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58
558화. 다시 보니까 어땠어?
사박.
마차에서 내려 바닥을 딛자, 군청색 가죽신이 부드럽게 땅에 닿았다. 사소한 동작이었으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기엔 충분했다.
헌앙한 풍채와 붓으로 그린 듯 반듯한 이목구비의 청년이었다. 마차에서 내려 청룡학관 내부로 걸어오는 큰 보폭에선 몸에 밴 듯한 여유가 묻어났다.
“……누구지?”
“천무학관에서 온 전령치고는 너무 젊지 않나요?”
“무림맹의 검문을 통과한 걸 보면 천무학관 사람은 맞을 텐데.”
한눈에 보아도 비범해 보이는 인물의 등장에, 신입생들이 수군거리며 의아해했다.
한편, 청년의 정체를 알아본 고학년과 강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자, 잠깐만. 저 녀석은……!”
“어째서 저자가 이곳에?”
고학년들을 중심으로 조용히 경악이 번져 나가는 가운데, 야수혁은 순간 느껴지는 살기에 흠칫하며 옆을 돌아봤다.
“선배? 왜 그러슈?”
“…….”
거상웅이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던 굳은 표정으로, 학관을 향해 걸어오는 청년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꾹 참는 듯, 주먹을 꽉 움켜쥔 손등에서 굵은 핏줄이 불거졌다.
그때, 걸어오던 청년이 자리에 멈춰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포권을 취했다.
“불쑥 찾아온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청룡학관 학생들의 수련을 방해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청년은 자신에게 향하는 따가운 시선들을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그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부드러우면서 유쾌했다.
“저는 천무학관 사 학년. 초일이라 합니다. 천무학관에서 청룡학관에 보내는 서한을 가지고 왔습니다.”
“……권패 초일!”
“천무학관의 용봉!”
권패 초일.
천무학관에서도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 중 한 명으로, 용봉비무에서 이 년 연속 최종 여덟 명에 포함돼 용봉이란 칭호를 얻은 천하의 기재였다.
성정이 급한 호사가들은 권왕 야율황이 은퇴한 이후엔 권왕이란 칭호를 권패가 이어받게 될 거라고 떠들기도 했다.
“초일.”
쿵!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거상웅이 성큼 앞으로 나서서 초일을 가로막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누구도 막지 못했다.
초일과 마주 선 거상웅의 표정이 무서울 정도로 굳어 있었다. 평소의 넉살 좋은 그를 아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흠칫할 정도로 살기가 짙은 모습이었다.
“나를…… 기억하나?”
초일도 헌원강만큼이나 큰 체격이었지만, 거상웅은 그야말로 거인이었다.
원래도 청룡학관에서 가장 컸던 체격은 백수룡의 지도 아래 외공을 익히면서 더욱 단단해졌고, 사곤의 가르침을 받으며 완성에 가까워졌다.
거상웅이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며 노려보면, 웬만한 간담으로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할 터였다.
“음?”
그러나 초일은 아무런 위압감도 느끼지 못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글쎄. 우리가 구면이던가?”
“……!”
거상웅은 이를 꽉 악물었다.
이 년 전.
호북의 밤거리에서 별것도 아닌 일로 천무학관 학생들과 시비가 붙었던 날을 기억했다.
그때 자신을 초주검으로 만들고 조롱하던 초일의 목소리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들려왔다.
-이런 병신같은 무공을 가지고 천하제일권이 되겠다고?
초일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교활하고 잔혹한 인간이었다.
-거기, 무슨 일이냐!
-이 친구들이 술에 취해 행인들을 못살게 굴기에, 잠시 주의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언제……!
그날 있었던 싸움은 청룡학관에서 먼저 시비를 건 것으로 알려졌고, 결국 학생들 간의 가벼운 마찰로 무마되었다.
이후 거상웅이 주화입마에 빠져 이 년간 폐인처럼 지내는 동안, 초일은 권패라는 별호를 얻으며 천하무림이 주목하는 후기지수로 성장했다.
‘이제는 안다.’
초일에게 당한 이후로 무공을 수련하려고만 하면 손발이 벌벌 떨렸던 것이, 단순히 공포심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놈이 무언가 수작을 부려서 자신이 주화입마에 빠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거상웅이 뿌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우리가 구면이냐고?”
쿠구궁……!
