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81
481화. 최악의 이인조
청룡학관 학생회의 부회장이자 지낭.
사천당가의 직계다운 냉철한 판단과 거침없는 손속으로 평소에는 냉혈독수라 불리지만, 백수룡 앞에서만큼은 여러 의미로 돌변하는 소녀.
때문에, 백수룡이 청룡학관에서 유일하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
그러나 그런 당소소도 지금은 몹시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당소소? 네가 왜 여기 있어?”
“모두…….”
백수룡과 눈이 마주친 순간, 당소소는 눈에 결연한 각오가 새겨졌다. 소녀는 성큼 앞으로 나서며 파파락지의 동지들에게 외쳤다.
“창밖으로 도망쳐!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 테니까!”
당소소의 양쪽 소매에서 각각 여덟 개씩 열여섯 개의 암기가 튀어나오더니, 동시에 백수룡을 향해 날아들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려는 듯했다.
“이거 봐라?”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아오는 암기를 바라봤다. 공기를 찢는 파공성이 무지막지했는데, 그 와중에도 얼굴을 노리는 암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수준의 격차가 너무 컸다. 백수룡이 무복 소매를 한 번 휘젓자,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던 암기들이 돌개바람에 휘말린 낙엽처럼 허공에서 춤을 췄다.
“전부 동작 그만.”
백수룡은 창밖으로 도망치려는 학생들에게 경고하며 가볍게 진각을 밟았다.
쿠웅-!
공력의 파동이 바닥과 벽을 타고 번져 나갔다. 창틀에 매달렸던 학생들이 흠칫 놀라서 뒤로 물러나다가, 이내 목석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 어느새……!”
“당했다……!”
백수룡이 허공에서 돌려보낸 암기들이 그들의 마혈을 건드리고 떨어진 것이다. 날카로운 암기가 마혈을 건드렸음에도, 학생들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도망을 쳐? 점점 수상하단 말이지.”
백수룡은 낭패한 표정으로 굳어 있는 학생들을 쭉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큭……!”
당소소는 주머니에서 독을 꺼내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린 모습이었다.
“당소소 외 그 일당들. 너희를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저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수상한 짓을 했으니 도망치려고 한 게 아닐까?”
씨익 웃은 백수룡은 학생들의 마혈을 풀어주었다. 그 틈을 노려 몇 명이 다시 도주를 시도했으나, 어림도 없는 행동이었다.
따다다닥!
흑룡편이 학생들의 머리에 혹을 하나씩 만들어 주자, 최후의 반란마저 진압되었다.
잠시 후, 파파락지 동아리 회원들은 일렬로 나란히 무릎을 꿇고 머리 위로 손을 들었다. 백수룡은 흑룡편으로 손바닥을 탁탁 내리치며 위압적으로 물었다.
“여기 있는 용모파기. 전부 너희가 그린 거 맞아?”
“너무해…….”
“용모파기가 아니라 초상화라구요…….”
동아리 방 안에 걸려 있는 용모파기, 아니 초상화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는데, 심지어 하나같이 그 묘사가 무척 상세했다.
“이건 뭐…… 하루 종일 쫓아다니면서 그린 수준이네.”
백수룡은 동아리 방에 걸려 있는 자신의 초상화들을 둘러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 강의하는 모습, 동료 강사들과 함께 길을 걷는 모습, 헌원강을 쥐어 박는 모습까지 그려져 있었다.
“나 말고도 꽤 많네.”
백수룡의 그림이 가장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남궁수를 그린 초상화의 숫자도 많았다. 악연호나 제갈소영의 모습도 종종 보였다.
선생들뿐만 아니라 독고준이나 위지천, 유이란과 여민의 용모파기도 종종 보였다. 아주 드물게 헌원강이나 야수혁, 거상웅도 있었다. 아는 얼굴들은 그 정도였다.
‘손등에 있는 점까지 묘사해 놨네.’
생김새와 신체적 특징을 집요하고 상세히 묘사해 놓은 것이, 혈교에서 적대 문파의 고수를 연구할 때 그려 놓던 용모파기를 연상케 했다.
잠깐이었지만 이곳이 혈교의 비밀기지가 아닌가 의심했던 것도 그런 이유.
하지만 당소소를 비롯해 학생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필이면 당사자한테 걸리다니…….”
“죽고 싶다…….”
“너, 너무 빤히 보시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봐도 이건…….
