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78
377화. 조장들 (5)-마지막
조별 과제에 무임승차하려던 두 학생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꼬리를 말았다.
“아니, 우리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
“하하……. 왜 정색을 하고 그래? 농담 좀 한 것 가지고.”
무공만 센 풋내기인 줄 알았던 위지천의 단호한 말투는 정말 두 사람을 쫓아낼 기세였고, 지난 회의 때만 해도 같은 편이었던 조원들마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눈치가 있다면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전풍이 팔짱을 끼며 두 학생을 노려봤다. 위지천에게 가장 먼저 포섭된 그는 나쁜 선배 역할을 자처했다.
“지금 너희들 태도를 봐선 앞으로도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조장 말처럼 여덟 명만 되어도 크게 불리할 건 없어. 제대로 할 생각이 없는 녀석들이 낀 열 명보다는 똘똘 뭉친 여덟이 낫지.”
제대로 사과하라는 압박이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던 두 학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후배에게 사과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번 학기 최고의 인기 수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미안. 우리가 경솔했다.”
“앞으로는 떠넘기지 않고 열심히 협조할게.”
결국, 둘 다 포권을 취하며 위지천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저도 잘못한 게 있으니, 이번 일은 서로 앙금이 남지 않았으면 해요.”
위지천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눈짓으로 악역을 자처해 준 전풍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말로는 둘 정도 없어도 된다고 했지만, 여덟 명보다는 당연히 열 명이 함께 싸우는 게 더 나았다.
“그럼 두 분은 다음 모의전에서 저와 함께 선두에서 싸워 주세요. 도와주실 거죠?”
“무, 물론이지.”
“열심히 할게…….”
두 선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십조의 갈등은 잘 수습되었고, 이어진 회의는 전과 달리 조원들의 협조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객잔 구석에 숨어서 위지천을 지켜보던 목형우와 헌원강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다.”
“천이 녀석. 제법이네…….”
일이 잘못 흘러가면 전음을 보내거나 개입하려고 했지만, 삼 학년 전풍이 위지천에게 힘을 실어 준 덕분에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참모를 잘 만나는 것도 운이지. 십조는 다음 모의전 때 만나면 쉽지 않겠어.”
목형우는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긁적이며 피식 웃었다. 막냇동생 보듯 흐뭇한 얼굴로 위지천을 바라보면서였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헌원강을 바라봤다.
“이젠 네 차례지?”
“……가자고.”
심호흡을 한 헌원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백룡객잔을 나와 청룡학관 기숙사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위지천과 달리, 헌원강은 회의라는 명목으로 조원들을 부르지 않았다.
목형우가 헌원강에게 해 준 첫 번째 조언이 바로 ‘권위적인 모습을 내려놔라.’라는 것이었으니까.
“난 저쪽에 숨어 있을 테니까, 일이 잘 안 풀리면 전음을 보내라.”
“……고마워. 선배.”
잠시 후, 기숙사 앞에 도착한 헌원강은 안에 연통해 조원 한 명을 불러냈다.
“헌원강 선배님?”
당황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소년은 일 학년 영호식이었다.
헌원강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딱딱하게 부르지 말고, 편하게 원강 선배라고 불러.”
“아, 네…….”
“호식아. 잠깐 얘기할 시간 있냐?”
“……이번엔 제 이름 안 틀리셨네요.”
목형우가 헌원강에게 가장 먼저 시킨 것은 자기 조원들의 이름과 학년, 소속 동아리 등을 외우게 한 것이었다.
-네가 조원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 줘. 그리고 공통점이 있다면 그걸로 대화를 이어 가 봐.
그 조언을 되새기며, 헌원강은 미리 준비해 온 대화 주제를 꺼냈다.
“너 상검연 소속이라며? 그럼 우리 지천이랑은 면식이 있겠네?”
“합숙 때 같이하긴 했어요. 별로 친해지진 못했지만요. 위지천은 거의 선배들하고 다녀서…….”
“그 녀석이 숫기가 좀 없긴 하지.”
“검술 교관으로 나설 때는 야차가 따로 없던데요?”
공통된 화제가 생기자 대화가 물 흐르듯 쉽게 이어졌다.
