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89
88화. 칠(七)입니다“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이가 갑자기 길을 막아선 순간, 헌원강은 즉시 도파에 손을 얹으며 맹수 같은 살기를 뿜어냈다.
그 모습에 다가오던 남궁석이 흠칫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뭡니까?”
“너야말로 뭐 하는 새끼야?”
헌원강의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반응에 남궁석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유명한 망나니라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게다가…….’
꿀꺽.
마른 침을 삼킨 남궁석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몇 걸음 물러나 있었다.
헌원강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과 느낌이 전혀 달랐다.
숙부에게 듣기로는 재능은 있지만 태생이 게으른 놈이라고 했는데…….
‘게으른 무인이 이런 기도를 뿜어낼 수 있다고?’
“어이. 뭐냐니까? 귓구멍이 막혔어?”
놀란 것도 잠시, 시비를 거는 듯한 헌원강의 말투에 남궁석의 표정이 굳었다.
상대의 기세가 강하다 한들, 소년은 자존심으론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대남궁세가의 핏줄이었다.
“당신한텐 일 없습니다. 내가 볼일이 있는 사람은 당신의 뒤쪽입니다.”
“……뭐?”
그 순간, 어째선지 헌원강의 표정이 더욱 야차처럼 변했다.
공손수의 앞을 가로막은 헌원강이 도를 반쯤 뽑으며 으르렁댔다.
“네가 할아범한테 무슨 볼일인데?”
“……말고 그 옆 말이요.”
“위지천?”
비로소 헌원강의 표정이 조금 풀렸지만, 여전히 경계를 풀지는 않았다.
다소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서 위지천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예? 왜 저를…….”
헌원강 때문에 분위기가 다소 우습게 되었지만, 남궁석은 개의치 않고 준비해온 선전포고를 했다.
“올해 수석은 나다.”
“네?”
“조막생 따위를 이겨 놓고 벌써 수석이라도 한 것처럼 기고만장하지 말란 말이다.”
“제가 언제…….”
위지천의 당혹스러운 표정에, 남궁석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가식을 떠는 건가, 아니면 나중에 망신당할 것에 대비해 밑밥을 깔아 두는 건가. 너도 주변에서 하는 말을 못 듣진 않았을 텐데.”
“…….”
남궁석의 기분은 최근 며칠 동안 최악이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위지천’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지난 십 년 이내 최고의 기재라느니, 청룡학관에 잠룡이 들어왔다느니, 수석은 따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느니.
심지어 남궁석이 존경하는 십존의 일원 남궁제학마저, 오늘 함께 점심을 먹는 중에 그 이름을 꺼냈다.
-위지천이라는 아이에 대해서 아느냐?
‘빌어먹을…….’
모두의 기대와 관심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어야 했다.
대남궁세가의 핏줄.
그에 따라오는 어마어마한 기대와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을 자신은 항상 충족시켜 왔다.
비록 형들에게 순서에 밀려 청룡학관에 입관하게 되었지만, 남궁석은 오히려 이것이 기회라고 여겼었다.
-네 시대부터 청룡학관은 바뀔 것이다.
숙부인 남궁수가 그렇게 장담했고, 남궁석도 본인도 동의했다.
재능으로도 노력으로도 동년배 중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오대학관 중 가장 떨어진다는 청룡학관 따위에 자신의 적수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위지천이라는 눈엣가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전 기고만장한 적 없어요. 제가 당연하게 수석을 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
“흥.”
조심스러운 위지천의 말에, 남궁석은 코웃음을 치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위지천이 자신의 선전포고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행히 주제 파악은 하고 있었군. 벌써 꼬리를 마는 건 좀 한심하긴 하지만…….”
“하지만 그쪽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갑작스러운 반전 화법에 남궁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옆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헌원강이 “이것 봐라?” 하며 킥킥 웃었고, 공손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대치 중인 두 소년을 바라보며 “청춘이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위지천이 남궁석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덤덤히 말을 이었다.
“절 먼저 도발한 건 그쪽이에요. 저희 선생님이, 누가 선빵을 날리면 두 배로 갚아 주라고 하셨거든요.”
“그……쪽?”
남궁석은 위지천이 하는 말의 내용보다 호칭이 더 신경이 쓰였다.
