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86
486화. 그걸 믿으라는 건가?
“선생님!”
사생결단을 낼 표정으로 다가오는 헌원강의 모습에, 백수룡은 저 자식이 오늘은 또 무슨 시답잖은 기습을 하려고 새벽부터 저러나 싶어 미간을 가늘게 좁혔다.
“죄송합니다!”
쿵!
그런데 헌원강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석고대죄하듯 바닥에 이마를 찍는 것이 아닌가?
“……너 어디 아프냐?”
백수룡은 제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고개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였다. 설마 무릎을 굽힌 건 기습할 때 추진력을 얻기 위함일까?
그러나 헌원강은 진심이었다.
“명색이 동연 회장이면서 그렇게 많은 동아리에 문제가 있는 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헌원강의 자기반성에, 백수룡은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어제 있었던 동아리 감사 활동에 대해서 알게 된 모양이었다.
하기야, 당소소와 함께 그 난리를 쳤는데 헌원강의 귀에 안 들어가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정확히 ‘많은 동아리에 문제가 있었다.’라는 구체적인 사실을 알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얘긴 다 누구한테 들었어?”
“……독고준한테서요.”
바닥에서 고개를 든 헌원강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난밤, 헌원강을 찾아온 독고준은 사과와 함께 동연 건물에서 소란이 일어났던 것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곁에는 뚱한 표정의 당소소도 함께 있었다.
“동아리 지원금을 횡령한 놈들이 그렇게 많았다면서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알았으면 가만 안 뒀을 건데…….”
피식 웃은 백수룡은 자책하는 헌원강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원강아. 걔들이 작정하고 장부까지 조작해서 숨기는데 네가 어떻게 알겠냐?”
“그건…….”
당소소야 목적이 있어서 적의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모아 둔 것이었을 뿐, 동연 회장이라고 해도 모든 동아리의 사정에 밝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헌원강은 팽사혁이 천무학관으로 편입한 후, 급하게 선거에 나가서 동연 회장이 되었다. 조직 장악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백수룡은 자책하는 헌원강의 모습이 더 신기했다.
“그리고 너, 무늬만 동연 회장 아니었냐? 실세가 상검연이라는 건 다른 애들도 다 아는데.”
백수룡이 정곡을 찌르자, 발끈한 헌원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검연에서 동연 운영을 도와주는 거거든요? 유이란이 동연 회의를 열면 저도 꼬박꼬박 참석해서 의견을 낸다고요!”
“……보통은 그걸 실세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게 뭘 잘했다고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어?”
따악!
결국 안 맞아도 될 매를 번 헌원강은 정수리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백수룡은 쯧쯧 혀를 차며 못난 제자를 바라봤다.
“마침 잘됐다.”
“예? 뭐가요?”
지난 몇 년간 변질된 동아리 문화가 헌원강 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연 회장이 가만히 앉아 관망만 하게 내버려 두는 것도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너 오늘 수업 별로 없지? 나랑 같이 남은 동아리들이나 조사하러 가자.”
비록 당소소와 같은 방식으로는 도움이 안 되겠지만, 헌원강은 헌원강만의 방식이 있었다.
“전부 조지러 가자고요?”
“……조사라니까.”
“예! 맡겨만 주십쇼!”
벌써부터 눈을 희번덕이는 모습만 봐도, 헌원강이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 알 수 있었다.
* * *
전날 있었던 백수룡과 당소소의 활약상이 소문이 쫙 퍼졌는지, 오늘은 방문하는 동아리마다 저자세로 나왔다.
“저, 저희는 제출한 동아리 활동 내역서에 적힌 대로 성실하게…….”
“니들 진짜 숨기는 거 하나도 없어? 털어서 하나라도 나오면 오늘 줄초상 날 줄 알아.”
헌원강이 흰자위가 다 보일 정도로 눈을 까뒤집고 목에는 핏대를 세우며 압박하자, 삼 학년 취업 동아리 회장은 목을 움츠리더니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두 달 전에 적운상단으로 채용설명회를 갔을 때, 사실은 이박이 아니라 일박을…….”
염라채에서도 본 적이 없을 만큼 뛰어난 설득 능력을 갖춘 인재 덕분에, 백수룡은 오히려 점잖게 말려야 할 정도였다.
