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92
391화. 나중에 말씀드려
“장사는 끝났어?”
영업이 끝난 노점을 찾아온 이는 방백현이었다.
친우의 얼굴을 본 거상웅이 반색하며 맞이했다.
“여긴 웬일이야?”
“무림맹으로 복귀하기 전에 인사나 하려고 들렀지.”
방백현이 옆구리에 끼고 온 항아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씨익 웃었다. 학관 밖에서 사서 몰래 들여온 술이었다.
“겸사겸사 술도 한잔하면 더 좋고.”
“하하하! 그거 가지곤 간에 기별도 안 가겠군. 이리 와서 앉아!”
거상웅은 노점 한켠을 치우고 자리를 마련했다.
현수막을 내리고, 과자를 담았던 커다란 빈 목함들을 천막 주변에 대충 쌓아 두자, 주변으로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 거요? 학관 안에서 술은 정해진 주점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두 사 학년 선배는 당황한 표정의 야수혁을 돌아보며 짓궂게 웃었다.
“흐흐. 원래 몰래 숨어서 마시는 술이 제맛 아니겠냐?”
“후배는 보기와 달리 겁이 많은가 보군.”
“거, 겁을 먹긴 누가! 그냥 한번 물어본 거지!”
장사도 일찍 끝났겠다, 걸리지만 않으면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내 셋이 바닥에 둘러앉았다.
항아리의 뚜껑을 열자 향긋한 주향이 퍼져 나왔다. 세 사람은 사발에 한 잔씩 따르며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
“수혁 후배도 한잔 받게. 술은 잘 마시나?”
“주도(酒道)라면 어릴 때부터 산에 계신 형님들한테 배웠수.”
“산에 계신 형님들……?”
“으하하하! 이 녀석 사문이 산에 있는 문파거든! 그나저나 무림맹은 어때? 다닐 만해?”
거상웅이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아무리 방백현이 친구라고 해도, 무림맹원 앞에서 녹림인 걸 들키면 좋을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다행히 방백현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총사범님이 뒤를 봐줬다고 아니꼽게 보는 선배들이 좀 있긴 하지만……. 그것 말곤 다 좋아. 일 배우는 것도 재미있고.”
실제로 방백현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과거 어머니의 꿈에 맹목적으로 맞춰 살아가던 것과 달리, 지금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상웅이 넌 요즘 어때?”
“나도 좋아. 되바라진 후배 놈들하고 매일 땀 흘리면서 수련하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이렇게 열심이었던 적이 없거든.”
거상웅은 히죽 웃고는 사발을 단숨에 비웠다.
방백현은 그런 친구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졸업 후 진로는 생각해 봤어?”
졸업을 앞둔 사 학년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
거상웅은 야수혁에게 했던 이야기를 방백현에게도 똑같이 했다.
“본격적으로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워 보려고.”
“……진심이야? 상단 일에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하하. 그거야 철없을 때 얘기고, 졸업한 이후에도 밥만 축내며 한량처럼 살 수는 없지. 우리 아버지도 흰머리가 많이 느셨더라고.”
거상웅은 자신 때문에 지난 몇 년간 마음고생 한 부모님을 떠올렸다.
두 분 다 여전히 건강하신 편이지만, 그가 청룡학관에 입관했을 때보다 많이 늙으셨음을 느끼고 있었다.
방백현은 거상웅의 대답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세상에. 언젠가 천하제일 권법가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철부지가 어른이 됐군.”
“하하하! 꿈이 조금 바뀐 거라고 말해 두지!”
거상웅이 호탕하게 웃으며 사발을 들이켤 때였다.
“이보쇼 선배.”
술이 적당히 들어가서일까. 야수혁이 다소 삐딱한 말투로 거상웅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졸업하면 무공은 이제 뒷전이라는 거요?”
“음?”
야수혁은, 무공 수련 중에서도 거상웅과 주먹을 부딪칠 때가 가장 좋았다.
또래에는 그의 주먹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헌원강도 이제는 외공만으로는 둘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 말은 즉 거상웅이 졸업하면, 전력으로 주먹을 부딪칠 사람이 없어진다는 말이기도 했다.
야수혁은 그 사실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괜히 시비조로 말했다.
“졸업하면 무공은 관두고 상단에서 돈이나 벌겠다는 거잖수. 젠장. 그럴 거면 뭣 하러 지금 이렇게 열심히…….”
“자식. 섭섭하냐?”
커다란 손이 야수혁의 머리를 거칠게 쓸어내렸다. 산만 한 덩치의 야수혁을 어린애처럼 다뤄도 어색하지 않은 유일한 손길이었다.
“섭섭하긴 누가…….”
“너도 알겠지만, 무공에 대한 자질은 네가 나보다 낫다.”
“……갑자기 뭔 소리요?”
지금은 열 번을 싸우면 예닐곱 번은 거상웅이 이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어떤 가정을 떠올린 야수혁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나한테 안 될 것 같으니까 상인이 되겠다는 거요? 선배. 그런 거라면 진짜 실망스럽…….”
