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87
487화. 만약, 우리도
갑자기 사무실에 들이닥친 악연호의 모습에 놀란 것은 남궁수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악연호가 용무가 있는 대상이 백수룡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사실에 더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악연호 선생. 내게 용무가 있습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평소와 똑같은 냉막한 표정이었지만, 백수룡은 남궁수가 드물게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희미하게 떨리는 눈꼬리가 그 증거였다.
‘나한테 뭐라고 하더니, 사고는 지가 쳤구만?’
백수룡은 어디 한번 지켜보자는 심정으로 팔짱을 끼고 상황을 관망했다.
그런데 상황은 백수룡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쾅!
악연호는 손에 들고 온 무언가를 탁자에 내려찍었다. 거의 권법에 준하는 속도였다.
“예! 맞습니다! 이게 사실입니까?”
손바닥 안에 구겨진 것은 종이였다. 백수룡은 구겨진 종이 사이로 ‘수학여행’이라고 쓰인 글자를 발견했다.
남궁수도 그것을 확인하곤 미간을 찌푸렸다.
“……수학여행 대자보?”
“방금 전에 벽에서 떼온 겁니다! 어떻게 제게 한마디도 안 하실 수 있습니까!”
백수룡이 동아리 감사를 위해 밖에서 돌아다닐 때까지도 저런 것은 보지 못했으니, 정말 붙은 지 얼마 안 된 대자보일 것이다.
“연호야.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악연호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구겨진 대자보를 펼쳐서 백수룡도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곤 그중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장소 : 산동악가 강서 분가
“악가와 관련된 일인데, 최소한 제게는 귀띔해 주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저 모르게 본가와 일을 추진하실 수가 있습니까. 가운데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바보로 만들려고……!”
“악연호 선생.”
악연호의 말을 끊는 남궁수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소 당황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금안에서 서슬 퍼런 기운이 흘러나왔다.
“지금 이 행동,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하는데.”
“……!”
청룡학관의 일타강사는 상대가 누구라도 선을 넘는 것을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싸늘한 말투에 악연호가 움찔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내가 왜 자네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하지? 올해 수학여행 일정과 장소 선정을 보안 문제로 인해 비밀리에 진행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자네가 산동악가라는 이유만으로 기밀을 공유해야 하나?”
“그건…….”
평소보다 훨씬 고압적인 말투는 악연호가 자신보다 아랫사람임을 분명하게 인식시키고 있었다.
남궁수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만약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악연호라는 강사에 대한 평가를 대대적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겠군.”
지난 몇 년간 청룡학관 유일의 일타강사이자, 무림의 배분이나 경력으로 따져도 선배인 무인의 경고.
그럼에도 악연호는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말 한마디 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무슨 혈교의 첩자라도 됩니까?”
“대체……!”
“연호야.”
지켜보다 못 한 백수룡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남궁수가 금안에서 벼락을 쏟아 내기 직전이었다.
“지금은 네가 너무 흥분한 것 같다.”
백수룡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입사 동기이자 동생으로서 악연호를 좋아하지만, 이번만큼은 악연호의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뭔가 속사정이 있어서 저러는 것 같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헤아리고 배려해 줄 만큼,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다행히 백수룡의 중재로 남궁수의 말투도 조금은 차분해졌다.
“다른 할 말이 없다면 이만 나가 보도록 하시오. 수학여행 일정과 장소에 관해 불만이 있다면, 교무처를 통해 정식으로 항의하도록 하고.”
악연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완전히 납득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중재에 나선 백수룡 때문에라도 억지로 참는 듯했다.
“……제가 너무 흥분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쿵.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는 악연호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백수룡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넌 뭐 아는 거 있어?”
“……관심 없다.”
남궁수는 방금 전의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그러나 백수룡은 그의 표정이 전보다 확연히 굳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 *
백수룡은 급한 업무만 끝낸 후 악연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악연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수룡 형님? 형님이 여긴 웬일이세요?”
대신, 악연호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명일오가 혼자 남아서 일하고 있었다.
“일오야. 연호는?”
“오늘 몸이 안 좋다고 조금 전에 퇴근했는데…….”
명일오는 악연호가 이미 퇴근했다고 말해 주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고도 했다.
“혹시 연호한테 무슨 일 있냐?”
“예?”
백수룡은 악연호가 놓고 간 대자보를 명일오에게 보여 주며,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장소 : 산동악가 강서 분가
일정 안내 : ……생략……
특이사항 : 주작학관과 일정 및 교육을 합동으로 진행남궁수답게 딱 필요한 정보만 적혀 있는 일목요연한 내용의 대자보였다.
“연호가 이걸 가져오더니, 왜 자기한테 귀띔조차 안 해 줬냐면서 화를 내더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궁수한테 말이야.”
“화, 화를 냈다고요?”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미치지 않고서야……. 청룡학관에서 남궁수 선생님한테 시비 거는 사람은 형님뿐이라고요.”
“대충 칭찬으로 들을게. 아무튼 이상하단 말이지.”
백수룡이 생각하기에, 수학여행을 자신의 가문으로 간다는 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다.
물론 가문의 일원인 자신이 모르게 악가와 연락하여 진행되었으니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평소 둥글둥글한 악연호 성격을 생각해 보면 남궁수를 들이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남궁수도 그래서 처음에는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본인에게도 낯선 일이었을 테니까.