지난번에는 왜 이런 쉬운 것을 몰랐나 싶을 정도였다.
“상검연은 이번 청룡제 때 뭐 하냐? 거기는 동아리 행사 크게 하기로 유명하잖아.”
“동연 회장이시면서 모르세요?”
“크, 크흠! 그랬지. 내가 회장이었지.”
조별 과제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먼저였다.
오히려 영호식이 먼저 물어보았다.
“선배님. 조별 과제 때문에 찾아오신 것 아니에요?”
“그런 건 천천히 하려고, 우선 좀 친해지고 나서.”
“……저하고요?”
“너 포함해서 조원들 모두.”
헌원강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지난번엔 내가 좀 과했지? 조별 과제가 처음이다 보니 의욕이 너무 앞섰다. 강압적으로 느껴졌으면 미안하다.”
“…….”
그 솔직한 사과에 영호식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헌원강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소문이 아직도 별로 안 좋은 거 알아. 거기에 대한 변명은 안 해. 대신 그만큼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 중이야. 조원들한테 함부로 안 하고, 너희가 의견을 내준다면 주의 깊게 들을게.”
“……확실히 소문하고 다르긴 하네요.”
영호식은 묘한 표정으로 헌원강을 바라봤다.
처음 헌원강과 같은 조가 되었을 때만 해도, 소문이 무시무시한 선배와 같은 조가 되었다는 사실에 잔뜩 위축됐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헌원강의 모습은 권위적인 선배와는 거리가 멀었다. 먼저 찾아와서 사과를 하다니. 입관 후 어떤 선배에게서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저 말고도 저희 조에 일 학년 한 명 더 있는데요. 서진우라고. 걔도 부를까요?”
“물론이지!”
헌원강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목형우는 헌원강이 생각보다 후배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곤 흐뭇하게 웃었다.
“내 도움은 더 이상 필요 없겠네.”
어린 동생들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사실은 아저씨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나이 차이긴 하지만, 같은 학관에 다니는 후배들이니 형이라고 우겨 보기로 했다.
“연무장에서 수련이나 하고 있어야겠군.”
몇 시진 후.
연무장에서 땀 흘리며 수련 중이던 목형우에게 헌원강과 위지천이 찾아왔다.
“선배님!”
“선배!”
각각 조원들을 만나고 온 위지천과 헌원강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일이 잘 풀린 덕분이었다.
둘은 앞다투어 목형우에게 자랑했다.
“내일 수업 시간보다 한 시진 일찍 만나서 같이 수련하기로 했어!”
“저희도요!”
“다른 조 놈들, 내일부터 다 뒈졌다!”
“원강 선배. 그럼 저희랑 함께 수련할까요?”
“어? 그거 좋은데!”
둘 다 어린아이들처럼 기뻐하는 모습에 목형우가 큭큭 웃었다.
“잘됐다니 다행이군.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서 기쁘다. 나중에 모의전에서 만나면, 그땐 서로 최선을 다해서 붙어 보자고.”
그 순간, 헌원강과 위지천이 동시에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목형우를 돌아봤다.
“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말해? 지도 대련 안 할 거야?”
“……그걸 계속 하자고? 왜?”
“아직 선배님한테 물어볼 게 산더미니까요!”
조원들과 관계를 회복한 이상, 헌원강과 위지천은 더 이상 목형우에게 도움을 받을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헌원강과 위지천은 지도 대련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
목형우는 두 후배가 둔재인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이 순간 고맙다는 말을 할 만큼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목형우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나도 앞으로 조장의 역할에 대해 더 많이 알려 주지.”
“그래야지!”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마주 바라보며 기분 좋게 웃는 세 명의 얼굴.
꽤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자식들.”
백수룡은 학생회 건물 옥상에서 제자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야근 중에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제자들을 발견하곤 뭘 하는지 지켜보던 참이었다.
“조장 문제는 잘 해결된 것 같네.”
“여기서 뭐 하나.”
서늘한 목소리에 백수룡이 옆을 돌아보자, 어느새 남궁수가 옆에 서 있었다.
“야근하다가 잠깐 바람 쐬러 올라왔는데. 너는?”
“수상한 기척이 옥상에서 느껴지더군.”
