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09
609화. 이보다 좋은 환경이 있습니까?
“저희를 찾아온 손님이요?”
“누군데요?”
위지천과 헌원강은 궁금하다는 얼굴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하지만 백수룡은 묘하게 웃기만 할 뿐, 직접 확인하라며 손님의 정체를 알려 주지 않았다.
잠시 멀뚱히 기다리자, 문이 열리고 반가운 얼굴이 안으로 들어왔다.
“할아범!”
“할아버지!”
공손수를 발견한 헌원강과 위지천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동시에 공손수에게 달려갔다.
“허허. 오랜만이구나.”
공손수는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 강아지 같은 두 소년의 어깨를 툭툭 쳐 주며 껄껄 웃었다.
“대체 언제 온 거야? 천무제 경기하는 거 봤어? 영이 누이는?”
“내년에 복학하시는 거예요? 지난번에 서찰 보냈는데……!”
“이 녀석들아. 천천히 말하거라. 그러다 숨넘어가겠구나.”
두 소년은 공손수의 말에 살짝 머쓱한 듯 웃으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겨우 둘의 질문 공세에서 벗어난 공손수가 백수룡에게 다가왔다. 그의 주름진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백 선생. 오랜만일세.”
“건강해 보이시네요. 황궁 생활이 역시 체질에 맞으신가 봅니다?”
“아무렴. 황궁에는 감히 승상을 험하게 굴리는 선생이 없거든.”
“가끔 그때가 그리우시죠?”
“지금도 종종 악몽을 꾸네만?”
두 사람은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농을 주고받았다.
공손수는 백수룡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학생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돈이 필요해 과외를 시작하면서 생긴 인연이었지만, 나중에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깊게 깨닫게 해 준 사람.
반가운 마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백수룡이 웃으며 말했다.
“일단 앉으시죠. 차라도 내오겠습니다.”
“무림십존이 직접 내린 차를 마시는 호사도 누려 보는군.”
탁자에 둘러앉은 네 사람은 한동안 서로 근황을 주고받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헌원강과 위지천이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수련했는지, 누구를 만났고, 어떤 적과 싸웠으며,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공손수는 두 소년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중간중간 맞장구를 쳤다. 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둘 다 많이 자랐구나. 이제는 옥석이 아니라 스스로 빛이 나는 보옥이 되었어.”
“……피부가 좋아졌다는 뜻이야?”
“하하하하! 원강 선배. 자네는 여전하구만!”
껄껄 웃은 공손수는 자신의 이야기도 해 주었다.
내년 혹은 늦어도 내후년이면 황궁에서의 일이 마무리될 것이며, 그때 복학을 생각하고 있다고.
청룡학관 신입 강사에 지원하기 위해 공손영이 열심히 준비 중이라는 것도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공손영은 어디 있습니까?”
“영이도 조금 있으면 올 걸세. 누굴 좀 빨리 만나 보고 오라고 보냈거든.”
“혹시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왠지 알 것 같다는 백수룡의 표정에, 공손수가 조금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청룡학관에 욕심 나는 인재가 있어서 말일세. 목형우라고. 다른 누가 채 가기 전에 먼저 찜해 놓고 오라고 시켰네.”
“형우 선배를?”
“목형우 선배님이요?
헌원강과 위지천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백수룡은 역시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뛰어난 학생입니다. 데려가시면 분명히 잘할 겁니다.”
“청룡신협의 보증까지 있으니 든든하구만!”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 공손수가 미간을 가볍게 모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 관중석에서 이상한 사내를 만났지 뭔가. 분위기가 묘하게 백 선생 자네를 닮았던데……. 청룡학관 졸업생이냐고 물으니 경기를 일으키더군.”
“예?”
백수룡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표정을 굳히곤 “설마……” 하고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르신. 혹시 그자의 인상착의가…… 아니, 아닙니다.”
사도들이라면 어차피 변장을 하고 있을 터.
게다가 그들이 공손수와 자신의 관계를 알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내일은 아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날 닮은 분위기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넷 중에서도 유독 전생의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제자.
공손수가 만난 사람이 일호라면…… 이렇게 무사히 자신을 만나러 온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백수룡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르신. 혹시라도 그자를 다시 만나게 되면, 즉시 자리를 피하십시오.”
“피하라니? 내가 만난 자가 무림공적이라도 되나?”
