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15
314화. 너희가 무림맹 소속만 아니었어도
방으로 돌아온 백수룡은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일단 의천단주는 아니야.”
생각보다 의천단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뒤늦게 멸사단의 훈련장을 찾아갔을 땐,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훈련장이 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도 일단 숙소로 돌아온 참이었다.
“아니라고 확신하는 근거는?”
남궁수가 백수룡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동시에 방 안에 기막을 펼쳐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막았다.
“만약 의천단주가 우리가 찾는 배신자였다면, 장곤이라는 놈이 날뛰었을 때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 리 없어.”
백수룡은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흥분한 장곤이 칼날에 검기를 둘렀을 때, 남궁수와 의천단주가 동시에 움직여서 장곤을 막으려 했던 모습을.
남궁수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의천단주가 범인이라면, 위험에 빠진 널 구하려 했을 리 없다는 건가?”
“당연하지.”
“그조차 연기였다면? 자존심 강한 네가 끼어들지 말라고 할 것을 예상하고, 구하는 척만 했던 거라면?”
남궁수가 팔짱을 끼며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범인이 아니지.”
“어째서?”
“그 순간이야말로 날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설마.”
어떤 가정을 떠올린 남궁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백수룡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의천단주는 얼마든지 싸움에 끼어들 수 있었어. 장곤은 자기 수하니까. 싸움을 말릴 명분은 그거면 충분해. 자, 여기서 문제.”
백수룡이 긴 다리를 탁자 위에 올리며 남궁수에게 물었다.
“만약 의천단주가 날 죽이고 싶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남궁수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싸움을 말리는 척하면서 장곤과 네가 뒤엉키게 한 후 암경을 날릴 수도 있고, 근거리에서 허공섭물을 사용해 장곤의 칼을 움직일 수도 있겠지. 의천단주 정도면 충분히 그게 가능한 고수일 테니.”
대련 중에 칼날을 한 치만 옆으로 움직이면, 가벼운 찰과상을 죽음에 이르는 치명상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범행은 장곤이 전부 뒤집어썼을 것이다.
백수룡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모범생. 정답이야.”
“하,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렇게까지…….”
백수룡이 말해 주기 전까지, 남궁수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머리가 영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평화로운 정파에서 태어나고 자란 무인의 상상력의 한계.
반면, 전생에서 혈교의 약육강식을 경험한 백수룡에게 이 정도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상대는 혈교에 붙은 배신자야. 독심이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을걸.”
남궁수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백수룡을 바라보는 남궁수의 표정이 묘하게 싸늘했다.
“……그럼 의천단주가 남의 칼을 빌려서 널 죽일지도 모르는 상황에, 넌 그걸 확인해 보려고 가만히 있었다는 건가.”
“티 안 났지?”
백수룡이 뿌듯하게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과 달리 싸늘하기만 했다.
“백수룡. 너는 왜 항상 그런 식이지?”
“……또 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남궁수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백수룡을 노려봤다. 그의 샛노란 금안에서 벼락이 뿜어질 듯했다.
“그런 계획이 있다면 내게 미리 귀띔 정도는 해 줬어야지. 만약 의천단주가 정말로 널 죽이려고 했다면 어쩔 뻔했나? 그대로 죽을 생각이었나?”
“죽긴 누가 죽는다고…….”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모양이군.”
파지지직!
뇌기까지 피어 올리며 노려보는 남궁수의 눈빛에 백수룡이 움찔했다.
하지만 백수룡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나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거든? 중간부터 이렇게 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그때라도 신호를 보냈어야지. 최소한 날 한번 쳐다보기만 했어도 더 경계했을 거다.”
만약 백수룡이 죽거나 다치기라도 했다면, 남궁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음, 그건 미안하다.”
백수룡이 순순히 사과하자, 남궁수도 낮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부턴 옆에 있는 사람도 신경 쓰도록.”
잠시 멈췄던 추리가 이어졌다.
“어쨌든 의천단주는 용의자에서 제외. 그렇다면 멸사단주와 부단주. 둘 중 하나라는 건데.”
“둘 다일 가능성은? 멸사단주와 부단주는 오래전부터 막역한 사이라고 들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한 명일 거야.”
숫자가 적을수록 얻는 보상도 크다.
그리고 비밀이 새어 나갈 걱정도 적다.
백수룡은 배신자는 한 명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다.
“확률은 반반. 둘 다 같은 멸사단에 소속된 단주와 부단주라…….”
백수룡이 곰곰이 고민하던 때, 남궁수가 말을 꺼냈다.
“두 사람은 거의 이십 년 지기라고 했지?”
“그렇다더라.”
류설과 모용준은 무림맹에 입맹했을 때부터 알고 지냈다고 했다.
“그 정도면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고 봐도 되겠군.”
“류설이 마공을 익힌 걸 모용준이 알고 있을 정도니까. 그게 왜?”
남궁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그런 친구에게 뭔가 변한 것이 있다면, 서로가 가장 먼저 알지 않았을까?”
“……배신을 눈치채고 있을 거란 얘기야?”
“배신까지는 모르더라도.”
남궁수는 천장을 향하던 시선을 내려 백수룡을 똑바로 바라봤다.
“뭔가 달라졌다는 사실은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한다든가.”