거상웅이 밟고 있는 지면이 짓눌리며 선명한 발자국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한 압력에 바닥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초일은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혹시 우리가 천무제에서 만나 붙은 적이 있던가?”
방금 그 말을 들으며 거상웅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개자식은 전부 기억하고 있으면서 모른 척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나는 천무제에 나가지 못했다. 사고가 있었거든.”
“이런. 안타깝군. 헌데,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가 만날 일은 없었을 텐데?”
“…….”
“미안한데 비켜 주겠나? 오늘은 천무학관의 전령으로서 공식적으로 청룡학관주님을 뵈러 온 터라, 웬만하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거든.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되겠지.”
묘하게 도발처럼 들리는 말.
거상웅에게는 지난번처럼 당하기 싫으면 괜히 덤비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후우…….”
거상웅은 심호흡을 했다. 주먹을 쥐었다가 펴는 걸 반복하며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이곳에서 주먹을 휘둘렀다간 청룡학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꼴이 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난 이 년간 자신을 지옥에 처박은 상대가 눈앞에 있지만, 천무제에 참가하려는 목표가 바로 이 녀석이지만…….
‘참아야 한다.’
머릿속으로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상웅의 몸은 서서히 맹호투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흐음. 이거 정말 곤란한데. 끝내 싸움을 걸겠다면…….”
초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늘어뜨린 두 팔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자세를 취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청룡학관과 천무학관을 대표하는 권각의 달인들이 충돌하려는 찰나.
“어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헌원강이었다. 사납게 눈을 치켜뜬 그가 거상웅을 옆으로 밀어내며 험상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 뭐 하는 자식이냐? 왜 다짜고짜 남의 학관에 들어와서 시비야?”
자연스럽게 둘 사이를 갈라 놓은 헌원강이 건들거리며 초일을 노려봤다.
흑도를 어깨에 척 걸쳐 놓은 모습은, 녹림의 호걸인 장걸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뭐라고?”
초일 입장에서는 황당한 억지였다.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시비는 그쪽에서 먼저 걸지 않았나!”
그렇게 말하며, 초일은 여전히 표정이 굳어 있는 거상웅을 바라보았다.
시시비비를 가리자면 잘못한 쪽은 명백히 거상웅이었다.
천무학관에서 온 손님을 무턱대고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명분과 체면을 중요시하는 정파무림의 특성상, 먼저 사과를 해야 하는 쪽도 거상웅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청룡학관의 헌원강이었다.
즉, 천무학관에서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유형의 인간이라는 뜻이었다.
“그야 당연히 처음 보는 자식이 학관에 들어오니까 수상해 보여서 막은 거지. 우리 상웅 선배가 학관에 대한 애정이 크거든.”
“……원강아.”
“선배는 가만히 있어 봐. 동연 회장으로서 수상한 놈을 조사하는 건 내 역할이라고.”
도대체 동연 회장과 조사하는 게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헌원강은 뻔뻔하게 자신의 논리를 밀어붙였다.
그 사이 위지천, 여민, 야수혁도 다가와서 초일을 포위했다.
“정말 천무학관 출신일까요? 그렇다기엔 별로 강해 보이지 않는데.”
“호패부터 까 보라고 해. 요즘 위조가 그렇게 많다더라.”
“얼굴도 한번 뜯어 봅시다. 인피면구일 수도 있잖수.”
어느새 청룡오망에게 포위당한 초일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어렸다.
“뭐, 이런…….”
명문정파로 가득한 천무학관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불량스러움이었다. 흡사 뒷골목의 왈패들을 보는 듯했다.
‘대체 강사들은 왜 말리지 않는 거지?’
놀랍게도 근처에 있는 청룡학관의 강사들도 가만히 구경만 할 뿐이었다.
류설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장걸과 철두는 코를 후비고 있었다.
서리애를 비롯해 몇몇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굳이 끼어들지는 않았다
“대체 여긴…….”
정파무림 오대학관 중 하나인 청룡학관이 아니었나?
“어이. 귓구멍이 막혔어? 호패부터 까보라니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두들겨 패서라도 호패를 까 볼 기세였다.
물론 초일도 청룡오망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청룡신협이 키워 낸 후기지수들로, 하나같이 자질이 뛰어나 천무제에서 위협적인 경쟁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다만 그 성정이 거친 것이 흠이라는 이야기도 듣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사람을 겁박하는 솜씨가 사파의 무뢰배들 못지않은가!
