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16
315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쿠르르르……!
폭음과 함께 낡은 폐가가 무너져 내렸다.
건물이 완전히 주저앉기 직전, 두 사람의 신형이 지붕을 부수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휘익!
백수룡의 뒷덜미를 잡고 뛰어오른 남궁수였다.
“괴물이로군. 무슨 공력이…….”
“야! 목, 목 막힌다고!”
바둥대는 백수룡을 뒤로 휙 던져 버린 후, 남궁수는 바닥에 사뿐히 착지했다. 그는 신중한 표정으로 무너진 폐가를 응시했다.
아무리 오래된 폐가였다고 해도, 기파만으로 건물을 무너뜨리다니. 멸사단주 류설은 상상 이상의 고수였다.
‘온다.’
저벅, 저벅.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먹이를 덮치기 직전 맹수의 움직임이 저러할까. 착 가라앉은 눈빛이 실로 소름 끼쳤다.
류설이 싸늘한 음성으로 뇌까렸다.
“모용준이 배신자라고?”
남궁수는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류설의 눈에 담긴 분노가 세상 모든 것을 불태울 것만 같았다.
“이십 년 동안 무림맹에 충성한 사람에게, 그게 얼마나 큰 모욕인 줄 알아?”
우악스럽고 흉포한 존재감이 공간을 짓누른다. 그녀의 등 뒤로 형체가 불분명한 시커먼 마귀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까가각…….
자연스럽게 아래로 늘어뜨린 쌍도. 두 칼날이 서로 긁히며 불쾌한 소리를 냈다. 피에 굶주린 마귀가 주인을 보채는 듯했다.
“선배님. 일단 저희 이야기를 먼저…….”
문제는, 그녀가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후우욱!
순식간에 짓쳐든 류설이 쌍도를 휘둘렀다. 두 줄기의 검은 선이 환영처럼 십여 개로 불어났다. 하나하나가 감당하기 어려운 힘을 담고 있었다.
류설의 눈동자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개소리로 날 여기까지 불러냈으면, 그만한 각오도 돼 있겠지?”
“……!!”
대답할 여력조차 없었다. 남궁수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뇌강을 두른 검이 새하얗게 백열했다.
쩌어엉!
충돌의 순간, 명백한 우위가 드러났다.
남궁수가 대여섯 걸음을 뒤로 물러나며 충격을 해소한 반면, 류설은 오히려 앞으로 전진했다.
“뇌룡신검?”
“…….”
그녀의 입가에 맺힌 얇은 비웃음에, 남궁수의 눈썹이 꿈틀댔다.
사람들이 뇌룡신검이라고 치켜세울 때도 그는 자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별호에 ‘신검(神劍)’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만큼 무공이 강하지도 않고, 명성을 떨치지도 못했다.
그저 벽력마라는 옛 악인을 하나 죽였고, 놈이 죽어 가며 내뱉은 헛소리를 백수룡이 멋대로 떠들어서 생긴 별호일 뿐이다.
‘결국 백수룡이 지어 준 거나 마찬가지지.’
남궁수는 자신의 뒤편에 있는 백수룡의 기척을 느꼈다.
녀석은 지금 내공을 쓰지 못한다.
아무리 녀석이라도, 저 상태로 분노한 류설의 손에서 무사하기는 힘들 터.
‘은혜를 갚을 기회로군.’
파지지직!
남궁수의 검에 흐르는 뇌기가 한층 더 짙어졌다. 그가 특유의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흥분을 가라앉히실 때까지, 제가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하? 같잖네, 진짜.”
헛웃음을 흘린 류설이 다시 남궁수에게 쇄도했다. 그녀의 쌍도 위로 묵빛 기류가 휘감겼다. 남궁수도 그에 맞서 뇌강을 일으켰다.
쩌저저정!
어둠을 휘감은 도와 벼락을 두른 검이 부딪칠 때마다 빛이 명멸했다.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두 사람의 잔상이 십여 차례 교차했다.
류설의 멸사도(滅死刀)는 무림맹에서 손꼽히는 파괴적인 무공이었고, 남궁수의 천뢰검법도 남궁세가에서 손에 꼽히는 파괴력 강한 무공이었다.
부딪치는 일격 일격이 능히 바위를 부술 만했다. 은연중에 살초는 서로 자제하고 있음에도, 충돌의 여파만으로 대지에 깊게 파인 흉터를 새겼다.
두 고수는 맹렬히 부딪쳤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멸사단주 쪽으로 승기가 기울었다.
“쿨럭!”
