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71
571화. 모여들 것이다
가문의 식솔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남궁수는 다시 부친과 마주 앉았다.
주변을 모두 물리고 가주와 소가주만 조용히 독대하는 자리였다.
남궁천은 가문의 소가주가 된 아들에게 직접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내게 따로 할 말은 없느냐?”
“아버님께서 가주직을 최대한 늦게 물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남궁천은 하나뿐인 눈을 가늘게 떴다.
“갑자기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냐?”
“진심입니다. 저는 아직 강사 생활이 좋습니다.”
비로소 아들의 말을 이해한 남궁천은 헛웃음을 흘렸다.
몇 년 전 남궁수가 청룡학관에 가겠다고 자청했을 때, 그는 그것이 탐탁지 않았다.
가문의 후계자 경쟁을 지레 포기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오대학관의 말석.
실상 말석이란 표현도 과분했다. 오대학관이란 간판이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청룡학관이었다. 남궁세가의 직계가 그곳에 간다는 것은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을 일이었다.
-네가 첩의 자식이기에 양보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밑바닥에서 하나씩 일궈 보고 싶습니다.
실망을 숨기지 않은 가주의 질문에, 남궁수는 지금처럼 덤덤한 얼굴로 그리 대답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청룡학관의 일타강사였다.
남궁천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은 가문보다 청룡학관이 우선이란 말이더냐?”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는 자리보다, 청룡학관의 일타강사라는 자리에 더 애착을 가진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아직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부족한 강사 후배들도 교육해야 합니다. 청룡학관은 이제 막 승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묘하게 말을 돌리는구나.”
가볍게 혀를 찬 남궁천이 말을 이었다.
“걱정 말거라. 적어도 십 년은 더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 대에서 생겨난 문제는 내가 책임질 것이다. 너는 그 이후를 대비하면 된다.”
십존에 언급되기에 충분한 무위를 지니고도 남궁제학이라는 거대한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비운의 가주.
가문이 혈사를 겪은 이후, 그의 어깨에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짊어져 있었다.
고작 일 년도 안 되는 세월이었지만, 여러 일을 겪으며 남궁천의 얼굴은 몇 년은 더 늙은 듯했다.
“앞으로는 제가 도울 것입니다.”
“소가주로서 말이지?”
“예.”
다행히 소가주를 결정한 지금, 남궁천의 얼굴은 전보다 조금은 밝아 보였다.
“그럴 거면 차라리 빨리 가주 자리를 물려받지 그러느냐?”
남궁천이 다소 장난기가 섞인 음성으로 물었다. 남궁수처럼 예민한 기감을 가진 고수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차이였다.
“이토록 건강한 얼굴을 뵈니 이십 년은 거뜬하실 듯합니다.”
“설마 청룡학관에서 관주까지 해먹을 셈이더냐?”
“아버님께서 삼십 년 정도 가주 자리에 계신다면 불가능하지도 않겠지요.”
“허! 점점 기간이 늘다니. 이러다 관에 들어갈 때까지 뒷방으로 물러나지 못할까 무섭구나.”
두 사내는 술잔을 주고받으며 남궁세가식 농담을 주고받았다.
표정 변화가 적은 부자의 얼굴에 닮은 미소가 희미하게 번졌다.
“오늘 네가 한 대답을 잊지 말거라.”
“예.”
“그럼 되었다.”
남궁세가의 가주는 안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은공께서는 어찌 지내고 계시느냐?”
백수룡의 안부를 묻는 말에, 남궁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거듭된 야근과 철야로 심신이 지친 상태입니다. 일신의 무위와 별개로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습관이 피로를 누적시키고 있으며, 뒤에서 계략을 꾸미는 음흉한 성정 탓에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다소 나아지는 듯 보이지만, 분명 또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확실시되는바, 집중적인 감시와 관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건강이 염려된다는 말을 길게도 하는구나.”
남궁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을 이었다.
“내일은 아침 식사에 은공도 초대하려고 한다. 혹 좋아하시는 음식이 따로 있느냐?”
“주는 대로 잘 먹습니다. 숙수에게 맛보다는 영양을 신경 쓰라고 일러 주십시오. 또한 정신이 맑아지는 약재가 들어간 탕 종류와 차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예를 들면…….”
“그만. 손님 준비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고개를 끄덕인 남궁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버님. 시간이 늦었으니 소자는 이만 숙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방이 비어 있으니 오늘은 자고 가거라. 은공께는 내일 아침 일찍 사람을 보내 모셔올 것이다.”
그러나 남궁수는 고개를 저었다.
“또 어디서 사고를 치고 다닐지 모르니, 제가 직접 데려오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 알겠다. 그럼 내일 꼭 은공과 함께 오거라.”
“예.”
가주의 처소를 나온 남궁수는 마주하는 식솔들에게 인사를 건넨 후 장원을 빠져나왔다.
휘익!
가볍게 몸을 띄워 경공을 펼쳤다. 남궁수의 발끝이 건물의 지붕을 살짝 디딜 때마다 그의 신형이 밤하늘을 갈랐다.
“소가주라…….”
겉으로 티를 잘 내지 않았을 뿐, 남궁수 또한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더 이상 그를 남궁세가의 삼공자가 아닌 소가주로 볼 것이다.
말 한마디, 사소한 행적 하나조차 남궁수 개인이 아닌 남궁세가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창천검왕의 최후를 기억하는 무인들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뇌신을 경계할 것이며, 숱한 음해가 있을 것이다.
허나 전부 각오한 일이다. 남궁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다짐했다.
‘앞으로는 본가의 소가주로서 품행을 더 단정히 해야 한다.’
