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57
557화. 얼마 남지 않았다
“허억!”
헌원강은 참았던 숨을 한 번에 토해냈다. 급하게 휘두른 도가 목표에서 크게 벗어났다.
비틀대는 몸의 중심을 잡아 보려 했으나, 상대는 그걸 놓칠 만큼 만만한 무인이 아니었다.
“어이, 꼬맹이. 장난해?”
외눈 도객의 눈매가 장난스럽게 휘었다. 헌원강의 옆을 스쳐 가는 흑단 같은 머리카락. 슬쩍 올라간 입꼬리에 맺힌 미소는 맹수의 그것처럼 섬뜩했다.
퍼억!
칼등에 복부를 얻어맞은 헌원강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맞은 곳을 손바닥으로 살살 문지르며 류설을 바라봤다.
“끄응…….”
연전연패.
단 한 번도 이기기는커녕 우세조차 점해 보지 못했다.
비록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가벼운 비무였다지만,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쌍도를 쓰는 류설은 그중 한 자루만 사용했는데도.
일괴를 죽이며 얻었던 헌원강의 자신감이 겸손함으로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십대악인을 베었다더니. 허풍이었나 보지?”
“그, 그건 혼자서 한 게 아니라…….”
“변명해도 소용없어. 사람들은 네가 혼자서 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소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 주지 못하면 실망할걸?”
“…….”
어깨에 도를 턱 걸친 류설의 말에 헌원강은 입을 다물었다.
독안마도 류설.
무림맹 산하 멸사단의 단주이자 천하오대도객으로 손꼽히는 도의 초고수.
헌원강은 지난밤 백수룡이 그녀에 관해 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마 현 무림에서 천하제일도에 가장 가까운 무인일 거다. 좋은 기회니까 최대한 많이 가르쳐 달라고 해.
-천하제일도는 흑사련주 아니에요?
-……뭐, 아직은 차기라고 해 두자.
전 흑사련주, 도마 소지광이 단전을 잃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백수룡의 입에서 ‘천하제일도에 가깝다’라는 평을 듣는 무인이 류설이었다.
헌원강은 그녀를 찾아가 한 수 가르침을 부탁했고, 류설은 기꺼이 승낙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전장에서 얻은 수라혈천도의 깨달음과 실전 경험이 더해진다면, 맥없이 당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그러나 류설은, 헌원강이 넘보기에는 아직 너무 높은 벽이었다.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헌원강은 몇 차례 숨을 고른 후 일어나 다시 흑도를 들었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진 않은 탓에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배워 강해지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소년의 눈에 그대로 드러났다.
“어쭈. 패기 하나는 마음에 든다?”
류설이 씨익 웃었다.
처음 헌원강이 찾아왔을 때만 해도 백수룡의 제자라기에 흥미가 조금 생긴 정도였는데, 지금 그녀는 속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총사범은 대체 뭘 키워 낸 거야?’
헌원강의 신체는 거의 완성된 수준이었으며, 칼을 휘두르는 본능과 감각은 수없이 실전을 거듭한 멸사단의 정예들 못지않았다.
‘후기지수 수준은 진작 뛰어넘었어.’
파천도라는 별호를 당당하게 내세우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나이를 고려하면 그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부족한 것은 경험과 숙련도뿐이었다.
무엇보다 저 이글거리는 눈빛은, 자신을 진심으로 이겨 보겠다는 오기로 가득했다.
피식.
“너 지금 눈빛이 아주 불손하다?”
“흐아아압!”
류설은 겉으로는 감탄을 드러내지 않았다. 백수룡이 자신에게 헌원강을 보낸 이유를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명성을 떨친 제자가 오만해지지 않게, 제대로 된 실력 차이를 보여 주라 이거지?’
류설은 그렇게 했다. 그녀쯤 되는 초고수가 후기지수를 상대로 방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유로워 보여도,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압도적인 실력으로 찍어 눌렀다.
‘나도 까마득한 후배한테 망신당하긴 싫거든.’
퍼억!
결국 또 한 번 바닥을 구르는 헌원강 앞에서, 류설이 할 만큼 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큭……. 더 할 수 있어요.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류설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은 무리야. 상처 터지면 니네 사부가 날 가만 안 둘걸.”
“그래도 조금만 더…….”
헌원강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애원하자, 류설이 머리를 벅벅 긁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럼 아까 초식 펼칠 때 자세나 다시 잡아 봐. 한번 봐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잔뜩 기합이 들어간 헌원강이 자세를 잡았고, 류설은 어쩌면 미래에 자신의 경쟁자가 될지도 모를 후배에게 천금과도 같은 과외를 해 주었다.