짜아악-!
야수혁은 등을 후려친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입을 떡 벌렸다. 웬만한 사람이었으면 뼈가 부러지고도 남았을 충격이었다.
“뭔 소리냐? 재능 좀 있다고 까불지 말란 이야기를 하는 건데.”
“아프다고……!”
진심으로 아파하는 야수혁을 보며 거상웅은 껄껄 웃었다.
“무공을 관두긴 왜 관둬? 말했잖냐. 꿈이 ‘조금’ 바뀌었다고.”
입은 웃고 있지만, 거상웅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는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춘 후배에게 도발하듯 말했다.
“나는 언젠가 권왕(拳王)이자 상왕(商王)이 될 거다.”
“뭐…….”
그 자신만만한 선언에, 야수혁은 물론이고 함께 듣고 있던 방백현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거상웅은 언제 진지했냐는 듯, 다시 껄껄 웃으며 후배의 등을 퍽퍽 쳤다.
“그하하! 그러니까 나 없어도 방심하지 말고 열심히 수련해라. 졸업한 후에도 종종 찾아올 거니까. 선생님에게 과외도 받고, 너랑도 겨뤄 보고 싶거든. 그게 제일 재밌으니까.”
“……나도 마찬가지요.”
야수혁도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상웅이 ‘권왕’이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힌 순간, 야수혁의 머릿속에도 하나의 별호가 스쳤다.
녹림왕(綠林王).
수십 년 전 녹림을 일통한 녹림투왕 맹호악 이후, 녹림의 그 누구도 감히 별호에 왕(王)을 쓰지 못했다.
현재 많은 녹림도의 존경을 받는 야수혁의 양부조차, 녹의수사(綠衣修士)라는 별호에 만족할 뿐이었다.
“선배가 권왕이 되겠다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야수혁은 자신보다 먼저 무림으로 뛰쳐나갈 사내에게 꿈틀대는 호승심을 느꼈다.
“나도 ……투왕이 되겠소.”
함께 있는 방백현 때문에 ‘녹림’이라는 두 글자를 빼긴 했지만, 그 말을 못 알아들을 거상웅이 아니었다.
“그하하! 귀여운 녀석 같으니.”
거상웅은 막내 동생 대하듯 야수혁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고, 야수혁은 귀찮다는 듯 손을 쳐냈다.
“적당히 좀 하쇼 진짜!”
“이 선배님이 먼저 명성을 날리고 있을 테니, 너도 얼른 졸업하고 따라와라.”
“그 전에, 천무제에서 권패 초일인가 초파리인가 하는 놈이나 제대로 때려잡으라고!”
“으하하하! 그야 물론이지!”
방백현이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을 보곤 킥킥 웃었다.
“너희 둘이 형제라고 해도 믿겠다.”
그때, 바깥에서 실컷 놀다 온 은호가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캬앙!
달큰한 술 냄새를 맡았는지 곧장 항아리로 뛰어들려는 녀석을, 야수혁이 허공에서 휙 하고 낚아챘다.
“쬐그만 게 어디 술독을 넘봐?”
야수혁은 손안에서 빠져나가려고 바둥거리는 은호에게, 손가락에 술을 조금 묻혀 내밀었다.
할짝할짝.
은호는 야수혁의 손가락을 몇 번 핥더니, 금방 해롱해롱해져서 잠들었다. 그 찹쌀떡 뭉치 같은 녀석을 야수혁은 품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영물이 후배를 잘 따르는군.”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방백현은 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오후부터 술자리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밤이 되었다.
하지만 크게 어둡지는 않았다.
사위가 어두워지려는 찰나, 곳곳에서 반딧불처럼 하나둘 은은한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 사람은 함께 천막 밖으로 나왔다.
“우와…….”
야수혁은 처음보는 광경에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두 사 학년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풍등이군.”
“올해는 유난히 많네.”
청룡제 마지막 날의 백미는 하늘로 풍등을 날리는 행사였다.
수백, 수천 개의 풍등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도시의 밤하늘을 물들이는 은은한 불빛들.
지난 몇 년을 합친 것 이상으로 많아진 풍등에는, 제각기 사람들의 소원이 적혀 있을 것이다.
하늘을 올려보던 거상웅이 문득 입을 열었다.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은린호에서 함께 풍등을 날리면…….”
“정인이 되어 백년해로한다?”
“젠장. 사 년 동안 한 번을 못 해 봤네. 일 년 꿇고 도전해 봐?”
“뭣? 푸하하하하!”
한참 배를 잡고 웃던 방백현은, 고개를 돌려 거상웅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상웅아. 하나만 묻자.”
“어. 말해.”
“내가 살수면 어쩌려고, 가져온 술을 덥석 받아서 마신 거냐?”
거상웅은 턱을 긁적이더니 느릿하게 대답했다.
“아닌 줄 알았으니까. 내가 친구랑 살수도 구분 못 할 것 같냐?”
