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07
306화. 쥐를 잡으려면 (2)
“그걸 어떻게……!”
왕발이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저 상처만 보고 어떻게 흉수가 혈교임을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천하제일의 정보단체라 자부하는 개방의 정보력으로도, 스승님이 당한 독공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하루가 넘게 걸렸는데.
‘설마 이자가?’
불길한 생각이 든 즉시 왕발은 백수룡의 앞을 막아서며 방주를 가렸다. 찰나에 이루어진 판단. 그의 커다란 발등에 핏줄이 잔뜩 돋았다.
“……흉수가 혈교라고 단정하시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추궁하듯 묻는 왕발의 가느다란 눈이 서늘한 빛을 뿌렸다.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출수할 것처럼 매서운 기파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백수룡은 태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남궁가묘의 지하에 뭐가 있었는지 아십니까?”
“말 돌리지 말고 질문에 대답하시오!”
쿵-!
한 번의 발 구름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엄청난 진동이 바닥을 울렸다.
그러나 개방주가 누워 있는 침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방금 보여 준 한 수만으로도, 왕발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수룡은 내심 적지 않게 감탄했다.
‘역시 강해.’
왕발뿐만이 아니다.
어느새 방 바깥을 포위한 개방의 고수들이 내뿜는 살기가 살을 저밀 듯 예리했다. 조금 전 왕발의 진각을 느끼고 몰려온 것이다.
밖에 있는 한 명 한 명이 무시할 수 없는 고수였다.
후개의 명령이 떨어진다면, 저들은 언제든지 이곳에 들이닥칠 것이다.
‘괜히 구파일방이 아니로군.’
만약 이곳에서 개방의 정예와 부딪친다면, 백수룡도 큰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는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 대답하고 있잖습니까. 남궁가묘의 지하, 그곳에 뭐가 있었는지 아십니까?”
왕발은 잠시 백수룡을 노려보다가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혈교의 생존자들.
창천검왕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진 그들의 시체가 있었다고 들었다.
남궁세가주는 무림의 수뇌부에게 그 사실을 솔직하게 알렸다. 왕발도 스승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알고 있었군.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 계신다면 설명이 쉽겠군요.”
“그것이 내 스승님과 무슨 상관이……. 설마?”
수더분하게 생긴 것과 달리, 왕발은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사내였다.
그는 백수룡이 하려는 말을 짐작했다.
“남궁세가의 가묘 지하를 가장 처음 발견한 것이 저였습니다. 그곳에서 혈교 무공들을 발견했고, 혈교도들이 남긴 수많은 기록을 읽었습니다.”
“허어…….”
백수룡은 일전에 무림맹주에게 했던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왕발의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곳에서 방주님이 당하신 것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 독공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백수룡은 왕발의 어깨너머로 시선을 주며 말을 이었다. 시체처럼 창백한 방주의 얼굴이 보였다.
“가슴 정중앙에 있는, 독공에 당해 검게 변한 상처. 자세히 보면 다섯 손가락이 파고들었던 자국이 검녹색으로 흐릿하게 남아 있더군요.”
그 짧은 시간에 거기까지 살폈단 말인가?
왕발은 청룡신협의 눈썰미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는 방주가 당한 독공의 정체도 알고 있었다.
“과거 혈교의 장로였던 독마의 독문무공인 생사독(生死毒). 조법으로 그 독공을 펼치면 저것과 같은 흔적이 남습니다. 혹시 제 진단이 틀렸습니까?”
“……!!”
전부 맞다.
개방이 수십 년 전 혈교와의 전쟁 당시 남긴 기록을 다 뒤져서 알아낸 정보였다.
하지만 백수룡은 한 번 스치듯 본 것만으로도 답을 맞혔다.
‘아무리 혈교가 남긴 기록을 읽었다고 해도…….’
그게 가능한 일인가?
백수룡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나?
왕발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애써 감추며 입을 열었다.
“……남궁가묘의 지하에 그런 기록이 있었다는 것. 저는 오늘 처음 듣는 정보입니다.”
“제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전부 없애 버렸으니까요.”
