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08
608화. 내가 너한테 배웠다
모의전투는 다른 종목들에 비해 상당히 이른 시간에 마무리되었다.
오대학관이 전부 참여한 규모가 큰 싸움이었다.
하지만 초반부터 전력으로 백호·주작학관을 연달아 격파한 천무학관의 활약과, 함정을 파 놓고 그들을 기다렸다가 합공하는 전술을 보여 준 청룡·현무학관의 승리까지.
워낙에 진행되는 속도가 빨라 정작 경기 시간은 일다경을 조금 넘긴 정도였다.
“오늘은 이렇게 끝인가?”
“허어. 아직도 여운이 가시질 않는데…….”
“내일까지 어찌 기다리란 말이오!”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었던 모의전투에 열광하던 관중들은 경기가 끝났다는 사실에 짙은 아쉬움을 느꼈다.
다행히 그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경기장을 정리한 후, 오늘은 번외 경기를 진행하겠습니다. 가벼운 여흥을 위한 경기이니 편하게 즐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번외 경기에는 모의전투에 출전하지 않은 학생들, 그리고 오대학관의 강사들도 나온다고 했다.
관중들은 다시 기대감에 부풀었다. 오대학관의 유명한 강사들의 별호를 대며 누가 어떻고 저렇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번외 경기를 위해 경기장이 정리되는 동안, 모의전투를 마친 학생들은 각자 학관의 진영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불편한 곳이 있으면 지금 바로 이야기하거라.”
모의전투에 참가했던 청룡학관 학생들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다들 많이 지치고 이곳저곳 긁히고 쓸려 있었지만, 학생들의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다.
강사들도 대견하단 얼굴로 학생들의 부상을 살피며 잘했다고 칭찬을 건넸다.
“최고였어요, 형우 선배!”
“선배님의 작전 덕분에 보기 좋게 한 방 먹일 수 있었습니다.”
“천무학관 자식들. 우리가 도망치는 줄 알고 죽어라 쫓아오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특히 모의전투에서 대장 역할을 맡은 목형우가 가장 많은 축하를 받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다들 그것을 겸손이라고 생각했지만, 목형우는 정말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자리에 앉아 둘로 나뉜 자신의 창을 물끄러미 내려보는 목형우에게, 백수룡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결과에 만족을 못 한 얼굴인데?”
“사실…… 이 결과가 최선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백수룡은 이유를 묻는 대신 계속 말해 보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목형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현무학관과 협력하지 않았어도 이길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겠지만……. 그랬다면 모의전투에서 우승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천무학관의 전력은 분명 강했다.
그들 대부분이 명문정파의 무공을 오랫동안 익혔고, 뛰어난 심법에 더해 사문에서 지원해 준 영약 등으로 인해 내공도 또래에 비해 특출났다.
청룡학관 학생들 중 청룡오망과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면, 천무학관 학생들과 정면으로 부딪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목형우는 현무학관과 동맹을 맺는다는 계획을 세웠고, 천무학관을 꺾은 뒤 우승은 현무학관에게 양보하는 결과를 얻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싸워 보니 제가 후배들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과소평가?”
어느새 옆에 와서 함께 듣고 있던 남궁수가 미간을 모으며 묻자, 목형우가 민망하다는 듯 턱을 긁적거렸다.
“직접 싸워 보니까, 천무학관과 정면으로 붙었어도 충분히 해볼 만했겠더라고요. 아, 저쪽이 약하다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너희가 강했다?”
목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균적인 무공의 성취는 떨어질지 몰라도, 청룡학관 학생들에겐 지금까지 손발을 맞춰 온 시간이 있었다.
거기에 수학여행에서 겪었던 끔찍했던 전투는 그 어떤 수업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청룡학관이 집단전에서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반면 천무학관 학생들은 진형에 의존해 기세를 북돋웠을 뿐, 개개인의 무공에 치중한 싸움을 벌였다.
섣불리 결과를 예측할 순 없겠지만, 정면으로 맞붙었어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 녀석들을 더 빛나게 해 줄 수 있었는데…….”
후배들을 바라보는 목형우의 눈에는 미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때, 백수룡이 반으로 나뉜 목형우의 창을 가져가 살폈다.
“그거 이리 줘 봐.”
창의 절단면이 예리하게 잘려 있었다.
목형우는 이런 공격을 몇 번이나 피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지휘관이 가장 큰 위험을 스스로 감수한 것이다.
“현무학관과 동맹을 맺은 게, 단순히 천무학관을 이기기 위해서였나?”
그 질문에 목형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군이 덜 다치고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보니까 천무학관 녀석들, 눈이 돌아 있었거든요.”
“맞아. 그랬지.”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이곤 천무학관 진영을 바라봤다.
전날의 패싸움에 열이 받은 건지, 아니면 누가 부추긴 건지.
천무학관 학생들은 모의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맹렬한 투기를 내뿜고 있었다.
실제로 천무학관과 초반에 부딪친 백호학관과 주작학관에서는 부상자가 속출했다.
다행히도 죽거나 사경을 헤맬 정도의 중상자는 없었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크게 베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면으로 부딪쳤다면 너희들도 꽤 많이 다쳤을 거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건 말이야.”
하지만 청룡학관과 현무학관 학생들 중에는 중상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적은 피해였다.
백수룡은 둘로 나뉜 창을 목형우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하지만 너는 학생들이 덜 다치는 방법을 선택했지. 주변을 둘러봐. 널 원망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지.”
“…….”
백수룡의 말에 목형우는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모의전투에 참가했던 학생들 모두가 기쁘게 웃고 있었다.
천무학관을 이겼다는 사실에 즐거워하고, 서로 무용담을 늘어놓기 바빴다.
