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63
563화. 검을 뽑아라
까앙! 까앙!
이른 아침부터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초겨울의 찬바람도 위지철방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대장간에서 새어 나오는 화기가 어마어마한 탓이었다.
다시 문을 연 지 사흘째.
위지열은 온몸이 땀에 젖은 모습으로 거듭 망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집중한 장인의 눈에서 형형한 안광이 번득였다.
화아아악!
화로의 불꽃이 거세게 일렁였다. 옆에서 일손들이 풀무질을 할 때마다 화기가 점점 더 강해졌다.
“이 정도론 어림도 없다! 아침밥도 제대로 안 먹고 온 게냐!”
위지열이 엄하게 다그치자, 이번에 새로 고용된 일손들의 표정에 오기가 서렸다. 위지열의 명성을 듣고 위지철방에서 일을 배우기 위해 온 청년들이었다.
그들이 있는 힘껏 풀무질을 하고 나서야 위지열도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망치질을 시작했다.
까앙! 까앙!
모루 위에서는 시뻘겋게 달궈진 쇠가 연신 비명을 질렀다.
위지열은 홀린 듯 망치질을 하며 한 무인을 떠올렸다.
염왕 사마량.
스스로 불꽃이 되어 생의 마지막을 불태운 노인.
무인으로서는 감히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경지에 오른 인물이지만, 같은 극양의 무공을 익혔기에 그의 마지막을 본 위지열은 큰 영감을 받았다.
깨달음이라고 해도 좋았다. 위지열이 익힌 화령신공에 주인의 의념이 담겼다. 연신 내리치는 망치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맺혔다.
까아앙-!
마지막 망치질을 마친 위지열은 완성된 날붙이를 집게로 집어 물에 집어넣었다.
치이이이이익-
쇠가 빠르게 식어 가며 본연의 색을 드러낸다. 은색의 깨끗하고도 선명한 날 위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던 위지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그의 기준에서 신병이기라고 불릴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만한 작품은 일생에 한 번 나오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아직 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어디 가서도 쉽게 부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쉬었다 오마.”
“예! 야장 어르신!”
밖으로 나온 위지열은 찬바람에 몸을 식혔다.
고된 일임에도 그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맺혔다.
얼마 전까지 혈교에 있을 때도 쉬지 않고 야장 일을 했지만, 스스로 원해서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만든 무기가 훗날 죄 없는 사람들을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에 최선도 진심도 다 하지 못했다.
그래서 돌아온 후 몸 상태가 좋아지자마자 위지열은 철방을 다시 열었다. 좀이 쑤셔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는 천생 야장이었다.
“으음?”
잠시 쉴 겸 밖에 나와 서 있는데, 낯익은 청년이 철방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마침 딱 맞춰서 왔군. 위지열이 흐뭇하게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게. 연호 선생.”
“어르신. 벌써부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내상도 남아 있으실 텐데요.”
땀에 흠뻑 젖은 위지열의 모습에 연호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위지열은 우람한 팔뚝을 보여 주며 껄껄 웃었다.
“이 정도는 움직여 줘야 빨리 낫지. 아직은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로만 일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되네.”
철방 안에 있던 일손들이 들었으면 얼굴이 해쓱해질 이야기였다.
“들어오게. 마침 자네에게 줄 물건이 조금 전에 완성되었으니.”
“예.”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 대장간 안으로 들어서며 근황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청룡학관은 요즘 어떤가?”
“천무제 준비로 다들 정신이 없습니다. 이게 축제에 갈 준비를 하는 건지, 출정 준비를 하는 건지…….”
연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근 청룡학관 학생들은 마치 출정을 앞둔 군인들처럼 사기가 드높았다. 밤낮으로 비어 있는 연무장을 찾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독고준을 위시한 학생회에서 그런 학생들의 의지를 더욱 북돋고 있었는데, 당장 학관에 돌아가면 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활기가 돌아온 건 다행이지만요.”
학생들은 악가에서 돌아오지 못한 강사들의 죽음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슬퍼하기보다는 떠난 이들을 기리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천무제 우승은 더 이상 백수룡과 일부 학생들만이 아닌, 청룡학관 모두의 목표가 되었다.
“참으로 다행이로군.”
위지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비록 함께 싸우지는 못했으나, 남겨진 이들이 얼마나 큰 아픔을 겪었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은 화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위지열은 일손들에게 조금 전 완성된 무기를 가져오라고 말한 후 다시 연호를 돌아봤다.
“우리 천이도 많이 바쁜 모양이야. 요 며칠은 얼굴 볼 시간도 별로 없었지 뭔가.”
“천이야 뭐, 용봉비무 우승 후보니까요. 어르신도 함께 보러 가실 거죠?”
“물론일세. 우리 손주가 용봉비무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반드시 봐야지. 화공이라도 불러서 그려 달라고 할까 싶은데……. 천이한텐 비밀일세. 부끄러워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지도 모르니.”
“……어차피 검만 들려주면 펄펄 날아다닐 텐데요?”
“하긴. 내 손주가 날 닮아서 집중력이 워낙에 뛰어나기는 하지.”
하나뿐인 손자 이야기에 위지열은 껄껄 웃었다. 그 사이, 일손들이 천으로 말아 둔 기다란 창을 가져왔다.
“자, 직접 확인해 보게나.”
연호는 긴장한 표정으로 창을 감싼 천을 풀었다.
은은한 묵빛이 도는 창대에는 한 마리의 흑룡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은빛의 창날이 서슬 퍼런 예기를 내뿜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평범한 무기가 아니었다.
“창대는 전에 만들어 둔 게 있었고, 창날은 오늘에서야 완성했네. 끼워진 지 한 시진도 되지 않았지.”