“원강아. 적당히 해라. 사람이 살다 보면 몸에 먼지도 묻고 그러는 거지. 사소한 것까지 다 털면 이런 일 못 한다.”
“예! 알겠습니다, 형님!”
죽이 척척 맞는 스승과 제자가 동연을 휘젓고 다니자, 동연은 어제와는 다른 의미로 공포에 질렸다.
수군수군.
‘동연 회장이 권력의 앞잡이가 됐어…….’
‘아까 자연스럽게 형님이라고 하지 않았어? 무슨 동네 파락호야?’
‘아주 무공이 깡패지!’
‘저 자식은 무공이랑 상관없이 원래도 깡패였는데…….’
기껏 망나니에서 벗어난 헌원강의 명성이 실시간으로 깎여내려 가고 있었지만, 어쨌든 백수룡은 덕분에 편하게 동아리 감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뭐, 별건 없네.”
전날에 문제가 많은 동아리는 대부분 탈탈 털었기에, 오늘은 그다지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서류를 슥슥 넘기며 남은 동아리를 확인하던 백수룡의 손이 한 곳에서 멈췄다.
청룡오망 전원이 포함돼 있는 동아리이자, 백수룡 본인이 고문으로 있는 동아리의 이름이 나오자 그가 낮게 침음했다.
“사실상 방치하고 있었는데……. 원강아. 혹시 문제 될 거 있냐?”
“예? 전 모르겠는데요.”
“……이 자식아. 네가 여기 회장이잖아!”
“당신은 동아리 고문이잖아!”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영약요리 연구회의 동아리실로 향했다. 고문이긴 했지만, 온갖 일로 바빠서 동아리실에 가 본 것은 몇 달 만이었다.
다행히, 는 백수룡이 걱정했던 것처럼 유령 동아리가 아니었다.
“그하하하! 영요연에 어서 오십시오!”
앞치마를 두른 거상웅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방금 전까지도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던 듯, 동아리방 전체에 달착지근한 냄새가 흐르고 있었다.
“선배! 이거 진짜 맛있수!”
동아리실 한쪽에서는 야수혁이 고기를 뜯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은호가 ??거리며 고구마를 먹고 있었다. 여민은 당과로 보이는 것을 집어 먹으며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다가 백수룡과 헌원강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이게 무슨…….”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온갖 식재료와 약재가 가득한 동아리실을 둘러봤다.
동아리 설립 초기엔 그저 삭막하기만 했던 내부는 대형 객잔의 주방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도구와 재료들이 가득했다. 대체 자신이 신경 쓰지 않은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백수룡의 표정에서 의문을 느낀 것인지, 거상웅은 자랑스럽게 우람한 대흉근을 내밀며 말했다.
“방학 때부터 혼자 동아리실을 조금씩 꾸며 봤습니다. 명색이 요리 동아리인데 먹을 게 너무 없더라고요.”
“동아리 지원금으로 이게 감당이 가능하냐?”
거상웅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아리 지원금이요? 그런 푼돈으로는 간장 종지 정도밖에 못 사서, 대부분 제 사비로 샀습니다만?”
“…….”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태생부터 부자는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었다.
“횡령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동아리 활동도 축제 기간을 비롯해서 꾸준히 했고.”
어쨌든 의 활동 보고서에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백수룡은 거상웅이 만든 요리를 몇 개 먹어 본 후, 맛과 상관없이 영약 기운의 함량이 높은 것을 몇 개 추렸다.
“이거 몇 개만 목형우한테 좀 갖다 줘라.”
“세상에. 귀신같이 제일 맛없는 걸 골랐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제자들을 뒤로하고, 백수룡은 가장 마지막으로 상검연을 방문했다.
청룡학관 동아리 연합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동아리이자 실세인 .
“활동 보고서입니다.”
유이란이 내민 상검연의 활동 보고서는 깔끔했다. 요모조모 뜯어 봐도 문제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백수룡은 상검연을 한 줄로 평가할 수 있었다.
‘검만 죽어라 휘두르는 바보들의 모임.’
상검연은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청렴했다.
고문 강사가 남궁수인 데다가, 동아리 회장인 유이란의 성정도 올곧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초대 회장부터 내려온 상검연의 전통이 있다고 했다.
“만약 상검연 회장이 검에 매진하지 않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회원들이 합심해서 머리를 밀어 버리라는 초대 회장님의 말씀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어요.”