헌원강뿐만이 아니었다.
청룡학관의 연무장 곳곳에서 그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채채채채챙!
그중 한 곳, 검명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곳에선 위지천과 백무흔이 비무를 벌이고 있었다. 상검연을 비롯해 검을 든 학생들 다수가 그들의 비무를 관전 중이었다.
“다 좋은데 검로가 조금 사납군. 실전에서 몸에 밴 듯한데……. 하수의 적들에게는 잘 먹힐지 몰라도, 동급 이상의 고수에게는 수가 쉽게 읽힐 수 있다.”
백무흔은 위지천의 날카로운 검세를 모조리 흘리며 조목조목 개선할 부분을 지적했다.
“물론 천이 네 또래에 그만한 상대가 몇 명이나 있겠냐만……. 용봉비무 우승을 노리려면 조금 다듬을 필요가 있겠다. 생각지도 못한 괴물 같은 녀석들이 간혹 나오는 법이거든.”
“네!”
위지천은 생기 가득 초롱초롱한 눈으로 대답하며 검세를 한층 예리하게 다듬었다.
‘다른 녀석들 입장에서는 너도 충분히 괴물이다만.’
백무흔은 피식 웃으며 뒷말을 삼켰다. 대신 오랜만에 신나서 검을 휘두르는 위지천의 검을 강하게 쳐 냈다.
쩌엉!
“이번에는 내가 공격을 할 테니, 손목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흘려 보거라.”
순간 휘둥그레 눈을 뜬 위지천이 이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학생들 사이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위지천의 검을 저토록 쉽게 막아 내는 사람은 기존 강사들 중에서도 몇 없었다.
그런데 백무흔은 위지천을 상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먹은 순간에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왔다.
완전한 지도대련이라는 의미였다.
“손목의 힘을 일 할만 빼고, 너무 감각에만 의존하기보단 내 검을 끝까지 마주하고 막아 보거라. 힘으로 받는 게 아닌, 사선으로 비껴낸다는 느낌으로.”
“이렇게요?”
위지천은 백무흔의 조언을 쑥쑥 흡수하며 검로를 조금씩 다듬었다.
지금껏 대부분 백수룡 혹은 매극렴과 검을 겨뤄 왔던 위지천에게는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잘하는구나.”
백무흔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극렴이 본격적으로 관주 대리로서의 업무를 시작하면서, 그 역시 청룡학관 학생주임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놀라면서도 반기는 분위기였다.
“백수룡 선생님이 왜 그렇게 강한가 했더니, 집안 자체가 저런 거였구나.”
“저, 선배님들. 학생주임 선생님은 학관에서 손꼽는 문제아셨다고 하지 않았나요?”
“우리 실력으로는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하겠는데…….”
주변에서 학생들의 걱정이 담긴 웅성거림이 들려오자, 백무흔이 그들을 슬쩍 돌아보며 웃었다.
“한 명씩 수준에 맞춰서 지도해 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래 봬도 십 년 넘게 무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몸이거든.”
싱긋 웃으며 말하는 백무흔의 모습에, 학생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예! 학생주임 선생님!”
검을 수련하는 학생들 모두가 설레는 표정이었다.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술렁임이 더욱 컸다.
청룡학관에 새롭게 유입된 강사들은 각자가 맡은 바 역할을 빠르게 해내고 있었다.
쩌저저적……!
한쪽에서는 새하얀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제 막 십이월에 들어선 청룡학관에 한겨울의 추위를 불러온 장본인은 서리애였다.
그녀는 빙공과 새외 무공 수업을 담당했다. 지금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빙공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일반적인 무학과 빙공은 그 궤가 다르다. 너희들이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대처한다면, 밖에 나가서 빙공의 고수를 만나더라도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야.”
그 옆에서는 여민이 숙련된 조교 역할을 맡았다.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서리애와 대련을 펼치기도 했다.
가장 큰 연무장에서는 외공 수업이 한창이었다. 학생들이 다 함께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많은 인원이 듣는 수업답게 철두와 장걸이 함께 수업을 진행했는데, 학생들 사이를 걸어 다니는 둘의 표정이 살벌했다.
“마보 자세로 앉았다 일어나기 백 회 더 반복한다!”
“일어날 때는 어깨에 걸친 통나무를 번쩍 들고, 앉으면서 다시 어깨에 올린다. 척추를 견고하게 세우고 동작 간 구령과 함께 반복한다!
“자고로 무인의 힘은 둔근과 허벅지에서 나온다! 내 팔뚝보다 허벅지가 가느다란 사내새끼들은 부끄러운 줄 알도록!”
