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9
28화. 광마?
“어? 왜 이렇게 멀쩡해요?”
객잔에 들어온 나를 보자마자 악연호가 한 말이었다.
나는 악연호의 맞은편에 털썩 앉으며 녀석을 째려봤다.
“멀쩡하게 돌아와서 불만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 학생주임님 표정이 형님 뼈 몇 군데는 부러뜨릴 것 같았잖아요.”
그 옆에 앉아서 술잔을 홀짝이던 명일오도 멀쩡한 내 모습을 위아래로 보더니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청룡학관의 나찰이라 불리는 검치와 개인 면담을 하고도 멀쩡히 돌아오다니……. 백 형. 그 정도로 고수셨습니까?”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니, 왜 당연히 싸웠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야 일타강사인 남궁수 선생에게도 도발을 하셨으니까요?”
“그 자식은 경우가 다르지. 저는 원래 아주 온순하고 평화로운 사람입니다.”
“와, 입에 침이나 바르고…….”
악연호의 말을 무시하며, 나는 명일오가 따라 주는 술을 받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명일오의 잔을 채워 주며 물었다.
“그런데 검치? 그게 학생주임님의 별호입니까?”
“예? 설마 모르셨습니까?”
명일오가 총명해 보이는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검치(劍齒) 매극렴. 전전대에 이름을 날린 고수로, 돌연 은퇴 후 청룡학관 강사로 일한 세월만 삼십 년이 넘은 대단한 분입니다. 과거에는 한 번 내뱉은 말을 반드시 지키는 대쪽 같은 성격과 사마외도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검객으로 유명했다고 하죠.”
명일오는 강호의 온갖 소문에 밝았다.
덕분에 함께 있으면 심심할 일도 없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좋았다.
“학생주임을 맡은 이후로는 학생들을 엄격하게 교육하기로 유명합니다. 특히 풍기문란 사고를 일으키는 학생들에겐 사신이나 다름없다고 하죠.”
명일오가 몸을 낮추더니 분위기를 잡으며 스산하게 말을 이었다.
“교칙을 어긴 학생에겐 차라리 무림맹 뇌옥에 갇히는 게 나을 정도로 두려운…… 일대일 지도가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청룡학관 출신 중에 무림맹 뇌옥에 갇혀 본 사람이 한 말이니 신빙성이 상당히 높지요.”
이쯤에서 나는 한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청룡학관 출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무림맹 뇌옥에 갇혀?”
“모르십니까? 그 유명한 천리신투가 청룡학관 출신입니다. 소문으로는 학생 시절 학생주임에게서 도망 다니며 경공을 연습하다 어느 날 깨달음을 얻어…….”
“…….”
이놈의 학관에 정말 취업을 해야 할까?
연달아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듣던 악연호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봐요. 멀쩡히 돌아온 게 용하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헌데 명 형. 학생주임은 왜 풍기문란 사고에만 유독 엄격한 거예요? 어린 학생들이 서로 교제할 수도 있지.”
지극히 악연호스러운 질문.
그런데 이 순간,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설마 그 이유가…….’
명일오는 다 이유가 있다며 우리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한 30년 전인가. 학관이 뒤집힐 만한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글쎄 학생 둘이 눈이 맞아서 혼인을 하고 그대로 야반도주를 한 겁니다.”
“세상에. 멋지네요!”
“예? 하여튼 그때 검치 선배님께서 남학생을 그 잡아 죽이겠다고…….”
“자, 자. 이런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남의 입에서 아버지의 화려했던 과거를 듣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명일오의 잔에 급히 술을 채웠다.
“우리 좀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해 봅시다.”
“이제부터 재미있어지는 부분인데…….”
아쉬워하는 악연호를 향해 나는 미간에 내천 자를 만들며 말했다.
“우리가 여기 옛날이야기나 들으려고 왔어? 어? 실기시험 준비 안 할 거야? 이렇게 술 마시는 동안에도 경쟁자들은 피땀 흘리며 훈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 어?”
“……이렇게 갑자기?”
내가 갑자기 갈궈 대자 악연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뻔뻔하게 녀석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명일오에게 물었다.
“그래서, 실기시험은 어떻게 진행된답니까?”
잠시 학생주임 이야기로 새긴 했으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역시 면접 후에 있는 실기시험이었다.
명일오가 몸을 더 탁자 쪽으로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덩달아 우리도 수상한 작당 모의를 하는 자들처럼 몸을 기울였다.
“지난 시험들로 예측해 보면, 올해 실기시험은 두 가지 종목의 점수를 총합한 종합평가로 평가될 겁니다.”
악연호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을 이었다.
“우선 대련. 기존 강사들과 대련을 통해 무공 수위를 증명해야 합니다. 반드시 이길 필요는 없지만, 승리하는 게 유리한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상대는 내가 지정하는 겁니까? 아니면 기존의 강사들이 합니까?”
