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64
564화. 다양한 방식
신월(新月)이 흐릿한 밤.
학생들이 떠난 늦은 밤의 연무장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시끌벅적했던 낮의 열기와 활기가 모두 사그라든 시간. 초겨울 밤의 적막이 그들을 감쌌다.
백수룡과 남궁수가 검을 들고 마주 섰다.
“……어떻게 알았지?”
하얀 입김을 내뿜는 백수룡의 입매가 섬뜩한 호선을 그렸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묻는 얼굴에 나른한 미소가 맺혔다.
그 순간 하얀 검광이 번뜩였다. 뇌굉의 움직임이 밤공기를 가르고 백수룡을 지나쳤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었다.
“같잖은 연기는 그만두도록.”
남궁수의 목소리에 노기가 꿈틀댔다. 돌아서는 그의 금안에서 벼락이 명멸했다.
“백수룡.”
백수룡의 표정이 평소대로 돌아왔다. 그러곤 나른한 미소 대신 뻔뻔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역시 쉽게 안 속네.”
“선배를 우습게 보는 버릇을 고쳐 주지.”
남궁수의 공격이 이어졌다. 명문세가 특유의 고아하면서도 힘 있는 검격이 어둠을 갈랐다.
사악!
머리카락 몇 가닥이 밤하늘에 흩날렸다. 백수룡은 몸을 옆으로 틀어 피함과 동시에 반격했다.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 창룡신검이 남궁수의 턱 밑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남궁수가 뒤로 물러서는 것을 확인한 백수룡이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마치 남의 일인 양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투였다.
“나중에 놈이 나인 척할 수도 있잖아? 미리 대비해 두면 좋지.”
지난번에 혈마가 백수룡의 몸을 잠시 빼앗았을 때, 혈마는 굳이 백수룡인 척 연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수룡은 알고 있었다.
환생을 되풀이하며 수많은 인생을 경험한 혈마가 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자신의 흉내를 완벽하게 낼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아무리 남궁수라도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군.”
남궁수의 눈썹이 꿈틀댔다. 낮은 한숨이 서늘한 공기에 섞여들었다. 백수룡에게 한심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내가 그리 유약해 보이나?”
“은혜 갚기 싫어서 만신을 알아볼 정도면 걱정할 만도 하지 않을까?”
“…….”
“…….”
잠시 자리에 멈춰선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십 줄기의 검격이 허공에서 어지럽게 얽혀들었다.
내공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작정하고 내공을 끌어올리면 학관이 초토화될 테니까. 뿐만 아니라 기의 충돌을 느낀 근방의 무인들이 모두 몰려올 것이다.
검끼리의 부딪침도 거의 없었다. 서로의 치명적인 급소를 노리다가도 찰나에 비틀어 거둬들인다. 간혹 서로의 옷자락을 스치거나 검 끝이 맞닿았다가 떨어지는 정도가 전부였다.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두 사람이 달밤에 검무를 추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하지만 내공이 담기지 않고 검이 강하게 부딪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대결이 가볍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는 생사결을 방불케 할 만큼 날카로운 공방이었다. 심상의 영역에서 그들은 피를 뚝뚝 흘리며 싸우고 있었다.
단 한 걸음의 보법, 미세한 어깨의 움직임만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읽기에 가능한 일. 절세의 영역에 이른 무인들이기에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도, 초식을 끝까지 펼치지 않고도 전력으로 겨룰 수 있었다.
“진짜 많이 늘었는데?”
“건방지군.”
천하는 두 사람을 완성지경에 이른 무인이라 칭하지만, 애초에 무학에 완성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만큼 광오한 말은 없었다.
그들은 지금도 더 강해지고 있었다. 때론 검을 부딪치고 때론 의지를 부딪치며, 서로에게 무수히 배우고 가르침을 얻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발전했다.
비단 무공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백수룡은 어느새 적월마저 빼 들었다. 그의 두 눈에 호승심, 무학에 대한 갈망, 그리고 어떤 기대감이 떠올랐다.
