둥이가 틈을 보인 순간 헌원강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고, 도가 벼락처럼 움직였다.
까앙! 까아앙!
승부가 갈렸다.
무기를 놓친 쌍둥이가 손에서 피를 흘리며 낭패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어깨에 도를 걸친 헌원강이 건들거리며 둘을 향해 걸어갔다.
“지금 꿇을래? 아니면 맞고 꿇을래?”
쌍둥이는 적수공권으로라도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며 말없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는 관전하고 있던 선도부 학생들이 헌원강을 사방에서 포위했다.
“헌원강 학우님. 마지막 경고입니다.”
“문제를 더 키우지 마십시오.”
“더 이상은 봐 드리지 않겠습니다.”
팔뚝에 노란 완장을 찬 선도부 학생들이 동시에 헌원강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하. 이젠 쪽수로 덤벼 보려고?”
포위된 상황에서 헌원강의 조금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호리병에 남은 술을 한입에 털어 내더니, 빈 호리병을 바닥에 던지고 입가에 흘린 술을 손등으로 훔쳤다.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헌원강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크크. 어디 한번 덤벼 봐.”
헌원강의 몸에서 맹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쌍둥이를 포함한 선도부 학생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형님.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됩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실기시험에…….”
내 양옆에서 악연호와 명일오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나는 둘 중 누구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으며 팔짱을 꼈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나는 헌원강이란 녀석이 가진 한계를 보고 싶었다.
저 녀석이 가진 실력의 저게 전부인지, 아니면 뭔가 더 숨기고 있는지.
어째서 저런 재능을 가지고 패배자의 눈을 하고 있는지…….
‘광마 사부가 저 녀석을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모르긴 해도, 절대 좋게 말로 타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괜히 별호에 ‘광(狂)’ 자가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크크. 들어와! 몇 놈은 칼침 맞을 각오부터 하라고!”
“……신속하게.”
“……제압하겠습니다.”
내공을 끌어올린 양측이 서로를 향해 덤벼들려는 순간,
“적당히 해라. 헌원세가의 망나니.”
걸걸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뒤쪽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헌원강의 표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팽사혁…….”
씹어 뱉듯이 중얼거린 헌원강이 몸을 돌려 자신의 이름을 부른 상대를 노려봤다.
구경꾼들을 가르며 나타난 거구의 청년이, 헌원강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쯤 하면 됐잖아? 술도 다 깼을 텐데 기숙사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
“……내 일에 끼어들지 말고 꺼져.”
“지금 내가 부탁하는 거로 보이냐?”
히죽 웃은 팽사혁이 등 뒤에서 거대한 도를 뽑아 들었다.
스르릉.
헌원강의 키가 상당히 큰 편이었지만, 새로 나타난 청년 또한 결코 그에 못지않았다.
게다가 덩치는 훨씬 컸다.
“말로 할 때 가라. 얼마 남지도 않은 가문의 명예에 똥칠하기 싫으면.”
“…….”
헌원강이 이를 갈며 팽사혁을 노려보는 동안, 나는 명일오에게 물었다.
“팽사혁?”
“……백 형은 하북팽가의 소가주도 모르십니까?”
하북팽가.
흔히 말하는 오대세가 중 하나로, 정파 무림에서 가문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한 가문이었다.
그리고 내 기억에, 하북팽가와 헌원세가는 서로 자신들의 도법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품고 경쟁하는 가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하북팽가의 소가주의 한마디에 헌원강이 꼼짝을 못한다라…….’
명일오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팽사혁은 동아리 연합회의 회장이기도 합니다. 학생회장 독고준과 함께 학생들 중에서는 최고 권력자라고 할 수 있죠.”
“헌원강이 권력에 굴복할 녀석으로 보이진 않는데…….”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악연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가문에 사연이 좀 있어요.”
“돌아가서 들을 이야기가 많겠군.”
우리끼리 대화를 나누는 사이, 결국 헌원강은 도를 집어넣고 홱 몸을 돌렸다.
“빌어먹을. 술맛 다 버렸군.”
“잘 생각했다. 그래야 쥐꼬리만 한 가문이라도 지키지.”
“…….”
이죽거리는 팽사혁을 한번 노려본 헌원강이 인파를 헤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쌍둥이가 헌원강을 제지하려 했으나, 팽사혁이 나서서 말렸다.
“내버려 둬. 학생회장한텐 내가 잘 얘기하지.”
““…….””
헌원강의 뒷모습이 인파 속에 묻혀 사라지자, 팽사혁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누구신가 했더니……. 신입 강사 면접장에 오셨던 분들이군요. 두 분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셔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동아리 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팽사혁이라 합니다.”
팽사혁이 활짝 웃더니 우리에게 포권을 취하며 먼저 인사했다.
곰 같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
그 순간 나는 녀석의 미소에서 불길한 느낌을 받았지만, 티 내지 않으며 마주 미소를 지었다.
“백수룡입니다.”
“……악연호입니다.”
“며, 명일오입니다!”
차가운 눈으로 우리를 빠르게 훑은 팽사혁이 멋쩍은 듯 웃었다.
“죄송합니다. 학관의 망나니 하나가 예비 강사님들께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축제가 벌어지고 있으니, 흥에 취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하하.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제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만…….”
우리를 보며 잠시 말을 늘이던 팽사혁이, 은근한 어조로 우리에게 말했다.
“사과의 의미로 여러분께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참석해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