나는 남궁수와의 외공 대결을 생각하며 물었다. 명일오가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상대는 학관주님이 지정해 주신다고 합니다.”
“흐음…….”
천수관음 노군상.
그 속을 알 수 없는 노고수가 어떻게 나올지는 나로서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아까 눈치를 봐서는 나랑 남궁수가 싸우는 걸 보고 싶어 하는 것도 같던데.’
다른 강사와 붙어도 상관없지만, 나는 이왕이면 남궁수와 붙고 싶었다.
그래야 많은 이들 앞에서 새로운 일타강사의 등장을 극적으로 보여 줄 수 있을 테니까.
“두 번째 시험은?”
명일오가 두 번째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두 번째는 시범 강의입니다. 약 이각 동안 학생들 앞에서 자신이 지원한 종목에 대해 시범 강의를 하게 됩니다. 짧은 시간 안에 학생들, 그리고 참관한 강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합니다.”
대련이 강사의 무공 수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면, 시범 강의는 가르치는 역량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수라고 해서 모두가 잘 가르치는 건 아니니까.’
말주변이 없어서 가르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거나, 자신만의 방식을 정답이라고 고집해 제자를 망치는 경우도 많았다.
나? 나는 물론 자신이 있었다.
‘시범 강의 정도야. 혈교에서 무공 교관으로 훈련생들 가르치며 먹은 짬밥이 얼만데.’
나는 눈빛만 봐도 누가 열심히 하는지, 게으름을 피우는지, 몸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전날 술 처먹고 놀러 다녔는지 알 수 있었다.
혈교의 악마교관이란 이름은 노름으로 딴 게 아니다.
정파 애송이들 따위 순식간에 휘어잡을 수…….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궁금해서 묻는 건데, 시범 강의 때 욕하거나 때리면 안 되겠지?”
내 질문에 두 사람이 기겁을 했다.
“미쳤어요?”
“농담이시죠?”
“아니, 진담인데…….”
“…….”
“…….”
답도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악연호와, 내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보는 명일오.
‘역시 안 되나 보네.’
그렇다.
혈교에서 내가 하던 교육의 대부분은 정파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것들이었다.
가볍게 고문을 한다거나, 부모님 안부로 시작해 온갖 창의력이 동원된 욕으로 기를 죽인다거나, 끊임없는 세뇌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병기로 만든다거나…….
“형님.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요? 손이라도 댔다간 바로 무림맹에 고발 들어갈걸요.”
“더한 건 학부모들입니다. 극성맞은 학부모가 얼마나 많은데요. 게다가 그들도 고수입니다.”
“……그 정도라고?”
백무관에서야 가르치는 상대가 꼬맹이들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설마 열다섯이 넘은 녀석들까지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고?
“끄응. 하여튼 나약한 정파 애송이들은 문제라니까…….”
시범 강의라.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 그래도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올해는 학생들 눈치를 많이 봐야 합니다. 시범 강의에서 학생 평가의 비중이 오 할이나 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명일오가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특히 학관 양대 세력인 학생회와 동아리 연합회는 더 신경 써야 합니다.”
“학생회라면…….”
학생회라고 하니, 기숙사 옥상에서 우릴 내려 보던 남학생과 여학생이 떠올랐다.
둘 다 기도가 특출하기도 했고, 여학생이 우리를 향해 잊을 수 없는 사자후를 터트렸으니까.
-거기 두 분! 두 분은 학생회의 권한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합격…… 읍, 으읍!
-부회장! 미쳤어?
……걔들이 학생회였군.
악연호도 나와 장면을 떠올렸는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말했다.
“학생회 부회장이 우리는 무조건 합격이라고 하던데요?”
“음. 그건 저도 들었습니다만.”
“봐요, 형님. 학생의 절반이 이미 우리 편이라니까요?”
악연호가 날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나 명일오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면 남학생이 절반입니다. 두 분이 여학생들에게 지지를 받는 만큼, 남학생들이 두 분을 싫어하게 될 가능성도 큽니다.”
“에이. 설마 쪼잔하게…….”
악연호는 설마 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도 명일오의 말에 동의했다.
“틀린 말은 아니야.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 둘이 여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면 나 같아도 싫겠다.”
잘생기고 예쁘면 세상 살기에 유리한 것이 많다.
하지만 그만큼 소문에 휘말리거나 표적이 되기도 쉬웠다.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만큼, 우리는 사소한 실수나 잘못으로 평가가 더 크게 깎일 수도 있었다.
“즉, 저희 같은 사람들은 남학생들에게도 호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
명일오가 은근슬쩍 우리 둘에 자기도 엮어 넣었지만, 지적하면 상처를 받을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내 질문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명일오가 씩 웃어 보였다.
“전투에 나서기 전에는 먼저 적진을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학생들의 마음을 알려면 학생들이 많은 곳에 가 봐야겠지요.”
