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36
536화.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천뢰검법과 제왕검형에 깨달음을 얻어 하나로 갈무리하고 눈을 떴을 때, 남궁수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백수룡의 검이었다. 그 아래에 정갈한 필체로 쓰인 서찰이 놓여 있었다.
“……또 무슨 짓이지?”
밖에서는 고함과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려오고, 희미한 혈향마저 풍겼다.
혼란스러웠지만, 남궁수는 일단 침착하게 백수룡이 남긴 서찰을 읽고, 거기에 적힌 대로 창룡신검을 손에 쥐었다.
[드디어 깨어났구나.]“……검이 말을 한다더니. 날 놀리는 건 아니었군.”
[사안이 급박하니 우선 중요한 것부터 전해 주마.]창룡신검 안에 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잠시, 남궁수는 그녀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리하여, 너의 뇌성벽력을 감당하지 못해 일부는 진법 밖으로 흘려보내야 했다. 곧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오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창룡신검의 말대로였다. 바로 피 묻은 칼을 쥔 혈교도 몇이 그의 거처를 찾아 왔다. 한동안 창룡신검이 기파를 막아 두었으나, 더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조리 쓸어버렸다. 힘 조절이 완벽하지 않아 숙소의 벽이 허물어지고 적들이 숯덩이로 변했다.
남궁수는 곧장 숙소에서 빠져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학생들부터 구하기 시작했다.
“남궁수 선생님!”
거상웅과 야수혁, 학생들을 만나 안전을 확보한 후에 이야기를 들었다. 거상웅이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숨기는 듯했지만, 전장의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알겠다. 너희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서 상처를 치료하도록.”
“선생님은 어쩌시려고…….”
“우선 싸움을 멈춰야겠지.”
휘이익!
하늘로 높이 날아오른 남궁수는 깨달음을 얻기 전보다 몇 배는 확장된 감각으로 전장 전체를 살폈다.
‘어째서 나를 빨리 깨우지 않았지.’
남궁수는 조용히 분노했다.
멱살을 붙잡고 따져 물어야 할 녀석은 혈교가 파 둔 함정에 제 발로 찾아갔다고 했다.
‘돌아오면 가만두지 않겠다.’
거대한 기운들이 충돌하는 곳은 일단 제쳐 두었다.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익숙한 기척들이 미약하게 느껴질 때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멈춰라!”
온갖 소음으로 뒤덮인 전장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는 금세 묻혔다. 사자후를 터트린들 가까이 있는 자들만 잠시 움찔하게 만드는 것이 한계였다.
모두의 뇌리에 새겨질 만한 방법이 필요했다.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할 만큼 아주 강력한 하늘의 경고가.
파지지직……!
벼락을 머금은 그의 금안이 무시무시하게 번뜩였다. 전신에서 용솟음치는 힘을 끌어올려 뇌성벽력을 지상으로 떨어뜨렸다.
쿠르르르릉-!
뇌성벽력이 무너진 협곡을 뒤흔들었다. 벼락 줄기가 밤하늘을 찢어발길 때마다 세상이 대낮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길 반복했다.
지상에는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얼굴들 중에 아는 얼굴들이 적지 않았다. 싸움을 멈춘 혈교도들도 경악한 얼굴로 새롭게 등장한 절세고수를 바라봤다.
남궁수는 그중에서 악연호를 발견했다. 팔 한쪽이 피투성이로 변해서 쓰러져 있는 악연호의 모습을 본 순간, 그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 * *
콰콰콰콰쾅!
병장기가 부딪칠 때마다 천둥 같은 굉음이 터진다. 창룡신검을 휘감은 뇌전이 새하얀 궤적을 그릴 때마다 어둠이 밀려났다.
바로 앞에서 작열하는 뇌전의 열기에, 악비는 얼굴의 상처가 지져지는 고통을 느꼈다. 도저히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난번에 겨루었던 놈이 맞단 말인가!’
불과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도 분명 대단하다 할 만한 무위를 지니고 있었지만, 공력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면 명백히 자신보다 한 수 아래였다.
그러나 지금의 남궁수는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무인이었다. 검을 막아 낼 때마다 악가창이 낭창거리며 휘었다. 가문의 신물이 아니었다면 벌써 부러졌을 터였다.
‘인정할 수 없다!’
악비의 얼굴이 질투심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무림십존이자 천하제일창이라 불리는 위대한 무인이었다. 고작 며칠 만에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이 정상적인 것일 리 없었다.
“놈! 어디서 사악한 마공이라도 익힌 것이냐?”
남궁수는 시답잖은 도발에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창룡신검이 우웅- 울면서 분노했다.
