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4
63화. 열 배면 되겠소? 드르륵.
창문을 열자 찬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흐릿했던 정신이 서서히 맑아지는 기분.
“후우…….”
노인은 천천히 심호흡하며 창 너머로 시선을 주었다.
일찌감치 노안이 온 탓에 시야는 희뿌옇지만, 아직 새벽의 일출을 즐길 정도는 되었다.
“좋구나.”
노인은 선선히 웃으며 고향의 새벽을 내려다보았다.
생업을 위해 일찍 집을 나선 사내와 아낙들.
학관이나 무관으로 향하며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거리는 생기가 넘쳤다.
창문을 열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
고향이 내려오고 지난 몇 주 동안, 노인의 소일거리이자 몇 안 되는 낙이었다.
그 순간, 창문이 저절로 닫혔다.
“어르신. 새벽부터 찬바람을 쐬시는 건 몸에 좋지 않습니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노인은 작게 혀를 찼다.
뒤를 돌아보자 흑의무복 차림을 한 무뚝뚝한 인상의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너도 어지간하구나. 아침마다 내 낙을 방해하느냐.”
“제게는 어르신의 낙보다 건강이 우선이니까요.”
무뚝뚝한 외모와 달리 여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여인은 노인에게 다가와 겉옷을 입혀 주었다.
어느새 준비해 왔는지 침상 옆 탁자에는 따뜻하게 달인 탕약도 놓여 있었다.
“창문 좀 열어다오.”
“약부터 드시면 열어 드리겠습니다.”
“에잉…….”
결국 겉옷을 입고 쓰디쓴 탕약을 한 모금 입에 댄 후에야, 여인은 창문을 다시 열어 주었다.
노인이 여인을 흘겨보며 말했다.
“내 돌아가면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고 다 일러바칠 게다.”
“그럼 저도 어르신이 약을 제대로 안 드셨다고 일러바치겠습니다.”
“고얀 것…….”
노인은 뭐라고 더 쏘아붙이려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말은 얄밉게 해도 참으로 고마운 아이다.
명령이라고는 해도 이 먼 곳까지 자신을 따라와 수발을 들고, 무뚝뚝한 얼굴이지만 늘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고 챙겨 주고 있지 않은가.
“내 돌아가면 너를 더 중한 곳에 써 달라고 말씀드려 보겠네.”
“……제가 잘못했으니 그런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일러바치겠다고 말할 때는 꿈쩍도 안 하던 여인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그 모습이 웃겨 노인은 푸흐흐 웃었다.
다시 창밖으로 몸을 돌린 노인이 거리를 구경하며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약관을 조금 넘길 때까지 살았네. 그리고 수십 년 만에 다시 오게 되었지. 참…… 많이 변했구나.”
“예.”
“고향이지만 정은 없다고 생각했네. 부모님은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고, 그리 좋은 기억이 많진 않거든.”
“……그런데도 굳이 이곳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여인의 질문에 노인은 잠시 침묵했다. 거리를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이 복잡한 감정에 잠겨 있었다.
“그래도 고향은 고향인가 보다. 요양을 다녀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이 이곳이었어.”
“금방 쾌차하셔서 금방 돌아가실 겁니다.”
“……이보게, 흑영. 솔직히 나는 그 복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
흑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여기서 자신이 이래라저래라하는 건 주제넘은 짓이기 때문이다.
노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그의 건강을 돌보며, 혹시라도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식사를 가져오겠습니다.”
흑영이 몸을 돌려 노인의 방에서 내려가려고 할 때였다.
“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노인의 목소리에 흑영이 다시 몸을 돌렸다.
창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다시피 한 노인이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푸하하하! 이것 좀 봐!”
“쯧. 세상엔 별 이상한 놈이 다 있다니까…….”
명백한 비웃음과 무시부터 시작해서,
“미래의 일타강사? 청룡학관 강사라고? 백수룡이 대체 누구야?”
