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99
599화. 난 한 번도
백수룡의 입에서 먼저 흘러나온 단어.
개벽(開闢).
섬뜩한 미소를 그린 천무결은 백수룡을 향해 몸을 살짝 기울였다.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악가에서? 혈교의 장로들을 사냥하고 다니면서? 아니면 남궁세가? 혹은……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부터였나?”
백수룡은 대답 대신 천무결이 따라 준 술을 천천히 마셨다. 그 역시 입매는 웃고 있었으나, 눈에서는 섬뜩한 안광이 흘렀다.
“대장로. 네가 죽였지?”
대답이 아닌 질문이었으나, 천무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내가 대답하면 너도 대답할 건가?”
“어쭙잖게 떠보지 마라.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서로 닮아 있는 두 사람이었다. 말로 상대의 속내를 캐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천무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통하진 않겠지만…… 충분히 흔들 수는 있을 것 같거든.”
“착각이라고 미리 말해 주지.”
“백수룡. 너와 내가 결정적으로 다른 게 뭔지 알고 있나?”
천무결은 별다른 기세를 내뿜지도, 위협적으로 굴지도 않았다.
그저 투명한 눈동자로 백수룡을 물끄러미 응시할 뿐이었다.
“나는 곁에 누구도 두지 않았다. 약점이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지. 그런데 너는…….”
천무결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시끌벅적했던 축하연은 그의 등장으로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모두 짓눌린 듯했다.
일부 강사들은 매서운 눈빛으로 천무결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들도 쉽게 입을 열지는 못했다.
천무결은 그들에게 악의 없이 웃어 주었다. 그러곤 다시금 자신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좀 다른 것 같군. 인망이 아주 높아. 지금까지는 그걸로 덕을 많이 본 모양이지만…….”
“짧게 말해라.”
천무결은 킥킥 웃더니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행동들이 언젠가 네 목을 죄일 거란 생각은 해 보지 못한 건가? 예를 들면, 지금처럼 말이야.”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는 거리.
두 사람의 거리는 가까웠다. 지난번에 조우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만약 이곳에서 충돌이 벌어진다면, 주변 일대가 전부 휘말릴 것이다. 가까이 있는 지인들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었다.
“……같잖은 협박이군. 내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나?”
백수룡은 천무결이 경솔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자신이라면 결코 이렇게 드러난 곳에서는 일을 벌이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왜 못 한다고 확신하지?”
천무결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개벽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네가 어떤 존재인지, 뭘 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짐작은 하고 있겠지. 그런데도 넌……!”
천무결의 말이 점점 빨라지고, 입가에 맺힌 조소는 뒤틀리고 끔찍하게 변했다. 그것은 사람과는 거리가 먼, 틀림없는 악귀의 표정이었다.
그 격렬한 감정적 변화에 백수룡조차 눈을 크게 뜰 정도였다.
“전부 알고 있으면서 팔자 좋게 이딴 어린애들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는 건가?”
콰앙!
천무결이 주먹으로 내리친 곳을 중심으로 탁자에 부르르 진동이 번졌다. 산산이 조각나지 않은 것은, 백수룡이 탁자를 붙잡아 발경력을 대신 해소한 덕분이었다.
제때 막지 않았다면 탁자는 물론이고 사방으로 충격이 번졌을 것이다. 백수룡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천무결을 노려봤다.
“……뭐 하는 짓이지?”
“이렇게 유리한 전장에서, 참초제근(斬草除根)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이유가 있나?”
천무결이 사납게 치켜떠진 눈으로 백수룡을 노려보며 되물었다. 그의 스산한 목소리에서 지독한 분노가 느껴졌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거칠게 부딪쳤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
“말이 심하지 않습니까!”
천무결의 기세를 간신히 떨쳐 낸 신연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어린애들 놀이라고요? 아까부터 둘이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해 온 노력을 무시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어서 명일오도, 곽두용도, 주작학관의 사마영과 백호학관의 당백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같이 창백한 얼굴이었다.
“천무제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일 년을 노력해 온 사람들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학생들의 노력을 평가절하해?”
“그쪽도 강사 아닌가요? 천무학관주께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물 흐리지 말고 당장 여기서 나가시오!”
강사들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제 할 말을 했다. 절세고수의 기세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막혔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다들 기가 세군. 그게 너희의 목숨을 부지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천무결이 큭큭 웃으며 말하자, 백수룡이 굳은 표정으로 모두에게 경고했다.
“전부 물러나 있어. 부탁이다.”
천무결은 극도로 위험한 존재다.
만약 전생에서 혈교를 탈출하는 데 성공한 자신이 복수에 나머지 인생을 바쳤다면, 저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할 것이다.
“……한 가지만 묻지.”
그렇기 때문에, 백수룡은 천무결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동료들을 멀리 물러나게 한 후 천무결에게 물었다.
“내가 그렇게 위험해 보이나?”
스스슷…….
백수룡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부터 붉은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다. 술잔에 한 방울 떨어뜨린 피가 서서히 번지듯.
혈마의 존재가 하루하루 커져 간다는 건, 백수룡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눈을 깊게 들여다본 천무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루가 다르게 위험해지고 있다.”
“…….”
