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59
559화. 청룡학관은
매극렴을 따라 관주실로 향하는 동안, 초일은 조금 전에 만난 거상웅을 떠올렸다.
‘어떻게 벗어난 거지?’
금룡상단의 후계자.
자신이 직접 절혼마장을 적중시켰고, 그 후유증으로 무공은커녕 폐인이 되어 생활한단 보고를 받은 게 작년이었다.
거상웅이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쓰러지면,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금룡장주를 협박해 교의 자금줄로 만들 계획.
하지만 이 년만에 다시 만난 거상웅에게선 절혼마장의 흔적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매극렴을 뒤따르는 초일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다. 그는 조용히 눈동자를 굴려 청룡학관 내부를 살폈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청룡학관이 있는 남창에 심어 두었던 지부 하나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자신이 직접 구축해 놓은 정보망이 모두 사라지면서, 거상웅을 이용해 금룡장을 집어삼킨다는 계획도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청룡신협이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
단순히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이후 청룡신협의 파격적인 행보가 전부 교와 얽혀 있었다.
‘놈은 오래전부터 본교를 노렸다.’
초일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던 백수룡의 모습을 떠올렸다.
악가의 분가에서 일어난 싸움으로 청룡신협은 며칠이나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과연 그 소문대로 안색이 창백했고, 부상에서 여전히 회복하지 못했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천하에서 손꼽는 절세고수가 아직까지 피로조차 회복하지 못했다?
소문보다 더 심각한 내상을 숨기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오늘은 그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가치가 있었다.’
천무학관의 모든 인맥과 영향력을 동원해 청룡학관에 보내는 전령으로 발탁된 것은 분명 잘한 일이었다.
-전령으로 자네를 보내 달라고?
-선생님들은 모두 바쁘시지 않습니까. 후배들 또한 천무제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으니, 졸업을 앞둔 한량인 제가 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합니다.
초일의 명성을 생각하면 전령으로서 자격은 충분했다. 무림맹 편에 서한을 보내거나, 개방을 통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격식을 차리는 셈이었다.
물론, 그것은 철저히 천무학관의 관점이었다.
-흐음…….
초일과 독대한 천무학관주 진량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민하더니, 이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재미있겠군. 알겠다. 청룡학관의 관주께 이 서신을 전해 드리거라.
초일은 받아 든 서한의 내용을 읽지는 않았으나,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그에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룡신협과 청룡학관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었다.
‘청룡신협의 몸 상태가 생각보다 더 좋지 않다. 본교에는 희소식이군.’
현재 혈교의 분위기는 최악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한 번의 전투에서 장로가 셋이나 죽었고, 이사도 역시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내부에서는 쉬쉬하고 있지만, 교 고위층에 배신자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는 상황.
‘하지만 위기 뒤에는 늘 기회가 오는 법.’
초일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기회를 찾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청룡학관에 찾아왔다.
천무학관이라는 든든한 후광에 명분까지 있으니, 누구도 자신을 의심하지는 못할 터.
물론 환대를 받으리라는 예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손님 대접조차 제대로 하지 않을 줄도 몰랐지만……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본교와 그만한 싸움을 벌이고 멀쩡할 리 없다.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거상웅이 끝내 덤벼들지 않은 것이었다. 손속을 나눠 봤다면 놈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었을 텐데.
-똑똑히 기억해라. 네놈의 낯짝을 뭉개고 훗날 천하제일권객이 될 이름이니까. 그하하하!
거상웅의 마지막 말을 떠올린 초일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건방진 놈. 썩어 넘치는 돈으로 어디서 신의를 구한 모양이다만……. 다음에는 더 지독한 절망을 새겨 주마.’
그렇게 초일이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계산을 하며 걷는데, 앞서가던 매극렴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천무학관주께선 잘 계신가?”
“……예. 청룡학관과 주작학관이 겪은 일에 대해서 염려가 많으십니다.”
“그래서 자네를 보낸 게로군. 관주께서 아끼는 제자가 아닌가.”
“직접 오시고 싶어 하셨으나 아시다시피 상황이 여의치 않으십니다. 곧 졸업을 앞둔 제가 그나마 여유가 있었습니다.”
“진로는 정했고?”
“일단 무림맹 천무대에 들어가 경험을 쌓아 보려 합니다.”
“……좋은 선택이지.”
잠시 대화가 끊겼다가, 이번에는 초일이 먼저 말을 걸었다.
“부상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청룡신협께선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하셨다던데, 회복에 집중하셔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은근슬쩍 원하는 정보를 얻어 내고자 말을 걸었는데, 매극렴의 입에서 생각 이상으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왜 아니겠나.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침상에 눕혀 놓고 요양을 시키고 싶을 지경일세.”
“……그 정도입니까?”
대체 부상이 얼마나 심하면 저렇게까지 말한단 말인가?
초일은 조금 흥분했다. 청룡신협의 몸 상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최악이라면.
‘이 기회에 죽일 수 있을지도……!’
멀쩡한 상태였다면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생각.
하지만 청룡신협의 부상이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지금이라면?
성공만 한다면, 전쟁 이후 혼란한 교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초일의 입지는 단숨에 장로급으로 올라갈 것이다.
아니, 장로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도 바라볼 수 있었다.
‘어쩌면 공을 인정받아 교주 후보로 눈에 들지도…….’
