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88
87화. 기다리고 있었다휘익!
지붕 위에 가볍게 내려선 흑영이 백수룡의 뒷모습을 보며 보고했다.
“학생주임 매극렴이 혈방 지부로 들어갔습니다.”
“탈출로는?”
백수룡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적인 어조로 물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에 흑영은 속으로 놀라고 있었지만, 티를 내지 않으며 간결하게 대답했다.
“제가 막았습니다. 주변 청소도 끝냈으니, 도박장 안쪽에 있는 자들만 처리하면 혈방에서 정보가 새어나갈 일은 없습니다.”
“수고했어.”
짧게 대답한 백수룡은 지상을 살폈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지붕 위.
백수룡은 공손수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수많은 인파를 관찰하고 있었다. 때문에 흑영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동쪽에서 셋. 서쪽에서 둘. 남쪽에 둘…… 아니 셋이군.”
그의 예리한 관찰력과 분석 능력이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수많은 인파 속에서, 백수룡은 살수들만을 정확히 찾아내 지상의 동료들에게 전음으로 위치를 알렸다.
[연호. 동쪽의 과일 가판대에 있는 노인을 잡아.] [일오. 뒤쪽에 있는 붉은 옷의 기녀에게 접근해라.] [소영. 십여 장 뒤쪽에 어린 남매 보이지? 말을 걸면서 잠시 시간을 끌어.]마치 거대한 장기판 같았다.
백수룡의 지시에 따라 세 사람이 살수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시간을 지연시키고, 경로를 꼬이게 만들어 공손수에게 닿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잠시 전음을 멈춘 백수룡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손가락을 뻗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리고 흑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 봇짐장수 보이지?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는데, 할 수 있겠어? 힘들 것 같으면 내가…….”
“제가 가죠.”
자존심이 상한 듯 흑영이 콧방귀를 뀌었다.
즉시 지붕에서 뛰어내린 흑영이 인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전직 천영 최고의 살수였던 이름값을 증명하듯, 흑영은 은밀하고 신속하게 상대를 처리했다.
백수룡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제법이네.”
아직 부상이 다 낫지 않았을 텐데도 흑영은 충분히 제 몫을 해 주고 있었다.
잘해 주고 있는 것은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백수룡은 흑림과 혈방 간에 이간질을 한 이후로는 직접 움직이는 것을 최소화하고, 상황을 살피고 조율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혈방엔 매극렴이 갔으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고.’
혈방은 살수보다는 낭인에 가까운 사파의 무인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로, 삼대 살수 조직 중 가장 숫자가 많고 여러 도시에 지부가 설립돼 있었다.
당연히 지부의 위치는 비밀이었으나, 흑영은 예전부터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극렴을 보냈다.
손에 쥔 패 중에서 가장 강력한 패.
전형적인 정파 무인인 매극렴이 가장 혐오하는 종류의 인간 백정들과 만난 이상, 그의 검은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밖에 나와 있는 혈방의 살수들은 흑림에서 처리해 줄 거고.’
흑림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혈방이 자신들을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드디어 삼대주의 귀에 들어갔는지, 잠시 뒤로 물러났던 흑림의 살수들이 혈방의 살수들을 찾아 죽이기 시작했다.
푹.
살수들은 대놓고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어두운 골목에서, 그늘진 담벼락 아래에서, 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다가 조용히 서로를 찌른다.
푹.
싸움이 끝나면 한쪽은 깊은 잠에 빠지듯 조용히 눈을 감는다.
살수에게 고통은 익숙하기에 비명은 거의 없다.
승자는 그 시체를 업거나 부축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가 처리한다.
‘백주대낮에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관아가 개입하게 된다. 일이 커지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아.’
그렇기에 이곳에서 벌어지는 살수들의 싸움은 소리 없는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게 너희들의 약점이지.”
도시 곳곳에서 살수들끼리 죽고 죽이며 숫자가 줄어드는 모습을, 백수룡은 감정 없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흑림의 살수들로 혈방의 살수들을 사냥하고, 그런 흑림의 살수들을 흑영과 청룡학관의 임시 강사들이 사냥한다.
