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82
482화. 이상한 형씨
남창에서도 높기로 유명한 적화루의 지붕 위.
“…….”
사호는 그곳에서 옛 스승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웬만한 무인들에게도 까마득한 거리였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우물우물.
그는 과묵한 얼굴로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한 손에는 주점의 주인 내외가 챙겨 준 만두가 면포째로 손에 들려 있었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한동안 이곳에 머물러도 되겠냐고 필첩에 적어 보여 주자, 그들은 첫날에 준 금자 하나면 한 달은 눌러앉아도 된다며 흔쾌히 허락했다.
-이 새벽부터 나갔다 오려고? 방금 찐 거니까 이거라도 챙겨 가!
딱히 허기가 지지는 않았지만, 사호는 부부가 챙겨 준 만두를 받아들었다. 받지 않으면 더 귀찮게 굴 것 같아서였다.
우물우물.
면포에서 만두를 하나 더 꺼내 먹으며, 사호는 백룡장에서 나와 청룡학관으로 향하는 백수룡을 지켜봤다. 그 곁에는 소란스럽게 떠드는 제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내게 묻고 싶은 게 있거든, 아무 때나 찾아와도 된다.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당장은 직접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사호는 옛 스승의 입에서 답을 듣기보단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고자 했다. 그래야 어떤 결정을 내리든 후회하지 않을 터였다.
“…….”
옛 스승의 뒷모습이 청룡학관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사라진 순간, 사호는 미련 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휘익!
거구의 몸으로 뛰어내렸음에도 땅에 내려설 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척을 숨기고자 마음먹는다면, 이 도시의 누구도 사호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옛 스승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사호는 곧장 옛 스승의 집으로 향했다.
개방의 거지들이 백룡장으로 접근하는 수상한 자들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수준으로는 사호가 바로 옆을 지나쳐도 낌새조차 느낄 수 없었다.
누구도 모르게 백룡장의 담을 넘은 사호는 연무장을 천천히 둘러봤다.
“…….”
곳곳에서 수련으로 땀을 흘린 흔적이 보였다. 보법 수련으로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들. 바닥에 흐릿하게 남은, 무공을 펼친 잔흔(殘痕)들.
많은 것이 비슷했다. 과거 옛 스승에게서 무공을 배운 기억들이 문득문득 떠오를 만큼.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연무장과 다른 점을 굳이 찾자면, 이곳에는 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다.
한동안 연무장을 둘러보던 사호는 몸을 돌려 안쪽으로 향했다. 옛 스승의 방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람은 자신의 공간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사호는 그 흔적을 따라갔다.
드르륵.
단출한 가구들과 필요한 물건만 놓인 방 내부가 보였다. 침상과 탁자, 의자. 반듯하게 개어 놓은 이불과 목침 따위가 있었다.
생각만큼 삭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방 안에 은은한 온기가 감돌았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는지, 문지방이 조금 닳아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간 사호는 예상치 못한 물건을 발견했다. 그는 탁자 위, 문진으로 모서리를 눌러 둔 쪽지를 집어 들었다.
옛 스승이 그에게 남긴 것이었다.
「혹시라도 이곳에 들른다면, 먹고 가거라.」
쪽지 옆에 있는 보자기를 치우자, 다과와 떡, 몇 가지 주전부리를 소담스럽게 담아 놓은 소반이 보였다.
“…….”
옛 스승은 자신이 이곳을 찾아오리란 사실을 알았던 걸까.
사호는 그것을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다시 보자기를 덮었다. 독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계략을 펼치는 데 뛰어난 옛 스승이 무슨 수작을 부려 놓았을지 알 수 없었다.
……독 따위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사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보자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가져가서 확인해 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정말 독이 들었다면, 결정을 내리는 게 더 빨라질지도 모른다.
그때, 사호는 멀리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바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
백룡장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이 있었다. 그리 빠르지는 않았으나, 이곳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개방의 거지들도 그 기척을 막아서지 않았다.
휘익!
사호는 즉시 백수룡의 방에서 나왔다. 연무장을 가로지른 후 담을 넘을 때까지, 일련의 동작을 하는 데 채 한 호흡도 걸리지 않았다.
“젠장. 무공을 배우는데 교보재는 왜 필요한 거야? 귀찮게스리…….”
“…….”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곧바로 종적을 감추려던 사호는 생각을 바꿨다.
느껴지는 기척은 둘. 곧장 이곳으로 온다면 옛 스승의 주변 인물들일 것이다. 한 번쯤 가까이서 얼굴을 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사호는 기척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킁킁. 어디서 향긋한 고기만두 냄새가…….”
구릿빛 피부를 가진 거구의 소년이 코를 킁킁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의 어깨 위에는 작은 맹수가 늘어져라 하품을 하고 있었다.
사호는 한눈에 상대를 알아보았다. 저 소년이 자신과 같은 무공을 수련했으며, 근골만 놓고 보면 자신과 비등하거나 오히려 더 낫다는 것을.
야수혁.
옛 스승에게서 녹림투왕의 무공을 배우고 있는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넓지 않은 길목. 사호는 야수혁을 향해 걸어갔다.
크르르르…….
형산에서 마주쳤던 사호를 알아본 은호가 털을 바짝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작지만 날카로운 발톱이 말랑말랑한 발가락 사이로 삐죽 튀어나왔다. 야수혁의 무복 어깨 부분이 살짝 찢어졌다.
“털뭉치. 너 왜 그래?”
야수혁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곤 은호의 시선을 따라간 후에야, 정면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의식했다.
과묵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야수혁의 기준에서도 덩치가 꽤 좋았다. 자신이나 거상웅만큼은 아니지만, 원강 선배보다는 더 컸다.
