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39
338화. 신월빙백무(新月氷白舞)
오래전, 빙월신녀에게 그녀의 무공에 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은사부. 사부의 빙백신공이 빙궁의 빙백신공과 다른 점이 무엇이오?
다른 사부들의 무공은 전부 그들의 독문무공이라 할 만했다.
맹사부의 녹림십팔식은 그가 직접 창안한 무공이었고, 광마 사부의 수라혈천도는 파천도를 바탕으로 했으나 아예 다른 무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검존 사부 역시, 모용세가의 검법에 자신만의 깨달음을 정리해서 새롭게 무극검을 창안했다.
그러나 은사부의 빙백신공은 북해빙궁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빙백신공에 수록된 초식을 집대성해 하나의 연환식으로 만들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마저 아직 미완성이었다.
-구결은 크게 다르지 않아. 빙백신공은 이미 완전무결한 신공이기에, 어설프게 재정립하는 건 오히려 무공을 망치는 일이지.
-그거 우리 들으라고 하는 말이냐?
-어이가 없군.
맹사부와 광마 사부가 발끈했지만, 은사부는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하나같이 자기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부들이었다. 각자 무공에 대한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때론 그것 때문에 온종일 싸우기도 했다.
-그럼 작게 다른 부분은 뭐요?
은사부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심상(心像).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무공의 형태.
은사부는 그것이 자신의 빙백신공이 빙궁의 무공과 다른 점이라고 강조했다.
-빙백신공은 북해의 거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공이야. 인간이 극한의 자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언제나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지.
은사부는 잠시 끊었다가 다시 말했다.
-달리 말하면, 감정을 극도로 절제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
차갑고 표정이 거의 없는 얼굴.
무림에 알려진 북해빙궁 무인들의 공통된 인상이었다.
절세미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빙월신녀의 인상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거야 다 그렇지 않소? 살아남으려면 냉철해야 하고, 감정적으로 판단해선 안 되지.
전생의 백수룡도 혈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잡기를 익히고, 감정보다는 늘 이성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다. 그가 처했던 환경은 북해 이상으로 혹독했다.
-……너도 그랬겠지. 나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았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은사부의 입가에 맺히던 애달픈 미소.
-서안에서 그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조금씩 감정을 배웠지. 낯설고 신비한 감정들. 그런데 그것이 무공에도 영향을 끼칠 줄이야. 어느새 무공에 대한 심상(心象)이 바뀌더구나. 내 안의 차갑고 단단한 얼음 속에, 불꽃이 피어나 있었어.
-…….
-처음에는 주화입마라고 생각했다. 거부하려고도 해 봤지. 그 사람을 밀어낸 적도 있었어. 그러나 괴롭기만 할 뿐이었다.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은사부는 웃었다. 이번에는 맑은 웃음이었다.
-차라리 무공을 포기하더라도, 내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만큼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었으니까.
-……놀랍군.
빙월신녀와 같은 절세고수가 무공을 포기한다?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했을 필사적인 노력, 시간, 집념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결정이었을까.
-빙백신공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어.
하지만 그 결정은, 오히려 빙월신녀의 무공을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주화입마가 아니라, 새로운 무공으로 변하기 시작한 거야. 그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초식이 전혀 달라 보였고, 구결이 새롭게 느껴졌지. 고작 마음가짐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야.
-…….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빙백신공.
빙궁의 후예들이 냉철한 이성으로 익혀 온 절세의 신공에, 불필요한 감정은 불순물처럼 여겨졌었다.
하지만 북해빙궁 역사상 최고의 기재라 불리는 은예린은 그 금기를 깼다.
-……솔직히 납득이 잘 안 되는군. 그게 정말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보기엔 무공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사부가 얻은 깨달음의 영역 같은데.
그의 말에, 은사부는 조금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네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구나. 진심으로.
-나보고 은사부처럼 정인이라도 만들라는 소리요?
-그것도 좋고, 다른 방식도 있겠지.
-…….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빙백신공의 구결은 이미 완벽했다. 당시에는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나중에, 이곳에서 탈출한다면 그때 생각해 보겠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 * *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준비가 더 필요하오?”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백수룡을 상념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저벅, 저벅.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기세가 달라진다. 마치 태산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엄청나군.’