“부상이 다 낫지 않은 놈들은 빠져라. 무리하다가 걸리면 진짜 뒈지는 수가 있다!”
출신 성분의 애매함을 드러내는 언행이 종종 흘러나왔으나, 청룡신협에게 익숙해진 학생들은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오히려 학생들의 지독함에 철두와 장걸이 혀를 내둘렀다.
특히 선두에서 흑백쌍웅이 남들보다 몇 배는 무거운 무게로 묵묵히 외공을 수련하니, 다른 학생들도 자극을 받아서 더 열심이었다.
청룡학관은 상처를 딛고 더욱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막바지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백수룡은 건물 옥상에서 학관을 전체적으로 살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청룡오망뿐만 아니라 학관의 모든 학생들, 강사들에게 두루 미쳤다.
청룡오망의 수련은 한동안 일부러 다른 강사들에게 맡겼다.
다양한 상대를 경험해 보는 것이, 천무제에 나가서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깊어지며 백수룡의 눈에 다양한 감정들이 비칠 때였다.
“이곳에 있었구나.”
등 뒤에서 불쑥 다가오는 익숙한 기척에도 백수룡은 놀라지 않았다. 매극렴이 그의 옆에 나란히 서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수업이 없느냐?”
“잠깐 숨 좀 돌리고 있었습니다. 반 각 후에는 내려가 봐야 합니다.”
백수룡은 누구보다 바빴다. 맡은 수업을 제외하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그에게 개인 지도를 요청했고, 백수룡은 그중 하나도 빼먹지 않으려고 일정을 짰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매극렴이 한숨을 쉬며 손자를 바라봤다.
“무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저도 그러고 싶은데……. 며칠만 더 무리하겠습니다. 점점 더 욕심이 나서요.”
백수룡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천무제 우승.
그 목표는 여전히 같지만, 이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어디서도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압도적이고 완벽하게 이기게 만들고 싶습니다. 저 녀석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도록요.”
청룡오망만이 아니라, 청룡학관 전부가 승자가 되길 원했다.
물론 지나친 욕심인 것은 안다.
청룡학관이 모든 종목에서 우승하는 건 불가능하리라.
차라리 청룡오망을 비롯해 무공이 뛰어난 학생들 위주로 지도하고, 점수가 높은 종목에 집중해 종합 우승을 노리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았다.
하지만.
백수룡은 이번만큼은 전략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모든 학생들의 지도대련 요청을 받아 준 이유였다.
“……나 역시 저 아이들 모두가 이기고 돌아왔으면 좋겠구나.”
매극렴 또한 같은 심정이었다. 천무제를 앞둔 백수룡의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무리하는 손자를 걱정하면서도 강하게 만류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 이상은 무리하지 말거라. 이건 할애비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관주 대리로서 하는 경고다.”
“예. 알겠습니다.”
조손은 함께 청룡학관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잠시 말이 없던 매극렴이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물었다.
“혹 남궁 선생은 보지 못했느냐?”
“남궁수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새벽에 사무실에 출근한 이후로 못 봤습니다.”
“흐음.”
“왜 그러십니까?”
“남궁 선생이 요즘 만신(萬神)을 알아보는 것 같더구나.”
만신(萬神)이란 신내림을 받아 길흉화복을 점치거나 귀신을 쫓는 의식을 행하는 무녀들 중, 실력이 몹시 뛰어난 자들을 일컬었다.
“갑자기 만신은 왜요?”
“자세히는 모르겠구나. 천무제에 출발하기 전에 제(祭)라도 올리려는 것인지……. 그런 거라면 날짜와 시간을 맞춰 봐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만나면 한번 물어보거라.”
……설마?
백수룡은 불현듯 든 생각을 부정했다.
혈마를 쫓아내겠다고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 자식은 내가 진짜로 귀신에 씐 줄 아는 건가?’
어쩐지 최근에 자신을 노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더라니.
하마터면 아무것도 모르고 당할 뻔한 백수룡이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그때였다.
“음?”
“저건…….”
조손의 눈에 청룡학관으로 다가오는 화려한 마차 한 대가 보였다.
마차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천하제일(天下第一) 천무학관(天武學館)
마차에 꽂힌 깃발에서 여덟 글자가 세차게 펄럭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글자에 빼앗겼다.
“처, 천무학관?”
“천무학관에서 갑자기 왜…….”
수련에 집중하던 학생들과 강사들도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다가오는 마차를 바라봤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잠시 후 청룡학관에 들어선 마차에서 한 사람이 내려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