[저 주둥이를 찢어 버리려무나!]‘……주인을 닮아 입이 험하군.’
백수룡은 창룡신검의 정체가 현천신녀라는 사실까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때문에 남궁수는 창룡신검을 신기한 영물 대하듯 대했다.
혈교의 공격을 알고도 백수룡을 따라가지 못하고 남아 술법으로 남궁수를 지켜야 했던 만큼, 창룡신검은 그간 쌓인 것이 많았다.
[저자가 바로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다! 결코 용서해선 안 될 것이야!]‘알았으니 얌전히 있도록.’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검이지만, 자신과는 조금 안 맞는다고 남궁수는 생각했다.
물론 원래 사용하던 검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제 어지간한 보검도 남궁수의 무공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다.
파지지지직!
검을 휘두를 때마다 벼락 줄기가 짐작하기 힘든 궤적으로 뻗어 나갔다. 악비는 호신강기를 두른 채 팔방으로 창을 휘둘러 흘려 냈다.
“크윽!”
뇌기를 다루는 무공은 익히기가 극히 까다롭지만, 경지에 이르면 천하에서 손에 꼽힐 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무공이었다.
게다가 남궁수가 익힌 무공은 천뢰검법(天雷劍法)만이 아니었다.
쿠구구궁……!
무형의 압력이 몸을 짓누른다. 고수라면 누구나 뿜어낼 수 있는 기세와는 다르다. 일정한 공간이 시전자의 권역으로 화하는 신공. 제왕검형(帝王劍形)이었다.
“부끄럽지도 않으냐! 남궁세가의 아들이 사술과 결합한 마공을 익히다니!”
사술이나 마공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공간을 지배하고 벼락을 떨어뜨린다. 과녁에 실을 매단 화살을 쏘는 격이었다. 제한된 움직임으로는 피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호신강기를 펼쳤음에도 악비의 몸에 그을음이 번져 갔다.
천뢰제왕검형(天雷帝王劍形).
훗날 천하에 명성을 떨칠 남궁세가의 새로운 신공절학이었다.
“이제 보니 마공을 대가로 혈교와 내통한 모양이구나! 네놈이 혈교와 내통해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었어!”
악비가 진심으로 남궁수의 무공을 마공이라고 생각할 리는 없었다. 직접 부딪쳐 봤다면 더더욱.
‘여론을 선동하려 드는군.’
남궁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느새 수많은 무인들이 두 절세고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 가주님? 분명히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직접 잘린 수급을 봤는데…….”
“어째서 뇌룡신검과 싸우고 있는 겁니까?”
“혈교? 마공이라고? 뇌룡신검이 말입니까?”
“어쩐지 한동안 보이지 않더라니…… 저자가!”
악가의 무인들은 커다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가주가 다시 나타나 뇌룡신검과 생사결을 벌이는 상황.
일부는 가주님을 도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러자 청룡학관 강사들이 곧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헛소리! 남궁수 선생님이 혈교와 내통했다니!”
“눈이 옹이구멍이 아닌 이상 저게 마공으로 보입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혈교도들이 저렇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헌데 저자가 창왕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얼굴 절반이 찢겨 나갔는데…….”
“섣불리 추측하지 맙시다. 어차피 우리가 끼어든다고 결과가 달라질 것도 없을 테니…….”
그 순간, 남궁수가 입을 열었다.
“그만.”
낮은 목소리임에도 천둥처럼 전장에 울려 퍼졌다. 모두가 제왕검형에 당한 것처럼 침묵을 강요당했다.
남궁수는 악비처럼 구구절절한 말로 여론을 선동하지 않았다.
그는 이 싸움을 오래 끌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서둘러 악비를 제압해야 전장에 흩어진 학생들을 찾아 보호하고, 강사들을 돕고, 혼자 함정으로 들어간 괘씸한 후배를 찾으러 갈 수 있을 테니까.
“창왕이라더니.”
때문에 남궁수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과격한 언사로 상대를 도발했다.
“혀가 창보다 더 길었나.”
“네 이노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악비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달려들었다. 그의 전신을 휘감은 칼바람이 사방팔방에 날카로운 흔적을 남겼다.
그 순간부터 절세고수들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흐릿해진 신형이 겹치면서 굉음이 연달아 터졌다.
콰콰콰콰콰쾅!
새하얀 벼락이 어둠을 불사르고, 태풍처럼 번지는 칼바람이 대지에 수많은 상흔을 새겼다.
안법을 수련한 고수들조차 두 절세고수의 움직임을 흐릿하게만 분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가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파지지지직!