제대로 집중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백수룡은 은사부와의 추억을 잠시 옆으로 미뤄 놓았다.
“이제 끝났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검노가 손을 옆으로 뻗자, 멀리서 검이 휘익 날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젊은 시절. 나는 빙월신녀와 싸워 본 적이 있소.”
“…….”
곳곳에 이가 빠진, 낡고 투박한 철검이었다. 손질하지 않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 보였다.
그러나 백수룡에게는 그 검이 산이라도 찍어 누를 것처럼 거대해 보였다.
“결과는 내 완패였소. 삼십 초를 버티지 못했던가. 혈기왕성했던 시절이라 충격이 무척 컸지.”
당시의 빙월신녀에게 삼십 초식을 버틸 수 있었으면, 못해도 백대고수에 들었던 고수였을 것이다.
“그때 빙월신녀는 불과 약관을 조금 벗어난 나이였는데, 이미 무림에서 당해낼 자가 몇 없을 만큼 고강한 무인이었소.”
검노는 덤덤히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의 기세는 흉악해져 가고 있었다.
꿀꺽.
백수룡은 마른 침을 삼키며 검노를 주시했다. 그의 검이 천천히 들어 올려져 백수룡을 겨눴다.
“……언젠가 빙월신녀가 돌아온다면 다시 겨뤄 보고 싶었소. 예전처럼 맥없이 당하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유언을 남긴 것이 사실이라면 확인해 볼 길이 없게 되었군.”
“죄송하지만, 스승에게 선배님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검노의 입매에 흐릿한 웃음이 번졌다.
“그럴 테지. 당시 그녀에게는 한 남자밖에 보이지 않았을 테니. 이야기가 길었군. 시작해도 되겠소?”
백수룡이 기수식을 취했다.
다리는 자연스럽게 벌리고, 왼손바닥은 앞으로, 오른손은 주먹을 살짝 말아쥐고 옆구리에 붙였다.
“청룡신협 백수룡입니다. 여러 가지 무공을 익혔지만, 이 자리에서는 빙공만을 사용하겠습니다.”
검은 일부러 뽑지 않았다. 빙공이 아닌 검법이 주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빙월신녀의 무공으로, 그녀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검노요. 이름은 오래전에 잊었소.”
마주 예를 취한 검노가 성큼 보법을 밟아 접근해 왔다.
‘북해빙궁과는 다른, 빙월신녀의 무공.’
그 화두가 백수룡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과거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우웅-!
왼손의 빙백환이 주인의 의지에 반응했다.
그와 동시에 새하얀 기류가 백수룡의 전신을 휘감았고, 북풍한설을 연상케 하는 매서운 바람이 발밑에서부터 몰아쳤다.
“그 팔찌, 신녀의 것이로군.”
어느덧 지척까지 다가온 검노가 중얼거렸다.
검을 휘두르면서도 그의 눈은 한없이 무심했다.
후우웅!
낡고 투박한 검이 눈에 뻔히 보이는 경로로 날아온다. 그러나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백수룡은 이를 악물고 쌍장을 뻗었다. 새하얀 냉기가 휘감긴 손바닥과 검이 충돌했다.
쩌어엉-!
백수룡은 뒤로 물러나며 충격을 분산시켰다.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검력이 어마어마했다.
아직 전력을 다한 것 같지도 않은데.
‘역시 강해.’
독고준이 수십 년 동안 독고구검을 연마한다면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그만한 강검을 펼치고도 검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시 가겠소.”
화아악!
신법이 무지막지하게 빨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 검노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백수룡은 빙백신장을 연달아 펼쳐 냉기의 방벽을 만들었다. 가공할 한빙지기에 검노의 눈썹에도 서리가 맺혔다.
그러나 검노는 우직하게 뚫고 들어와 검을 휘둘렀다.
콰직! 콰지지직!
백수룡은 순식간에 눈앞까지 짓쳐든 검노의 눈동자에서 실망한 기색을 읽었다.
‘빙월신녀만의 빙공.’
백수룡은 그 화두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무공을 펼쳤다.
빙공을 익힌 이후로, 이처럼 필사적으로 펼쳐 본 적은 처음이었다.