공손수의 농담 섞인 질문에, 백수룡은 말없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공손수를 바라봤다.
희미하게 떨리는 그 눈동자는 마치 더 이상 묻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듯했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 알겠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공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하여간 자네도 많이 변했군.”
“요즘 그런 말을 자주 듣긴 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 어르신이 보기에도 그렇습니까?”
“예전에는 뭐랄까, 평소에는 유들유들하면서도 한 번씩 섬뜩하게 날카로운 부분이 없지 않았어.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자네가 정파 출신이 맞는지 몰래 조사했었다네.”
공손수가 그 당시를 떠올리며 빙긋 웃자, 백수룡은 민망한 듯 뺨을 긁적이며 웃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네. 얼굴에 표정도 전보다 훨씬 다양해졌고.”
백수룡은 전자는 인정하겠지만 후자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제가 남궁수도 아니고, 예전에도 표정은 많았고, 잘 웃고 다녔습니다만?”
“내 말은 인위적으로 꾸며 낸 표정들 말고, 자연스러운 표정 말일세.”
백수룡은 생각보다 자신을 잘 간파하고 있던 공손수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남의 속을 잘 읽으셨습니까?”
“내가 누군지 잊었나? 나라를 상대로 온갖 거짓말을 하는 놈들과 대거리하는 것이 내 일이라네.”
껄껄 웃던 공손수는 갑자기 진지해진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그의 안광이 백수룡 안에 있는 무언가를 꿰뚫어 볼 듯했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
“예?”
천하에 공손수보다 무공이 뛰어난 고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자리에서 천하를 살펴 온 승상에게는 사람을 읽는 재주가 있었다.
“죽을 날 받아 놓은 노인네처럼 초탈한 표정이 한 번씩 보여서 하는 말이야.”
“……안 그래도 요즘 피곤해서 보약이라도 지어 먹을까 생각 중입니다.”
백수룡이 너스레를 떨며 말을 돌리자, 공손수도 더 이상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런가. 알겠네.”
고개를 돌린 공손수는 두 어른의 진지한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눈만 꿈뻑거리고 있는 두 소년에게 물었다.
“내일부터 용봉비무라던데. 우승할 자신들은 있느냐?”
위지천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먼저 대답했다.
“우, 우승은 자신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요.”
“천이 네가 자신이 없다니? 내 살면서 너 같은 천재를 본 적이 없다만.”
공손수의 솔직한 칭찬에도 위지천은 소심한 모습을 보였다.
“작년에 용봉에 들었던 학생들 전부 천재라고 들었어요. 주작학관의 연소하 선배도 굉장히 강해요. 또 청룡학관에는 유이란 선배, 독고준 선배님이 계시고…….”
“이 자식이 왜 은근슬쩍 나는 빼?”
위지천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은 헌원강은 반대로 자신만만한 얼굴로 포부를 밝혔다.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우승해야지. 천무학관 자식들? 별것 아냐. 신경 쓰이는 건 뭐…… 팽사혁 그 새끼 정도지.”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위지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팽사혁 선배란 분은 어떻게 된 거예요? 아직 한 번도 못 봤는데…….”
천무제가 진행된 지난 나흘 동안, 팽사혁은 대회에 출전은 고사하고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뻔하지 뭐. 어디 처박혀서 수련만 하고 있을걸. 그 자식이 관심 있는 건 용봉비무 하나뿐일 테니까.”
헌원강은 안 봐도 안다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팽사혁의 이름을 말할 때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무릎 위에 올려 둔 흑도의 칼집을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헌원강은 눈을 빛냈다.
“솔직히 기대돼서 미칠 것 같아. 그 자식하고 다시 붙을 걸 생각하니까……. 얼마나 강해졌을까?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으면 좋겠어. 아니, 그 자식이라면 분명히 더 강해졌을 거야. 내 직감이 그렇거든. 흐흐흐.”
“선배……. 지금 살짝 미친 사람 같아요…….”
위지천은 음흉한 웃음을 짓는 헌원강에게서 슬금슬금 떨어졌고, 공손수는 감탄 어린 표정으로 그런 헌원강을 바라봤다.
“호적수와의 맞대결을 기다리는 소년 도객이라니, 그야말로 청춘이구나!”
백수룡은 그런 세 사람을 둘러보며 피식 웃었다. 지난 봄, 백룡장에서 모두 함께 지낼 때의 풍경이 떠올라서였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시나 봐요?”