혈방의 지부에는 매극렴을 보내어 추가 병력을 보내지 못하도록 틀어막는다.
과격한 낭인이 주축인 놈들이라, 어떤 과격한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혹시 모를 변수마저 최소화했다.
“일단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방심하지 않았다.
‘아직 살막이 나서지 않았어.’
살막(殺膜).
명실상부 무림 최강의 살수 집단.
어느 날 무림의 이름난 고수가 갑자기 죽었다고 알려지면, 가장 먼저 살막이 의심을 받는다.
하지만 백수룡이 살막을 경계하는 것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혈교는 사라졌는데, 살막은 남아 있단 말이지…….”
무림에는 알려지지 않는 비밀 하나.
살막은 혈교에서 만든 조직이었다.
살막의 수장인 일살(一殺)은 대대로 혈교의 장로 중 한 명이었고, 오십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혈교의 구(九)장로가 바로 일살이었다.
‘무림맹은 두 조직의 연관성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럼 살막은 독립적인 세력이 된 건가? 아니면…….’
혈교의 유산이 살막에 남아 있는 것일까.
“……정확한 건 잡으면 알 수 있겠지.”
지상을 바라보는 백수룡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이번 일은 공손수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혈교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알아내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
긴 인내심 싸움이 될 것이다.
살막은 가장 치명적인 순간까지 기다릴 테니까.
물론 백수룡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허허허허!”
공손수는 오늘따라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제 대련 시험까지 반 시진도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헌원강은 그 모습이 얄미워서 퉁명스레 물었다.
“할아범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대련 시험이 코앞인데 긴장도 안 돼?”
“오전 시험 때는 조금 긴장을 했다만, 지금은 괜찮구나.”
공손수는 활기로 가득한 고향의 거리를 흐뭇하게 둘러봤다.
“……시간이 참으로 빠르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창밖으로만 바라보던 풍경이었다.
약해진 몸으로는 가벼운 산책 정도가 한계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리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고향이지만 낯선 곳.
어릴 적 동무들은 모두 죽었고, 알던 거리나 가게도 대부분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것은 한 줌도 안 되는 추억뿐.
그마저도 빛바랜 것들이라, 죽기 전까지 천천히 곱씹으며 여생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연을 얻었구나.’
잠깐의 유흥으로 시작한 무공 과외가 공손수의 남은 인생을 바꿔 놓았다.
무공을 배우면서 탁해진 몸이 깨끗해졌고, 생사신의조차 몇 년 더 살지 못하리라 말하던 육신이 몰라볼 정도로 건강해졌다.
덕분에 다시 황제 폐하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공손수는 그 사실이 기뻤지만, 또한 아쉬웠다.
“허허. 저기도 한번 구경하러 가 보자꾸나!”
“……저길 꼭 지금 가야 해?”
어째선지 아까부터 울상인 헌원강에게 공손수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선배.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날이 온단 말인가. 계속 구시렁거릴 거면 먼저 들어가든가, 아니면 군말 없이 따라오게.”
“선배님. 진짜 어디 안 좋으신 거 아니에요? 힘들면 먼저 들어가세요.”
“……야, 위지천. 네가 더 나빠.”
“예?”
헌원강의 원망 어린 시선에 위지천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거 어서들 오래두!”
공손수의 두 사람을 이끌고 열심히 거리를 돌아다녔다.
아이처럼 거리에서 당과를 사 먹고, 한창때의 청년처럼 예쁘게 꾸미고 나온 처자들을 힐끔거렸다. 장년의 사내처럼 목에 힘을 뻣뻣하게 주고 걸어 다녔다.
고향에서 경험하지 못한 세월.
뒤늦게나마 그것을 흉내 내는 공손수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었다.
“허허! 즐겁구나. 즐거워. 내 평생 오늘만큼 즐거운 나들이를 해 보진 못한 것 같구나.”
“늙어서 주책은…….”
헌원강은 툴툴대면서도 주위를 경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잠시도 긴장을 풀지 않고 기감을 확장하고 있었기에, 헌원강은 주변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다가오던 사람이 한 명씩 사라지고 있어.’
