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3
42화. 하고 싶은 말 있나?
“아까는 진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알아요? 형님 때문에 내가 진짜……. 으읍!”
“귀 뚫리겠다. 잔소리 그만하고 이거나 먹어라.”
나는 쉴 새 없이 잔소리를 쏟아내는 악연호의 입을 큼직한 만두로 틀어막았다.
그 옆에서는 명일오가 술잔을 홀짝이며 킥킥 웃었다.
“연호한테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연호가 형님 순서를 미뤄 달라고 안 했으면, 지금쯤 여기서 위로주를 마시고 있을 겁니다.”
“으읍……. 옳소! 나한테 고마워하라고요!”
만두를 꿀꺽 넘긴 악연호가 미간을 험상궂게 모으며 말했다.
그래 봤자 기생오라비가 인상을 쓴 꼴이라 무섭기는커녕 우스워 보일 뿐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악연호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그래. 고마워서 이렇게 술 사는 거 아니냐.”
시범 강의를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내 방에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놓은 음식과 술을 시켜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뭘 하다가 이렇게 늦으신 겁니까?”
명일오의 질문에 나는 지난 며칠간의 고생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말도 마라. 사람 좀 만나러 갔다가…….”
위지천의 주화입마를 해결하고, 위지열·위지천과 함께 남창으로 온다는 계획 자체는 좋았다.
‘문제는 둘 다 수배범이라서 산길로 빙 돌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는 거지.’
혹시나 모를 무림맹, 혹은 위지천에게 가짜 무극검의 비급을 건넨 흑립인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최대한 인가를 피해 산길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예정보다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
겨우 남창에 도착해서는 도시 밖에서 청천에서 연통을 넣어 불러내고, 여차여차 임시 호패를 발급받아서 겨우 도시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는 못하고, 대충 아는 사람 일을 도우러 갔다가 고생하고 돌아왔다고만 이야기했다.
“……덕분에 오는 길에 경공 연습은 죽어라 했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명일오가 짓궂게 웃으며 악연호를 바라봤다.
“하마터면 진짜 백룡학관 터를 알아볼 뻔했네요.”
“백룡학관?”
“전에 형님이 그렇게 말했다면서요? 떨어지면 청룡학관 반대편에 떡하니 학관을 지을 거라고. 아까 연호가 그 얘길 하니까 학생주임 선생님 표정이 어찌나 볼 만하던지…….”
“크흠! 사람 민망하게 왜 다 끝난 얘기를 하고 그래요?”
내가 없을 때 악연호가 활약한 이야기를 하자, 악연호가 민망한지 헛기침을 해댔다.
나는 기특한 짓을 한 악연호의 술잔을 다시 가득 채우며 말했다.
“짜식. 오늘은 내가 한턱낼 테니까 마음껏 마셔라.”
“헤헤. 제가 또 주는 건 거절하지 않죠. 형님도 한잔 받으세요.”
우리가 주거니 받거니 마시고 있는데, 명일오가 살짝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두 사람. 내일 비무 대련하는 건 잊지 않고 있죠?”
청룡학관 신입 강사 실기시험은 총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오늘 마친 시범 강의.
두 번째는 내일 있을 비무 대련.
‘비무 대련’이란 신입 강사 지원자가 기존 강사 중 한 명과 겨루어 무공 수위를 증명하는 것으로, 반드시 이겨야 할 필요는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당연히 이기는 게 합격에 유리하다는 말이지.’
하지만 이 비무 대련에서 누가 누구와 붙게 될지 당사자들은 당일까지 모른다.
그 대진표는 전통적으로 학관주가 짜기 때문이다.
‘천수관음 노군상.’
혈교가 활동하던 수십 년 전에도 백대고수로 명성을 떨치며, 사파의 수많은 고수를 쳐죽인 무인.
과거에는 원수에 가까운 인간이었는데, 지금은 의아할 정도로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나한테 뭔가 바라는 게 있나?’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지금의 내가 가진 건 보잘것없었다.
“흐음……. 기껏해야 잘생기고 유능하다는 것뿐인데…….”
“허어. 이 형님, 심각하게 혼잣말로 잘난 척하는 것 좀 보게.”
나는 혀를 차는 명일오의 잔에 표면이 찰랑거리도록 술을 부어 주며 말했다.
“대련이라도 뭐 별거 있겠냐.”
“맞아요. 그까짓 거, 누가 나오든 해치워 버리면 되지!”
