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73
372화. 오늘은 특별히
위지천의 검이 천천히 움직였다.
체구가 작은 소년이 쥔 검은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검과 마주한 학생들은 전신의 근육을 잔뜩 긴장시켰다. 그 끝이 부디 자신을 향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꿀꺽…….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는 와중에, 간간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위지천이 모두에게 강요한 침묵이었다.
그리고 위지천이 한 발 내딛는 순간, 대부분의 학생이 그 움직임을 놓쳤다.
“장연!”
유이란이 조원의 이름을 외쳤을 땐, 위지천은 이미 그 앞에 있었다.
“내가 막을게!”
장연이라 불린 학생은 상검연 소속이었다.
방학 동안 위지천과 함께 수련했고, 검술 시범도 수십 번을 넘게 보았다.
그래서 자신 있게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한두 번 정도는 혼자서도 막을 수 있어.’
준비된 내공이 전신으로 내달리고, 수축시켰던 근육이 폭발적인 힘을 쏟아 냈다. 팽팽하게 당겼던 시위를 놓은 것처럼 장연의 검이 쏘아졌다. 지켜보던 학생들 대부분이 감탄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와라!”
장연은 다음 초식은 생각하지 않고 전력을 다했다. 어차피 한 번만 막으면 조원들이 와 줄 테니까.
아니, 어쩌면 이 공격으로 위지천을 물러나게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자신 있게 펼쳐 낸 초식이었다.
하지만 장연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방학 동안 장연이 위지천의 검술 시범을 보면서 익숙해진 것 이상으로, 위지천은 장연의 검술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어?”
위지천은 서슴없이 장연의 검로 안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소년의 몸이 둘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어진 장면 어디에도 피륙이 잘리거나 피가 튀지 않았다. 그저 멍한 표정의 장연과 그 곁을 스쳐 지나가는 위지천이 보일 뿐이었다.
위지천은 장연의 곁을 스쳐 가며 속삭이듯 말했다.
“선배는 죽었어요.”
“……!”
잘린 옷자락의 틈새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위지천의 검이 긋고 지나간 흔적. 심장 어림이었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장연은 창백해진 얼굴로 위지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떻게 당했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
실전이었다면 방금 그 일 합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더 이상 검을 쥘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수도 없었다.
백수룡이 장연을 불러냈다.
“장연은 바깥으로 나와라.”
“네, 네…….”
모의전에서 적의 숫자를 하나 줄였지만, 위지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차분한 눈으로 다음 먹잇감을 노릴 뿐이었다.
“동시에 공격해!”
유이란이 선두에서 달려오고, 그 좌우로 창과 도를 든 학생들이 받쳤다. 뒤에서는 여민이 호시탐탐 공격할 기회를 노렸다.
까가각-!
위지천은 유이란의 검격을 옆으로 흘리며 우측의 창을 찔러오는 상대에게 접근했다. 과감하게 파고들자 상대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젠장……!”
서걱!
창대의 중간을 그대로 베어 버린 위지천은 물러나려는 상대의 관자놀이에 검면을 살짝 갖다 댔다가 뗐다.
“죽었어요.”
말을 뱉음과 동시에 위지천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공간을 칼날이 꿰뚫었다.
위지천은 공중에서 몸을 틀었다. 아래에서 솟구치는 유이란의 검을 강하게 쳐 내고, 그 반탄력을 이용해 다시 거리를 벌렸다.
“너!”
유이란이 분한 표정으로 쫓아왔지만, 위지천은 지금은 그녀와 싸울 생각이 없었다. 약한 상대부터 하나씩 쓰러뜨릴 계획이었다.
위지천의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이, 이쪽으로 오지 마!”
“빨리 좀 도와줘!”
“젠장! 동선 겹치지 말라고!”
오합지졸인 십조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팔조도 오늘 처음으로 합을 맞춰 본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연수합격을 펼치기엔 아직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위지천은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적들이 서로의 움직임을 방해하도록 유도한 후, 사각으로 파고들어 날카로운 일검으로 한 명씩 마무리했다.