빙탕후루를 팔던 아줌마가 갑자기 고향 친구를 만나 끌려가고, 멀리서 눈웃음을 치며 다가오던 기녀가 갑자기 집적대는 남자 때문에 뒤로 물러났다.
길에서 울고 있던 아이가 눈물을 뚝 그치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뒷골목으로 사라지는 모습도 보았다.
‘대체…… 우리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헌원강은 피부에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공손수와 위지천은 아무것도 모른다.
둘 다 살수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않아 경계심이 없는 탓이었다.
오직 헌원강만 그 사실을 알기에 내적 고통을 받고 있었다.
“허허. 저기도 가 보자꾸나.”
“와! 이것도 맛있겠어요!”
“차라리 날 죽여…….”
물가에 어린애 내놓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헌원강은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나자 진이 다 빠졌다.
공손수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슬슬 청룡학관으로 돌아가야겠구나. 더 놀고 싶지만 오후 시험에 늦으면 큰일이니 말이야.”
“드디어…… 청룡학관으로……!”
“선배. 그런데 아까부터 왜 그리 피곤해 보이나?”
“앓느니 죽어야지…….”
세 사람은 청룡학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손수는 뭔가 아쉬운 듯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번에 황궁으로 올라가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발걸음이 자꾸만 느려졌다.
“할아범. 시험 보러 안 갈 거야?”
헌원강이 공손수의 등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재촉했다.
“허허. 가야지. 가야지…….”
공손수는 억지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다.
잠시 후, 멀리 청룡학관의 거대한 현판이 보였다.
공손수가 지나가듯 말했다.
“……너희에게만 하는 얘기다만, 나는 입관 시험에 붙어도 학관에 다니지는 못할 것 같구나.”
“예?”
“그게 무슨 소리야?”
당황한 표정을 짓는 두 소년에게, 공손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입관 시험이 끝나는 즉시 다시 황궁으로 가게 되었다.”
“이렇게 갑자기요?”
“아니 뭔…….”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구나. 걱정하실 것 같아 몸이 건강해졌다는 소식을 전했을 뿐인데…… 다시 올라오라는 부름을 받았단다.”
황제에게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 늙어 퇴물이 된 늙은이를 다시 불러주시니 영광이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공손수는 아쉬움을 삼키며 웃었다.
“잠시나마 즐거운 꿈을 꾸었으니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단다.”
“…….”
“…….”
공손수가 한 달 동안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두 사람은 매일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시험에 합격해도 청룡학관에 다닐 수 없다니.
그렇다고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크흠. 괜히 나 때문에 분위기가 어색해졌구나. 어서 들어가자꾸나.”
청룡학관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후 대련 시험은 지원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관전이 허락된 터라, 수많은 인파가 청룡학관으로 몰려 무척 혼잡한 상태였다.
“젠장…….”
중얼거린 헌원강이 갑자기 일행의 선두로 나서더니, 공손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할아범은 내가 꼭 지켜 줄게.”
“음? 지키다니 무슨 말인가?”
“……모르면 됐어. 아니, 몰라도 돼. 할아범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시험이나 잘 보면 되는 거야.”
성큼 앞으로 나선 헌원강이 내공을 끌어올려 버럭 소리쳤다.
“저리 꺼지지 못하겠냐, 이 애송이들아! 청룡학관 삼학년 선배님이 지나가시는데 감히 길을 막아? 이것들이 다 뒈지고 싶나!”
청룡학관의 망나니가 오랜만에 사나운 기세를 드러내며 사방을 휙휙 노려보자, 막혔던 길이 삽시간에 뻥 뚫렸다.
공손수는 그 모습이 황당해서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구나. 그런데 선배. 이러면 나중에 백 선생에게 혼나는 것 아닌가?”
“그건…… 아 몰라!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빨리 가서 준비나 하자고.”
그러나 세 사람이 청룡학관 내부로 들어가기 직전, 누군가가 스윽 그 앞을 가로막았다.
“기다리고 있었다.”