백수룡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왕발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혈교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지금까지 숨겼단 말입니까? 어째서요?”
“맹주님도 똑같이 말씀하시더군요.”
백수룡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것은 싸늘한 조소였다.
“정파무림의 기둥 중 하나였던 남궁세가에서 혈교의 흔적이 나왔는데, 대체 누굴 믿으란 말입니까? 무림맹? 개방? 후개는 개방에 혈교의 세작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
왕발은 차마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개방 같은 조직은 세작의 잠입에 굉장히 취약하다.
거지들 대부분이 고아이고 신분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위가 올라갈수록 여러 가지 검증을 거치긴 하지만……. 그런 말로 백수룡을 납득시키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혈교가 언제 발호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토록 중요한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 그래서 맹주님에게 얼마 전에 직접 말씀드렸습니다.”
“…….”
왕발은 백수룡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가지 사실을 추론할 수 있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독점하고 있던 혈교의 정보를 이용해서 무림맹과 유리한 동맹을 맺었나 보군. 갑자기 무림맹 총사범이 된 것도 이제 이해가 된다.’
개방에서 파악하기로, 청룡신협 백수룡은 무공은 물론이고 머리도 아주 영리한 사내다.
일신의 무공만 뛰어났다면, 결코 청룡학관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의(義)나 협(俠)보다는 실리를 챙길 줄 알고, 대의보다는 자신과 주변을 더 아끼는 성격.’
고지식한 정파의 무인들은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왕발은 오히려 이런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자가 혈교와 관련돼 있을 리 없다.’
만약 백수룡이 혈교와 관련된 자라면, 이 상황에서 굳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만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백수룡은 아쉬울 것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아직도 저를 의심하신다면, 그냥 물러나 보겠습니다.”
“자, 잠시만!”
왕발은 백수룡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둬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수룡이 스승님을 해친 범인, 혹은 혈교와 관련된 인물일 리는 없었다.
왕발은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예민하게 굴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그 순간, 백수룡의 입꼬리가 씰룩이며 위로 올라갔지만, 왕발은 고개를 숙이느라 그 미소를 보지 못했다.
왕발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백수룡은 진지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해합니다. 그럼 환자를 더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왕발이 옆으로 비켜서고, 백수룡은 개방주의 몸에 남은 독공의 흔적을 유심히 살폈다.
“…….”
의식을 잃은 개방주는 당장 며칠을 넘기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전신에 퍼진 독이 얼마나 지독한지, 강건했던 육신은 만지면 부스러질 것처럼 약해져 있었다.
가슴 정중앙 외에도, 중독의 흔적이 검버섯처럼 몸 곳곳에 피어나 있었다.
‘독뿐만 아니라 마기에도 심하게 중독됐어.’
독공의 고수가 마공까지 익히면, 두 기운이 뒤섞여 해독이 몇 배로 힘들어진다.
독마의 생사독은 혈교의 그런 독공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고 악랄한 독이었다.
백수룡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언제, 어떻게 당하셨습니까?”
“……정확히는 모릅니다. 개봉 총타에 계셔야 할 스승님이 왜 이곳에 계신 건지, 감히 어떤 놈이 스승님을 이렇게 만든 건지…….”
왕발은 이를 악물며 자신이 아는 것을 이야기했다.
“나흘 전, 스승님은 독에 중독된 몸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직접 말입니까?”
왕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이를 꽉 악물었다.
“늦은 밤이었습니다. 스승님은 격전을 치르고 오신 모습으로 이곳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큰 상처인 줄은 몰랐습니다. 별것 아니라는 듯 덤덤한 표정이셨거든요. 하지만 다른 방도들을 물리고 저와 독대한 순간, 갑자기 입에서 검은 피를 쏟으며 쓰러지셨습니다.”
“…….”
왕발은 의식이 없는 스승의 몸을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그의 눈에 핏발이 서고,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멍청한 저는 그때야 눈치챘습니다. 스승님이 지독한 독공에 당하셨고, 겨우 도망쳐서 저를 찾아오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괜찮은 척하셨던 것은 방도들에게 자신의 부상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을 뿐, 사실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계셨던 겁니다.”