“죽었어요.”
“죽었어요.”
“죽었어요.”
위지천의 입이 열릴 때마다 누군가가 무기를 놓치거나 바닥에 주저앉았다. 십 대 일이었던 숫자가 어느새 오 대 일까지 줄어들었다.
“……미친…….”
“완전 괴물이잖아…….”
학생들이 숨 쉬는 것조차 잊고 바라보는 동안 팔조에서 다섯이 쓰러졌다. 그동안 위지천은 숨이 조금 가빠진 것이 전부였다.
“하! 저게 정말 학생의 검이라고?”
“초식의 완급 조절이 경이로운 수준이야…….”
강사들조차 경탄스럽다는 표정으로 위지천을 바라봤다.
위지천이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학생이 아니라 절정의 무인이 싸우는 모습을 관전하는 기분이었다.
“저 녀석이라면…….”
“정말 혼자서 열 명을 다 이겨 버릴지도…….”
학생들이 홀린 듯한 표정으로, 강사들은 감탄 어린 시선으로 위지천이 만들어 내고 있는 대역전극을 지켜볼 때였다.
“천이가 이기긴 힘들 거야.”
찬물을 끼얹는 백수룡의 말이었다.
그는 위지천에게 검을 가르친 스승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누구보다 냉정하게 자신의 제자를 바라볼 수 있었다.
“위지천이 못 이길 거라고요?”
옆에 있던 악연호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백수룡이 말하는 그 잠깐 사이에 위지천은 둘을 더 쓰러뜨렸다.
십조는 이제 셋밖에 남지 않았다.
“저 기세면 순식간에 전부 쓰러뜨릴 것 같은데요?”
동의한다는 듯 다른 강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상대가 평범한 학생들뿐이었다면 열 명이 아니라 스무 명이 와도 위지천을 당해 낼 수 없겠지. 하지만…….”
백수룡의 시선은 또 다른 자신의 제자, 여민에게 향했다.
“상대편에 영악한 녀석이 한 명만 섞여 있어도 이야기가 달라지거든.”
십조에 남은 인원은 셋.
여민, 유이란, 그리고 도를 사용하는 남학생 한 명이었다.
위지천은 셋 중 가장 약한 남학생부터 쓰러뜨릴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해 온 방식과 같았다.
‘조금만 더.’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 그래서 위지천은 아예 호흡을 멈췄다.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찰나에 결정되는 승부. 검 끝이 흔들리지 않도록 무호흡 상태에서 검을 휘둘렀다.
쩌엉!
첫 일검은 유이란과 교환했다. 힘에서 다소 밀린 유이란의 검이 옆으로 살짝 밀려났다. 위지천은 왼발을 축으로 몸을 팽그르르 회전시키며 그 옆에 있는 남학생의 도까지 위로 올려쳤다.
‘이제 두 명.’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학생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크게 관심은 없었다. 어차피 이 사람도 곧 쓰러질 테니까.
“선배는 죽었…….”
그 순간, 위지천의 몸이 살짝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함정!’
위지천은 발밑에 살얼음이 얼어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 얼음 때문에.
서걱!
검혼의 궤적이 허공을 갈랐다. 위지천이 싸움을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만큼 큰 빈틈이 드러났다.
그리고 유이란은 그 빈틈을 노리기에 충분한 실력을 갖춘 검객이었다.
쩌어엉!
“크윽!”
처음으로 위지천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참았던 호흡이 한 번에 터지며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았다.
낭패한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소년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한 상대부터 하나씩 쓰러뜨리겠다는 작전은 나쁘지 않았어.”
“여민 선배…….”
“하지만 우리가 바보도 아닌데 계속 같은 방식에 당해 주겠어? 뻔히 누굴 노릴지 아는데?”
전신에 새하얀 냉기를 휘감은 여민이 위지천에게 달려들어 맹공을 퍼부었다. 지금껏 위지천과 거리를 좁히지 않았던 그녀가 경쾌한 움직임으로 쥘부채를 휘둘러 왔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우리의 승리야!”