설마.
“너……. 내 이름을 모르나?”
“그리고 수석을 해서 하고 싶은 일도 생겼고요.”
“너……!”
위지천은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돌렸지만, ‘그쪽’을 열 받게 하기에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공손수가 옆에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천아. 수석을 해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물어봐도 되느냐?”
“……신입생 대표 연설이요.”
“호오?”
수석을 하면 입학식 때 신입생 대표로 연설을 하게 된다.
강사들, 같은 신입생들, 재학생들, 그리고 무림의 수많은 선배들 앞에서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자리.
청룡학관에 입학한 신입생 중, 단 한 명만이 설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그 자리에서 올라가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평소 얌전한 성격의 위지천이기에, 많은 사람 앞에 나서는 자리에 서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이 공손수와 헌원강에겐 무척 의외였다.
물론 남궁석에겐 자신을 도발하는 것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아니. 넌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거다. 왜냐면 신입생 연설도, 졸업생 연설도 전부 내 차지가 될 테니까.”
“……졸업생 연설에는 관심 없는데요?”
“건방진 자식이……!”
두 소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봤다.
허공에서 눈빛이 부딪쳐 불꽃이 튀는 듯했다.
헌원강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남궁석에게 말했다.
“이봐. 볼일 끝났으면 길 좀 비키지? 내가 지금 좀 예민하거든?”
“당신은 빠져.”
“하?”
빠지란다고 빠지면 청룡학관의 망나니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헌원강의 입에서 걸쭉한 육두문자가 쏟아져 나왔다.
“이런 쥐좆만 한 새끼가 하늘같은 선배님께서 말씀하시면 네, 하고 비킬 것이지 말끝마다 따박따박 말대답을 해? 네가 오늘 아주 숨지고 싶어서 작정했구나?”
웬만한 파락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건들거리는 자세하며, 고개를 삐딱하게 들고 눈깔에 힘을 팍 주고 사람을 내려 보는 모양새까지. 그야말로 자릿세 받으러 온 건달이었다.
“허. 뭐 이런 파락호 같은 자가……!”
어려서부터 명문가에서 교육받고 자라온 남궁석이었다. 평생 그런 말을 처음 들어본 터라 당황해서 입이 떡 벌어졌다.
헌원강이 고개를 삐뚜름하게 꺾으며 말을 늘렸다.
“파락호? 파락호오오오오?”
“다, 다가오지 마라!”
진심으로 당황한 남궁석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헌원강은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듯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갔다.
“오구오구. 어디 수석을 노리는 후배님 실력 한번 볼까? 마침 아무한테도 말 못 하는 이 내적 고통을 분출할 곳이 필요했거든? 한 놈만 걸리면 사지육신을 분리시켜 놓으려고 했단 말이지. 한 놈만……. 흐흐흐.”
“미, 미친 자였나.”
살짝 맛이 간 눈으로 다가오는 헌원강의 모습에 놀란 사람은 남궁석뿐만이 아니었다.
“……천아. 원강 선배가 그동안 쌓인 게 많은 모양이다.”
“그러게요…….”
“흐흐흐. 너 일루와, 이 새끼야아!”
헌원강이 성큼성큼 걸어가 남궁석의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만-!”
내공이 담긴 사자후와 함께, 두 사람 사이에 한 사람이 뚝 떨어져 내렸다.
두 사람의 대치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던 군중들이, 새로 등장한 인물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학생회장!”
“독고준이다!”
“청룡학관 학생회다!”
독고준을 필두로, 당소소, 청룡쌍걸 등의 학생회 간부들이 인파를 헤치고 나타났다.
“갑자기 웬 소란인가 해서 와 봤더니…….”
독고준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헌원강을 바라봤다.
입학 동기인 이 망나니와는 삼 년간 여러 번 이런 식으로 만났다.
“헌원강. 한동안 얌전해진 것 같더니 그새 또 사고를 치는군.”
“이봐. 이번엔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거든?”
“……곧 오후 시험이 시작된다. 그만하고 물러서도록. 남궁석. 너도 마찬가지다.”
독고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조용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저 망나니가 얌전히 돌아갈 리가 없었다. 어느 정도의 충돌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제압하고 상황을…….’