“자넨 그 소문도 못 들었나? 왜 이번에 신입 강사로 들어온 사람 중에…….”
“아! 청룡학관을 천무제에서 우승시키겠다고 선언한 그 허풍쟁이 말이지?”
호기심과 황당하다는 반응들.
“무조건 합격 보장? 이건 그냥 사기꾼 아닌가.”
“청룡학관의 위신도 땅에 떨어졌군. 어찌 이런 저급한 방법으로…….”
“무인이란 자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거세게 타오르는 분노까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온갖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노인의 흥미를 끌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리들 난리지? 무림공적의 용모파기라도 붙은 겐가?”
흑영이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대답해 주었다.
“전단지가 붙은 모양입니다. 백수룡이라는 무공 강사가…… 과외를 할 학생을 구하는 것 같군요.”
“무림에서는 보통 그런 일로 저렇게 욕을 먹나?”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압니다.”
사실 전단지를 보고 무공 과외를 구한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어떤 부모도 실력이 증명되지 않고, 신분이 불분명한 자에게 자식을 맡기려고 하진 않는다.
그래서 무공 과외는 인맥으로 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청룡학관 강사라면 신분은 어느 정도 보장되긴 하겠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백수룡이라는 이름.
사람들의 말을 대충 들어 보니, 허풍이 심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저런 짓을 하는 모양이었다.
‘어르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흑영은 백수룡이라는 이름에 관한 생각을 지웠다. 그녀는 자신의 일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모시는 노인은 그렇지 않았다.
“대체 뭐라고 적어 놨기에 저리들 난리인지 궁금하군. 가서 저 종이 하나만 떼 오게나.”
그 순간 흑영은 노인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왠지 불안했으나, 그녀에겐 노인의 명령을 거절할 권리가 없었다.
“……예.”
고개를 꾸벅 숙인 흑영의 모습이 방에서 스르륵 사라졌다.
잠시 후, 거리에 붙은 전잔지 중 하나를 조용히 챙겨 온 흑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것을 노인에게 건넸다.
“갖고 오는 길에 슬쩍 봤습니다만, 굳이 보실 필요는…….”
“얼른 이리 주게.”
노인은 빼앗듯이 흑영이 가져온 전단지를 가져와 읽었다.
“…….”
한동안의 침묵.
노인은 내용을 쭉 읽더니, 손등으로 눈을 한번 비빈 후 다시 읽었다.
노안 탓에 잘못 읽은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번을 읽어도 내용은 그대로였다.
“허허…….”
경박하기 짝이 없는 문구는 싸구려 약장수들이나 쓸 내용이었고, 자신만만한 말투는 오만을 넘어 광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노인의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이 맺혔다.
“이 친구, 돈이 아주 궁한 모양이야. 그렇지 않나? 자존심 강한 무인이 이런 전단을 붙이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말이야.”
“…….”
무인들은 자존심을 빼면 시체 아니던가.
노인도 어린 시절에는 천하를 질타하는 무림인을 동경했었다.
허리에 검을 차고 청룡학관으로 향하는 소년·소녀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책보에 책을 가득 넣고 학관으로 향하던 코흘리개 시절, 청룡학관으로 향하던 헌앙한 후기지수들과 마주치면 자기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지금이야 어지간한 고수들도 노인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 하지만 말이다.
“무공 과외라……. 허허. 재미있겠군.”
“어르신. 설마…….”
흑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그녀는 노인의 성격을 안다.
지금이야 몸이 약해져 고향으로 요양을 왔다지만,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누구도 말리기 어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은 인자한, 그러나 흑영이 느끼기엔 불길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바깥으로 좀 나가고 싶으니 준비하게.”
“설마 그곳에 가실 셈입니까?”
흑영의 시선은 노인이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향했다. 그곳에는 주소도 적혀 있었다.
청룡학관 인근의 커다란 장원, 백룡장.