유이란도 마찬가지였다. 위지천이 호흡을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전력으로 덤벼들었다.
까가가강!
앞뒤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위지천은 한번 잃은 호흡을 되찾지 못하고 연신 밀렸다.
“혼자서 그렇게 날뛰었으니, 아무리 너라도 체력이 남아날 리 없지.”
후우, 후욱…….
위지천의 어깨가 위아래로 크게 들썩였다. 빠르게 지쳐 간다는 증거였다.
반면 여민은 쌩쌩했다. 싸움이 시작된 후로 계속 견제만 하면서 체력을 아꼈고, 위지천이 지쳐 빈틈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여민이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천이 네가 우리 편을 몇 명 쓰러뜨리든 상관없었어. 우린 너만 잡으면 되잖아?”
“치사해……!”
“우리가 치사하게 굴어야 할 만큼 네가 센 거야.”
이번에는 유이란의 말이었다.
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받더니 동시에 위지천을 향한 공세를 높였다. 북풍한설이 매섭게 몰아치고, 검풍이 사방을 할퀴었다.
“항복할 생각은?”
“없어요!”
“그럴 줄 알았어.”
여민과 유이란은 위지천을 상대로 철저하게 차륜전을 펼쳤다.
처음 손을 맞춰 본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공격과 수비가 정교하게 맞물렸다.
두 학생 모두 높은 수준의 무공을 가지고 있었고, 이해력도 뛰어났다.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금방 서로의 움직임에 적응했다.
백수룡은 분한 표정으로 힘겹게 검을 휘두르는 위지천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쉽겠지. 분명 이길 기회도 있었으니까.’
위지천이 다섯 명쯤 쓰러뜨렸을 때, 십조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그때 우왕좌왕하는 적들을 무시하고 유이란을 기습해 쓰러뜨렸다면, 그 기세로 십조를 전멸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위지천은 약한 상대부터 한 명씩 쓰러뜨리는 방식을 고집했고, 여민과 유이란이 전음으로 의견을 나눌 시간을 주었다.
‘결국은 경험이 부족한 탓이지.’
그러나 백수룡은 이런 위지천의 미숙한 모습을 보는 것도 썩 즐거웠다. 여전히 가르칠 게 많다는 의미였으니까.
결국 잠시 후, 유이란의 검과 여민의 쥘부채가 위지천의 가슴과 등에 동시에 닿았다.
“……졌습니다.”
위지천의 패배 선언이었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싸움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세 사람에게 박수를 치거나 환호성을 보냈다.
여민은 시무룩해진 위지천의 볼을 쭈욱 잡아당기며 웃었다. 어깨가 축 처진 모습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어이구 우리 천이. 누나한테 져서 기분이 안 좋아?”
“그건 아닌데…….”
정작 위지천은 가만히 있는데, 유이란이 흠칫 놀라서 정색을 했다.
“지,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다 큰 남자의 얼굴을……!”
“얘가 무슨 남자야? 그냥 어린애지.”
“…….”
분한 듯 입술을 깨물며 여민을 노려보는 유이란과 황당해하는 여민을 뒤로하고, 위지천은 자신의 조원들을 향해 힘없이 걸어갔다.
그렇게 ‘대혈교전 모의 전투’의 첫 수업이 모두 끝났다.
백수룡은 학생들을 모두 모아 놓고 말했다.
“첫 모의전으로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전력분석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직접 붙어 본 조뿐만이 아니라, 다른 조에 대해서도.”
그 말에 학생들, 특히 조장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는 표정이 밝았고, 일부는 표정이 어두웠다.
오늘 첫 수업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고, 강자와 약자도 구분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승리한 조는 다음에도 이길 수 있도록, 오늘 패배한 조는 다음엔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하자. 알겠나?”
“네!”
“대답은 잘해요. 좋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났다는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아직 백수룡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각자 흩어지려는 학생들을 향해, 백수룡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깜빡할 뻔했군. 오늘은 특별히 조별 과제를 내주겠다.”
밝아졌던 학생들의 얼굴이 거짓말처럼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