“더 본격적으로 해 볼까.”
반면 남궁수는 무심한 표정으로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백수룡과 달리 그에겐 입을 열 여유가 없었다.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겨우 동수를 이룰 수 있었다.
‘어쩌면…….’
백수룡은 현시대의 천하제일인일지도 모른다.
“날 상대로 딴생각을 할 틈이 있나?”
지금도 백수룡은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았다.
남궁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는, 전력을 다할 수 없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적발적안의 사내에게서 보았던 파멸적인 기파와 소름 끼치는 존재감.
지금의 백수룡은 간신히 그 삿된 것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잠자고 있는 괴물이 다시 밖으로 나온다면…….
툭.
어느새 싸움이 끝났다.
창룡신검이 남궁수의 심장 앞에서 멈췄고, 뇌굉은 백수룡의 어깨에 닿았다.
승자와 패자가 명백히 갈린 결과에서, 백수룡이 먼저 검을 거뒀다.
그가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잡생각이 많은 모양인데, 여기까지 하자고.”
“…….”
남궁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은 그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평소보다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에 왜 어깨를 노렸지? 방금 전에는 심장을 노렸어야 했다. 설마 이제 와서 마음이 약해진 건…….”
“착각하지 말도록.”
남궁수가 말을 끊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단호했다.
“일부러 노리지 않은 것이다. 내 검초에 미리 익숙해지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쉽게 피할 테니까.”
백수룡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곧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맞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그렇다면야. 괜히 걱정했네.”
비로소 백수룡은 안도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를 거둔 그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씩 웃었다.
“그럼 내일 보자고.”
휘적휘적 칠흑같은 어둠을 가르며 걸어가는 백수룡의 등 뒤에서 남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지금껏 내 교육 방식이 옳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백수룡은 천천히 돌아섰다. 남궁수는 그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한동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보고 있던 남궁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은혜를 갚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남궁수는 단 한 가지 방법만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백수룡을 지켜보며 유연해진 사고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생각하고 시도해 볼 것이다. 생각보다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도 있겠지.”
“예를 들면, 무당 같은 거?”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남궁수는 대답하지 않고 그를 지나쳐 휘적휘적 걸어갔다.
“내일 보도록 하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백수룡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봐야 아쉬움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온다면, 남궁수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심장에 뇌굉을 찔러 넣어 줄 것이다
“내 자리에 자꾸 부적이 늘어나는 건 싫지만.”
그렇게 해 줄 것을 믿기에, 백수룡도 안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 *
“누구한테 그렇게 처맞고 온 겁니까?”
천무학관에 돌아오자마자 관주실로 향해 청룡학관의 답장을 전달하고 나오는 길.
초일은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는 기척에 눈살을 찌푸렸다.
떡 벌어진 어깨와 우람한 대흉근. 형형한 눈빛은 당장이라도 먹이를 향해 뛰어들 준비를 마친 대호를 보는 듯했다. 입가에 맺힌 조소는 오만한 성정을 짐작케 했다.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으나, 초일은 애써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하하. 사혁 후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모르겠군.”
“이거 왜 이러실까.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닌데.”
팽사혁이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도법이 아니라 권각을 펼쳐도 필시 무지막지한 거력을 뿜어낼 수 있을 육체였다.
“분칠로 가린다고 맞은 흔적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소. 아주 호되게 당하고 오셨구만.”
“……팽사혁. 선배에게 예의를 갖춰라.”
초일의 정색에도 팽사혁은 이죽거리며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감정의 골이 생긴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닌 듯했다.
“청룡학관에서 초일 선배한테 시비를 걸 만한 놈이 많지는 않을 텐데……. 혹시 헌원강이란 놈하고 붙으셨나? 거기에 이 정도 개차반은 그놈밖에 없는데.”
바람이 불지 않음에도 초일의 장포가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더 이상 모욕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날 조롱하려고 찾아왔나? 아니면 한번 붙어 보자는 건가?”