역천신공이 3성에 도달한 나는 대련에 대해서 큰 걱정이 없었고, 겉보기에는 덜떨어져 보이는 악연호도 나름 절정의 고수였다.
“둘 다 여유로워서 좋겠군…….”
“그러게 무공 좀 열심히 익히지 그랬냐?”
실력이 애매한 명일오만 혼자서 술잔을 꺾어 마시며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나와 악연호는 녀석을 놀리며 낄낄댔다.
“헤헤헤……. 형니이임, 아까 진짜 멋있었다니까요?”
……맞다. 이놈 술이 약했지.
어느새 취한 악연호가 음흉하게 히죽히죽 웃으며 내 옆에 찰싹 붙었다.
“아까 말이야아아. 도풍 갈랐을 때요. 그때 여학생들 표정 봤어요? 아주 그냥 다들 좋아 죽더라. 형님도 좋았죠? 꺅꺅거리는 소리 들으면서 속으로 좋아해찌이?”
“……수혈 짚기 전에 당장 떨어져라.”
나는 자꾸만 엉겨 붙는 악연호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냈다. 제대로 취했는지 녀석이 허우적거리다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악연호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형니이이임. 또 어디 가요오?”
“뒷간 간다. 따라올래?”
“부, 부끄럽게 무슨 소리야……. 그렇다고 또 늦게 오면 안 돼! 빨리 와!”
“너, 네가 무슨 말 하는지는 알고 떠드는 거냐?”
어째 주사가 점점 드는 것 같은데.
한숨을 내쉰 나는 명일오에게 신신당부했다.
“일오야. 이 녀석 나 따라서 못 나오게 잘 붙잡고 있어라.”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만, 저는 무공이 약해서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저 녀석도 은근히 속이 좁단 말이지.
뒷간에 들러 무사히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익숙한 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이 기척은…….’
꿀꺽.
침을 삼킨 나는 시범 강의 때도 한 적 없었던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할아버님?”
“팔자가 늘어졌구나. 벌써 최종 합격이라도 한 줄 아는 게냐?”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냉기를 몰고 다니는 노인.
매극렴이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자, 알딸딸했던 취기가 단숨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고얀 놈. 술 좋아하는 것이 역시 애비를 닮았구나…….”
매극렴의 눈썹이 꿈틀대고 팔뚝의 핏줄이 꿈틀대는 순간, 나는 곧바로 겸손하고 공손한 자세로 태세를 전환했다.
“하하. 하루의 피로를 풀 겸 가볍게 한잔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님이 여긴 어쩐 일로……?”
“왜?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느냐?”
“…….”
“조부가 왔는데 앉으라는 말 한마디 안 하는구나.”
“이봐 점소이! 여기 차 한 잔 내오게! 할아버님. 여기가 경치가 좋으니 앉으시지요.”
나는 점소이가 오기도 전에 탁자를 소매로 반들반들하게 닦아 놓았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매극렴은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툭 내뱉듯이 물었다.
“다친 데는 없느냐?”
“……예?”
“아까 도풍을 자른 그 초식. 네 몸으로 펼치기에는 무리한 것으로 보였다.”
“…….”
과연 뛰어난 검수답게, 매극렴은 아까 내가 펼친 검이 몸에 꽤 무리가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근육이 꽤 뻐근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평소 녹림십팔식을 열심히 수련한 덕에 무리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술도 마시고 있었지.
“괜찮습니다.”
“젊다고 과신하지 마라.”
매극렴은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어미는 몸이 약했다. 강호를 다 뒤져서 용한 의원을 찾아다녀도 건강하게 만들 방도를 찾지 못했다. 처음 봤을 때, 네 몸도 그리 건강해 보이지는 않더구나.”
덤덤해 보이는 눈빛. 그러나 그 깊은 곳에서 짙은 회한이 느껴졌다.
“챙겨 두어라. 언제가 쓸모가 있을 것이다.”
매극렴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종이에 곱게 포장된 환약이었다.
은은한 향이 흘러나오는 것이, 한눈에 봐도 귀한 물건 같았다.
나는 양심에 조금 찔려서 일단 튕겨 보았다.
“저 진짜로 몸 괜찮습니다만…….”
“어른이 주면 그냥 받아라.”
“……감사히 받겠습니다.”
뭐, 주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볼일을 마친 매극렴은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점소이가 내온 차에는 입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이만 가 보마.”
“벌써요? 뭐라도 드시고 가시지…….”
