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30
630화. 그거면 되었다
검성은 주작학관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연소하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그의 눈에 애틋한 감정이 어렸다.
“녀석…….”
항상 밝고 개구진 모습만 보여 주던 제자.
벌써부터 술을 밝히는 것과 느긋한 성정이 무당의 도사로서는 싹수가 노랗기는 했지만, 검객으로서는 천재적인 자질과 가능성을 지닌 아이였다.
“그 재능만 믿고 있다간 언젠가 큰코다칠 날이 올 거라고 신신당부하긴 했다만…….”
막상 용봉비무에서 패해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스승으로서 대견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제자한테 가서 위로라도 해 줘야 하는 것 아니오?”
그의 옆에서 백수룡이 얄미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스스로 네 사부의 제자임을 밝힌 이후, 백수룡은 더 이상 구파일방의 누구에게도 말을 높이지 않았다.
배분으로 따지면 잘못된 행동은 아니었으나, 하루아침에 바뀐 태도가 얄미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검성이 그에게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지금은 스승보다 또래들과 함께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지켜보는 중이다만?”
“태극혜검이 꽤 인상적이던데. 내가 알던 것과도 많이 다르고.”
백수룡이 자신의 검술에 관심을 보이자 검성의 입술이 씰룩였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 역시 검객이었다.
검성은 괜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 일평생의 심득을 담아 가르쳤으니 다를 수밖에. 우리 소하가 일 년만 빨리 정신을 차렸어도 비무 결과가 크게 바뀌었을 게다.”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것은 승자의 여유로운 태도였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세 살이나 많은 선배한테 진다고 딱히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청룡학관 아해들이 도발을 잘한다 했더니, 다 선생에게 배운 거였구만.”
검성은 구시렁거리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제자의 비무도 끝났으니 돌아갈 법한데도, 자리를 지키고 백수룡을 힐끔거리는 모습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할 말 있으면 시원하게 하시오.”
결국 백수룡의 재촉이 있고 나서야 망설이던 검성이 입을 열었다.
“내 젊은 시절에 검존을 뵌 적이 있다.”
“……모용 사부를?”
“전에도 느낀 것인데, 마치 알고 지낸 사이인 것처럼 말하는구나. 어딘가에 남겨진 기록을 본 것뿐이라더니.”
백수룡은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검성을 바라봤다. 검성이 가볍게 혀를 찬 후 말을 이었다.
“혈기방장하던 시절이었다. 무림공적인 악인을 쫓다가 오히려 함정에 빠졌지. 이대로 꼼짝없이 죽겠다 싶은 순간이었는데, 갑자기 우릴 포위한 놈들이 하나둘 고꾸라지더구나.”
검성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한 듯했다.
당시 후기지수의 티를 겨우 벗은 그에게 검존이 보여 준 검법은 이해는커녕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어려운 수준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악인들이 모두 쓰러져 있고, 한 사내가 검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무인이었다. 스스로 모용혼이라고 소개했지. 자신이 죽인 자가 무림공적이 맞냐고, 맞다면 소문을 좀 내줄 수 있냐고 공손하게 부탁하더군. 거참, 희한한 검객이었다.”
“……한창 명성을 떨치겠다고 바쁘게 돌아다니던 때였나 보네.”
“무어라고?”
“아무것도 아니오.”
“싱겁긴. 하여간 목숨을 구해 준 은인과 잠시 동행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말수가 많지는 않았는데, 검에 대해서 말할 때만큼은 어린아이처럼 눈빛이 초롱초롱해졌지.”
잠시 말을 멈춘 검성의 시선이 위지천을 향했다.
비무대에서 내려와 선배와 동기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는 소년은, 수줍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분명 닮아 있었다.
그것은 저 소년이 검존의 무공과 의지를 계승했기 때문일 터였다.
“헤어지기 전에, 검법의 이름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더구나.”
큼큼,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검성이 어색하게 검존의 말투를 흉내 냈다.