“너희들, 이걸 나한테 들킨 게 부끄러워서 도망친 거냐?”
백수룡은 수치심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학생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와중에도 당소소만은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저희는 순수한 창작 동아리예요. 개인적으로 이렇게 혼나는 것도 싫진 않지만…… 별개로! 아무리 선생님이라고 해도 저희를 핍박하실 수는 없어요.”
“다짜고짜 암기부터 던진 게 누군데 핍박이래? 그리고 잠깐만. 너희는 학생회 애들 아니야?”
““흡……!!””
백수룡이 알아보자, 학생들 몇 명이 숨을 멈추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청백 대항전 때 열심히 뛰어다니던 얼굴들이 여럿 보였다.
“호오라.”
백수룡의 한쪽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흡사 상대의 약점을 잡은 뒷골목 파락호의 미소였다.
“독고준도 알아?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따로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음습한 욕망을 충족하고 있다는…….”
“어, 어디가 음습한 욕망이라는 거예요!”
“제발 비밀로 해 주세요! 학생회장이 알면 저희 다…….”
“부끄러워서 죽어 버릴 거예요!”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다들 새빨개진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면.
‘그러고 보니…….’
몇 번은 기억에 있었다. 학기 초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던 뜨거운 시선들. 딱히 살기가 실린 것은 아니라서 그냥 두었었는데, 그 녀석들이 이곳에 있는 초상화를 그린 모양이었다.
“뭐, 실물보단 못해도 나쁘진 않네.”
백수룡의 반응이 의외였는지, 안절부절못하던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정말요?”
“화내실 줄 알았는데…….”
“난 전부 찢어 버릴 줄 알았어.”
다들 놀람과 안도감이 반반씩 섞인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물론 아직 백수룡의 말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 적혀 있는 건전한 동아리 활동하고는 거리가 멀단 말이지.”
백수룡은 파파락지의 를 빠르게 넘겼다. 보고서에는 분명 풍경화와 인물화를 통해 심신의 수양을 도모한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초상화들에서는 음습한 욕망과 각자의 취향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대체 이런 건 누가 그린 거야?”
백수룡은 풀밭에 한가로이 누워 낮잠을 자는 자신의 초상화를 가리켰다. 허름한 무복 상의가 반쯤 풀어 헤쳐져 있는, 순전히 상상의 산물이었다.
“…….”
그 순간, 모두의 눈동자가 당소소를 향했다. 당소소는 믿었던 동료들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이 배신자들…….”
“놀랍지도 않다. 당소소. 역시 이 모든 일의 주동자가 너였군.”
이대로는 파파락지의 동아리 활동 건전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사실대로 감사 보고서를 제출한다면, 파파락지의 향후 활동에 큰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당소소는 입술을 잘근 깨물더니, 조심스럽게 백수룡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선생님. 파파락지의 명예 회장인 제 얘기를 잠시만 들어주시지 않겠어요?”
“……심지어 네가 회장이야?”
“이제 와서 그런 사소한 문제가 중요한가요.”
황당하긴 했지만 결국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당소소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한 번만 이번 일을 모른 척 넘어가 주시면, 선생님이 하시는 일에 적극 협조하겠어요.”
“내가 뭐하러 온 줄 알고?”
“동아리 감사 아닌가요? 딱 그 기간인데…….”
“알면서 저런 걸 동아리 방에 그려 둔 거야? 남궁수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당소소는 방심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남궁수 선생님의 일정은 전부 확인하고 있었어요. 분명 이틀 후에 동아리 감사 일정으로 이곳에 방문할 예정이었거든요. 그 전에 물건들은 전부 빼돌릴 계획이었는데, 설마 청룡신협을 대신 보내서 기습할 줄이야…….”
“누가 들으면 비밀리에 군사작전이라도 한 줄 알겠다.”
백수룡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분한 듯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하는 수 없군요. 선생님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거래를 제안하는 수밖에.”
“거래?”
백수룡이 흥미가 돋는다는 듯 묻자, 당소소가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다는 투였다.
“제가 백룡장에 들어가겠어요. 내일부터 그곳에서 숙식하면서 선생님의 식사와 방 청소를 도맡을게요. 내일 당장 짐을 싸서…….”
따악!
당소소의 이마를 쥐어박은 백수룡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 상황에서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다니. 괘씸죄 추가다.”
“……농담이었어요. 진짜 제안은 따로 있다고요.”
입이 삐죽 튀어나온 당소소는 백수룡이 들고 있는 서류를 바라봤다.