줄기줄기 뻗어 나간 벼락이 태풍을 헤집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태풍의 힘이 약해지고 점차 사그라졌다.
마침내.
“쿨럭!”
온몸에 혈흔과 그을린 자국이 가득한 모습으로, 악비가 지상으로 추락했다.
반면에 남궁수는 안색이 조금 창백해지고 무복이 여기저기 찢어졌을 뿐,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내, 내가…… 졌다.”
얼굴 절반이 흉물스럽게 변한 악비가 패배를 인정했다. 악연호에게 당한 상처를 치료할 틈도 없이 뇌기가 지져 버린 탓이었다. 뒤늦게 치료를 한다고 해도 평생 지울 수 없는 흉터로 남을 터였다.
“혈교와 내통이라니……. 터무니없는 모함이지만, 그래. 원한다면 나를 데려가서 조사하도록 하라.”
악비는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 사납게 웃으며 남궁수를 노려봤다.
“단, 내게 혐의가 없음이 밝혀진다면 남궁세가에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상대가 먼저 항복한 이상, 명문 세가 출신은 명분 없이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하물며 가문과 가문이 엮인 일이다. 지켜보는 눈도 적지 않았다.
죄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면 모를까, 남궁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내 언젠가 오만무도한 남궁가 종자들의 씨를 말려 버릴 것이다!’
악비는 살의를 감추며 순순히 오라를 받겠다고 말했다. 당장은 수모를 당하겠지만, 생사결을 계속하다가 패사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악비는 잠깐의 치욕을 견디고 훗날을 도모하고자 했다.
남궁수는 그런 악비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닮았군.”
“……뭐라?”
남궁수는 악비에게서 죽은 남궁제학의 모습을 보았다.
-폭로? 마음대로 해 보거라. 나는 창천검왕이다. 존귀한 무림십존이고, 남궁세가를 천하제일세가로 만든 인물이며, 남궁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주였다. 네가 떠들어 봤자 하나가 더 늘어날 뿐, 나의 삶을 흠집 내지는 못한다.
남궁세가를 천하제일세가로 우뚝 서게 만든 인물이었으나, 훗날 그 업보로 인해 가문을 멸문지화의 위험에 빠뜨린 자.
-증거가 있느냐? 이미 모두 폐기했다. 네가 지하에서 본 백골들? 이미 다 썩어 문드러졌을 놈들이 무슨 증거가 되지?
흑야마제에 패배한 후 죽어 가면서, 그는 진실을 요구하는 백수룡을 비웃으며 모든 사실을 실토했다. 가문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채.
-나는 끝까지 남궁세가를 지키다가 죽을 것이다. 지금도, 간악한 혈교의 공격에서 세가를 지켜 냈지. 이보다 더 위대한 최후가 어디 있단 말이냐. 하하하하하!
남궁제학은 끝까지 자신이 가문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야망과 탐욕을 위해, 가문을 핑계 삼아 끔찍한 악행들을 저질렀다.
악비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마음이 바뀌었다.”
남궁수는 창룡신검의 검파를 단단히 움켜쥐며 말했다.
“무, 무슨 말이지?”
불안감을 느낀 악비가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산동악가주 악비. 당신은 살아서 가문의 뇌옥에 갇힐 자격이 없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판단을…….”
콰앙!
제왕검형의 막대한 압력에 악비의 무릎이 땅에 처박히고, 그 앞으로 남궁수가 걸어갔다.
백수룡이었다면 악비를 살려 두고 오래도록 고통을 주는 방법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궁수는 그런 방법은 알지 못했다.
“생사결의 승자로서, 패자의 목을 취하겠다.”
남궁수가 서늘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죄인의 형벌을 결정하는 판관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 그만두어라! 본가가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네 경솔함으로 인해 가문 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제발…….”
흉물스러운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악비가 필사적으로 협박하고 애원했다. 그러나 남궁수의 검은 이미 그의 목 옆에 놓여 있었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악가는 오히려 고마워할 것 같군.”
“헛소리! 끝까지 조롱을……!”
악비가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았으나, 남궁수는 미련 없이 검을 휘둘렀다.
스걱! 뇌기를 머금은 검날이 목덜미를 스쳤다. 그대로 지져 버린 탓에 피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툭.
굴러떨어진 머리가 데구루루 바닥을 굴러 남궁수의 발치에 멈췄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악비의 얼굴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
“……!”
절세고수들이 벌인 생사결의 결과에, 소리 없는 경악이 군중들 사이로 번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십존이 패사했다.
그 말은 즉, 새로운 십존이 탄생했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