한 번 더 다짐한 남궁수는 속도를 높여 무림맹의 숙소까지 한달음에 내달렸다.
툭.
남궁수가 무림맹의 정문 앞에 조용히 내려서자, 보초를 서던 무인들이 흠칫 놀라 병장기를 겨눴다.
“누구냐!”
“우선 소란을 피하기 위함이긴 했으나 갑작스레 나타난 점을 사과하겠소. 여기, 맹주님의 초대장을 확인해 주시오.”
남궁세가의 소가주로서 몸가짐을 단정히 하며, 남궁수는 수위무사에게 맹주의 직인이 찍힌 초대장을 건넸다.
“뇌, 뇌신……!”
경계하며 초대장을 확인한 수위무사들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으나, 미리 교육을 받았는지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았다.
간단히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를 마친 후, 수위무사 중 지위가 가장 높은 자가 남궁수를 안내했다.
“맹주님께서 특별히 마련된 숙소로 안내하라 이르셨습니다.”
수위무사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무림맹 내부에서도 가장 좋은 귀빈용 숙소였다.
천무학관이 개방되기 전까지 백수룡과 남궁수는 이곳에서 머무를 예정이었다.
“저, 맹주님께서 두 분께 내일 조찬을 함께하자고 전하셨습니다만…….”
“본가의 일정이 우선인지라, 이후에 따로 연락을 드리겠다 전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청룡신협은 어디 있습니까?”
“바로 옆방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수위무사가 물러난 후, 남궁수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곧 옆 방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궁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마…….”
불현듯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남궁수는 그 즉시 백수룡의 방문을 부수듯 열어젖혔다.
아니나 다를까.
침상 위에 쪽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천무제 시작하기 전에는 돌아올 테니 찾지 마.」
그 내용을 본 순간, 남궁수는 소가주로서 품행을 더욱 단정히 해야 한다는 다짐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백수룡―!”
그날 밤, 남궁세가 소가주의 사자후가 무림맹을 뒤흔들었다.
천무제를 닷새 남긴 밤이었다.
* * *
“청룡신협을 만나고 왔나?”
어둠 속에서 혈안(血眼)이 빛났다. 무언가를 간신히 참는 듯 억눌린 숨결이 찬공기를 비집고 새어 나왔다.
“그렇소.”
천무결은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피부를 저미는 따가운 살기에도 천무학관주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기대를 담은 눈으로 천무결에게 다가왔다.
“그가 온전한 역천신공을 계승한 것이 확실하던가?”
“확실하더군.”
화아악-!
한순간 천무학관주의 혈안이 더욱 짙어졌다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천무결이 검파에 손을 올린 직후였다.
천무결은 천무학관주를 노려보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적당히 하는 게 좋을 듯한데.”
“……이런. 기뻐서 그런 것이니 기분 나빠하지 말게. 어쨌거나 우리는 손을 잡은 동맹이 아닌가?”
순식간에 부드러운 인상으로 돌아온 천무학관주가 싱긋 웃었다.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듯했다.
천무학관주의 말이 맞았다. 비록 목적은 다르지만, 그들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때문에 임시로 동맹을 맺었다.
달리 말하면,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살얼음 같은 동맹이었다.
천무학관주를 바라보는 천무결의 눈에 경멸이 어렸다. 마치 혐오스러운 벌레를 보는 듯했다.
“관주. 당신은 광인이오.”
“뭐……? 푸하하하하!”
천무학관주 진량은 어깨를 들썩이며 미친 듯이 웃었다. 무공 수련으로 땀에 젖은 전신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우스운 소리를 하는구나! 천하의 절세고수 중에 광인이 아닌 자가 있더냐? 아니, 절정의 고수만 되어도 무공에 미치지 않을 수가 있던가?”
천무학관주의 눈은 확신을 담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광기가 일렁이는 눈이었다.
그러나 다시 순식간에 표정이 변한다. 광소를 거둔 그는 학생을 가르치듯 차분한 음성과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천무결 선생. 무인이란 족속은 전부 광인이라네.”
“…….”
그것이 천무학관의 주인이자, 만병제라 불리는 무인의 본질이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넓은 연공실이었다.
벽면에는 수백, 수천 가지의 무공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천무학관주가 새긴 것이었다.
천무학관주는 그 벽면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마치 뛰어난 예술품을 감상하듯 그의 눈이 몽롱해졌다.
“놀랍지 않나? 내가 본 어떠한 예술품도 이보다 값지지는 못해.”
“…….”
“짧지 않은 생을 살면서 수많은 무공을 보았다. 개중에는 삼류 무공도, 신공절학도, 불문과 도문의 무공도, 금지된 마공도, 누군가가 장난을 친 가짜 무공도 있었지. 그 하나하나가 내겐 미식과 다름이 없었다네.”
“…….”
“헌데 어느 순간부터 질리더군. 전부 섭렵했기 때문이야. 새로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 무학(武學)의 발전이 멈춰 버린, 평화로운 무림은 내겐 지옥일세.”
천무학관주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등 뒤에서 천무결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난세(亂世)를 만들려고 하나?”
천무학관주는 대답 대신 웃었다.
“천하의 무(武)가 이곳으로 모여들 것이다. 서로 치열하게 부딪쳐 사멸하고, 새롭게 탄생하고, 처절하게 꽃피우겠지. 무학이란 본래 그런 성질을 지녔으니. 전설로만 남은 줄 알았던 무공이 다시 출현할지도 모를 일이야. 그중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둘일세. 하나는 역천신공이고, 다른 하나는…….”
천무학관주는 쉬지 않고 계속 중얼거렸으나, 천무결의 모습은 이미 그곳에서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