“강하군. 허나 내가 아는 빙월신녀의 무공은 이것과 다르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오. 곧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농담을 좋아하지 않소.”
정색한 검노가 진각을 밟았다. 지반이 터져 나간 직후, 그의 검은 백수룡의 눈앞에 있었다.
콰아아아앙!
이번에는 숫제 벽력탄이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백수룡이 낭패한 기색으로 튕겨 날아갔다. 입가에 핏물이 흘렀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젠장…….’
괜히 빙공만 사용하겠다고 했나, 순간 후회가 되었다.
백수룡의 눈에서 후회하는 기색을 읽은 검노가 말했다.
“행여나 도망칠 생각은 마시오. 그대는 이미 술법진 한가운데에 있으니.”
체감상 십여 장은 튕겨 나간 것 같은데, 두 사람은 여전히 같은 풍경 속에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분명 낮이었는데, 어느새 주변은 밤이 되었다.
하늘에 떠 있는 비상식적으로 큰 초승달은 풍월화공이 부린 술법의 조화가 분명했다.
우우웅-!
검노의 낡은 철검 위로 강기가 맺혔다. 지금까지도 무지막지했는데,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이나 다름없었다.
손등으로 입가의 피를 닦아 낸 백수룡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그대가 진짜 실력을 감추고 있음을 알고 있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드러내지 않을 테지.”
“…….”
맞는 말이었다. 백수룡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다른 사부들의 무공은 물론이고, 역천신공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검을 뽑으시오. 그대가 고절한 검객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소.”
“싫습니다.”
백수룡은 오기가 생겼다.
자신은 빙월신녀의 유일한 제자인데,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준 은사부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무공에 대한 심상(心象)이 바뀌더구나.
-내 차갑고 단단한 얼음 속에, 불꽃이 피어 있었어.
-그것도 좋지만, 다른 방식도 있겠지.
검노와 싸우면서 은사부와 나눈 대화를 계속해서 되새겼다.
‘은사부에게 생긴 불꽃은.’
예전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서안에 와서 그녀의 초상화를 본 지금은 어쩐지 알 것 같았다.
평생을 북해의 궁전에서 무공만 익히던 소녀에게 생긴 감정.
한 사람을 마음에 품고, 그 사람을 위해 무공까지 버릴 각오를 했으며, 위험임을 알면서도 함정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간절한 마음.
‘나는 어떨까.’
전생의 혈교 교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정인도.
주변에는 경쟁자 아니면 적뿐이었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만 했다.
그 차갑기만 한 현실 속에서, 마음에 온기를 품을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족이 있고, 망나니 제자 놈들도 있고, 동료들도 생겼지.’
-네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구나. 진심으로.
은사부와 꼭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빙백신공의 구결을 다시 되뇐다. 차갑게만 흐르던 진기에 마음으로 한 줄기 온기를 심는다.
화르륵!
백수룡의 내면에 불꽃이 피어났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빙백신공을 다시 펼쳐낸 순간, 그것은 비로소 놀라운 변화를 드러냈다.
쩌어어……저저적!
검노의 철검에 산산이 부서지던 얼음이 다시 달라붙는다.
한기가 강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며, 주변을 장악해 나갔다.
검노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이건…….”
검노가 멈춰 섰다. 산이라도 쪼갤 것 같던 기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스르릉.
백수룡은 검을 빼 들었다.
마침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다. 술법으로 만들어 낸 달이지만, 오히려 더 분위기를 내기에 좋았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난 날, 초승달이 떴었지.
초승달 아래에서, 백수룡은 검무를 추었다.
그를 중심으로 수많은 얼음 알갱이가 사방으로 부유한다. 은은히 내리쬐는 달빛이 얼음 조각에 반사돼 환상보다 더 환상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
풍월화공은 넋을 놓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붓이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빙월신녀 은예린이 빙백신공의 초식을 집대성해 만든 오의(奧義).
어느새 검무를 끝내고 멈춰선 백수룡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월빙백무(新月氷白舞). 스승께서 정인을 그리워하며 만든 초식입니다. 저는 검이 가장 익숙해 검으로 보여 드렸습니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오.”
검노가 검을 내렸다.
더 이상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본 것은 틀림없는, 빙월신녀의 무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