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8
27화. 네놈이 그놈이냐?
“실기시험은 시험 전날까지 공개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악연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명일오가 씩 웃었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지난번, 그리고 그전에도 청룡학관 신입 강사 시험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일찍 와서 조사를 좀 해 봤는데…….”
우리는 명일오가 면접 이후의 실기시험 준비까지 얼마나 꼼꼼히 준비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조사해 온 정보를 우리에게 아낌없이 공유하려 했다.
하지만 지나친 친절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알려 줘도 되는 겁니까? 그래도 경쟁자인데.”
내 말에 명일오가 사람 좋게 웃었다.
“하하. 이 정도는 조금만 알아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그것은 제가 부족한 탓이지, 어디 다른 분들 때문이겠습니까. 그리고…….”
명일오가 우리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다음이 있지만, 두 명의 친우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이번뿐이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사람 좋은 호구는 아닌가.’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우리와 좋은 친분을 만들어 놓겠다는 의미.
‘악연호 때문이겠지. 나야 덤이고.’
나름 머릿속에 계산이 돌아가는 녀석이었다.
나는 적당히 눈치가 빠르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녀석을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명 형에게 이것저것 얻어듣는 대가로 술값은 여기 있는 악연호가 다 내겠습니다.”
“……왜 생색은 형님이 내고 돈은 제가 내요?”
나란히 면접장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썩 유쾌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청룡학관의 학생주임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때까지는 말이다.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겠나.”
학생주임이 이글이글한 눈으로 바라보며 질문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무슨 일이신지…….”
“잠깐이면 되네. 조용히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네.”
말투는 정중했지만, 우리를 가로막은 모습을 보아하니 거절한다고 곱게 비켜설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악연호에게 먼저 객잔에 가 있으라고 했다.
“먼저 가 있어.”
악연호와 명일호의 힐긋거리는 시선을 뒤로하고 나는 학생주임을 따라갔다.
그는 아무도 없는 건물 뒤편의 으슥한 곳까지 나를 데려간 다음 멈춰 섰다.
“……한 가지만 묻겠네.”
백발의 노인은 내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자네 부친의 성함이 어찌 되시는가?”
“아버지는 왜…….”
그 순간,
백무관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가 해 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떠올랐다.
-청룡학관에 가면 네 외조부께서 계실 거다.
이게 왜 이제야 기억이 나느냔 말이다.
-그…… 학생주임이시다.
아버지가 해 준 말이 연달아 머릿속에 떠올랐다.
-장인어른이 널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다. 약빙을 닮았다고 예뻐하실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아니면요?
“혹시 부친께서…….”
외조부가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백 씨 성에 무 자, 흔 자를 쓰시나?”
“…….”
-날 닮았다고 죽이려고 들 수도 있고.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외조부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보았다.
* * *
“왜 대답이 없나? 설마 부친의 함자를 모르는 건 아닐 테고…….”
학생주임의 하얀 눈썹이 꿈틀댔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노인의 얼굴에서, 단호하고 완고한 성격이 느껴졌다.
나는 아버지에게 얼핏 들었던 외조부의 이름을 떠올렸다.
매극렴(梅極廉).
수십 년간 청룡학관의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현재는 학생주임으로 학생들의 품행과 예절을 지도하는 무인.
학관주인 천수관음 노군상보다도 청룡학관에 오래 머문, 청룡학관의 살아 있는 역사나 다름이 없는 노인.
……바로 내 외할아버지다.
“다시 묻겠네. 자네의 부친이 백 씨 성에 무 자, 흔 자를 쓰는 개잡놈…… 아니 분인가?”
……아버지. 당신 도대체 장인어른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이름 세 글자를 말하는데 아주 씹어 먹을 듯이 한 글자 한 글자를 내뱉는 모습이라니.
매극렴의 목소리에 서린 분노가 차갑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 기세는 날카롭게 벼린 한 자루의 칼 같았다.
‘이 노인…… 대단하네.’