“아쉽지만 붙는 건 다음에 합시다. 조만간 전력으로 꺾어 줘야 할 놈이 있어서 말이지.”
팽사혁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곧 있을 천무제를 생각하면, 쓸데없이 힘을 뺄 수는 없었다.
십대악인을 베었다는 소문이 절반만 사실이더라도, 헌원강의 칼이 제법 매워졌을 테니 말이다.
“따라오시오. 학생회장이 선배를 데려오라더군.”
“……일각이?”
팽사혁은 대답 대신 몸을 홱 돌렸고, 잠시 그 뒷모습을 노려보던 초일은 이내 그를 따라갔다.
초일은 지난 사 년간 천무학관 전체에 두루두루 미치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지만, 구파일방이 주축이 된 학생회는 예외의 대상이었다.
구름 위의 신선들.
천무학관 학생회는 전통적으로 구파일방의 제일기재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조직이었다.
팽사혁과 초일도 학생회에 소속되어 있지만, 큰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하고 겉돌았다. 지금도 하북팽가의 후계자인 팽사혁이 심부름꾼으로 나설 정도였다.
‘말하는 꼴을 보니, 날 조롱하려고 자청해서 온 것 같지만.’
초일은 팽사혁을 따라 학생회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학생회 간부들이 모여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초일 시주.”
상석에 앉아 있던 젊은 스님이 일어나 합장했다. 그가 바로 천무학관 학생회의 회장이었다.
소림신룡 일각.
소림사 제일의 기재이자 불존 무허대사에게도 무공을 사사받은 제자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전년도 용봉비무의 우승자이기도 했다.
“어서 오십시오. 선배님.”
“청룡신협은 실제로 만나 보고 오셨습니까?”
“저는 남궁세가의 뇌신 대협이 더 궁금합니다. 어서 이야기 좀 해 주십시오.”
“혹시 다치셨습니까?”
그 외에도 훗날 구파일방의 장문인이 될 가능성이 큰 기재들이 초일과 팽사혁을 반겨 주었다.
대부분 티 없이 밝은 모습이었는데, 그들 한 명 한 명 가운데 천재라고 불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오만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무림이 구파일방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자신들의 사명이 무림을 지키는 것이라고 굳게 믿기에.
일일이 그들의 인사를 받아 준 초일이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다녀왔다. 청룡학관의 답장도 전달했고.”
이어서 초일이 청룡학관에서 있었던 일을 적당히 각색해서 설명하자, 일부는 탄식을 터트렸고 일부는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허어…….”
“청룡학관 학생들이 각오가 대단한 모양입니다.”
“올해는 좀 재미있을까요?”
“하하! 저희도 열심히 준비해야겠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강자만이 지닐 수 있는 여유였다. 본인들은 여유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당연한 감정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일각이 입을 열자 자연스럽게 좌중이 조용해졌다. 그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지금껏 사대학관과 중소 문파 학생들을 위해, 구파일방의 제자들은 참가 인원을 매년 제한해 왔습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천무학관을 제외한 사대학관에 천무제 참석을 격려하고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천무학관의 구파일방 출신 제자들은 매년 제한된 인원만을 선별해 천무제에 참석해 왔다.
그럼에도 우승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허나 올해는 경우가 다릅니다. 저 간악한 혈교가 발호하여 무림을 피로 물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무림의 힘이 하나로 뭉쳐야 할 때입니다.”
일각의 말에 후기지수들이 표정을 굳혔다.
그들 대부분이 훗날 무림의 지배층이 되어 그 안위를 살필 막중한 책임에 대해 배워 온 이들이었다.
“천무제가 끝난 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중심으로 토벌군이 편제될 것입니다. 저희의 역할은 그에 앞서 정파무림의 사기를 드높이는 것입니다.”
사문에서 미리 어느 정도 언질을 받은 학생들은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해서, 올해는 저희도 조금 욕심을 부려야 할 듯합니다.”
소림신룡 일각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선언했다.
“이번 천무제에는 구파일방의 제자들 전원이 참석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