초일이 그 가능성을 점치며 눈을 빛내는 사이, 두 사람은 관주실에 도착했다.
매극렴이 초일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게나.”
“귀한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극렴은 정파의 모범 같은 모습으로 포권을 취하며 자리에 앉은 청년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음흉한 녀석이로다.’
삼십 년 넘게 수많은 학생들을 지도해 온 매극렴이었다.
초일이 숨기고 있는 정체까지는 꿰뚫지 못하더라도, 그 성정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쯤은 능히 짐작하고 있었다.
과거 거상웅이 천무제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가 권패 초일과 관련돼 있다는 것 또한 모르지 않았다.
당시에는 거상웅이 입을 열지 않고 증거도 찾지 못해 그냥 넘어가야 했지만, 이렇게 다시 초일과 마주한 순간 매극렴도 아무렇지 않게 그를 바라볼 수는 없었다.
“천무학관주가 보낸 서한을 내어주시게.”
“예.”
품에서 조심스럽게 서한을 꺼낸 초일이 그것을 매극렴에게 건넸다. 천무학관주의 직인이 찍힌 공식 서한이었다.
『청룡학관이 겪은 불우한 사고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로 시작되는 서한은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 그리고 업무 공백이 커질 청룡학관에 대한 염려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본론이 나왔다.
『본래 청룡학관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천무제에 참석하지 않게 될 예정임을 익히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허나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였으니, 저는 이 기간을 유예하고자 합니다.
혹여나 청룡학관 학생들이 마지막 천무제에 참석하지 못할까 안타까워 부득이 일정을 강행하려 하셨다면, 이 서한이 관주님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천무학관은 청룡학관이 내년에도 천무제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입니다. 다른 학관 측에도 전달토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청룡학관주께서는 학생들과 강사들의 부상 회복과 안전에 보다 더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
요약하면, 청룡학관이 올해 천무제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내년에 한 번 더 참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구구절절 배려인 듯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강자의 오만과 아량이 깔려 있음을 매극렴이 모를 리 없었다.
“…….”
매극렴이 말없이 천무학관주의 서한을 바라보고 있자, 초일이 설명을 덧붙였다.
“관주님께서 굳이 답장은 주시지 않아도 된다 하셨습니다.”
“답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라…….”
그렇다면 이것은 서한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가?
매극렴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고개를 든 그가 초일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닐세. 먼 길을 왔는데 어찌 그냥 보낼 수 있겠나. 내 금방 답변을 줄 터이니 받아서 돌아가시게.”
“그럼 노군상 관주님께도 보여 드려야 하는 게 아닌지…….”
“이 정도는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네. 굳이 관주님께 이런 걸 보여 드릴 필요도 없을 듯하고.”
“예. 알겠습니다.”
초일은 매극렴이 붓과 종이를 꺼내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청룡학관의 관주 대리는 붓 대신 허리춤의 검파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천무학관주가 보낸 서찰을 허공으로 띄웠다.
“무얼 하시려는…….”
촤아아악!
단 한 번의 칼질에 수십 조각으로 변한 서한이 꽃송이처럼 사방으로 흩날렸다. 초일의 눈앞이었다.
“……!”
경악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초일에게, 매극렴이 엄중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가서 고하거라.”
노인의 눈빛이 형형했다. 분기를 누른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
“청룡학관은 천무제 일정에 늦지 않게 전원 참석할 것이니, 손님 숙소를 깨끗이 정리해 두라고.”
“어찌, 이런 짓을…….”
“빼먹지 말고 그대로 전해야 할 것이다.”
초일은 매극렴의 무례에 대해서 지적을 할까 잠시 고민했으나, 그 서슬 퍼런 눈빛을 보고는 결국 입술만 꽉 깨물었다.
매극렴의 손에는 여전히 검이 들려 있었다.
“……반드시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고작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초일이 표현할 수 있는 불만의 전부였다.
* * *
건물 밖으로 나온 초일은 조용히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한물간 늙은이 따위가…….”
천무학관에 다니면서 단 한 번도 당해 보지 못한 무시이자 모욕이었다.
하물며 청룡학관주도 아닌 대리인 따위에게 무시를 당하다니.
위장 신분을 만들기 위해 들어온 천무학관에 진심으로 소속감을 가져 본 적은 없지만, 그보다 못한 자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언젠가 오늘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초일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일순간 자신이 압도당할 만큼 매극렴의 기세가 강렬했다는 것을.
관주실에서 쫓겨나듯 나온 초일은 청룡학관 내부를 둘러보는 척하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스르륵.
은신술을 펼친 초일의 신형이 건물 사이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처음부터 순순히 천무학관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온 김에 동태를 조금 더 살펴야겠다.’
애초에 천무학관의 전령을 자청한 것도 자연스럽게 청룡학관에 잠입하기 위해서였다.
설령 들킨다 하더라도, 후기지수의 치기와 호기심으로 넘길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초일의 계획은 처음부터 어긋나 버렸다.
“이봐.”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초일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떻게 벌써?’
초일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머릿속으로는 준비해 온 변명을 생각하면서.
창백한 얼굴에 피곤이 가득한 사내가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설마 길이라도 잃었나? 아니면…….”
백수룡이 서늘하게 웃으며 초일을 향해 걸어왔다.
“도둑고양이처럼 숨어서 훔칠 거리라도 찾고 있는 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