목형우를 만나고 온 공손영까지 돌아오자 분위기는 한결 더 밝아졌다.
“영 누이!”
“오랜만이에요!”
“늦었구나. 이리 와서 앉거라.”
오랜만에 만난 다섯 사람이 함께했던 추억을 나누는 동안, 방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다.
* * *
천무제 넷째 날 행사가 모두 끝난 후.
구파의 수뇌부들이 모인 자리에는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
“…….”
“…….”
또다시 패배했다.
첫날부터 오늘까지, 천무학관은 단 한 번도 청룡학관보다 높은 순위에 오르지 못했다.
누구도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들 모두가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불존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다친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모의전투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것은 천무학관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주작학관과 백호학관 학생들에게도 충분한 약재와 의원을 보냈소.”
검성의 말에 구파의 수뇌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는 이런 상황에서 굳이 다른 학관들까지 챙기는 것이 못마땅한 듯했으나, 구파에서 최고 배분의 어른인 검성이 처리한 일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늘의 가장 중요한 안건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제 어찌할 것입니까? 청룡신협과 내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때 분명히 반대하였습니다만.”
공동파의 장문이 말문을 열자 몇몇 장문인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청룡신협이 제안한 내기에 선뜻 찬성했던 이들이었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가려 봤자 의미가 없는 일이지요.”
“맞습니다. 그보다는 대처할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해서 그 방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겁니다!”
결국 장문인들끼리 언성을 높였다. 일부 장문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자리에 참석한 천무학관주에게로 향했다.
“천무학관주는 어찌 그리 여유로운 표정이시오? 그대도 패배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인데, 누가 보면 천무학관이 모든 종목을 석권이라도 한 것처럼 즐거워 보이는구려.”
점창파의 장문이 서슬 퍼런 음성으로 추궁하자, 천무학관주 진량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즐거운 것은 사실입니다.”
“무어라!”
“이 자리가 장난으로 보이시는가!”
여러 장문인들의 분노가 자신에게 향하자, 천무학관주는 기다렸다는 듯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름 위의 존재들처럼 떠받들어지던 구파의 후기지수들이 끌어내려졌습니다. 그것도 오대학관 중 말석이었던 청룡학관에게 사사건건 발목이 잡혀서 말입니다. 관중들에게는 천무학관의 추락처럼 보일 겁니다. 또한 열광적인 응원은 늘 약자에게 향하는 법이지요. 천무제에 우리의 편은 없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얼굴이 붉어진 장문인들이 진노하기 전에, 천무학관주가 말을 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렇게 큰 시련을 극복했을 때 천무학관 학생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성취를 이루고 강해지겠습니까?”
“허어…….”
“끄응!”
천무학관주에게 화를 내려던 장문인들의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 순간, 천무학관주는 학생들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교육자처럼 보였다.
“책임을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장문인들이 허락하신다면, 용봉비무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제 무공을 한 수씩 가르치겠습니다. 그럼에도 천무학관이 천무제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면…… 관주직을 사임하겠습니다.”
천무학관주의 연이은 충격적인 발언에 장문인들의 눈이 커졌다.
불존과 검성도 미간을 좁힌 채 천무학관주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장문인들께서도 저를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어떻게 말이오?”
침을 꿀꺽 삼킨 한 장문인의 물음에, 천무학관주는 장문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구파에서 적지 않은 영약을 가져오신 것으로 압니다. 장문인들께서는 이번 기회에 그것을 제자들에게 복용시키고, 직접 추궁과혈을 해 주십시오.”
“이제 와서 그런다고 학생들의 무공이 단시간에 크게 오를 거라 생각하시오?”
천무학관주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학생들은 어느 때보다 달아올라 있습니다. 게다가 천하의 이목이 자신들에 집중되어 있지요. 한계를 넘어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이보다 좋은 환경이 있겠습니까?”
충분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용봉비무에서마저 청룡학관에게 패배한다면, 천무학관과 구파의 명예는 추락할 일만 남았다.
고민하던 장문인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요.”
“……좋습니다.”
“언젠가는 내어 줄 것이었으니…….”
소림과 무당을 비롯한 일부는 갑작스러운 영약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등을 이유로 천무학관주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그럼에도 적지 않은 장문인들이 천무학관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