그러나 독고준이 예상한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헌원강이 홱 돌아선 것이다.
“알았다. 할아범! 위지천! 시간 없으니까 빨리 들어가자고!”
“음?”
“예?”
“가서 준비하자고. 시험 안 볼 거야?”
방금까지만 해도 남궁석을 잡아먹을 듯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헌원강은 공손수와 위지천의 등을 떠밀었다.
“무슨…….”
황당해하는 남궁석에게, 헌원강이 씩 웃으며 한마디를 남겼다.
“꼭 합격해라. 앞으로 자주 봐야지.”
“헌원강!”
“알았어. 알았다고.”
어깨를 으쓱한 헌원강은 자신을 노려보는 독고준을 스쳐 지나가며 피식 웃었다.
“그럼 이만 실례.”
청룡학관 안으로 사라지는 헌원강의 뒷모습을 보며, 독고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어떤 의심이 들었다.
“설마…… 우릴 불러내려고 일부러 이 소란을 일으킨 건가.”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저 능글맞은 표정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회가 오면서 소란스러웠던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었으니까.
만약 이 모든 것이 헌원강이 의도한 거라면?
‘헌원강……. 확실히 변했군.’
게다가 독고준을 놀라게 한 사람은 헌원강뿐만이 아니었다.
잠깐 본 것뿐이지만, 남궁석과 위지천도 독고준을 감탄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둘 다 신입생 수준은 이미 넘었다.’
또한 위지천과 남궁석만큼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는 않지만, 올해 입관 시험에 지원한 학생들 중에는 옥석이 제법 여럿이었다.
“올해는…… 확실히 달라.”
독고준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청룡학관의 거대한 현판을 올려보았다.
* * *
웅성웅성.
“잠시 후 대련 시험이 곧 시작될 예정이오니, 관객석에 계신 귀빈 여러분께서는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룡학관 부관주 곽철우의 목소리가 청룡학관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청룡학관 입관 시험은 그 자체로 지역 무림의 커다란 축제였다.
특히 잠시 후 시작될 대련 시험은 그중에서도 백미라 할 수 있었다.
현 청룡학관 학생회 선배들과 신입생 지원자들이 맞붙는 대련 시험, 청룡학관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이 시험을 관전하기 위해 무림의 저명한 인사들까지 찾아올 정도였다.
대연무장에 마련된 총 열 개의 비무대.
그 주변의 대기석에서 지원자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긴장을 풀었다.
“후우…….”
“긴장돼서 미치겠다…….”
“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아직은 앳된 무림의 아이들.
관객석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이보시오. 그쪽은 입관 시험 관전이 처음이오?”
“그렇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소. 나는 삼십 년 넘게 여길 왔거든. 딱 보면 알아.”
“하하. 그렇습니까?”
옆자리의 수다스러운 노인이 말을 걸어왔음에도, 사내는 귀찮은 기색도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흔한 얼굴의 사내였다.
흥이 난 노인이 계속 떠들었다.
“내가 무공 고수는 아니지만 눈이 엄청 좋아. 딱 보면 안다니까? 저 녀석이 합격할지 떨어질지, 미래에 고수가 될지 안 될지 말이야.”
“그렇군요.”
돌아온 대답이 시원찮았지만, 노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니까.
“다들 청룡학관이 오대학관 중에서 가장 처진다느니 어쩌느니 하는데, 올해부터는 다를 거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흐름이라는 것이 그렇소. 청룡이 십 년을 웅크리고 있었던 건 승천하기 위해서라 이 말이지. 내가 풍수지리도 좀 볼 줄 아는데…….”
“…….”
“그러니 두고 보시구랴. 올해는 청룡학관이 전 무림에 파란을 일으킬 게요.”
“……흥미롭군요.”
사내는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다쟁이 노인은 그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래도 질색하며 자리를 떠나는 다른 놈들보다는 나았다.
“헌데 이름이 뭐요? 통성명이나 합시다.”
계속 귀찮게 구는 노인의 질문에도, 사내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름은 잊었고, 동료들은 칠(七)이라고 부릅니다.”
스스로를 칠(七)이라 소개한 사내는, 수많은 지원자들 중 단 한 명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공손수가 몸을 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