그 되도 않는 남궁수식 농담에 피식 웃은 백수룡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남궁수. 너도 학관 다니던 시절에 조장 해 본 적 있어?”
“물론 있다.”
짧고 간결한 대답에, 백수룡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질문했다.
“그럼 조별 과제 할 때, 조원들이 통제에 안 따르면 어떻게 했냐?”
남궁수는 잠시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더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원들이 통제에 따르지 않는다고? 그런 경우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군.”
도통 모르겠다는, 그런 일은 상상조차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백수룡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지? 내 제자 녀석들이 말이야. 그런 거로 고민을 하더라고. 나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라 조언해 줄 말이 있어야지.”
“흐음. 무공이 뛰어나도 통솔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
“말을 안 들으면 듣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애초에 그런 적이 없어서 모르겠군.”
“내 말이.”
남들이 들으면 재수 없다고 할 만한 이야기를 제법 진지하게 나누는 두 강사였다.
* * *
의 두 번째 수업 날.
학생들이 하나둘 대연무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첫 수업에서 승리한 학생들의 얼굴에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지난 수업에서 패배한 학생들은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지난번 우리에게 치욕을 준 놈들에게 매운맛을 보여 주자!”
“보여 주자!”
“오늘은 둘 다 이기는 거다! 건방진 놈들의 콧대를 눌러 버리자고!”
“눌러 버려요!”
지난 며칠 동안 의기투합한 헌원강과 위지천이 나란히 등장했다.
둘 다 얼마나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는지, 뒤따라온 같은 조원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였다.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냐고…….”
“우리 조장 괜찮은 거지?”
학생들이 조별로 모두 모인 후, 마지막으로 백수룡과 강사들이 등장했다.
“다들 눈빛이 좋아졌군.”
백수룡은 예리한 눈으로 학생들을 죽 둘러봤다.
그는 모든 조가 지난 모의전 이후로 따로 만나서 합을 맞춰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헌원강과 위지천만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다.
이 중에 가만히 놀고 있었던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긴말은 필요 없겠지. 첫 번째 모의전에 나설 조를 호명하겠다. 사(四)조.”
“여기 있습니다!”
힘껏 소리친 헌원강은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 뒤를 비장한 표정을 한 아홉 명의 학생들이 따라나섰다.
“선배! 힘내세요!”
위지천이 두 손을 모아 헌원강을 응원했다.
평소에도 친했지만, 지난 며칠은 그야말로 피를 나눈 형제처럼 붙어 다녔다.
지난 패배를 오늘 반드시 설욕하자며 함께 수련했으니,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백수룡이었다.
때문에, 이번 대진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십(十)조. 너희도 나와서 준비해라.”
“……정말요?”
“아 진짜!”
두 제자는 눈으로 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했지만, 백수룡은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들며 ‘뭐?’라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예상했어야지.”
결국, 우애 좋은 형제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지천아…….”
“원강 선배…….”
다음엔 꼭 이기자고, 얼마나 절치부심하며 함께 수련해 왔던가.
……그래서 더 양보할 수 없었다.
여기서 지는 사람은 다음 수업 때까지 놀림감이 될 것이 뻔했으니까.
각오를 굳힌 헌원강이 말했다.
“사사로운 정은 잠시 접어 두마.”
“죄송해요. 오늘은 제가 이길게요.”
“……요 건방진 꼬맹이가.”
“키 크다고 센 거 아니면서.”
두 소년의 눈빛이 동시에 돌변했다.
우애 좋은 형제는 더 이상 없었다. 승리에 눈이 먼 야차들이 있을 뿐이었다.
“가자!”
“작전대로!”
헌원강과 위지천은 조원들을 이끌고 선두에서 격돌했다. 흥분한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조원들을 신경 쓰며 싸우는 모습은 지난번과는 분명 달랐다.
“제법 봐줄 만하네.”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제자들을 바라봤다.
물론 아직도 한참 부족하지만, 지난번보다 이번이, 이번보다는 다음이 더 기대되는 녀석들이었다.
그렇게 이번 학기 수업이 끝났을 땐, 누군가의 목숨을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무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종강까지 이제 석 달 남짓.’
연말의 천무제에서는 훨씬 더 성장한 제자들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백수룡의 입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