크게 다친 사람이 없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목형우.”
백수룡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전생, 아니 불과 일 년 전의 그였다면 목형우를 비난했을 것이다.
전력을 다해 싸웠다면 승리할 수 있었음에도, 그깟 피 흘리는 것이 무서워서 차선책을 택한 것을 한심하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백수룡은 아니었다.
“오늘은 내가 너한테 배웠다.”
“선생님……?”
목형우가 놀란 눈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무인 중 한 명이 자신에게 배웠다고 말하고 있었다.
재능이라곤 노력밖에 없는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만들어 준 은인이 해 준 말이었다.
그래서 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옆에서 남궁수도 한마디 거들었다.
“목형우 학생. 자네는 무공에 대한 자질은 평범한 편이다.”
“…….”
“하지만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청룡학관에서 가장 뛰어나다. 내가 지금까지 본 어떤 학생보다 특출하다고 장담하지.”
“가, 감사합니다…….”
목형우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남궁수가 진지한 얼굴로 제안했다.
“그래서 말인데, 향후 진로로 군부 쪽은 어떤가. 원한다면 남궁세가에서 추천서를 써 주지.”
“넌 이 와중에 진로 상담이냐?”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으나, 남궁수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 진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졸업 후에도 막연히 무공을 더 수련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라……. 과분한 말씀 감사합니다. 두 분 모두…….”
눈물을 참는 듯, 목형우는 입술을 꽉 깨물고 목이 막힌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저 두 사람의 평가가 과분하다고만 생각했다. 재능도 실력도 평범한 자신에게 해 주는 위로에 가까운 것이라고.
그래서 천무제가 끝난 후,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목형우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였다.
목형우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 자리에서 일어난 백수룡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백수룡 선생님.”
천무학관주였다. 공식적인 자리이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존대를 했다.
“……천무학관주께서 무슨 일이신지?”
“청룡학관의 전술.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듣기로는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대혈교전 모의전투라는 수업을 가르치셨다지요?”
단순히 인사차 온 것처럼 보였지만, 백수룡은 그걸 순순히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예. 맞습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하며 집단전에 대한 높은 이해까지……. 최근 혈교도들을 상대로 쌓은 실전 경험도 묻어나는 것 같더군요. 부럽습니다.”
“……부럽다?”
백수룡의 목소리가 서늘해졌지만, 천무학관주는 전혀 느끼지 못한 것처럼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린 나이에 그만한 실전을 겪은 것은 귀한 경험이지요. 해서 저희에게도 그 경험을 나누어 주시길 바랐습니다만…….
“혹시 그 귀한 경험을 위해서라면 학생들이 큰 부상을 감수해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리가요. 저는 소중한 학생들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아이들이니까요. 그런 아이들이 부상으로 꺾인다면 슬프지 않겠습니까?”
천무학관주는 점잖게 웃었다. 그러나 그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욕망을, 백수룡은 알아볼 수 있었다.
“천무학관 학생들도 오늘의 일을 통해 깊이 깨달았을 겁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 얼마나 더 발악해야 하는지……. 청룡학관 학생들이 일깨워 준 덕분입니다.”
그것은 광기였다. 웬만한 사람은 열정과 구분하지 못하겠지만, 백수룡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을 보는 듯했으니까.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학생들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니요.”
“내일이 더 기대되는군요. 청룡학관의 건승을 빌겠습니다.”
“저 역시 천무학관의 건승을 빌겠습니다.”
본뜻을 감춘 인사를 나눈 후, 천무학관주는 돌아갔다.
백수룡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천무학관주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는 남궁수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미친놈이 확실해.”
“백수룡. 그런 말은 속으로 하도록.”
“하지 말라고는 안 하네?”
“…….”
잠시 후, 이어진 번외 경기에는 청룡학관의 신입 강사들이 출전했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나설 때마다 학생들은 두 손을 모으고 힘껏 그들의 별호를 외쳤다.
“파멸명왕 명일오!”
“지존마창 신연호!”
“혼세마녀 제갈소영!”
“지옥마도 곽두용!”
학생들의 열렬한 응원 속에서, 여러 가지 번외 경기에 나선 청룡학관 신사천왕(新四天王)은 대활약을 펼쳤다. 부끄러움에 최대한 경기를 빨리 끝내기 위해 열심히 했다는 후문이 전해졌다.
학생들은 사천왕이 경품으로 받아 온 주전부리를 나누어 먹으며 즐겁게 번외 경기를 관람했다.
오대학관의 관주들도 번외 경기에 출전했다. 매극렴이 비장한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 종목 설명을 듣고는 표정이 난감하게 변했다.
“관주님들의 대결은 이인삼각 장애물 경주입니다! 가장 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시는 강사와 조를 이뤄 주시기 바랍니다.”
매극렴은 긴 고민 끝에 결국 학생주임 백무흔을 호출했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두 사람은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이놈아! 제대로 뛰지 않으면 경을 칠 줄 알거라!”
“장인어른의 보폭이 저보다 짧은 탓에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뭬야?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게지!”
“왜 맞는 말을 해도……. 억! 옆구리 찌르지 마십시오!”
좀처럼 보기 힘든 매극렴이 전력을 다해 뛰는 모습에, 학생들은 물론이고 강사들도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게, 그날 하루는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다들 고생했네. 학생들, 강사들, 그리고 나 대신 열심히 뛰어 준 검치까지…….”
모든 경기가 끝난 후, 노군상은 학생들과 강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표정이 밝았다. 지난 십 년 동안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내일부터 용봉비무가 시작되는구나. 마지막까지 다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보자꾸나.”
“예!”
학생들도, 강사들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경기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