“……진짜 한 번씩 튀어나와서 놀라게 한다니까.”
백수룡은 어머니가 남긴 무시무시한 전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검연의 연무장 한쪽에서는 학생들 간의 대련이 진행 중이었다. 개중에는 영요연에서 보지 못한 위지천도 있었다.
채채채챙!
위지천의 대련을 잠시 구경하던 백수룡은 그 상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천이랑 비무하는 녀석, 묘하게 남궁수랑 닮았는데?”
“저 녀석 걔잖아요. 남궁수 선생님 사촌인가 오촌인가 하는 애.”
백수룡은 헌원강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저 소년이 누군지 떠올렸다.
남궁석.
올해 신입생들 중, 위지천 다음가는 차석으로 입학한 학생이었다.
“저 녀석도 상검연이야?”
“학생회 소속인데, 가끔씩 위지천한테 대련을 신청하러 와요.”
유이란은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설명해 주었다.
“지금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군.”
백수룡은 지금까지 자신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 깨닫곤 허탈하게 웃었다.
-청룡오망 말고도 많다는 거예요. 천무제에서 활약할 수 있는 청룡학관의 이무기들이요.
당소소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사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두 소년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쉴새 없이 부딪쳤다.
“위지천! 입학식 수석은 너였지만 졸업식에선 내가 수석이다!”
“어? 나는 졸업만 할 수 있으면 상관없는데…….”
“네 녀석! 끝까지 나를 모욕하는군!”
남궁석은 눈에 불을 켜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위지천도 그에 맞춰 전력을 다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여유가 상당히 있었다.
‘천이하고 비교하면 아쉽지만…… 그래도 뛰어난 재능이네.’
남궁세가의 혈통이었다. 신입생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을 만한 재능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백수룡은 잠시 그 소년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대련이 끝나기 전에 몸을 돌렸다.
“얘들아. 이만 가자.”
“……얘들아?”
헌원강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백수룡의 뒤를 따라붙었다. 선생님이 말실수를 했겠거니 생각하면서.
하지만 백수룡은 말실수를 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제자 한 명이 더 동행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 * *
동아리 감사를 모두 끝낸 백수룡은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한층 두꺼워진 서류 더미를 보란 듯이 남궁수 앞에 내려놓았다.
쿵!
묵직한 소리에 남궁수가 고개를 들자, 백수룡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씩 웃고 있었다.
“……뭐지?”
“동아리 감사 서류. 보다시피 이틀 만에 전부 해치웠지.”
“…….”
남궁수는 별다른 말 없이, 서류를 빠르게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 강사치곤 제법이군.”
“……그게 다야?”
“고작 이 정도 일로 칭찬이라도 해 주길 바랐나?”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리는 남궁수의 말투에, 백수룡의 눈썹이 씰룩였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더니 손을 휘휘 저었다.
“에이, 설마. 누구였으면 사흘은 걸릴 일을 이틀 만에 해냈지만, 내 기준에서 딱히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서.”
“물론 그렇겠지. 학생들의 도움까지 받았으면 하루 안에 끝냈어야 할 양이었으니.”
“바쁘시다면서 남의 뒤를 캐고 다닐 시간은 있으셨나 봐?”
“학관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만히 있어도 귀에 들어오더군.”
점점 유치해져 가던 두 사람의 말싸움이 멈춘 것은, 그들이 동시에 사무실 밖으로 고개를 돌리면서였다.
기척 하나가 이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궁수는 자연스럽게 백수룡을 노려보았다. 보나 마나 백수룡을 찾아온 사람일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백수룡. 또 무슨 사고를 쳤지?”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걸 믿으라는 건가?”
“……아마도?”
이미 여러 번의 전적이 있는 터라, 백수룡도 강하게 아니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누구지? 사호일 리는 없고…….’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에 사호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백수룡도 알 수 없었다.
“음? 잠깐만. 이건…….”
분명 익숙하지만, 동시에 저렇게 흥분할 리가 없는 인물의 기척에 백수룡이 표정을 살짝 굳힌 순간이었다.
콰앙!
사무실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온 사람은,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 힘든 인물이었다.
“……연호?”
“남궁수 선생님!!”
화가 많이 났는지 씩씩거리며 들어온 악연호의 눈빛은, 명백히 남궁수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