-……내, 부상을, 알리지 마라…….
“무언가 더 말을 하려고 하셨습니다만, 거기까지가 한계이셨던 건지, 스승님은 그대로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백수룡은 침착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정황만 보면 혈교가 방주를 습격했고, 개방주는 간신히 도망쳐 제자를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건, 혈교를 견제하기 위해서겠지.’
개방의 방주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
개방은 물론이고, 무림 전체에 커다란 혼란이 생길 것이다.
‘혈교는 그 혼란을 틈타 무언가를 노릴 거야.’
방주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그런 혼란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최소한 제자가 상황을 파악하고, 사태를 수습할 시간을 벌어 주어야 한다.
그가 필사적으로 도망친 이유이자, 자신의 부상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말한 이유일 것이다.
그래야 혈교도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못할 테니까.
왕발도 스승의 뜻을 알고 있었다.
“아직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저와 바깥에 있는 일부의 장로들뿐입니다. 다른 방도들은 스승님이 부상을 당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왕발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백수룡은 마음이 짠해지는 것을 느꼈다.
‘스승에 대한 마음이 무척 큰가 보군.’
왕발은 친부가 누군지 모른다.
기억이 있는 시절부터 고아이자 거지였고, 그를 거둬 준 사람이 지금의 방주였다.
즉, 왕발에겐 방주가 아버지나 다름이 없었다.
-겨우 버티고 계시지만……. 앞으로 열흘을 넘기지 못하실 겁니다.
-죄송하지만 제 의술로는…….
-생사신의께서 오신다면 모를까, 그 외에도 누구도 치료하지 못할 겁니다.
이미 무한에서 최고라 꼽히는 의원들이 몇 명이나 다녀갔다.
그들은 이 사실을 외부에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가진 모든 수단을 사용해 방주를 치료했다.
하지만 누구도 방주의 의식이 돌아오게 하는 것조차 성공하지 못했다.
“……흉수를 찾아 주십시오.”
인정하기 너무나 싫지만, 왕발은 스승의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청룡신협을 부른 이유도 치료를 부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주 작은 단서라도 좋습니다.”
청룡신협은 십존이라 불릴 만큼 고강한 무인이고, 또한 최근에 혈교와 싸운 경험도 있었다.
그라면 자신이 보지 못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흉수를 찾는 데 도움을 주신다면, 개방은 결코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발이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내는 누구보다 혈교의 마공에 대해 박식하고, 이와 비슷한 경험을 몇 번이나 해 봤다는 것을 말이다.
“복수도 복수인데…….”
개방주의 상처를 꼼꼼히 살핀 백수룡이 왕발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이거 제가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
왕발은 울고 있던 표정 그대로 멍청하게 대답했다.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개방의 장로들도 “헉!” 소리를 냈다.
몇 명은 체면도 잊고 방문을 열고 우당탕탕 들이닥쳤다.
“그, 그게 정말이오?”
“무한에서 이름난 명의들도 고칠 수 없다고 했는데?”
“네 이놈! 만약 거짓부렁이라면……!”
“부탁하겠네! 우리 사형 좀 살려 주시게!”
늙은 거지들이 백수룡을 둘러싸고 부탁, 협박, 애원했다.
분명히 후각을 차단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독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웬만해선 당황하지 않는 백수룡도 말을 더듬었다.
“다, 당장 완치는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호전시키는 것은 가능합니다.”
독마의 독공에는 독과 마공의 마기가 뒤섞여 있다.
그중 독은 해약이 있어야겠지만, 마공으로 더해진 마기라면 백수룡이 충분히 뽑아낼 수 있었다.
방주는 고절한 경지에 이른 무인이니, 그것만으로도 지금보다 상태가 훨씬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부탁드립니다!”
“부탁하네!”
“부탁드리오!”
거지들이 백수룡의 옷자락을 붙들고 부탁했다.
아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냥질에 도가 튼 거지들에겐 무인의 자존심도 없는 모양.
‘뭐 이런 거지들이…….’
그 간절한 표정들을 보니 차마 밀어내지는 못하고, 백수룡은 미간만 못마땅하게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