오늘 노인의 산책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걱정 마라. 구경만 하고 올 생각이니.”
흑영이 그 말을 그대로 믿기엔, 노인의 눈이 어린아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 * *
장원의 간판에는 용사비등한 필체로 그렇게 적었다.
대문은 활짝 열어 두었다.
전단지를 보고 상담하러 온 학생들이 편하게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미 해가 중천인데도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파리만 날리는데요.”
따악!
나는 재수 없는 소리를 하는 헌원강의 조동아리를 검집으로 후려쳤다.
“악! 왜 때려요!”
“방정맞게 입 벌리지 말고 자세나 똑바로 해. 이거 봐. 벌써 자세 무너지지?”
나는 검집으로 헌원강의 몸 여기저기를 쿡쿡 찔렀다.
녀석은 내가 가르쳐 준 녹림십팔식으로 수련하고 있었는데, 습득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몇 군데 틀린 자세를 지적해 준 후에 물었다.
“전단지는 제대로 붙이고 온 거 맞아?”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헌원강이 억울하다며 펄쩍 뛰었다.
“새벽에 도둑고양이처럼 뛰어다니면서 그 낯부끄러운 종이를 100장이나 붙이고 왔는데!”
“저도 다 붙이고 왔어요.”
헌원강 옆에서 땀을 흘리며 무극검을 수련 중이던 위지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위지천의 자세도 교정해 주며 말했다.
“그래. 내가 저 망나니는 못 믿어도 천이 너는 믿지.”
“왜 나만 차별하는데…….”
“몰라서 묻냐? 몰래 술이나 안 처마시고 왔으면 다행이지.”
“술 끊었다니까!”
“조동아리.”
따악!
헌원강은 조동아리가 퉁퉁 부운 채로 녹림십팔식에 집중했고, 위지천은 천천히 무극검을 펼쳤다.
나는 둘의 자세를 지적해 주며 활짝 열린 대문을 바라봤다.
쩝. 입맛이 썼다.
‘기껏 휴가까지 냈는데 말이야.’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돼 휴가를 내는 나를 보고 동기들이 경악했지만, 내게는 당장 과외를 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역천신공의 성취를 높일 영약을 구하고,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니까.
‘적어도 세 명은 구해야 하는데…….’
어째서 한 명도 찾아오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홍보가 부족했나? 역시 조금 더 자극적인 문구를 넣었어야…….”
“그랬다간 허위 광고로 관아에 신고가 들어갔을걸요.”
“수룡 형, 아니 선생님이 가르치는 건 잘해도 사업에는 재주가 없는 것 같아요…….”
“니들 조동아리 여는 거 보니 할 만한가 보다? 앙?”
한창 두 녀석을 갈구며 수업을 진행할 때였다.
“안에 계신가?”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안색이 그리 좋지 않은 노인과 흑의무복을 입은 여인이 대문을 넘어 들어왔다.
나는 습관처럼 두 사람을 자세히 살폈다.
노인은 허리가 꼿꼿하고 목소리가 또랑또랑하니 힘이 있었다.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안색이 영 좋지 않은 걸 보니 건강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무공을 본격적으로 익히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몸에 배어 있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보통 사람은 아니로군.’
내 시선은 노인을 지나 그 뒤를 따라오는 흑의무복을 입은 여인에게로 향했다.
‘저쪽도 보통은 넘고.’
매서운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에서 강한 고집이 느껴졌다. 언제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었다.
그때 노인이 나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가 백룡장이 맞소?”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나, 그의 손에 오늘 붙인 종이가 들려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어서 오십시오. 일단 저쪽에 앉으시죠.”
“전단지를 보고 상담이나 한번 받으러 왔소만…….”
“손주분을 맡기시려고요? 같이 오시면 더 좋았을 텐데……. 몇 살이나 되었습니까?”
노인과 마주 앉은 나는 노인이 손자나 손녀의 과외 상담을 하러 온 것이라 추측하고 물었다.