야수혁이 작은 목소리로 은호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이냐?”
크르르르…….
은호는 낮게 울며 이빨을 드러냈다. 잔뜩 긴장한 모습이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야수혁이 보기엔 상대에게서 딱히 적의나 살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무공은? 솔직히 별로 세 보이지 않았다.
한 손에 들고 있는 면포에서 군침이 도는 냄새가 흘러나온다는 걸 제외하면 특별할 것도 없었다.
“아침부터 만두를 들고 다니면서 먹다니. 부러우면서도 이상한 형씨네.”
작게 중얼거린 야수혁은 걸어오는 상대를 경계하며, 동시에 긴장한 은호의 등을 쓸어 주었다.
‘이 녀석이 괜히 긴장할 리는 없을 텐데.’
과묵한 형씨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살기도 투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걸어올 뿐이었다.
야수혁은 전신의 근육을 미세하게 긴장시키며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둘 다 걸음을 멈추지 않았기에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냥 이쪽으로 지나가는 건가?’
갑자기 시비를 걸거나 공격하려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랬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준비 동작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다.
야수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상대가 자신과 같은 무공을 익힌 절세고수이며, 그 격차는 너무나 아득한 수준이어서 사호가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 한, 자신은 결코 그의 실력을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을.
“…….”
조금 찜찜한 마음은 있었지만, 도망치거나 피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을 향해 오는 듯했지만, 우연히 마주친 것뿐이라면 자신의 꼴만 이상해질 테니까.
야수혁은 자연스럽게 상대의 옆을 지나쳐서 백룡장으로 향하려 했다.
스윽.
그대로 옆을 지나칠 줄 알았던 사호가 손을 뻗어 야수혁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 야수혁의 인상이 사납게 찌푸려지며 온몸의 근육이 꿈틀댔다.
“……뭐요?”
종종 백수룡의 제자임을 알아보고 시비를 걸어 오는 자들이 있었다. 야수혁은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고 판단했다.
홱 돌아선 야수혁이 흉기처럼 단련된 전신의 근육을 꿈틀거리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몸을 좀 단련한 모양인데. 그거 믿고 덤볐다가 찌그러지는 수가 있수.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음?”
야수혁은 사호가 불쑥 내민 만두를 보고 눈을 꿈뻑거렸다.
“……나 주는 거요? 먹으라고?”
“…….”
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수혁은 별 희한한 사람을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만두 냄새의 유혹을 못 참고 결국 받아서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내가 원래, 우물우물, 이런 거 받아먹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은 아침밥이 영 시원찮아가지고.”
어린아이의 주먹만 한 큼직한 만두가 순식간에 야수혁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거의 녹아내리는 수준이었다. 사납게 치켜올라갔던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히야! 이거 맛있네. 어느 가게에서 만든 거요?”
사호는 말없이 만두를 하나 더 내밀었다. 야수혁은 이번에도 날름 받아먹었다. 독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머릿속에 아예 없는 듯했다.
“하나 더 먹으라고? 고맙수다! 알고 보니 마음씨 좋은 형씨였네!”
“…….”
벌써 세 개째였다. 야수혁은 히죽 웃으며 만두를 받아먹었고, 사호는 그 사이 소년의 성취를 확인하고자 몸을 유심히 살폈다.
캬앗! 캬아앗!
은호는 적이 주는 먹이를 덥석덥석 받아먹는 야수혁이 한심하다는 듯, 앞발로 야수혁의 머리를 퍽퍽퍽 때렸다.
“갑자기 왜 때리고 그래? 너도 만두 하나 줘?”
캬아앗! 캬앗!
그게 아니라는 듯 앞발을 마구 휘두르던 은호는,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대는 백수룡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괴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물답게, 은호는 상대의 기에 극히 예민했다.
다시 나타난 사호에게서는 전에 보았을 때 느꼈던 살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캬앗……?
사호는 그런 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해치지 않겠다는 뜻 같기도 했고, 자신과 마주한 것을 비밀로 해 달라는 뜻 같기도 했다.
그 사이, 순식간에 만두 세 개를 해치운 야수혁이 씨익 웃으며 사호에게 포권을 취했다.
“만두도 얻어먹었는데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야수혁이오.”
“…….”
사호는 대답 대신, 만두가 들어있는 면포를 통째로 야수혁에게 건네주었다. 어차피 몇 개 남아 있지도 않았다.
“나보고 다 먹으라는 거요?”
사호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야수혁이 뒤에서 “형씨! 고맙수다!” 하고 외쳤으나, 대답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거참, 이상한 형씨네.”
야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본능적으로 만두를 집어 먹었다. 순식간에 빈 면포만 남았다.
“몸이 꽤 좋아 보이던데. 다음에 만나면 팔씨름이나 한번 해 보자고 할까.”
마지막 만두를 입 안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며, 야수혁은 몸을 돌려 백룡장으로 향했다. 놓고 온 교보재를 서둘러 챙겨서 돌아가야 했다.
캬앗!
은호는 방금 네가 죽다 살아난 걸 알기나 하냐는 듯, 조그마한 앞발로 야수혁의 머리를 마구 때려 댔다.
???!
솜방망이 같은 발바닥으로 빠르게 연타를 때리는데, 보기와는 달리 실제로는 상당히 아팠다.
“아악! 이 털뭉치가 진짜! 아까부터 왜 자꾸 시비야? 한번 해보자 이거냐?”
캬아앗!
그리고 멀리서.
“…….”
사호는 은호와 드잡이질을 하는 야수혁을 지켜보다가 몸을 돌렸다.
백룡장을 보고 왔으니, 이번에는 청룡학관에 가서 옛 스승을 지켜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