“뭔가 이상하긴 하네요. 연호가 남궁수 선생님한테 화를 내다니, 상상도 안 가는 일인데…….”
그때, 사무실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오라버니들. 여기 계셨네요?”
문을 반쯤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민 사람은 제갈소영이었다. 백수룡은 그녀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마침 잘 왔다. 소영이 넌 뭐 아는 거 없어?”
“네? 뭘요?”
늘 분위기를 주도하던 악연호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 어색했지만, 오랜만에 신입 강사 동기들끼리 한자리에 모였다.
백수룡의 이야기를 들은 제갈소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모르겠는걸요? 저도 연호 오라버니한테 강서 분가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온 거여서…….”
수학여행 장소가 산동악가의 본가가 아니라 분가로 결정된 이유는 거리상의 문제였다. 실제로 대인원이 산동까지 왔다 갔다 하려면 너무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분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는데, 그나마 제갈소영이 아는 것도 무림에 널리 알려진 정도였다.
“말 그대로 강서 지역에 있는 악가의 분가예요. 악가의 분가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부지가 넓다고 알려져 있는데, 창왕께서도 종종 들러서 별장처럼 이용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제갈소영은 설명을 덧붙이면서 대자보에 적힌 일정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보면 악가의 고수들을 초빙해서 무공을 교류하는 일정도 있는데……. 그걸 연호 오라버니가 전혀 몰랐다는 건 좀 이상하긴 하네요. 분명 가문과 연락을 주고받을 텐데.”
-어떻게 저 모르게 본가와 일을 추진하실 수가 있습니까. 가운데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바보로 만들려고……!
백수룡은 악연호가 화를 내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가문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일까?
“어쩌면…….”
얌전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명일오는 짐작 가는 게 있는지 표정을 굳혔다. 백수룡과 제갈소영의 시선이 머뭇거리는 그의 입을 향했다.
“……비밀이라고 하진 않았으니, 두 사람에겐 말해도 상관없을 겁니다.”
명일오는 고민 끝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저도 방학 때 알았습니다. 연호 그 녀석. 사실은 어릴 때 입양된 양자더라고요.”
“…….”
이어지는 명일오의 이야기를, 두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들었다.
* * *
“…….”
사호는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면포에 담긴 만두를 바라봤다. 지난번보다 두 배는 많은 양이었다.
-총각! 오늘도 아침부터 나가려고? 그럼 만두도 좀 가져가!
-넉넉히 좀 넣어요. 이 총각이 만두를 아주 좋아하잖아.
어쩌다가 생긴 오해인지 모르겠지만, 주점 주인 내외는 그가 만두를 좋아한다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먹을 만한 것은 사실이긴 했지만…… 사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만두 하나를 집어서 입 안에 넣었다.
우물우물.
만두를 우물거리며 멀리서 옛 스승을 지켜보던 사호는, 백수룡이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곤 몸을 돌렸다.
그는 백수룡의 사무실과 관주실, 학생주임 거처 등에는 꺼림칙해서 가까이 가지 않았다. 기감이 예민한 고수들이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심한다면 들키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었다.
-이걸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 원할 때 청룡학관에 출입할 수 있을 거다.
옛 스승이 준 청룡패는 품 안에 잘 넣어 두었다.
때문에 사호는 오늘은 몸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놓고 청룡학관을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
생각했던 것보다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태연하게 걸어 다니자 금방 시선을 거뒀다.
청룡학관은 넓었다. 사호는 이곳저곳 걸어 다니며 풍경과 사람을 구경했다.
아하하하!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이 끊이질 않는 소년·소녀들. 구슬땀을 흘리며 어설픈 무공을 수련하는 무인들. 은밀한 곳에 숨어 밀어를 속삭이는 남녀들.
……평화로웠다.
혈교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호에게 청룡학관은 낯설고 이상한 세계였다.
옛 스승은 이곳에 와서 변했다고 했다.
지난밤에는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제대로 이해한 것은 많지 않았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계속 지켜보면 이해할 수 있을까?
옛 스승이 변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어쩌면…… 나도 변하게 될까?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지 않으며, 사호는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어제 아침에 먹었던 만두가 진짜 끝내주게 맛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선생님 방에 똑같은 만두가 있었다니까? 진짜 신기하지 않수?”
“넌 동아리실에서도 하루 종일 먹었으면서 또 먹는 거 얘기니?”
“그하하하! 젊을 때는 실컷 먹어야 하는 법이지!”
“원강 선배. 아까 목형우 선배님 안색이 너무 창백하지 않았어요?”
“그거? 선생님이 준 보약 먹고 속이 울렁거려서 그렇다더라.”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함께 정문을 나서는 다섯 명의 모습이 보였다.
저절로 눈길이 갔다. 하나같이 사호에게 익숙한 무공을 익힌 흔적이 있었다.
“…….”
멈춰 선 사호는 물끄러미 청룡오망을 바라봤다. 유쾌하고 떠들썩한 소년·소녀들. 그 순간, 그들 위로 겹쳐 보이는 옛 얼굴들이 있었다.
만약, 어린 시절의 우리도 이곳에서 만났다면…….
“어? 만두 형씨다!”
사호를 발견한 야수혁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아는 체를 하는 순간, 은호가 그 뒤통수를 있는 힘껏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