백수룡이 무림맹 정문을 부수고 난장을 피웠다고 했을 때, 남궁수는 그것이 백수룡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의천단주를 도발하고 스스로 산공독을 삼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십 년 지기라면 그보다 훨씬 더 서로를 잘 알지 않을까?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네.”
백수룡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십 년 지기라면, 친구의 변화를 어느 정도는 눈치챘을 가능성이 컸다.
배신까지는 미처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의구심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 터.
“우리가 그 의심에 확신을 준다면?”
“뭔가 반응이 있겠지. 친구를 지켜 주려고 하든, 진실을 확인해 보려고 하든, 아니면…….”
백수룡과 남궁수의 입매가 비슷하게 뒤틀렸다.
“자신의 죄를 덮어씌우려고 할 수도 있겠지.”
“확인해 보자고. 둘 중 누구의 우정이 가짜인지.”
* * *
“웬 서찰이래?”
멸사단주 류설은 하인이 가져다준 서찰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퇴근 후 목욕재계를 하고 이제 막 나온 참이었다.
이미 꽤 늦은 밤. 반쯤 열어 둔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공문서는 아니고. 이 시간에 내게 보내는 개인적인 서찰이라……. 혹시 연서?”
예전에는 제법 자주 연서를 받았다.
하지만 멸사단주가 된 이후로는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함부로 들이대다가 대가리가 깨진 사내의 숫자가 백 명이 넘어간 이후부터였던가?
“누군지 몰라도 귀엽네.”
류설은 봉투를 뜯고 서찰을 꺼내 읽었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백수룡? 그 녀석이 왜……. 이거 설마 진짜 연서야?”
류설은 흥미롭게 서찰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은 점점 무섭게 굳어 갔다.
서찰을 다 읽었을 때, 류설의 표정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촤악, 촤아악!
서찰을 갈가리 찢어 버린 류설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하인들이 깜짝 놀라 방으로 들어왔다.
“단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류설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순간적으로 고함을 지르긴 했지만, 서찰에 적힌 내용은 어디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는 겉옷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예? 이 시간에 어디를…….”
“늦을 수도 있어. 기다리지 마.”
휘이익!
경공을 펼친 류설의 몸이 순식간에 하인들을 지나 담을 넘었다.
그녀는 무한의 밤거리를 질주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뭐? 배신자?”
「모용준이 무림맹을 배신하고 혈교와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그것 외에도 이런저런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류설에 뇌리에 제대로 박힌 것은 그 몇 줄이었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밤, 아래에 적힌 주소로 혼자 와 주시길.」
류설은 그 서찰이 자신을 꾀어내기 위한 함정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 마공에 대해서 언급했어. 백수룡이 보낸 건 확실해.’
설사 함정이라도 상관없었다. 전부 박살 내면 그만이니까.
류설은 이를 꽉 악물었다.
감히 이딴 내용을 적어 보내다니?
눈앞에 백수룡이 있다면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십 년 지기에 대한 몇 가지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꽤 오랫동안 정체돼 있다가 최근 몇 년 동안 갑자기 크게 진보한 무공.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종종 이유 없이 자리를 비우던 순간들.
알게 모르게, 낯설게 느껴지던 표정들.
‘설마, 설마…….’
“하! 말도 안 되는 소리.”
류설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깟 서찰 하나에 친구를 의심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모용준이 무림맹을 배신했다고? 대체 뭐가 아쉬워서?
오단의 부단주는 충분히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지위다.
모용준이 원한다면, 그녀는 단주 자리도 양보할 수 있었다.
비록 맹주 그 영감이 허락하지 않겠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 단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백수룡이 보낸 서찰에 적힌 내용은 모두 개소리에 불과하다.
남궁세가에서 혈교를 때려잡더니 헛바람이 든 것이 분명했다.
“……그딴 개소리를 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어.”
류설의 하나뿐인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그녀의 신형이 한 줄기 바람이 되었다.
잠시 후, 그녀는 도시 외곽의 무너져 가는 폐가에 도착했다.
콰앙!
벽을 부수고 들어가자, 백수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군요.”
“일단 한 대 맞자.”
류설의 허리춤에 있던 한 자루 흑도가 도집째로 뽑혀 나왔다. 검은 궤적이 백수룡의 어깨를 노렸다.
쩌어엉!
어느새 검을 뽑아 든 남궁수가 백수룡을 앞을 가로막았다. 그가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녀석을 해치려면, 저를 먼저 베어야 할 겁니다.”
“그래. 너도 한패였니?”
“선배님. 우선 진정하시고…….”
“닥쳐! 누가 네 선배야!”
류설은 사자후를 터트렸다. 그러자 폐가의 벽에 난 실금이 깊어지고, 지붕이 들썩였다. 류설이 내공을 끌어올린 여파였다.
콰콰콰콰-!
류설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구쳤다. 하나뿐인 눈에서는 살기가 폭사했다. 무지막지한 공력의 경파가 폐가 안을 휩쓸었다. 흡사 폭풍이 몰아친 듯했다.
‘마공을 안 써도 이 정도라고?’
백수룡은 눈을 부릅떴다.
강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류설의 존재감은 그 이상이었다.
두 자루 흑도를 아래로 늘어뜨린 그녀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너희가 무림맹 소속만 아니었어도 이 자리에서 죽여 버렸을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남궁수와 백수룡은 확신했다.
류설은 배신자가 아니다.
“지금도 반쯤 죽여 놓을 생각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녀를 설득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