명일오는 행낭에서 얇은 책자 하나를 꺼내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마침 학생회에서 야외 행사를 연다고 하더라고요.”
* * *
웅성웅성.
우리가 축제 장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행사장 주변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였다.
[청룡학관 동계 계절학기 축제] 용사비등한 필체가 쓰여 있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왼쪽에 선 악연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생각보다 사람이 엄청 많은데요? 일반인들도 보이고.”
“그러게.”
“하하. 청룡학관 학생 외에도 참여할 수 있는 축제니까요. 거의 도시 지역 축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우리를 이끌던 명일오가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명일오를 따라 축제를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축제는 활기가 넘쳤다.
여기저기에 상인들이 좌판을 펼쳐 놓은 채 먹거리를 팔았고, 어린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장신구도 많이 보였다.
동아리 학생들이 직접 장사를 하거나 무공 시범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당가의 비전으로 만든 정력제가! 단돈…….”
당당하게 당가의 이름으로 정력제를 파는 모습에 나를 혀를 내둘렀다.
“저래도 되는 거냐?”
“하하. 재미로 하는 건데요 뭐.”
꽤 오래된 행사라고 했다.
때문에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학관 측에서도 학생들에게 큰 제재를 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길에서 우리를 알아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저, 저기 봐봐. 아까 그 잘생긴 강사님들 아니야?”
“꺅! 진짜야!”
“먼저 가서 말 걸어볼까?”
힐끔거리는 시선이 많았지만,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거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그런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저기요, 강사님들…….”
어떤 여학생이 새침하게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다가왔을 때, 스르륵. 스르륵.
놀랍도록 똑같이 생긴 쌍둥이 남학생이 여학생의 양옆에 나타나더니, 양쪽에서 팔을 잡고 제압했다.
“앗, 왜, 왜 이래요!”
“죄송하지만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왼쪽이 말했다.
“마, 말밖에 안 걸었어요!”
“불순 이성 교제는 교칙 위반입니다.”
오른쪽이 말했다.
“무슨 불순 이성 교제야! 강사님들한테 미리 인사나 해 두려고……!”
여학생은 붙잡힌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이미 제압당한 탓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변명은 나중에 듣겠습니다.”
“일단 학생회로.”
음침하게 생긴 얼굴의 쌍둥이가 동시에 말했다.
“놔! 이거 놓으라고오!”
양쪽에 팔이 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여학생을 보며, 악연호가 살짝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학생회, 무섭네요…….”
곳곳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들.
팔뚝에 ‘선도부(善導部)’라고 적힌 노란 완장을 찬 학생들이 눈을 부릅뜨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중 일부가 살짝 풀린 눈으로 이쪽을 보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음침한 쌍둥이가 그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별 희한한 녀석들이 다 있네.’
제법 규모가 큰 도시 축제다 보니, 우리 말고도 신입 강사 지원자들도 간혹 보였다.
나는 멀리서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악연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쟤도 왔다.”
“누구…… 아, 뚱땡이요?”
곽두용이었나?
우리한테 두 번이나 망신을 당한 뚱뚱보가, 노점에서 도저히 혼자 먹기 불가능한 양의 음식을 쌓아 놓고는 떠들고 있었다.
이미 술에 꽤 취한 듯 얼굴이 불콰했다.
“하하하! 이 곽사부가 옛날에 주작학관에서 공부할 때 말이야…….”
“우와!”
“대단하다!”
그 주변에서 여러 학생이 추임새를 넣어 주고 있었는데, 저러다 바가지를 제대로 씌울 것 같은 태세였다.
“요즘 애들 무섭네.”
“그러게요…….”
우리는 전낭을 꽉 움켜쥐고 다시 축제를 돌아다녔다.
먹고, 마시고, 가끔 먼저 인사를 해 오는 학생들과 인사도 나누면서 학생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관찰했다.
‘평화롭구나.’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난 것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슬슬 객잔으로 돌아갈까 고민하기 시작할 때였다.
―와장창창!
갑자기 내 앞쪽에 있던 좌판이 박살 났다. 피범벅이 된 학생 하나가 그 위를 뒹굴며 신음하고 있었다.
“끄으윽…….”
고통스러워하는 학생 위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뭐라고? 다시 말해 봐, 이 새끼야.”
녀석이 입을 여는 순간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한 손에 든 호리병으로 입을 축이고, 다른 손은 도를 들고 쓰러진 학생의 뺨을 툭툭 쳤다. 다행히 도는 도집에서 뽑지 않은 상태였다.
걸음걸이며 눈빛이며 ‘불량’이라고 적혀 있는 것만 같은 얼굴.
수군수군.
“또 저 녀석이야?”
“진짜 싫다…….”
그를 알아본 학생들 중 일부가 슬금슬금 물러났다.
하지만 나는 제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학생들의 싸움을 말려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광마?”
내 앞에 나타난 얼굴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