하지만 그 순간, 노인은 어린아이처럼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손자는 아니고. 내가 상담을 받아 볼까 하는데 말이오.”
“……예?”
“어르신!”
나보다 노인 뒤에 있던 흑의무복 여인이 더 놀란 듯했다.
“자네는 가만히 있게. 상담일 뿐이라니까.”
노인은 흑의 여인에게 손을 저어 제지한 후,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백 선생. 이런 늙은이도 선생의 과외를 받으면 청룡학관에 입관할 수 있소?”
“진심이십니까?”
“어때 보이오?”
나는 노인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노인도 거리낄 게 없다는 듯 내 시선을 마주 봤다.
잠시 본 것만으로 노인의 정확한 진의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장난기 속에 진지함이 깃들어 있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진심이신 것 같네요.”
“허허. 일단은 상담이나 받으려고 하오. 청룡학관 입관에 나이 제한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청룡학관 입관에 필요한 최소 나이는 열다섯부터지만, 나이가 많은 것에는 아무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보통은 스무 살만 넘어도 입관하려 하지 않았다.
종종 서른이 넘어 입관하는 ‘만학도’가 있긴 하지만, 그것도 아주 드문 경우다.
“어르신. 실례지만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
“올해로 예순다섯이오.”
입관 자격은 50년 전부터 갖고 계셨네요.
내가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자, 노인이 민망한 듯 껄껄 웃으며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배움에 나이가 중요하겠소?”
배움 자체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지만, 그 결과에는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괜히 어린 나이부터 무공에 입문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유연하고 탁기가 없을 때 무공에 입문할수록 유리한 것은 분명한 사실.
간혹 타고난 자질이나 특수한 체질로 늦은 입문을 극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볼 때 노인은 그런 경우도 아니었다.
‘일단 나이가 너무 많아.’
내가 아무리 돈이 궁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노인 뒤에서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흑의 여인의 눈빛도 부담스럽고 말이지.
“어르신.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겠습니다.”
내 말에 노인은 실망한 표정을, 흑의 여인은 감사의 의미로 포권을 취해 보였다.
하지만 노인은 아직 미련이 남은 듯했다.
“……열 배를 준다면 어떻소?”
“예?”
“날 청룡학관에 입관시켜 준다면 과외비를 열 배로 지불하지.”
노인의 눈빛에서 장난기가 걷혔다.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열 배?’
내가 책정한 과외 비용은 은자 삼백 냥이다.
열 배면 삼천 냥.
노인 이외에 다른 학생을 구할 필요도 없는 액수다.
가능만 하다면…….
“손을 좀 줘 보십시오.”
나는 노인의 맥문을 쥐고 진맥을 했다.
몸 안에 흐르는 기의 흐름을 더욱 잘 느끼기 위해 눈을 감고 천천히 살폈다.
그렇게 일다경 정도 살핀 후,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죄송하지만 열 배를 주셔도 어렵겠습니다.”
내 한마디에 노인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역시 그런가…….”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누구에게 상담을 받으셔도 똑같이 말할 겁니다. 제가 할 수 없으면 청룡학관의 누구도 못 합니다.”
“허허. 오만하지만 왠지 믿음이 가는구려.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상담해 주어서 고맙소.”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선 어깨는 처음 대문으로 들어올 때보다 처져 보였다.
나는 백룡장을 나서는 노인을 배웅했다.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오히려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오.”
“열 배……. 큰돈이지만 그 정도 돈으로는 어려운 일이라서요.”
“그렇겠지. 세상에 돈만으로 다……. 무어라?”
방금 내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노인이 나를 돌아봤다.
나는 방금 ‘그 정도 돈으로는 어렵다.’라고 했다.
“그 말은 혹시…….”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흥정이야말로 거래의 기본이 아닌가.
“스무 배를 주시죠. 그럼 청룡학관 역대 최고령 합격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