연호는 홀린 듯 창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당황한 표정으로 위지열에게 말했다.
“……이건 제가 사용하기에는 너무 과한 무기가 아닐까요?”
“그게 무슨 소린가?”
“형님들한테나 어울릴 신병이기 같아서…….”
백수룡이나 남궁수라면 이러한 신병이기를 가질 자격이 충분하지만, 자신에게는 너무 과한 보물처럼 여겨졌다.
악씨 성을 버리면서 악가에서 받은 창도 버리기로 결심했다. 원래 사용하던 창이 악비와의 싸움에서 거의 못 쓰게 될 정도로 망가지기도 했기에, 위지열에게 남는 창이 있으면 살 수 있는지 물어본 게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던 위지열은 며칠만 기다리라더니, 연호가 생각했던 것 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병이기를 만들어 주었다.
“연호 선생. 내 눈은 틀린 적이 없네.”
위지열이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백 선생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를 ‘완성되지 않은 검’이라 평가했었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십존이라 불리며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무인이 되었지.”
노인의 눈은 확신을 담고 있었다. 평생 동안 수없이 많은 무인들에게 무기를 만들어 준 야장의 눈은, 무기에 걸맞은 주인을 판별할 줄 알았다.
“자네는 분명 이 창에 걸맞은 무인이 될 걸세. 나중에는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그때는 새로 만들어 줄 테니 다시 찾아오게나.”
“……위지 노야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연호는 비장한 표정으로 위지열에게서 창을 받아 들었다.
창을 쥐는 순간, 그는 평생 다른 창이 필요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위지열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름을 지어 주겠나?”
“청룡신창은 좀 그렇고…….”
장난스럽게 웃은 연호가 창대에 새겨진 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묵룡이라고 짓겠습니다.”
“어울리는 이름이군. 잘 다뤄 주게나.”
묵룡을 가볍게 몇 번 휘둘러 본 연호는 더없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등에 사선으로 멨다.
대장간 밖까지 연호를 배웅한 위지열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나저나, 새로운 성은 정했나? 언제까지 연호 선생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게…….”
연호가 산동악가와의 연을 끊고 성을 버리기로 한 건 특별한 비밀도 아니었다.
위지열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내 양아들이 되는 건 어떤가? 우리 천이도 연호 선생을 많이 따르던데.”
반쯤은 농이었으나, 어느 정도는 진심이기도 했다.
홀로 외롭게 자란 위지천에게 연호 같은 성정 밝은 형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여러 번 있었으니.
그러자 연호가 웃었다.
“하하. 다들 저를 양자로 못 들여서 안달이네요. 수룡 형님도 그렇고, 남궁 형님도. 며칠 전에는 소영이까지 제갈세가의 양자가 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던데요?”
쟁쟁한 경쟁자들이 언급되자 위지열의 미간에 가벼운 주름이 생겼다.
“이런……. 자네를 양자로 삼으려면 오대세가와 경쟁을 해야 하는 겐가? 이거 만만치가 않구만.”
“하하. 제가 원래 좀 인기가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들어가려고?”
그러자 생글생글 웃던 연호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데…… 어르신께 묵룡을 받으면서 마음을 굳혔습니다.”
잠시 말이 없던 연호는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이왕 새롭게 시작할 거라면, 제가 직접 지은 성과 이름으로 살아 보려고 합니다.”
“허어!”
위지열은 감탄한 표정으로 연호를 바라봤다.
오대세가와 무림십존의 가족이 될 기회를 포기하고, 스스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보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각오가 필요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것도 좋겠지. 허면, 성은 정했나?”
“예. 앞으로는 신연호(新連浩)라고 불러 주십시오.”
“좋은 이름일세.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신연호는 후련해진 얼굴로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모두에게 안부 전해 주게나.”
묵룡을 받아 든 신연호는 청룡학관으로 돌아갔다. 위지열은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며, 그의 앞날에 무운(武運)이 함께하길 기원했다.
* * *
천무제 준비로 청룡학관의 건물 대부분에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요즘.
그중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불이 켜진 사무실은 언제나 같은 곳이었다.
“오늘도 꼼짝없이 야근이네.”
“새삼스럽게.”
백수룡과 남궁수는 각자 산더미 같은 서류를 처리하며 간간이 일적인 대화를 나눴다.
“불존 대사에게 서찰 받았지? 어떻게 할 거야?”
“초대에 응할 생각이다.”
“그럼 학생들보다 하루 먼저 출발해야 하는데.”
“안전에 대한 대비책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흐음…….”
“그보다 무림맹주가 사파의 주요 세력에도 초대장을 보냈다고 하던데. 뭔가 아는 게 있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알아서 잘 처신하도록.”
“……용한 무당이 뭘 알려 주기라도 했나?”
“헛소리를.”
창밖의 노을마저 사라지고 사위가 어둠에 잠긴 후에야, 남궁수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여전히 일에 집중하고 있는 백수룡에게 말했다.
“이만 퇴근하지.”
“벌써? 먼저 가. 난 조금 더…….”
“내 사무실에서 당장 나가도록.”
“……치사한 자식.”
백수룡이 구시렁거리며 짐을 정리했다. 백룡장에 돌아가서 마저 할 생각인지, 챙겨 드는 서류가 한 보따리였다.
사무실을 나선 두 사람은 텅 빈 청룡학관을 가로질렀다.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차가운 초겨울 바람이 불어와 소맷자락과 머리카락을 간혹 흔들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멈춰선 남궁수가 말했다.
“백수룡.”
“왜?”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마치 이어질 남궁수의 말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검을 뽑아라.”
일순간 돌아선 남궁수가 검을 뽑아 백수룡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