“내 검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소. 그래서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오. 굳이 부른다면 무명검(無名劍)이라 해야겠지.”
“……하.”
백수룡은 검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실없이 웃었다.
이름 없는 검이라니.
선문답을 좋아하던 모용 사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따라 피식 웃은 검성이 말을 이었다.
“내게는 그와의 만남이 제법 오랫동안 화두였다. 추구하는 검의 극의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토록 인상에 깊게 남은 경우는 흔치 않은 탓에…….”
“무극검(無極劍)이오. 어제도 말했으니 알고 있겠지만.”
한계가 없는 검.
그러니 계속해서 극의를 추구해 나가겠다는 검존의 정신이 담긴 이름이었다.
“……무명(無名)이 무극(無極)이 되었군.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고심 끝에 잘 지었어.”
검성의 말에 백수룡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에게서 처음으로 듣는 모용 사부의 이야기였다.
과거 풍월화공에게 은 사부의 이야기를 듣고, 녹의수사에게서 맹 사부가 남긴 인연을 발견했을 때처럼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든 백수룡이 물었다.
“갑자기 내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요?”
“어제 스승들의 이야기를 할 때의 네놈 표정이 생각나서 말이다. 듣고 싶어 할 것 같았다.”
“…….”
“희한한 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서 구파를 입 다물게 한 수작도 놀라운데, 그 말에 절절한 감정마저 담겨 있으니……. 네 말을 완전히 납득하지는 못하겠으나, 네가 스승들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알겠더구나.”
그때까지 위지천을 바라보던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검성의 옆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고맙소. 여러모로.”
검성은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위지천의 무공이 검존의 무공이되, 동시에 혈교의 사도가 펼치던 무공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는 해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불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백수룡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의 여백을 어느 정도 짐작했을 테지만, 고인이 된 네 사부의 명예를 위해 말을 아꼈다.
정파의 두 거인이 침묵하지 않았더라면, 전날 백수룡은 훨씬 더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피식 웃은 검성이 백수룡을 마주 보며 물었다.
“나중에라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느냐?”
“알겠소. 전쟁이 끝나면 내가 먼저 찾아가지.”
“좋다. 그거면 되었다.”
검성이 후련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그가 백수룡을 등진 채 말을 이었다.
“이렇게라도 존경하는 선배와 검을 겨룰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혹여 꿈에서라도 만난다면 전해다오.”
한 번 웃은 검성은 나타났던 때처럼 홀연한 신법으로 몸을 띄웠다.
백수룡은 멀어지는 검성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사부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으면 좋겠소. 당신들의 무공을 천하가 기억하고 있고, 후대로 이어져 이렇게 증명하고 있는 모습을 말이오.’
잠시 하늘을 바라보던 백수룡은 고개를 내려 사람들로 가득 찬 관중석을 바라봤다.
그중 유독 한 장소가 눈에 띄었다.
나란히 앉아 월병이며 탕후루, 만두를 들고 용봉비무를 지켜보는 네 사람.
“너희도 잘 지켜보거라.”
사제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내가 너희에게 어떤 것들을 가르치고 싶었는지.
“보고 느껴 주었으면 싶구나.”
작게 미소 지은 백수룡은 오래된 소망을 담아 그들을 바라봤다.
* * *
용봉비무 팔강 마지막 경기는 다소 지체되었다.
앞선 위지천과 연소하의 비무에서 부서진 비무대의 판석을 교체하는 데 시간이 걸린 탓이었다.
그렇게 앞선 비무의 여운이 적당히 식은 후, 비무대에 올라선 두 학생이 마주 섰다.
“하여간 천재란 것들은 여기저기 민폐를 끼친다니까.”
대충 늘어뜨린 도와 함께 비무대에 올라선 팽사혁이 이죽거렸다.
그 앞에는 사마현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용봉비무에 남은 주작학관의 마지막 학생이었다.
팽사혁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시작해도 되나?”
“예. 오십시오.”