당황스러운 상황과 별개로, 나는 눈앞에 서 있는 한 명의 무인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노쇠해 가는 노인의 육체인데도 불구하고 극도로 단련된 신체와 안정적이면서도 절제된 기도.
직접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아까 면접장에서 본 부관주인 화염도 곽철우와 비교해도 실력이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학생주임이지?’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매극렴은 내가 깊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을 셈인가? 아니면 갑자기 벙어리라도 됐나?”
저렇게 분노한 것치고는 대단한 인내심이었다.
보통은 두들겨 패서라도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고 할 텐데 말이다.
“끝까지 말을 하지 않겠다면…….”
하지만 그것도 거의 한계인 모양.
매극렴의 오른손이 조금씩 허리춤의 검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눈빛이 점점 매서워졌다.
‘거짓말을 해 봤자 금방 들통나겠지. 차라리…….’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매극렴에게 포권을 취했다.
“예. 저의 부친께서는 백 씨 성에 무 자, 흔 자를 쓰십니다.”
“역시……. 백무흔 이놈……!”
순간 매극렴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지고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내 얼굴에서 아버지의 옛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감정이 격앙된 매극렴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저러다 뒷목을 잡고 쓰러지지나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백무흔 이 개잡놈……!”
……아버지.
저는 당신이란 인간의 학창 생활이 정말이지 궁금합니다.
한숨을 쉰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매극렴을 불렀다.
“할아버님.”
“갈! 누가 네 할아버님이냐!”
벼락처럼 검을 뽑아 든 매극렴이 내 목에 검을 겨눴다.
농도 짙은 살기에 온몸의 솜털이 바짝 곤두섰다.
그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나를 노려봤다.
“한 번만 더 나를 그렇게 부르면…… 그 혀를 잘라 버릴 것이다.”
“…….”
나는 30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랐다.
대충 이 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학관에서 만나 눈이 맞았고, 매극렴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인을 했다는 것.
그날 이후 매극렴은 하나뿐인 딸과 의절했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딸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딸이 죽었을 때도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
그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외골수에 자존심이 대쪽같이 강한 성격의 무인…….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딸을 용서할 수 없었겠지.’
이런 무인들은 차라리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다.
동시에, 평생 자신의 지난 행동을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세월은 그러한 무인의 의지조차 흔들리게 만든다.
‘할아버님’이라고 부른 내 한마디에 돌아온 격렬한 반응.
그 반응이 증거였다.
‘정말로 내가 싫었다면 더 싸늘하게 반응했겠지. 아니면 당장 쫓아내거나.’
“이놈……!”
그러나 매극렴은 붉어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노인은 30년 만에 만난 혈육을 보고 어떻게 대해야 할 줄 모르고 있는 거라고.
내게 무공을 가르친 네 명의 사부 중에도, 그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노인이 한 명 있었으니까.
‘모용 사부.’
검존 모용혼.
천하제일의 검객이었으나, 평생 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가졌던 노인.
혈교는 그 죄책감을 이용해서 검존이 스스로 뇌옥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었고, 아들을 이용한 협박으로 그의 무공을 빼앗았다.
하지만 혈교는 그의 아들을 죽였다.
-내 아들은…… 정말로 죽은 것이냐?
검존은 뇌옥을 탈출한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를 돌아보던 검존의 넋이 나간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너는 알고 있었느냐?
-……몰랐습니다.
마뇌가 그 사실을 극비로 했기에, 나 역시도 검존의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검존은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 했다.
-……지금이라도 내 아들이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면, 그 아이를 내게 데려온다면, 내 너희에게 죄를 묻지 않고 조용히 떠나겠다. 하지만 그 아이가 정말 죽은 것이라면…….
그날, 검존은 혈교에 네 명의 사부 중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
“어떻게 네놈이 여길……!”
잠시 매극렴의 얼굴과 모용 사부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도 지금 내 얼굴에서 백무흔의 얼굴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여튼 못난 아버지 탓에 내가 고생이다.