뒤로 크게 밀려난 남궁수가 왈칵 피를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강하다. 의천단주보다 훨씬.’
성정이 질투심이 많고 탐욕스러운 것과 별개로, 의천단주는 무공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을 만큼 거의 완성된 무인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멸사단주, 류설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무공의 수위를 떠나, 류설은 타고난 기질부터가 달랐다.
남궁수는 저런 무인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잘 알고 있었다.
‘괴물.’
맹주가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를 무림맹으로 데려왔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류설은 무림맹이 지닌 가장 날카로운 칼이었다.
“이제 좀 비키지?”
류설이 무기를 거두며 한숨을 쉬었다.
실컷 칼을 휘두른 덕분인지, 처음보다는 화가 많이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남궁수 뒤편에 있는 백수룡을 노려봤다.
“내가 진짜 패 주고 싶은 건, 네가 아니라 저 뒤에 있는 녀석이니까.”
“…….”
남궁수가 대답 대신 비틀거리며 일어나 검을 겨눴다.
류설은 짜증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거참, 눈물 나는 우정이네. 누가 죽이기라도 한데?”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친구가 아닙니다. 제가 선배입니다.”
“하?”
남궁수는 검을 들지 않은 손등으로 입가의 핏물을 닦아 냈다.
생각보다 내상은 깊지 않았다. 그 이유가 류설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수는 여전히 비켜서지 않았다.
류설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친구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나서?”
“……징벌위원회가 열릴 때까지, 제게는 저 녀석을 감시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미친.”
류설은 황당하다는 듯 피식피식 웃었다.
되지도 않는 말장난을, 저런 고집스러운 얼굴로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가 다 식어 버렸다.
한숨을 내쉰 류설은 쌍도를 도집에 넣었다.
“……좋아. 일단 너희가 뭔 소리를 하는지 들어 보고 판단하겠어.”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궁수도 검을 집어넣고 류설에게 포권을 취했다. 류설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감사할 것 없어. 개소리인 게 판명되는 순간, 방금 전에 하다가 만 걸 계속할 테니까.”
류설은 그대로 남궁수를 지나쳐 백수룡을 향해 걸어갔다.
남궁수는 더 이상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그는 잠시 서서 생각에 잠겼다.
‘아직 뇌강을 다루는 것이 미숙해.’
멸사단주 같은 초고수와의 비무는 그 자체로 기연이나 다름없다.
비록 이기진 못했지만 얻은 것이 많았다.
대성을 이룬 천뢰검법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자신보다 고수를 상대로 어떻게 뇌기를 다뤄야 할지, 실마리가 조금씩 잡혔다.
‘나머지는 백수룡이 매듭짓겠지.’
언젠가는 뇌룡신검이라는 별호가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남궁수는 류설과의 싸움을 복기하는 데 집중했다.
* * *
“화풀이는 충분히 했습니까?”
“……까불지 마.”
류설은 이를 갈며 백수룡을 쏘아봤다.
일단 저 얄미운 얼굴을 한 대 패고 시작하고 싶은데, 남궁수와 한 약속 때문에 간신히 참는 중이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날이 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어디 지껄여 봐. 모용준이 배신자라고?”
류설은 백수룡이 어떤 말을 해도 조목조목 반박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녀가 상상도 못 한 이야기를 꺼냈다.
“개방 방주께서 독에 당했습니다. 그 범인으로 무림맹을 지목했고요.”
“……뭐? 무슨 소리야 그게?”
갑작스러운 개방 방주의 이야기에 류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수룡은 무한 분타에서 후개를 만난 것부터 방주를 치료한 것, 방주를 중독시킨 독의 정체, 잠시 의식을 차린 방주가 손가락으로 맹(盟)이라 쓴 것까지 전부 이야기했다.
여기에 자신의 추리를 더해, 어째서 모용준을 배신자로 의심하는지도 설명했다.
백수룡의 이야기가 끝난 후, 류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부 심증뿐이네. 그것만으로 모용준이 배신자라고 말하는 거야?”
“…….”
백수룡은 물끄러미 류설을 바라봤다. 일단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내버려 뒀다.
“그렇잖아? 누구든 범인이 될 수 있어. 밖에 나가 있는 단주들은? 잘 모르나 본데, 오단의 대주 중 한 명 이상은 늘 맹에서 대기해. 그게 심복이라면 충분히 일을 도모할 수 있어. 의천단주 그 인간도 수상해. 돌아가면 자세히 한번 조사해 봐야겠어. 그리고 또…….”
모용준을 변호하는 류설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그럴수록 백수룡의 표정은 싸늘해졌다.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믿기 싫은 거겠지.”
