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95
595화. 생각해 봤는데
“남궁수 선생님. 진짜 좀 너무한 거 아니야?”
“먼저 치사하게 군 건 저 자식들인데, 꼭 그렇게 답답하게 굴어야 돼?”
“누가 보면 다른 학관 선생님인 줄…….”
청룡학관 학생들 사이에서 서운함 섞인 말들이 수군수군 들려왔다.
무승부(無勝負).
남궁수는 청룡학관과 천무학관의 마지막 두 주자가 동시에 결승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이자 십존의 일원인 절세고수가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의 결정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러니 달리 말하면…….
“우리가 살짝 앞섰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못 했을 텐데.”
“솔직히 여민이 먼저 들어오지 않았냐?”
남궁수의 판단에 누구보다 아쉬워한 것은 다름 아닌 청룡학관 학생들이었다.
앞서가던 주자들을 맹렬하게 추격한 여민의 기세는 분명 대역전을 만들어 낼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청룡학관의 학생들 모두가 여민의 승리를 선언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는데, 남궁수가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
섭섭함이 담긴 시선들이 힐긋거리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남궁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특별감독관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천무학관은 오히려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들에게도 무승부라는 결과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청룡학관의 대역전극으로 끝났다면 첫날에 이어 오늘도 분위기가 단숨에 넘어갔을 테니까.
“아 진짜 열받아 죽겠네! 선생님이 가서 뭐라고 말 좀 해 줘요!”
아무리 생각해도 분해 죽겠는지 헌원강이 백수룡에게 가서 하소연하자, 백수룡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당사자도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난리야? 그리고 뭐라고 말해? 앞으로는 편파 판정이라도 해 달라고 할까?”
“아니, 그게 아니라……. 좀 도와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청룡학관 선생님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쉰 백수룡은 헌원강의 머리를 냅다 후려쳤다. 뜨거워진 제자의 머리를 식혀 줄 필요가 있었기에,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을 담았다.
빠악!
심상치 않은 소리와 함께 헌원강이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타 학관 학생들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지만, 청룡학관 학생들은 익숙하다는 듯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끄응……!”
“원강아. 민이가 진짜로 이겼으면 남궁수가 무승부라고 했을까?”
“아니, 그건 아니겠지만…….”
어느새 백수룡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는 흥분한 제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중에 편파네 어쩌네 뒷말이 나오면 누구한테 가장 손해일 것 같냐? 넌 민이가 그런 이야기나 들었으면 좋겠냐?”
“……아니요.”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헌원강은 고개를 저었다. 비로소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은 표정이었다.
백수룡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너희들한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우는 법을 가르쳤지만, 모든 일에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그걸 잘 구분해. 내가 늘 곁에서 알려 줄 수는 없으니까.”
“……네.”
함께 백수룡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학생들도 조용해졌다.
피식 웃은 백수룡은 기가 조금 죽은 헌원강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그리고 관중석을 한번 봐라. 사람들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예……?”
헌원강은 백수룡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놀라고 말았다.
“멋지다 청룡학관!”
“빙백린! 빙백린!”
언제 소문이 난 것인지, 무명에 가까웠던 여민의 별호를 연호하는 사람들이 생겨나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 특히 젊은 사내들이 많은 것을 확인한 헌원강의 표정이 구겨졌다.
“……좋지만은 않은데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헌원강의 뒤통수를 툭 친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오늘의 주인공이 될 제자를 바라봤다.
여민은 자리에 앉아서 차분하게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을 풀고 있었다. 그 표정이 평소보다 더 차분했는데, 완전히 집중한 모습이었다.
“누가 북해빙궁 핏줄 아니랄까 봐. 오늘따라 더 판박이네.”
여민의 옆얼굴에서 은사부를 떠올린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아마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닮아 가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곧 두 번째 경기인 장애물 달리기가 시작됩니다! 경기에 참가할 학생들은 준비해 주십시오!”
사회자의 안내가 있고 난 후, 경공 종목의 두 번째 경기인 장애물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힘내라, 청룡학관!”
“전부 박살 내버려!”
“동아리 연합의 힘을 보여 줘!”
경공 종목의 두 번째 경기인 ‘장애물 달리기’에는 유이란을 필두로 동아리 연합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출전했다.
중복 출전이 허용되긴 하지만, 첫 경기와 두 번째 경기에 바로 연달아 출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계주에서 각 학관의 마지막 주자를 맡았던 학생들은 전원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경공 종목의 마지막 경기이자 백미인 ‘경공 비무’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란 선배! 힘내세요!”
위치전은 두 손을 모아 경주로를 달리는 유이란을 응원했다.
장애물 달리기는 계주와 달리 모두 함께 결승선을 통과해야 하는 단체전이었다. 경공 실력 만큼이나 학생들의 합도 중요했다.
온갖 장애물이 설치된 경주로를 달리며 하나가 된 듯 장애물을 피하고, 뛰어넘고, 막아 내던 청룡학관 주자들은 그 와중에 다른 학관들의 견제도 신경을 써야 했다.
“저 자식들이 또!”
“으아아 열 받아!”
첫 경기 이후 견제는 오히려 더 심해졌는데, 청룡학관도 이번에는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유이란이 다른 학관들의 견제를 대부분 막아 내는 맹활약을 펼쳤고, 다른 학생들도 보조를 맞추며 반격을 더했다.
그러나 청룡학관의 장애물달리기의 최종 성적은 천무학관, 주작학관에 이은 세 번째였다.
“잘했다! 연습할 때보다 호흡이 더 좋았어!”
“아슬아슬했다. 마지막에 방해만 받지 않았어도 두 번째로 들어올 수 있었을 거야.”
“기죽지 마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야!”