“그거. 동아리 활동 보고서죠? 그 내용하고 실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시려는 거잖아요.”
“그런데?”
“단언컨대 청룡학관의 각 동아리 내부 사정에 대해 저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즉, 제 도움을 받으시면 어떤 동아리든 탈탈 털 수 있다는 뜻이죠.”
당소소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허리에 두 손을 척 얹었다. 각 동아리 사정에 밝은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덧붙였다.
“필요한 경우엔 언제든지 약점을 쥐고 견제해야 하니까요. 팽사혁이 동연 회장을 했던 때부터 정보를 수집했죠.”
“흐음…….”
나쁘지 않은 제안인지, 백수룡이 손가락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당소소의 도움을 받는다면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보다 일이 훨씬 빨리 끝날뿐더러, 문제가 있는 동아리를 일망타진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남궁수는 사흘이라고 했지만, 잘하면 이틀 안에 끝내 버릴 수도 있겠는데.’
물론 그 조건으로 파파락지의 은밀한 활동을 눈감아줘야겠지만, 더 많은 물고기를 낚기 위해 한 마리쯤 놓아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터였다.
“……나쁘지 않은 거래이긴 한데.”
“제안을 받아 주시는 건가요?”
“한 가지만 더 약속한다면.”
백수룡이 씨익 웃으며 한 가지 조건을 덧붙이자, 당소소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가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내키진 않지만 그렇게 하도록 하죠.”
백수룡과 당소소 사이에 은밀한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 * *
동아리 연합 건물에 한 가지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점심이 채 지나기도 전이었다.
백수룡과 당소소가 한패가 되어 동아리 방을 급습하고 다니는데, 그들이 돌아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남아나지 않는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
“에이, 말도 안 돼…….”
“백수룡 선생님이 갑자기 왜?”
“동아리 감사? 그거 남궁수 선생님이 하는 거 아니야?”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 그 소문을 믿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백수룡의 방문을 받은 경우에도, 대부분의 동아리 회장들은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일 처리에 빈틈이 없고 철저하기로 유명한 남궁수보다는, 능글맞고 격식을 따지지 않는 백수룡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백수룡이 남궁수보다 상대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은 완벽한 착각이었다.
생활지도부 소속이자, 학생주임 매극렴의 핏줄. 게다가 업무에 있어서는 남궁수 못지않은 완벽주의자가 바로 백수룡이었으니까.
게다가 눈치는 남궁수보다 더 빠르고, 학생들의 일탈과 비행을 잡아내는 것도 한 수 위였다.
“이 새끼들이 신성한 동아리실 안에 술을 숨겨 놔?”
“그, 그걸 어떻게……!”
심지어 남궁수와 달리 학생들에게 무력을 사용하는데도 거리낌이 없으니, 학관으로 돌아온 첫날부터 흑룡편이 여기저기서 불을 뿜었다.
“하하! 보고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는 일 년간 동아리 활동에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물론 빌미를 잡히지 않기 위해, 활동 보고서를 사전에 그럴듯하게 작성해 둔 동아리들도 있었지만.
“어머. 정말요?”
안타깝게도 백수룡의 곁에는 청룡학관 최고의 계략가가 함께하고 있었다.
“권각술 동아리 회장님. 지난달에 생일이셨죠? 공교롭게도 같은 날에 동아리 지원금이 사용된 흔적이 있네요? 전 회원들과의 저녁 식사라고 되어 있는데…… 해당 객잔에 연락해서 확인해 볼까요?”
“그, 그건…….”
“이것 봐라? 신성한 동아리 지원금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사용해?”
“히이익!”
당소소는 동아리 회장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었다. 만일에 대비해 동연을 견제할 목적으로 수집해 두었던 정보들이 흘러나오자, 동아리 회장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쾌검술 동아리 회장님. 여기 활동 보고서에는 지난달에 대민봉사활동을 하셨다고 적혀 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날에 저희 학생회도 그 근처에서 봉사활동을 했거든요? 어떻게 된 걸까요? 저희는 여러분을 보질 못했는데?”
“아니, 그게…….”
“적당히 맞고 이실직고할래? 아니면 심하게 맞고 이실직고할래?”
“죄송합니다!”
동아리 연합 건물을 휘젓고 다니는 두 사람을 목격한 학생들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들이 청룡학관 최강의 이인조는 아니겠지만, 최악의 이인조인 것만은 틀림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