천무제가 진행되는 동안, 누구보다 백수룡을 면밀하게 관찰한 사람이 천무결이었다. 그의 확답에 백수룡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나랑은 생각이 꽤 다르군. 충분히 제어하고 있는데 말이야.”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너는 더 이상 놈을 감당할 수 없다. 한 걸음만 삐끗하면 그대로 끝장이지.”
천무결은 섬뜩하게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곤, 품 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백수룡이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에 자신이 가지고 있으려 했으나, 오늘 본 백수룡은 이미 한계에 달한 듯 보였다. 더 이상 숨길 의미가 없었다.
“그걸, 왜 네가……!”
천무결이 품에서 꺼낸 물건을 본 순간, 백수룡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청룡패였다.
분명, 사곤에게 주었던…….
화아아아악!
백수룡의 무복이 미친 듯이 펄럭이며 사방으로 무지막지한 기파가 번졌다. 강사들이 팔로 얼굴을 막으며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그걸 어디서 찾았지? 말해라. 죽고 싶지 않으면.”
곧 마지막 한 걸음이다. 천무결은 살갗을 저밀 듯한 살기를 느끼며 하얗게 웃었다.
아직까지도 백수룡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듯 보였으나, 이미 경계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청룡패를 백수룡에게 휙 던졌다.
“잠시 맡아 뒀다. 뒷면을 한번 보도록.”
백수룡의 눈앞에서 청룡패가 허공에 저절로 멈춰 섰다.
청룡패를 움켜쥔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그것을 쓸어내리더니, 천천히 뒷면을 확인했다.
그곳엔, 작은 글씨로 남긴 짧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천무제가 끝난 후에, 친우들과 함께 스승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사곤(謝坤)
청룡패의 뒷면에 적힌 짧은 글과 사곤의 이름을 본 순간, 백수룡의 표정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일그러졌다.
“……!”
천무결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며 대비했다.
곧 혈마가 백수룡의 몸에서 재림할 것이다.
그는 애초에 천무제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목적을 위해 잠시 천무학관에 몸을 의탁했고, 적당히 강사 노릇을 했을 뿐.
혈마를 찾기 위해, 오로지 놈을 죽이기 위해 바쳐 온 인생이었다. 드디어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오너라……!”
그런데, 천무결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스스슷…….
점점 붉어지던 백수룡의 눈동자가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소름 끼치는 기파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경계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바로 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천무결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분명히 마지막 한 걸음이었다.
그는 지독한 은원(恩怨)이 어린 청룡패의 뒷면을 보는 순간 백수룡의 감정이 크게 요동칠 것이고, 그걸 계기로 아슬아슬한 균형이 무너지며 혈마가 재림하리라 예상했다.
전자는 맞았지만 후자는 완전히 벗어났다.
백수룡은 분명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했지만, 혈마에게 몸을 빼앗기는 대신 오히려 주도권을 되찾았다.
“……곁에 누군가를 둔 것이 약점이라고 했나?”
물론 그렇다고 혈마의 존재를 완전히 밀어낸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다가올 파멸을 잠시간 유예시켰을 뿐.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
백수룡은 자신에게 돌아온 청룡패의 뒷면을 천천히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굳게 다짐하듯 말했다.
“나는 반드시 이 녀석들과 만나야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천무결은 어쩐지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가. 너도 나름 필사적이군.”
동시에 천무결의 몸에서도 사나운 기세가 완전히 사라졌다. 지독한 분노와 살의가 눈녹듯이 흩어졌다.
백수룡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흥분한 것도 전부 연기였나?”
“너 혼자만 세상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천무결이 큭큭 웃었다. 그의 분노는 지독하고 오래된 것이지만, 오직 단 하나의 존재에게만 향해 있었다.
혈마가 아니라면, 지금의 것도 모두 무용한 일.
아직 때가 오지 않았으니 자중해야 옳았다.
물론, 상황이 그렇지 않았지만.
객잔은 난리가 났다. 백수룡의 경고에 늦지 않게 모두 자리를 피했지만, 두 사람이 기세를 일으킨 것만으로 그들이 있던 객잔 삼 층이 돌풍에 휩쓸린 것처럼 박살 났다.
“……해명하려면 고생깨나 하겠군. 어쩔 거지?”
“수리비는 천무학관에서 낼 거다.”
“그걸 말이라고…….”
천무결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는 백수룡을 잠시 빤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더 이상의 볼일은 없다는 투였다.
몇 걸음 걸어가던 그가 문득 멈춰서더니 말했다.
“그리고 아까 그건 거짓말이었다.”
“……?”
“아무도 곁에 가까이 두지 않았다는 것 말이다. 내게도 한 사람, 은인이 있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고 널 본 순간 곧바로 죽였을 테지.”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렇게 할 능력은 있고?”
“크크크…….”
천무결은 잠시 어깨를 들썩이며 웃더니 바닥을 박찼다. 그의 신형이 뻥 뚫린 천장 너머로 금세 사라졌다.
“미친놈. 술맛만 다 버리게 만들고 가네.”
백수룡은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는 천무결을 잠시 노려본 후, 자신의 이름과 제자의 이름이 함께 적힌 청룡패를 품 안에 소중히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