“……닥쳐.”
백수룡은 닥치지 않았다.
“한 가지만 묻지. 지금도 모용준을 전혀 의심하지 않나?”
“물론이지. 모용준보다 다른 놈들이 훨씬 더 수상해.”
류설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류설 정도의 고수라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표정을 숨길 수 있었다.
그조차 못한다는 건, 마음이 그만큼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멸사단주 류설.”
류설은 아까부터 백수룡의 말투가 변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억지 부리지 마라. 못 보는 게 아니라 안 보려는 거잖아.”
“닥쳐…….”
“아니면, 눈이 하나뿐이라 반밖에 못 보는 건가?”
“이 새끼가!”
벼락처럼 뽑혀 나온 흑도가 백수룡의 목 앞에서 멈췄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궁수에게 경고했다.
“움직이지 마. 확 그어 버리기 전에.”
“…….”
남궁수를 저지한 류설은 섬뜩한 안광을 쏟아내며 백수룡을 노려봤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당신이 지금 거짓말을 한다는 건 알지. 누구보다 모용준에 대해서 잘 알면서, 진실을 외면하고 있잖아?”
“닥쳐! 닥치라고. 한마디만 더 지껄이면……!”
“정신 차려. 날 벤다고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백수룡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칼날이 목에 닿아 있는데도 전혀 주눅 든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황한 사람은 류설이었다.
‘이 녀석. 분명 내공도 못 쓸 텐데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는 거야?’
백수룡에게 십존이라는 말은 이르다고 생각하지만, 간덩이의 크기라면 충분히 그 안에 들어가고도 남을 것 같았다.
지금도 백수룡은 입을 멈추지 않았다.
“당신 정도의 고수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어. 내 말을 듣고 뭔가 떠오르는 게 있을 거야. 그동안 모용준의 수상한 행동, 행적들. 떠올려봐.”
“…….”
류설은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며, 이십 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우에 대해서 생각했다.
전장에서 서로 등을 맡긴 것도 셀 수도 없었고, 함께 수많은 사선을 넘었다. 서로 못 볼 꼴까지 다 본 사이였다.
……지금도 모용준의 몸에는, 류설과 함께 싸우다 생긴 흉터가 남아 있다.
그 흉터의 위치와 형태까지, 류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로 네가?’
최근 들어서 종종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긴 했지만,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사생활까지 전부 다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함께해 온 시간을 믿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류설은 믿었던 친우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맹주 대리로 무심코 처리했던 서류 중 일부는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종종 휴가를 얻어 어딘가를 다녀올 때마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물어도 대충 얼버무렸다.
멸사단의 회식에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운 무공을 익힌다는 이유였는데, 그 무공의 정체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째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들이, 조금 섭섭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하나하나 새로운 시선으로 보였다.
“배신자라고 해서 꼭 죽일 필요는 없어. 혈교에 협박을 당했을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본 백수룡은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런……가?”
한 줄기 가능성이 류설의 마음을 움직였다.
배신이 아닐 수도 있다. 협박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혈교에 협력 중인 거라면, 그래도 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그 녀석.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긴 해.”
류설이 힘없이 중얼거리며 칼을 내린 순간, 백수룡은 모용준이 배신자임을 확신했다.
‘이걸로 확실해졌군.’
사실 그전까지는 확신은 아니었다.
의천단주, 멸사단주, 모용준.
이 셋 이외의 다른 누군가가 범인일 가능성도 적지만 있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더 류설을 더 압박했다.
그녀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친구’라는 울타리를 치우고, 모용준을 의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나온 결론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라는 말.
백수룡은 그 판단을 신뢰했다.
“하지만 배신은 아닐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잖아. 왜? 그 자식이 뭐가 아쉬워서 배신을 하겠어?”
“그건 직접 물어보면 알겠지. 도와줄 거지? 조용히 해결하려면 당신 도움이 필요해.”
류설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백수룡이 이후의 계획을 설명했다.
“내일 밤, 모용준에게 당신에게 보낸 것과 똑같은 서찰을 보낼 거야. 당신은 모용준이 집을 비우면…….”
그때였다.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낯선 목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같은 방향으로 홱 돌아갔다.
‘이렇게 가까이 접근하는데 몰랐다고?’
다들 바짝 경계하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입가에 띤 가벼운 미소.
흐릿한 존재감.
검은 무복의 왼쪽 가슴에는 멸사(滅死)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모용준…….”
“궁금한 게 있다면 제가 직접 대답해 드릴 테니까요.”
모용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은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