강사들은 최선을 다하고도 어깨가 처진 학생들을 다독였다. 학생들도 경기를 뛰고 온 주자들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하지만 모두가 두 번째 경기에서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뛰어난 한 명이 아닌 학생들의 평균적인 수준이 중요한 단체전에서, 천무학관의 실력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제운종, 암향표, 취팔선보, 불영선하보……. 구파일방의 유명한 신법이란 신법은 전부 보여 주는군.”
백수룡은 자기들 진영으로 돌아가 축하를 받는 천무학관 학생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구파일방 출신이 주축이 된 천무학관은 확실히 ‘천하제일’ 학관이라 자신할 만했다. 조금 전에 바로 그 일면을 본 것 같았다.
경주로를 빠르게 정리한 후, 사회자가 곧 마지막 경기가 시작됨을 알렸다.
“잠시 후, 경공 종목의 마지막 경기인 경공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연이은 명승부가 펼쳐지자 관중들의 함성과 열기는 점점 더해졌다.
첫 번째 경기인 계주에서는 천무학관과 무승부.
두 번째 경기인 장애물 달리기는 세 번째로 들어왔다.
청룡학관이 경공 종목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경기를 반드시 잡아야 했다.
모두의 시선이 눈처럼 새하얀 백발을 가진 한 소녀에게 향했다.
두 번째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한 여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경공 비무는 단연 경공 종목의 백미라고 할 수 있었다.
각 학관에서 대표로 단 한 명만 출전할 수 있고, 목적지까지 자유롭게 비무를 벌이며 달리는 종목.
대부분의 병장기 패용이 허락되었지만, 살상 능력이 지나치게 높은 암기와 독은 제한되었다.
“학생 여러분은 소지품 검사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대회 중 가장 위험할 수 있는 경기인만큼, 특별감독관들이 직접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고 소지품을 검사했다.
그때, 남궁수가 여민에게 다가갔다. 계주에서 천무학관과 무승부를 선언한 후 처음이었다.
“여민 학생.”
“네.”
정작 여민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하는데, 주변의 학생들과 특별감독관들이 더욱 긴장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승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첫 경기에서 결과는 명백한 무승부였다. 이것은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한 객관적인 사실이다.”
여민이 그래서 어쩌라고요? 라는 표정으로 남궁수를 바라봤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 말해 주는 걸 깜빡했더군.”
“……그게 뭔데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었지만, 남궁수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전했다.
“만약 결승선이 한 걸음만 더 뒤에 있었다면, 첫 번째로 들어오는 사람은 자네였을 것이다.”
순간 여민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이내 킥킥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선생님. 지금 그거 응원이에요?”
“명심하도록.”
짧게 대답한 남궁수는 곧장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여민이 그 뒷모습에 대고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응원 고맙습니다!”
잠시 뒤, 경기를 곧 시작하겠다는 사회자의 말에 경공 비무에 나선 주자들이 출발선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섰다.
천무학관에서는 옥진이 다시 나섰고, 사마현도 여민의 왼편에 섰다.
사마현이 걱정이 담긴 얼굴로 여민에게 말을 걸었다.
“민 소저, 아까보다 견제가 더 심할 겁니다. 부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시길.”
“너도 조심해. 그리고 웬만하면 내 근처로 안 오는 게 좋을 거야.”
여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마현은 그 조언을 유념하기로 했다.
“출발 신호는 이 동전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으로 하겠습니다.”
휘익!
사회자가 동전을 하늘 위로 던짐과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것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오대학관의 주자들 중 사마현을 제외한 세 명은 여민을 힐긋거리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계주에서 보여 준 그녀의 신법이 워낙에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기세를 꺾어 놓지 않으면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 나갈 것이 뻔했다.
때문에 다들 같은 전략을 짰다.
‘경공 하나에 특화된 학생이다. 무공은 그렇게 강하지 않을 테니, 시작하자마자 먼저 제압한다.’
강사들에게서도 비슷한 조언을 들었다. 시작하자마자 여민을 먼저 제압한 후에 본격적인 경주를 시작하라고.
하늘 높이 올라갔던 동전이 바닥에 떨어진 순간, 세 명의 학생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여민에게 달려들었다.
“저 비겁한 자식들이-!”
“또, 또또!”
청룡학관 학생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화를 냈다.
그러나 정작 누구보다 분개해야 할 청룡오망은 느긋한 표정이었다.
“이거, 여민 선배한테 너무 유리한 거 아니에요?”
“차라리 그냥 경공 대결이었으면 눈곱만큼이라도 승산이 있었을 텐데…….”
“이러면 너무 쉬워지는데?”
그 순간, 여민의 몸이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회전하며 새하얀 바람을 일으켰다. 소맷자락이 사방을 휩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을 내뿜었다.
화아아아아악!
빙백신공의 기운이 서리서리 뻗치며 일대의 기온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주변의 습기를 모조리 빨아들이기라도 한 듯, 그녀의 주변으로 수많은 작은 얼음알갱이들이 생겨났다.
쩌저저저적……!
바닥이 빙판으로 변하고, 출발선 주변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장소를 북해의 겨울로 옮겨 놓은 듯했다.
“으으…….”
“모, 몸이…….”
가까이 다가간 학생들의 무복 위로 서리가 내려앉았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눈썹 위로 새하얗게 눈이 쌓였다.
그들이 미끄러워진 바닥에서 다시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는 가운데, 여민은 그 한가운데서 너울너울 춤을 추듯 움직였다.
“생각해 봤는데……. 굳이 빨리 뛰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회전을 멈추고 가볍게 멈춰선 여민의 몸 주변으로, 새하얀 바람이 계속해서 휘돌았다.
“너희 전부를 쓰러뜨리고,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 거잖아?”
싱긋 웃은 여민은 춤사위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처음 선보이는 그녀만의 신월빙백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