“할아버님.”
“닥쳐라! 분명 경고했거늘……!”
한숨을 내쉰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 어머니께서 매 씨 성에 약 자, 빙 자를 쓰십니다. 제 혀를 자르셔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
내 목에 닿아 있는 검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 탓에 검 끝에 살짝 핏방울이 맺혔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불효막심한 손자 백수룡이 할아버님을 뵙습니다. 인사가 너무 늦은 걸 용서해 주십시오.”
흔들리던 칼끝이 서서히 멈추었다.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 매극렴에게 큰절을 올렸다.
“절 받으십시오.”
검을 천천히 내린 매극렴이 나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느새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 닮았구나. 눈매가 닮았어. 손도 닮았군. 다시 보니 입술도 닮았고…….”
한동안 내 얼굴에서 죽은 딸의 얼굴을 찾던 노인이 내게 물었다.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느냐?”
‘누군지 못 알아봤거든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며 변명거리를 생각해냈다.
“……최종 시험에 합격한 후에, 당당하게 이름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급조한 것치고는 제법 그럴듯했다.
설득력이 있었는지, 매극렴은 코웃음을 치며 내게 말했다.
“청룡학관에 입관하는 것이 만만해 보였더냐? 그럼 떨어졌으면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던 게야?”
적대감으로 가득하던 말투가, 어느새 왠지 모를 섭섭함이 느껴지는 말투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감 있게 씩 웃으며 말했다.
“붙을 자신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순간, 매극렴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었다.
“……기분이 나쁘군.”
“왜, 왜요?”
“주제넘은 자신감이 애비를 닮았어……. 그 개잡놈…….”
잠시 온화해졌던 매극렴의 표정이 한순간에 다시 야차처럼 변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도 표정 변화가 저렇게까지 극적일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당황한 채로 급히 변명했다.
“어, 어머니도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이셨다고 들었는데요.”
“그건 그랬지. 하지만 웃는 얼굴이 그놈이랑 꼭 빼닮은 것이, 아주 불쾌해…….”
나는 즉시 웃고 있던 입꼬리를 강제로 내렸고, 그러자 매극렴이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앞에서 함부로 방금처럼 웃지는 말도록 해라.”
‘뭐야 이 할아범.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나?’
아무래도 매극렴은 내 얼굴에서 하나뿐이었던 딸과 증오해 마지않는 사위 놈이 번갈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 네가 내 손자란 말이지…….”
“예. 어머니가 세상에 남기고 떠나신 하나뿐인,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하지만 네 애비는…….”
“그쪽은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 별로 닮지도 않았거든요. 오늘 할아버님을 보니 제가 확실히 외탁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살겠다고 아버지까지 팔아먹는 내 아부에 매극렴이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적당히 해라. 그래도 네 애비다.”
“……예.”
“물론 천하의 개잡놈인 건 맞다.”
“…….”
어쩌라는 건지.
어쨌든, 매극렴은 표정은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하게 돌아왔다.
나와 대화를 나누며 격앙됐던 감정이 많이 진정된 모양이었다.
“면접은 어땠느냐?”
“예. 아마 붙을 것 같습니다.”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지……. 지금 묵는 곳은 어디냐?”
내가 묵는 객잔의 이름을 알려 주자, 매극렴은 어딘지 안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도 바쁜 와중에 날 불러낸 것이어서, 우리는 길게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매극렴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제 가 봐라. 나도 바쁘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흥. 귀찮으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매극렴은 코웃음을 쳤지만, 그리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나는 그를 뒤로하고 돌아섰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걷다가, 청룡학관 정문을 나서기 직전에 돌아봤다.
매극렴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홱 돌렸다.
“노인네가 부끄러워하긴.”
피식 웃은 나는 몸을 돌려 가벼운 발걸음으로 청룡학관을 나섰다.
적으로 가득한 청룡학관에, 한 명 정도는 내 편이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