“……당황스럽군. 청룡학관은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접하나?”
“네가 손님인지 혈교에서 변장하고 들어온 세작인지 어떻게 알아?”
“헛소리를!”
말도 안 되는 비약이었으나, 그 순간 초일의 눈동자가 아주 잠시 흔들렸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이었으나, 헌원강은 그냥 상대에게 시비를 걸고 싶을 뿐이었다.
“이 녀석들아…….”
어느새 후배들 뒤로 밀려난 거상웅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가 후배들이 자신보다 더 열을 내는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을 이 년간 폐인으로 만든 인물이 권패 초일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들 저렇게 자기 일처럼 분노해서 나선 것이다.
내버려 두면 정말로 다 같이 초일을 쥐어팰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모습에 오히려 화가 가라앉은 거상웅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다. 그만해라.”
“뭘 그만해? 아무래도 수상하니까 장포부터 벗겨 보자고.”
사납게 웃는 헌원강의 두 눈에 진심이 가득했다. 다른 녀석들도 묵묵히 소매를 걷어붙이며 거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초일도 그냥 당하지는 않겠다는 듯, 그의 장포가 무형의 기운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놈들! 손님에게 이 무슨 무례더냐!”
뒤에서 들려온 호통에 흠칫한 청룡오망은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헌원강은 초일에게 앞으로 조심하라며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다가 여민에게 등짝을 얻어맞고 끌려갔다.
인파를 헤치고 나타난 매극렴이 초일에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하네. 최근 학생들이 거친 일을 겪어서 조심성이 지나친 경향이 있으니, 부디 이해해 주게나.”
“……아닙니다. 그러한 사정을 헤아리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
“알면 되었네.”
“……!”
매극렴마저 어쩐지 탐탁지 않은 눈으로 초일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예의와 체면을 중시하는 천무학관 학생으로서, 초일은 겉으로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검치 매극렴은 오대학관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지난 몇 년간 천무제에 오가며 만난 두 사람은 구면이기도 했다.
“헌데 어쩐 일로 왔는가?”
“저희 관주님께서 보내신 서찰을 가지고 왔습니다.”
“……강사가 아니라 학생을?”
“선생님들은 예년보다 규모가 커진 천무제를 준비 중이라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십니다. 해서 졸업을 앞둔 제가 대신 왔습니다.”
“…….”
매극렴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노군상 관주님께선 현재 부재중이시네. 후임 관주인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듯하군.”
“예? 아, 예. 알겠습니다.”
후임 관주라는 말에 초일은 잠시 놀란 눈치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매극렴이 관주 대리를 맡은 이후로, 노군상은 본격적으로 재활에 들어갔다. 이제 대부분의 업무는 매극렴의 손에서 처리되고 있었다.
“따라오게나.”
초일은 매극렴을 따라갔다. 그때, 등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상웅이다.”
다소 짜증이 어린 얼굴로 돌아보는 초일에게, 거상웅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똑똑히 기억해라. 네놈의 낯짝을 뭉개고 훗날 천하제일권객이 될 이름이니까. 그하하하!”
그 순간, 초일은 처음으로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불쾌하다는 듯 찌푸려지는 미간. 두 눈에는 살기가 순간적으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유념하도록 하지. 올해는 꼭 천무제에서 만났으면 좋겠군.”
돌아선 초일이 매극렴을 따라 관주실로 향한 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백수룡이 거상웅에게 다가왔다.
“잘 참았다.”
백수룡은 제자의 커다란 등을 두드려 주었다.
거상웅과 초일이 충돌 직전까지 갔을 때, 그는 강사들에게 전음을 보내 섣불리 끼어들지 말고 지켜보라고 전했다.
거상웅이 경거망동하지 않으리라 믿은 것도 이유였지만, 초일이라는 녀석을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도 있었다.
‘권패 초일. 혈교에서는 혈룡이라 불린다지.’
혈교에서 천무학관에 심어 둔 세작 중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패.
설마 청룡학관으로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다.
이것은 천무학관주의 의도인 것일까.
아니면 공교로운 우연일까.
백수룡이 싸늘한 눈빛으로 초일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헌원강이 히죽 웃으며 거상웅에게 물었다.
“그래서, 웬수 놈을 다시 보니까 어땠어?”
거상웅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팔짱을 끼며 말했다.
“뭐, 쬐그맣더라.”
그 순간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