“일이 바쁘다. 너도 술은 적당히 마시고.”
“오늘은 그만 마시겠습니다.”
“…….”
잠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매극렴이 입을 열었다.
“네게 도풍을 날린 학생을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오기 전에 내가 충분히 혼을 냈다. 젊은 혈기에 욱해서 그랬다고 하니…….”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학생한테 화풀이할 정도로 속이 좁지 않습니다.”
대신, 학생한테 그걸 시킨 놈한테 충분히 화풀이를 할 생각이지만 말이지.
그런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매극렴은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냐. 알았다.”
“제가 학관까지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같이…….”
“됐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엄한 눈으로 나를 제지한 매극렴이 몸을 돌려 휘적휘적 걸어갔다.
나는 그의 등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할아버님. 살펴 가십시오.”
“…….”
매극렴은 대꾸도, 한 번도 돌아보지도 않고 객잔을 나섰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내 손에 남겨진 그가 주고 간 환약을 바라봤다.
“당장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때였다.
“허어. 둘이 조손 관계인 줄은 몰랐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몸을 돌렸다.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기척을 못 느꼈다고?’
그러나 상대를 확인하니 그럴 만도 했다.
청룡학관의 관주, 천수관음 노군상이 내 뒤에 신선처럼 웃으며 서 있었다.
“미안하네.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네. 분위기가 진지해 보여서 끼어들 눈치를 보다가 그만……. 허허.”
과거 사파인들에게 마귀라 불렸던 무인이, 민망한 듯 허허로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 * *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나는 노군상과 마주 앉았다.
찻잔을 든 노군상은 천천히 향을 음미하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미간을 구겼다.
“으음. 이 나이 먹도록 차가 정말 맛있는 건지 모르겠군.”
“……점소이한테 술상을 내오라고 할까요?”
“허허. 괜찮네. 이런 늙은이와 술 마시는 것도 고역이 아닌가.”
“그렇지 않…….”
“무공은 누구에게 배웠나?”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뭔가를 눈치챈 건가?’
그러나 노군상이 뭔가를 눈치챘다고 해도 나는 걸릴 것이 없었다.
지금껏 혈교의 무공은 사용한 적이 없었고, 수상한 짓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당당히 대답했다.
“아버지에게 배웠습니다.”
“혹시 부친도 과거 청룡학관에서 공부하셨는가?”
“예. 한 삼십 년 전에 망나니로 아주 유명했다고 들었습니다.”
“크흠.”
내 대답이 지나치게 솔직했는지, 노군상은 잠시 말문이 막힌 모습이었다.
그러나 곧 피식 웃더니 다음 질문을 던졌다.
“왜 지금껏 강호에 나서지 않았나?”
여러 가지 질문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그 정도 실력으로 어째서 무림에 이름을 떨치지 않았나?’
백대고수나 되는 무인의 칭찬이었기에, 나는 감사의 읍을 하며 대답했다.
“어릴 때는 몸이 약해 나설 수 없었고, 철이 들어서는 목숨을 걸고 누가 더 강한지 비교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허허…….”
노군상은 진심으로 당황한 듯 웃었다.
“그거 알고 있나? 나 또한 그 부질없음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이라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요. 저는 무공으로 싸우는 것보다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이왕이면 그걸로 잘 먹고 잘살고 싶고요.”
“요컨대…… 강호의 복잡한 은원에 엮이는 것이 싫다, 이것이로군.”
“비슷합니다.”
노군상은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듯하더니 말했다.
“간혹 자네와 비슷한 이들이 있네. 사람의 생명을 앗는 것이 무서워서, 혹은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 강사가 되겠다고 학관을 찾아오는 이들. 나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무시할 생각이 없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
“하지만 자네는 그들과 달라.”
순간 노군상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듯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자네는 피를 흘리는 걸 무서워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 오히려…….”
“…….”
“어쩐지 피를 아주 많이 흘려 봐서 질린 사람 같은 느낌이 드는군. 허허.”
노군상은 웃으면서 나를 똑바로 보았고, 나 역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무리 날 본다고 해도,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을 테니까.
“…….”
“…….”
허공에서 우리의 눈빛이 부딪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한동안 나를 가늠하던 노군상은 결국 묘한 웃음을 짓더니 먼저 눈길을 거뒀다.
맛없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그가 내게 물었다.
“……마지막 질문이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내일 있을 비무 대련에서, 남궁수와 싸우게 해 주십시오.”
노군상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