“……살막 살수들의 변장술은 가족도 못 알아볼 정도라는 말 못 들어 봤나?”
피식.
거상웅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는데, 이제 와서 경각심 일깨워 줄 필요 없어. 진작 대비하고 있었거든.”
거상웅은 품 안에 있는 청룡패를 주먹으로 툭툭 쳤다. 술법이 걸린 청룡패였다.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도 없던 청룡패가 조금 전부터 부르르- 작게 진동하고 있었다.
즉, 마공을 익힌 살수들이 접근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거상웅이 몸 안의 주독을 내공으로 몰아내며 물었다.
“우리 선생님이 보낸 건 아닐 테고, 다른 선생님이 도와주라고 보낸 거냐?”
방백현이 주변을 경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수 선생님. 혹시 모르니 함께 있으라고 하시더라. 둘보다는 셋이 나을 거라면서.”
“감사하긴 한데…….”
거상웅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씩 웃었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필요 없었다고 말씀드려.”
휘익!
거상웅은 갑자기 그림자 속에서 솟구친 살수의 팔목을 잡아 부러뜨렸다. 단련된 무인의 팔이 나뭇가지처럼 가볍게 꺾였다.
우드득!
기이하게 팔이 꺾인 상황에서도 살수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편 손에 들린 비수로 재차 거상웅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거상웅은 목을 젖히는 것만으로 가볍게 공격을 피했다. 그는 비수를 든 살수의 팔마저 잡아챘다. 거인의 두 손에 성난 핏줄이 불거지고, 촤아아악- 살점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살수의 두 팔이 몸통에서 뽑혀 나갔다. 마치 개미의 다리를 뜯어낸 것과 비슷했다. 거상웅은 두 팔을 잃은 살수를 바닥에 내던졌다.
“비실하군.”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달려들려던 살수들이 흠칫했다. 방금 거상웅은 조금의 내공도 끌어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살수들은 금방 공포를 지우고 목표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는 암기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쿠웅-!
거상웅은 앞으로 나서며 혼자서 모든 암기를 막아 냈다. 바닥을 디딘 두 발은 천 년을 뿌리 내린 고목처럼 굳건했고.
티티티티티팅!
육체는 어떤 날카로운 암기도 범접하지 못할 만큼 단단했다.
……!!
살수들이 소리 없이 경악하는 순간.
“수혁아.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알겠소.”
거상웅의 뒤에 있던 야수혁이, 오래 굶주린 맹수처럼 달려나갔다.
콰지지직! 콰직! 콰지직!
녹림십팔식은 천하제일의 외공이지만, 녹림투왕은 무공을 창안할 때 결코 내공의 효용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공을 수련할수록 녹림십팔식도 대성에 가까워지는데, 수련자의 성향과 내공의 성질에 따라 조금씩 다른 성향을 띠게 된다.
거상웅은 그 어떤 공격도 막아 낼 수 있는 단단함을 원했고.
야수혁은 그 무엇도 부숴 버릴 수 있는 압도적힌 파괴력을 원했다.
‘청룡신협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쉬울 거라더니…….’
살막의 삼살(三殺)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들이 완전히 오판했음을 깨달았다.
거상웅과 야수혁은 상당히 뛰어난 외공을 익힌 후기지수가 아니었다.
저들은 이미 무림 전체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외공의 달인이자, 살수에게 특히 까다로운 상성을 지닌 고수들이었다.
안법을 단련한 삼살의 눈에, 거상웅과 야수혁의 몸 위로 반투명한 기가 아지랑이처럼 흐르는 것이 보였다.
‘호신강기?’
아니, 호신강기는 아니다.
호신강기가 저 나이대의 무인들에게 가당키나 한 경지이던가.
하지만 그에 비견될 만큼 견고하고 단단한 호신기였다. 분명 대단한 신공을 익힌 것이 틀림없었다.
‘도검불침. 검기도 통하지 않는다. 독도 마찬가지군.’
맹호악이 정의하는 외공이란 뼈와 근육은 물론이고 인간의 몸 전체를 단련하는 공부이기에, 녹림십팔식을 대성하면 만독불침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둘은 만독불침의 경지와는 한참 멀지만, 웬만한 독으로는 육신에 해를 끼칠 수 없었다.
‘신중하게.’
삼살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그는 저 호신기를 뚫고 목표물들을 죽일 자신이 있었다. 살막에서 세 번째로 뛰어난 살수에겐 충분히 그만한 역량이 있었다.
하지만 신중해야 했다. 저 단단한 호신기와 단단한 육신을 일격에 꿰뚫고 숨통을 완전히 끊으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삼살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사냥감에 집중하느라, 자신을 노리는 사냥꾼이 다가오는 것을 제때 느끼지 못했을 뿐.
“여기 있었군.”
얼음처럼 서늘한 목소리.
삼살은 뒤를 잡혔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몸을 돌리며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칼은 빈 허공을 갈랐다.
“……천살의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났군.”
삼살은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차가운 검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직후였다.
촤아아악!
삼살의 시신이 바닥에 허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