앞선 비무가 워낙에 강렬했던 탓에, 관중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용봉비무 팔강을 통틀어 가장 화려한 대결을 보여 주었다.
화르르르르륵!
시작하자마자 사마현이 뿜어낸 불꽃이 비무대를 불태웠다. 열화신공의 화염이 싸늘한 겨울 공기를 단숨에 끓어오르게 했다.
기껏 교체한 비무대 판석에 시커먼 그을음이 번졌다. 비무대를 가득 채우고도 여력이 남은 화염이 위로 치솟아 거조의 형상을 이뤘다.
촤아아아악!
팽사혁은 그 불꽃을 가르며 전진했다. 장포가 불타고 머리는 엉망이 되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사납게 이를 드러낸 맹수처럼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화염과 칼날이 부딪치며 폭발을 거듭했다. 그 충격파가 관중석까지 번져 사람들의 머리칼을 뒤집어 놓았다.
화염과 폭풍을 불러온 듯한 싸움이 이어진 끝에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무복이 거의 다 불에 타 근육질의 상반신을 고스란히 드러낸 팽사혁이, 기어이 사마현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몸풀기로는 나쁘지 않았다. 네 몸이 만전이었다면 조금 더 재미있었겠지만.”
“……핑계를 댈 수도 없겠군요.”
사마현이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러 종목에 중복 출전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때문에 용봉비무 마지막 날인 오늘은 이미 시작부터 꽤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승부를 보려고 했고, 팽사혁 또한 그걸 알면서도 시간을 끌지 않고 정면승부로 사마현을 꺾었다.
“어차피 내가 이겼을 거다. 조금 더 쉬웠을 뿐이지.”
“……오늘은 제가 졌으니 인정하겠습니다.”
미간을 찌푸린 사마현은 고개를 돌려 헌원강을 바라봤다.
……아쉬웠다. 한 번쯤은 제대로 겨루어 보고 싶었는데.
팽사혁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저 자식이라면 내가 박살 내 주지. 그런다고 네 연애 사업이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필요 없습니다.”
작은 투덜거림과 함께, 사마현은 패배를 인정하고 비무대에서 퇴장했다.
“염왕의 후계자! 멋졌소이다!”
“하북팽가의 도법은 역시 일절이로군!”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화려한 대결을 보여 준 두 후기지수에게 관중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 용봉비무 팔강에서 승리한 네 명과 그들의 대진이 고지되었다.
첫 경기는 일각과 위지천.
두 번째 경기는 헌원강과 팽사혁.
용봉비무의 우승 후보는 청룡학관과 천무학관으로 압축되었다. 그 결과가 천무제 우승까지도 결정하게 될 터였다.
* * *
와아아아아아!
밖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에도 두 사람이 있는 공간은 외부와 격리된 것처럼 고요했다.
술법의 힘으로 만들어진 별세계.
밤하늘의 한복판에 놓인 것처럼 새카만 공간에서, 두 사내가 마주 공중에 떠 있었다.
현무학관주 대리 종리목과 풍월화공.
현천신녀의 제자이자 본신의 능력으로도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두 술법사의 몸에서 흘러나온 술법의 기운이, 그들의 중심에 떠 있는 한 자루 검에 깃들었다.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진언을 쉴 새 없이 외웠다. 알아듣기 힘든 언어가 운율에 따라 술법의 기운을 강화했다.
벌써 며칠째였다.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제쳐 둔 채 창룡신검을 깨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성과가 비로소 보이고 있었다. 침묵하던 창룡신검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우웅-!
두 사람이 감았던 눈을 동시에 번쩍 뜬 순간.
우우우우웅-!
창룡신검의 검신이 스스로 강하게 진동했다. 마치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처럼 격렬했다.
“성공인가…….”
“부디…….”
며칠간 한숨도 자지 못하고 기력을 쏟은 두 술법사가 해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곧 그들의 눈에 공포스러운 경악이 어렸다.
“스, 스승님!”
주르륵…….
핏물이 창룡신검의 검신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